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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임미리 파동

by Nomadia 2020. 2. 18.

가히 ‘임미리 파동’이라고 할 만하다. 그리고 이렇게 된 데에는 민주당의 미숙하고, 다소 유치한 대응이 일조한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미숙하기로는 임미리 파동을 바라보는 일부 지식인들(무려 홍세화 선생까지!)과 논객들도 마찬가지다.

 

사실 임미리의 사설 하나만 놓고 보면 ‘뭐 이런 유치찬란한 주장이 다 있나’ 싶을 정도다. 이 분의 이전 칼럼들은 최소한 이렇지는 않았다.[1] 그래도 일견 타당하기로는, 써 놓은 글에서 나름 현재 한국사회 정세가 박근혜 탄핵 당시의 ‘촛불주도’에서 ‘문재인 정권 주도’로 변질되고 있고, 이 권력이 ‘타락’하면서 촛불의 염원은 가뭇없어져 버렸다고 진단하는 부분이다.[2] ‘하나의 견해’로서 받아들일만하다.

 

하지만 문제는 ‘그렇기 때문에 #민주당만_빼고_찍자’라는 구절이다. 사람들이 분노하고, 안철수가 이때다 싶어 부화뇌동하는 것도 이 구절이다. 나로선 이 구절이 매우 유치찬란할 뿐이다. 느닷없이 ‘#너하곤_안_놀아’라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우스개로 딱 안철수식 화법이다 싶었는데, 과연!). 궁지에 몰린 진중권씨가 SNS에다 그러는 것이야 그냥 넘어가지만, 일간지 사설에 떡하니 기입된 저런 구절을 보는 것은 헛웃음을 불러일으킨다.

 

이후 사람들은 임미리씨의 행적들을 들여다보고는 경악했다. 정말 민주당과 진보정당들만 빼고 모든 정당들에 이름을 올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분이 촛불 정국때 열심히 투쟁했다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한다(그리고 이전의 칼럼들에서는 노동자-민중 친화적 글들도 보인다는 것도). 임미리라는 분은 정치적인 질풍노도의 시기를 지나가고 있는 미숙한 지식인일 뿐인가? 쁘띠적인 감성으로 충만하고, 정치적 신념은 아직 형성 중인 그런?

 

이후에 나온 해명글은 이런 심증을 다소 분명하게 만든 것으로 보인다.[3] 정당에 ‘이름만 빌려준 것’이므로 ‘난 정당과 관련 없는 객관적 지식인이다’라는 논변이 타당한가? 그렇지 않다. 이것도 다만 유치할 뿐이다. 그 누구도 심지어 지식인이 아닌 일반인들도 그런 식으로 자신의 이름이 정치적으로 이용당하는 것에 찬성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이름올리기’는 거절하는 것이 당연하고, 그런다고 지인들이 비난하지도 않는다(이게 아니라면 그간의 정치적인 연명서가 그토록 엄격하게 작성되는 것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그러므로 임미리의 글은 아직 ‘수업시대’에 놓인 한 지식인의 의견정도로 넘어가면 될 것이었다. 그런데, 여기 민주당이 애먼 짓을 한 것이다. 또한 마찬가지로 여러 식자들(진중권과 김경률은 패스, 안철수는 ... 그냥 웃지요)이 너도나도 이 애먼 짓을 매개로 분노하신다. ‘표현의 자유’가 또 등장한다. 해시태그를 단다. 이쯤 되면 소위 ‘과잉결정’이라는 단어가 딱 맞아떨어진다.

 

어이없는 칼럼이 이어진다. 최근의 홍세화 선생의 칼럼[4]은 화룡점정이다. 진중권의 패러디를 재패러디 하면서(‘막 나가는 거지요’), 그는 ‘증빙이 없다면 꾸며낼 수 없는 범죄혐의점들’을 말한다. 하지만 그가 가정한 ‘증빙’은 가정이 아니라 범죄구성을 위한 ‘필수’요건이다. 그런데도 그는 ‘정치 검찰과 기레기 언론의 말을 믿느냐고?’라는 의도가 뻔한 질문을 해대며, 우리에게 검사들의 말을 무조건 믿으라고 강요한다. 실망스럽다. 선생의 이 글은 근래 보기 드문 감정 과잉의 ‘자기한탄’이다. 선생은 그간 자신이 얼마나 욕을 봤는지, 비난에 시달려 왔는지 밝히지만 그것은 임미리 사안과는 관계 없다. 따라서 사안에 대한 근거는 실종된 글일 뿐이다.

 

난 지식인들이 공적인 글을 쓸때는 신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임미리를 필두로 홍세화에 이르기까지 이 신중함은 찾아보기 힘들다. 거기에는 헛된 도덕적 분노, 고리타분한 지사적 수사, 자의식 과잉의 유치한 한탄만이 있다. 공론장이 놀이터가 되어 버리는 순간이다.

 

그래도 스스로는 너무 위대해 보일 것이다. ‘내가 이렇게 분노한다. 이 고결한 분노로서 선언하노니, #너하고는_놀지_않겠다.’ 얼마나 고결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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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문제가 된 사설과 더불어 임미리의 ‘정동칼럼’ 전체를 보려면 다음 참조.
http://news.khan.co.kr/reporter_article.html?id=545
[2] 나로선 이 부분의 주장이 매우 감정적이고, 과장되었다고 본다. 논리보다 권력에 대한 원초적 반항감이 더 앞서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국은 분석의 냉철함을 사라지고 분노의 ‘일성’만 남는다.
[3] 해명글은 다음 참조.
https://www.edaily.co.kr/news/read
[4] 홍세화 선생의 글: http://redpill.kr/index.php?mid=column&document_srl=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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