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의 개념으로서, 섹슈얼리티는 쉽사리 제어하기가 불가능하다. 즉 이 개념은, 분명히 자신의 것이 아닌 영역들 속으로 경계를 가로질러 스며들기 때문에, 미리 지정된 영역 안에 머물러 있기를 거부하는 것이다.
욕동(dirve)으로서의 섹슈얼리티는 욕망의 구조들 안에 있는 모든 종류의 다른 영역들에 우글거린다. 이것은 심지어 욕망하지 않는 욕망을 성적으로 부여하기도 하며, 또는 금욕을 위한 욕망이기도 하다. 이것은, 어떤 활동성을 그 자신의 만족을 위한 탐색의 한 양식으로 만들면서, 프로이트가 승화로 기술했던 것을 통해 명백하게 비욕동-관계적(nondrive-related) 활동들 속으로 누수되어 들어간다.
일련의 활동들과 실천들로서, 그것은 침실에서의 통제를 받아들이거나 스스로를 오르가슴 쾌락을 준비하는 그러한 활동에만 제약하기를 거부한다. 섹슈얼리티는 흘러 넘치고, 남아 돌며, 그리고 나른한 동시에 열렬한 성취과정에 있어서 과잉이다.
그것은 언제나 그것이 욕구하는 것보다 더 많이 찾아 헤매며, 과잉 행동들을 수행하고 어떤 대상, 어떤 환영, 이런 저런 주체들 그리고 그들의 기관들의 조합들을 쾌락의 순환회로 안으로 끌어들일 수 있다.
어떤 확정된 유형으로서의 신체는 성적으로 특성화된 것으로서, 성들(sexes)의 모든 활동들을 감염시킨다. 이 활동들은 성적 관계들의 범역이나 성차를 구성하는 구체적인 관계들의 영역 너머의 충실한 세계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근거짓는 것이다.
실재, 인식, 진리, 정치학, 윤리학 그리고 미학에 대한 우리의 개념들은 모두 성적으로 특정한 신체들, 즉 대개 역사 안에서 남자인 신체들의 결과들이고, 따라서 이 모든 것은 페미니스트들이 가부장성으로 묘사해 온 권력 구조들, 즉 성들 간의 관계를 통치하는 그 구조에 연루된다.
따라서 성차(Sexual difference)는 동적이고, 사실상 휘발성인(volatile) 개념이다. 만약 성차가 비가시적이지 않고 적어도 그것이 영향들과 효과들에서 비의식적일 수 없다면, 자신을 형성하기 위해, 그것이 아무런 장소를 차지하지 않아야 하는 영역들로 스스로를 밀어 넣을 수 있다.
성차는 페미니즘과 현대 유럽철학의 교차지점들을 오가며 그리고 신체를 이 교차과정에서 중심 항목으로 설정하면서 중추적 개념이 된다."
- #Elizabeth_Grosz(1952 ~ ), Volatile Bodies: Toward a Corporeal Feminism (Indiana University Press, 1994) pp. viii ~ i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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