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philosopher in NOMADIA
  • philosopher in NOMADIA
  • philosopher in NOMADIA
오다가다 번역

<미지의 마르크스를 향하여>(엔리케 두셀)_저자서문

by Nomadia 2021. 2. 13.

원문서지: Enrique Dussel, (trans.) Fred Moseley, Towards an Unknown Marx-A Commentary on the Manuscripts of 1861-63, (New York: Routledge), 2001, pp. xxxii-x1.

 


저자 서문

 

19321844 경제학-철학 수고(‘Economic and Philosophical Manuscripts of 1844’)의 출간과 더불어 그리고 허버트 마르쿠제(Herbert Marcuse)의 유명한 견해들과 함께 맑스의 사유에 관한 어떤 개역(revision), 다시 말해 극단적인 경제주의와 소비에트 맑스주의의 소박한 유물론에 대한 반작용이 시작되었다. 1939년에, 그룬트리세(Grundrisse)가 출간되었지만, 2차 세계대전 덕분에 주목받지 못한채 지나갔다. 상황이 여전히 좋지 않았던 1954년에 두 번째 판본이 나왔다. 1968년이 되어서야 로만 로스돌스키(Roman Rosdolsky)마르크스 자본론의 형성에 관하여(Zur Entstehungsgeschichte des Marxschen Kapitals)의 출판과 함께 맑스의 창조적 사고의 역사적 발전과정에 관한 재발견이 이루어졌다.

 

이 책의 주제인 1861-63년 수고(Manuscripts of 186163)(1857-8년의 그룬트리세에 뒤따라 오는) 자본론의 두 번째 초안이다. 이 수고본들은 1976년부터 1982년까지 독일에서 처음으로 출간되었다. 그 출판물은 이전에 세 권짜리로 나왔고, 현재 비판적 편집이 이루어진 잉여가치학설사(Theories of Surplus Value)를 포함한다.

 

자본론의 세 번째 초안은 1988년에 출간된 1863-65년 수고(MEGA II, 7, Vol. 1)[1]로서, 1864년 판 자본론1권에 속해 있었던 유명한 미출간 6’(Unpublished Chapter VI)이 포함되었고, 2권의 수고 I도 있었지만, 지금은 전혀 알려져 있지 않다. 뒤따르는 3권의 수고 I(MEGA II, 7, Vol. 2)는 이 자본론의 세 번째 초안이 처음으로 알려지게 된 계기였다.

 

더 나아가 자본론1권의 두 가지 새로운 비판적 판본 - 자본론의 네 번째 초안 - 1988년에 나왔다. 1867년 초판(MEGA II, 5)1873년 두 번째 판(MEGA II, 6)이 그것이다.

 

오늘날에는 우리 자신을 포스트-맑스주의시대에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유행이다. 내 생각에 포스트-맑스주의라기 보다는, 특히 라틴 아메리카에서, 또한 마찬가지로 유럽과 미국에서, 우리는 심각한 하나의 시기, 즉 정확히 말해, 맑스 자신과의 근본적인 재-교전(re-encounter)의 시기에 처해 있다. 맑스주의의 두 번째 세기’ - 만약 1883년에서 1983년까지를 첫 번째 세기라고 본다면 , 전지구화된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을 위해 우리는 맑스에게서 19세기에서보다, 오늘날 더 잘 활용될 수 있는 과학적 사유의 원천을 재발견할 것이다.

 

I.

18618월과 18627월 사이에, 맑스는 23권의 노트를 썼는데, 이는 1967년과 1982년 사이 독일에서 처음 출판되었다. 이 자료는 엥겔스와 카우츠키에 의해 이른바 자본론II, III, IV권을 출간하기 위해 참조되었다. 더 이후의 맑시즘 전통에서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이 노트들은 1472페이지의 수고로 구성되는데, 독일 판본에서는 2384페이지로 증보 인쇄되었으며, 영역본에서는 다섯 권이 되었다(Marx 1989). 엥겔스가 자본론II권의 서문에서 간략하게 기술되었던, 이 방대한 자료들은 1857-8그룬트리세[2]1863-65년 수고, 자본론I(1867년에 출판되었다)[3]에 속한 저작 사이의 중간 단계이다. 지금 이 순간까지 나는 비고츠키(Wygodski, 1978 and 1965), 뮐러(Müller, 1978), 튀흐슈어레르(Tuchscheerer, 1968)프로젝그루페’(‘Projekgruppe’, 1975)와 같은 몇몇 부분적인 작업들에도 불구하고, 이 모든 1861-63년 수고를 상세하게 다룬 책을 발견하지 못했다. 그리고 마침내 1861-63년 수고의 출간자들 가운데, 여러 저자들의 최근작이 나온 것이다(Wolfgang and Müller 1983).[4]

 

맑스가 42살이었던 때로부터 45살이 되었던 두 해 동안, 18618월부터 18637월까지, 맑스는 런던 그라프톤 테라스(Grafton Terrace) 9번가에 살고 있었는데, 이곳은 아름다운 햄프스테드 히스(Hampstead Heath, 맑스가 여유가 있을 때면 언제나 산책하실 좋아했던 공원으로서, 그가 이후에 묻히게 될 하이게이트Highgate 묘지와 가깝다)와 멀지 않았다. 당시는 맑스와 그의 가족들에게 매우 힘든 시기였다. (거의 비참하기까지 했던) 가난, 질병 그리고 심지어 런던에서 무시당한 독일 망명객으로서의 고립(인터네셔널은 1864년에 세워졌다)은 그때까지 끊임없이 그들을 괴롭혔다.

 

1862225, 맑스는 엥겔스에게 편지를 써서 대관절 이 개같은 삶을 부지하는 것이 무슨 가치가 있는지”(MECW. 41: 341)[5]라고 토로했다. 그리고 618일에 그는 그의 친구에게 다시 편지를 쓰면서 매일매일 아내는 아이들과 함께 무덤 속에서 안전해지고 싶다고 말하네. 그리고 나는 정말 그녀를 비난할 수가 없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헤쳐나가야 할 창피스러움, 고통 그리고 소란스러움은 정말 형언할 수 없기 때문이야”(MECW. 41: 380). 그 해 9월에, 절망에 빠진 맑스는 그의 가족을 먹여살리는데 힘을 쏟기 위해 연구를 포기하는 것을 고려하고 있었다. 이런 이유로 그는 런던 철도회사에 일자리를 얻고자 했다. 하지만 그의 유난한 악필 때문에 입사시험에 떨어지고 만다.

 

몇 년 후인 1867430, 그의 암울한 시간에 대해 썼다. “나는 내 책을 완성하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시간을 사용해야 했다. 이 때문에 나는 내 건강과 행복과 가족을 희생했다. [...] 만약 우리가 소같은 인간이 되길 바라면, 물론 우리는 인간성의 고통을 저버리고, 자신의 앞가림만 하면 된다. 하지만 내가 만약 마침내 적어도 수고본으로나마 내 책을 완성하지 못한채 죽어버린다면, 나는 정말로 나 자신을 무능하게 여겨야 한다”(MECW. 42: 366). 더욱 나쁘게도, 맑스는 1860년에 보그트(Vogt)에 대해 자기-방어적인 원고를 쓰기 위해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해야만 했다. 고립과 고난에 처해 있으면서, 그는 보그트의 공격과 같은 것이 그의 미래의 정치적인 가능성, 심지어 인격적인 가능성들까지 파괴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사실, 이 방어는 시간낭비였지만, 맑스를 옭아매진 못했다. 1859223, 맑스는 헤겔 법철학 비판을 위하여 서설서문에서 일종의 이력서를 썼는데, 여기서 우리는 당시에 그에게 무엇이 가장 중요한 연구작업이었는지 알게 된다. 즉 목재탈취에 대한 논문과 모젤(Mosel)에 있어서 토지 소유권의 분배 문제, 프랑스 사회주의와 공산주의에 대한 그의 비판에 대한 정당화(나는 이제 1970년대 동안 알튀세르주의 맑스주의를 제외하고, 맑스주의를 비판해 왔었던 것을 기억한다. 비록 몇몇은 내가 맑스 자신을 비판했다고 여겼지만 말이다), 헤겔의 법철학, 공산당선언, 철학의 빈곤, 임금에 관한 짧은 저술 그리고 라인신문의 두 번째 간행기에 속한 글들이 그것이다. 그리고 서문’[헤겔 법철학 비판 서설의 서문]에서 맑스는 마찬가지로 대영박물관을 언급하는데, 이곳은 그가 1850년에 이용하기 시작했다. 그가 서문을 다 마쳤을 때, 다음과 같이 썼다. “정치경제학의 영역에서 나의 연구에 대한 이 개괄은 나의 관점이 [...] 여러 해를 거쳐 수행된 공들인 연구의 결과임을 보여주고자 한 것이다”(Marx 1972: 23).

<그림 > 『1861-63년 수고』 연구와 집필 형태. 원자료: Müller 1977; Wygodski 1982.

사실, 오랜 동안의 엄정한 이론적 작업은 맑스의 매일의 삶을 채웠다. 그의 연구 기술’(technique)은 빈곤으로 인해 방해받고, 제한받았지만(그래서 그는 대영박물관에서 그의 요약 노트들을 쓸 필요가 있었다), 강인한 집중력이 그것을 유지시켰다. 그것은 가난하고, 억압받으며 착취당하는 자들의 고통에 대한 연민에서 시작된 윤리적 열정에 기초하고 있었다. <그림 1>은 그러한 관정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맑스는 아마도 그로운가(Growen Street)로부터 출발해 그가 그룬트리세를 쓰기 시작했던 1857년 이래 거대하고, 조명이 밝은 그 박물관 도서관으로 향했을 것이다. 책상 번호가 ‘O-7’인 자리에 앉아(아무도 확실히는 모른다) 그는 그의 연구에 인용된 수 백 권의 책을 읽었다. 그는 인용노트’(Citatenheft)[6]를 박물관에 머무는 동안 작성했으며, 그것은 1861-63년 수고를 구성하는 23권의 노트를 쓰기 위해 사용했던 것이었다. 하지만 여기에 더해, 그는 또한 박물관 노트들을 위해 그룬트리세노트VII’도 사용했다. 그것은 수고본의 p.63b에서 p.192까지다.

 

집에서의 집필은 보통 밤에 이루어졌는데, 그는 이때에도 이전 몇 해동안(1851-56)의 수많은 노트들을 활용했다. 여기에도 또한 명확한 참조문헌과 더불어 그룬트리세로부터 따온 것들이 있다.

 

맑스의 실존적 번민과 그의 탐구 기술의 한계 왜냐하면 그는 많은 책을 소유하지 않았다 - 를 감안한다면, 그의 그 수많은 역경을 극복하는 능력은 엄청난 것이었다. 그의 텍스트는 명확하고, 일관되며, 근본적이다. 하지만 그는 그것에 만족하지 않았다. 그것은 아직 출판될 준비가 되지 않았던 것이다. 비록 그의 작업이 어떤 전체적인 예술작품같이 명확하다 해도 그 안에 표현된 것을 그렇게 느끼지는 않으며, 결과적으로 예술가는 다른 많은 작품들과 같이 그것을 설치류들의 비난에 내맡기게 될 것이다.

 

그룬트리세의 경우에서처럼, 우리는 맑스 자신의 실험실에 들어가면서, 그가 개념들을 어떻게 전개하고, 범주들을 어떻게 구축하는지 이해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그룬트리세와 관련하여 진보가 존재하는 지점을 보게될 것이지만, 마찬가지로 만약 우리가 이 수고본들을 자본론과 비교한다면, 그의 미성숙도 이해할 것이다.

 

II.

맑스는 영감에 따라 펜이 가는대로 진행된 아포리즘을 쓰곤했던 니체를 좋아하지 않았다. 이와 반대로 맑스는20세기 세계 역사의 근본을 이동시킬 - 그의 미래 작업에 관한 계획에 대해 숙고하길 바랐다. 18684월에 이르기까지 적어도 19개 정도의 계획이 있었다. 처음의 열 개의 계획은 이미 나의 이전 연구에서 논의되었다(Dussel 1985a, Section 2.4: 60ff.). 이제 엥겔스의 1859113일의 편지에서부터 시작해 보자.


수고는 약 전지 12장 정도(세 묶음[출간물의 3회분]으로 나누어진)이고 – 이것에 대해 놀라지는 말게 – 그렇지만 이것은 ‘일반적 자본’이라는 제목이 달려 있네. 이 묶음들은 두 개의 장들, 1. 상품, 2. 화폐 또는 단순 유통만 제외하고 자본에 관한 주제에 대해 아직 아무것도 담고 있지 않아(MECW. 40: 368).


이 작업물의 첫 번째 부분은 네 개의 절들로 파악되었는데, 첫 번째는 자본이다(다른 세 개는 2. 경쟁, 3. 신용, 그리고 4. 주식 자본이다). 맑스는 이 책을 6권의 첫 번째 권으로 계획하고 있었다(다른 것들은 2. 지대, 3. 임금, 4. 국가, 5. 국제 관계, 6. 세계 시장이다). 이때 자본에 관한 절은 세 개의 장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상품, 화폐 그리고 자본 자체가 그것이다. 맑스는 이른바 1858년 원텍스트(Urtext)에서 화폐에 관한 장을 쓰려했지만 실패했다(Dussel 1985a, Section 16.3: 329ff 참조). 이 때문에 1861-63년 수고‘III으로 시작한다.


‘정치경제학 비판 서문’[이것은 이 『수고』의 첫 번째 노트의 표지제목으로 알려져 있다]. 세 번째 장. 일반적 자본. A. 1861년 8월. 세 번째 장, 일반적 자본. (MECW. 30: 5–6)


그러므로 1861-63년 수고전체는 ‘III의 부분들로 간주되어야 한다. 하지만 실재로 맑스는 매우 빨리 그것이 단일한 하나의 장을 위해서는 많은 분량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결국 그는 최초의 계획을 많은 부분들로 확장했다. 185911일자 바이데마이어에게 쓴 편지에서, 그는 서설의 개요를 상세하게 (하지만 차이점들과 더불어) 짚었다. 그의 미래의 연구작업은 따라서 6권의 책들로 구성될 것이었다. 첫 번째 책은 4개의 부분으로 나누어진다. 첫 부분은 세 개의 장으로 구성되는데, 상품, 화폐 그리고 자본이다. 동일한 패턴이 서설서문(Preface)의 첫 줄에서 반복된다. 당시에 그는 서설저술을 끝내고, 출판사와 약속한 회차인 ‘III’, 즉 맑스가 자본 자체에 대한 이론적 작업을 개시했던 그 장을 시작하기를 바라고 있었다. 다시 말해 그는 주제에 대한 분석 계획들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이 목적 때문에, 그룬트리세의 요약, 1859년 노트 M, I-VII, BB에서 썼던 대로, 그는 처음에 나의 노트에 대한 재검토를 쓰려고 결정했다(MECW. 29: 51832). 재검토를 기억하는 것은 수고 1861-63의 독해를 위해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우리는 여기서 여전히 그룬트리세에 속해 있는 맑스의 인식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아래에서 이 문제로 되돌아 올 것이다.

 

같은 해 2월 또는 3, 또는 아마도 그 이후, 맑스는 ‘III을 위한 계획을 명확하게 수립했지만, 이후 그것을 결코 출판하지 않았다. 이 계획은 동시에 그룬트리세리뷰인데(이는 <그림 1>에서 보여준 맑스의 작업 형식이 드러난다), 여기서 1861-63년 수고에 속한 노트 I-V의 계획이 약간의 수정만 거친 거의 동일한 형태로 발견된다.

 

이 계획과 이 노트들에 쓰여진 것들을 위해 고려된 것 사이의 유사성은 너무 커서 우리는 맑스가 노트를 쓸 때, 사실상 이 18592-3월 또는 1861년 여름의 이 기획 초안을 바로 앞에 놓고 썼다고 가정할 수 있다. 단어들 심지어 개념들조차 똑같다. 다른 한편 이 계획서의 유용성은 사실상 그것이 우리로 하여금 맑스가 참조하고 있는 텍스트가 그룬트리세의 어떤 텍스트인지 정확하게 알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이 계획의 각 부분들은 다음과 같다.

 

I. 자본의 생산 과정

 1. 자본으로의 화페의 전화

  a. 이전(Transition)

  b. 자본과 노동 능력 사이의 교환

  c. 노동 과정

  d. 가치화 과정

 2. 절대적 잉여가치

 3. 상대적 잉여가치

  a. 단순 협업

  b. 노동 분업

  c. 기계류

 4. 원초적 축적

 5. 임노동과 자본

상품의 단순 유통에서의 전유법칙의 표현. 이 법칙의 전복.

(MECW. 29: 51117)

 

1861-62년 수고의 개요와 관련하면, 18593월에서 18618월까지, 어떤 성숙의 과정이 발생하는 단지 작은 차이만이 있다. 예컨대 1859년 그는 자본과 노동능력 사이의 교환이라고 I.1[β]에서 말한 반면, 18618월에는 화페자본을 대체한다. 달리 말해, 1859년에 맑스는 일차적이 대립이 아직 자본이 되지 않은 화폐와 자본 사이의 대립이라는 것을 명확하게 자각하지 못했다.

 

이 계획은 또한 자본의 유통과정에 관한 두 번째 부를 포함하며(이것은 미래의 자본론II권이 될 것이다), 우리가 이 책의 10장에서 다루게 될 자본과 이윤에 관한 세 번째 부도 포함한다.

 

게다가 우리가 반드시 분석해야할 쿠겔만(Kugelmann)에게 보낸 18621228일자 편지(MECW. 41: 435)[7]는 때가 되면 논의될 것인데, 그것은 1863년의 전체 계획이 수고의 전반적인 진전임을 보여준다는 점이다.[8] 하지만 주요 문제는 그 계획들과 관련해서 명백함에 도달하는 것만이 아니라, 부르주아 정치경제학 비판에 관한 변증법적 담론이 반드시 드러내야할 개념들과 범주 구성의 발전과 관련해서도 그러하다는 점이다. 새로운 체계 뿐 아니라, 새로운 개념적 질서의 가능성의 조건으로서 범주들도 요청된다(이는 계획 안에서 소개된다). 그래서 이론적 실험실작업이 이 1861-63 수고에 포함된다는 것을 고려하면, 우리는 어떤 일반적인 형식에서 이것이 그룬트리세에서보다 더욱 진전된 분석이라는 것(그리고 이것이 각각의 사례에서 증명되어야 한다는 것)을 지적할 수 있지만, 1863-65년 수고자본론(이것도 반드시 고려되어야 한다)에서 만큼은 발전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9]

 

1861-63년 수고의 이론적 진전은 무엇인가? 그러한 진전이 분명하고 명확한 지점은 어디인가? 우리는 하나의 장에서 다른 장으로 우리의 해석이 전개되는 동안 이 모든 것을 보게될 것이다. 그러나 처음부터 우리는 몇 가지 핵심 주제를 강조하고자 한다.

 

우선 수고 1861-63이 저술과 주제들의 세 단계들을 포함한다는 것을 생각해 보자(Focke 1983: 30ff.).

 

  1. 18618월부터 18623월까지, 맑스는 노트 I-V를 썼다. 이 노트는 자본론1권에 나올 주요 주제들을 담고 있지만, 단지 상대적 잉여가치에 관한 주제까지만이다. 이 지점에서 맑스는 이미 성취된 것을 확증하기 위해 그의 글을 중단했다(MECW. 30: 1346).(우리의 책 1-3)
  2. 18623월부터 같은 해 11월까지, 그는 노트 VI-XV를 썼다(손으로 씌여진 수고본의 페이지 수 944까지). 맑스는 새로운 범주들을 구성했고, 잉여가치학설사라고 불리워질 책들에서 다양한 역사적 전망들로부터 잉여가치의 주제에 관한 그의 견해를 심화시켰다(MECW. 30: 347 MECW. 32).(우리 책 4-9)
  3. 186211월부터 18637월까지, 노트 XV-XXIII에서 맑스는 자본론II권과 III권에 상응하는 여러 가지 주제들을 발전시켰다. 마지막 부분에서 그는 노트 I-V를 보충하는 주제들로 돌아오지만, 마찬가지로 그는 이후 [자본론] II(재생산)III(이윤, 생산 가격 등등)의 주제가 될 사항들을 논한다(MECW. 33 and 34).(우리 책 10-11)

이 수고들 뒤에, 맑스는 1863-65년 수고를 썼다(이 수고는 현재까지 단순히 미출간 6(Unpublished Chapter VI)으로 불리워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여기에는 자본론II권의 초안과 III권의 간단한 초안(엥겔스가 1894년에 III권의 출판에 사용했다)이 포함되었다.

 

이제 우리의 주제로 돌아가기 전에, 일단 우리를 이끌어갈 만한 하나의 예로부터 시작해 보자. 잉여 가치 범주는 복잡한 것인데, 다시 말해 그것은 그것의 구성(이론적인 결과로서 발전의 결실), 즉 다른 많은 보다 간단한 범주들을 전제한다. 잉여가치 범주를 구성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잉여 시간 또는 잉여 노동이 요청된다. 이 범주를 구성하려면, 필요 시간(necessary time)의 전개도 필요했다. 다른 한편으로, 잉여노동은 노동 능력(labour capacity) 범주도 요청한다. 그리고 동시에 이것은 산 노동(living labour)의 범주도 요청하는데, 이것은 가치의 창조적 원천으로서, 어떠한 가치도 지니고 있지 않다. 그리고 모순적이게도 이 산 노동은 유동 자본(variable capital)으로서 대상화된, 과거의노동 범주를 요청한다. 이때 화폐는 임금(wages)으로 표현되는데, 이것은 노동 능력의 가치에 대한 지불이다. 다른 한편으로 산 노동은 대상화된 과거 노동(화폐, 자본)에 대립할 뿐 아니라, 더하여 (사용가치를 생산하는) 구체적 노동과 추상 노동이 그 안에서 구별됨에 틀림없는 것이기도 하다. 이로부터 가치 범주가 보존된다. 앞선 모든 것들에 따라 복합(complex) ‘잉여가치 범주가 구축된다.

 

<그림 2> 단순 범주와 복합 범주에 관한 개념과 구성의 전개

1861-63 수고에서, 맑스는 실재로 진입하는 변증법적 담론, 즉 실재적인 것의 본질적 구조에 의해 요청되는 새로운 범주들(<그림 2>)을 구축했으며, 그 개념을 발전시키고 따라서 그는 새로운 해석학적 도구들을 필요로 한 것이다. 우리의 경우 발견을 위해, 이러한 범주들의 필요성은 실재적으로 맑스를 이해하고, 그의 방법, 그의 범주의 내용과 질서를 발견하기 위한 것이다. 이것은 라틴 아메리카 철학자와 경제학자가 맑스가 했던 것처럼 우리의 특유하고, 본래적(original) 실재성(실재성이란 본래적인 것이지 철학이 아니다)이 요청하는 새로운 범주들을 발전시키도록할 수 있다.

 

다른 한편 그 자본 개념발전과 범주들의 구성은 하나의 과정으로서, 실재 그 자체와의 관계성을 수립한다. 부분적으로 그것은 구체적인 역사 과정과 일치한다. 엥겔스는 사물(Sache)의 개념(Begriff)과 그것의 실재성(Wirklichkeit)은 두 개의 점근선처럼 나란히 나아간다. 즉 그것은 언제나 서로 수렴하지만, 결코 만나지 않는다”(Marx and Engels 1975c: 457)고 분명히 썼다. 이것은 그가 같은 편지에 말하듯이 실재와 개념의 불일치성의 본질적인 무한 과정의 예이며, 그것의 현상, 외양’(Erscheinung)과 개념의 불일치성의 예이다. 1861-63년 수고, 즉 노트 VI-VIII의 몇몇 페이지를 취해 보자. 맑스는 우선 직관개념을 구별한다(“페티[William Petty]의 저작의 한 구절에서는, 비록 그가 그것을 지대의 형태로서만 다룰지라도 잉여가치의 본성에 관한 어떤 직관Ahnung이 발견될 수 있다” MECW. 31: 789). ‘직관’(퍼스Peirce의심이나 귀추’abduction처럼)은 어떤 모호한, 초기 개념성’(conception)이다(한 개념의 개념화conceptualization나 형성).

 

개념은 어떤 진솔한 재현이지만, 그것은 또한 그릇된개념성일 수도 있다(중농주의자들은 그릇된 개념성’, ‘그릇된 재현또는 혼동에서 시작한다 맑스는 부르주아 정치경제학의 필연적인 오류를 기술하기 위해 이 개념을 사용하기를 선호한다.[10]) 진정한 개념성혹은 개념은 명석하며, 그것을 구성하는 결정요소들은 혼잡하지 않다. 또한 개념은 판명하게 구별된다. ‘직관은 애매하고 기초적이다. 그릇된 개념은 혼잡하지만, 진정한 개념은 잘-한정된 규정이다. 그와 같은 규정그것의 내용을 결정하는 개념의 구축이다. ’다양한 대상 구성요소들(gegenständliche Bestandtheile)(MECW. 30: 352)은 개념이 전개되는 추상적 규정들[11] 안에서 나누어진다. ‘개념이란, 말하자면, 어떤 일반적 추상 형식’(본질)에 정립될 수 있거나 스스로를 (표면적인) ‘현상적 형태로 표명할 수 있다. 게다가 개념은 단순한 경험적 가상’(empirischer Schein)과 구분해야 한다(MECW. 30: 402).

 

하지만 하나의 범주개념이 아니다. ‘개념’(그 자신의 이름에 따르면, 어떤 합리적 개념성의 결과)은 보편적 내용을 함축하며, 운동 중에 있다(그것은 어떤 개념화된 전체이다. 예컨대 자본이 그러하다). 하지만 범주들은 개념의 한 계기를 지칭하며, ‘재현적 지성에 의해 구축된다(그것은 분석적 계기이다. 반대로 개념화는 변증법적이다). 이는 마치 개념, 체계, 계획, 변증법적 담론을 위한 하나의 해석 도구와 같다. 개념은 전체적이고 변증법적으로 움직이는 규정요소들의 구조와의 관계를 의미한다. 범주들은 어떤 전체에 속한 부분들, 즉 다른 범주들과의 관계를 뜻한다(그것들은 과학적, 체계적 담론의 부분들이다). 맑스는 따라서 직관으로부터 개념으로 움직여 가며, 발전과정 동안 그는 범주들을 구성한다. 그는 오류, 혼잡한 계기들을 지나, 실재에 의해 요청되는 체계적 질서의 명석하고 판명한 계기들로 간다. 게다가 그는 개념와 범주들을 명명한다(“이것의 기여는비록 매우 자주 (부르주아 정치경제학으로부터 취한) 그와 같은 명명들이 변수들과 상이한 의미를 가진다 해도 “[...] 추상적 범주들을 고정하기 위해 제한함으로써, 그가 [...] 그것의 분석 안에서 구별하게 된 명칭들에 세례를 부여하면서 보다 큰 지속성을 준다는 것이다.”MECW. 30: 353). 여기에, 그리고 이것이 우리 연구의 중심 가설이고, 맑스의 사유에 있어서 내용들과 명명들의 진화, 개념적이고 범주적인 의미론적 변화들일 것이다. 예컨대, 1861-63년 수고에 속한 노트 XV에 이르러, ‘비용 가격’(cost price) 범주는 대부분의 경우 생산 가격을 의미한다. 따라서 맑스의 범주 구성에는 어떤 발생적 진화(genetic evolution)가 존재한다. 따라서 텍스트는 지속적인 인식론적 지향’, 태도에 따라 매우 신중하게 읽혀야 한다. 왜냐하면 거기에는 명칭상의, 개념적이고 범주적 수준들의 비-동종적 진화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맑스는 1861-63년 수고실험실에서 새로운 개념들과 범주들을 위한 새로운 이름들을 개발하기 위해 애쓴다. 그는 기존의 부르주아 정치경제학에 속한 개념들과 범주들, 그 그릇되고 혼잡한 이름들에서 시작하여, 그것들을 새로운 체계적 질서(이전과 이후) 안에, 그리고 다른 수준들의 구조안에 정립한 것이다(본질의 심원함, 외양의 피상성). 나는 9장과 12장에서 지금 언급한 바에 대한 모든 점들을 조심스럽게 분석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나는 이 책을 영어로 번역할 생각을 하게 해 준 프레드 모슬리(Fred Moseley, 마운트 홀요크 대학, 메사추세추 주)에게 감사드린다. 그의 참여, 교정 그리고 우정이 없었다면, 이 영역판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E.D.

멕시코 광역자치대학교

(Universidad Autónoma Metropolitana[UAM-Iztapalapa], México)

철학과에서

20001[13]

 

 


[주석]

[1] MEGA는 맑스와 엥겔스가 대개 독일어 원문으로 출판한 저작들의 권위 있는 컬렉션인 맑스-엥겔스 전집(MarxEngels Gesamtausgabe)을 지칭한다.

[2] Dussel (1985) 참조. 본서는 이 책 뒤에 이어지는 두 번째 권이다.

[3] Dussel (1990) 참조. 나는 이 책이 미래에 영어로 번역되길 희망한다.

[4] 이것은 우리 주제에 대한 특유한 작업이다.

[5] 맑스의 일상사에 대해서는, Longuet (1979: 130ff.)를 참조.

[6] 나는 맑스의 비판적 판본의 원문 철자법을 존중한다.

[7] 편지에서 맑스는 일반적 자본은 [...] 정수(Quintessenz)라고 쓴다.

[8] 아래 10.5장을 보라.

[9] 내가 ‘Dussel (1990)’에서 논한 문제들.

[10] 두 가지 결정요소들[규정요소들]은 뒤섞이고 혼잡하다.

[11] Dussel (1985a: 4951): ‘Abstraction of determinations’Dussel (1990:

40524): ‘The order of categories’ 참조.

[12] 영역본은 종종 정확하지 않다. ‘관찰’(observation)외양’(appearance)과 같은 것이 아니며, ‘현상기초 잡힌’(founded) 드러남이 아니다.

[13] 이 서문은 1988년 스페인어로 출간되었고, 이 영역본에서 새롭게 고쳐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