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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컴의 필사적(筆寫的) 도망

<희랍사상의 이해>(박종현)_1장_10장

by Nomadia 2021. 5. 3.

 희랍사상의 이해

박종현 지음, 종로서적, 1985

 

 

목차

1

1장 희랍인들의 탐구 정신의 전개 과정

2장 로고스와 희랍 철학

3장 희랍철학을 통해서 본 만듦(창조)의 문제

4장 소크라테스에 있어서의 로고스에 관하여

 

2

5장 플라톤에 있어서의 에로스에 관하여

6장 플라톤에 있어서의 만듦(창조)의 문제

7장 플라톤의 형상 이론의 기본 구조에 관한 고찰

8장 플라톤의 측정술

9장 플라톤의 dialektikē와 측정술

 

3

10장 희랍 비극의 특징과 그 철학적 의의

11장 희랍인들의 평등 의식

12장 희랍 사상의 특징적 고찰

13ekstasis와 희랍 사상

 

[*이 발췌요약문에서 발췌는 '<>'로 처리함. 나머지는 요약. 소제목은 노마씨가 붙인 것임]

 

인간에 대한 낙관주의와 탐구정신

pp. 8-10

- 낙관주의

하고 많은 놀라운 것들이 있지만, 일찍이 인간보다 놀라운 것은 없었거니”(Sophoklēs, Antigonē, 332-3).

모든 것을 이룩할 수 있도다. 무슨 일이 닥치든 감당 못 할 일 없도다. 오직 죽음만을 피할 길 없을 뿐이로다”(ibid., 360-2)

사람으로서 도저히 할 수 없다고 단언할 것은 아무것도 없어라”(ibid., 338).

 

-탐구정신

결코 애당초부터 신들이 모든 것을 인간에게 밝혀 주지는 않았다. 탐구함으로써 시간의 경과와 더불어 보다 나은 것을 찾아냈다”(Xenophanēs, fr. 18).

배움을 좋아하는 기질(to philomates)”(Platon, Politeia, 435e-436a 참조)

나는 페르시아의 제왕이 되느니보다는 단 한 가지나마 원인 구명(aitiologia)을 해내고 싶다”(Demokritos, fr. 118)

 

- 낙관주의와 탐구정신의 외적 여건

(1) polis의 성립: 희랍인들의 이주(BC. 2000년 경) 정착, 문화 형성(BC. 1500-1000년 경): 부족 연합 형성(이오니아, 아카이아, 도리아, 아이올리아) polis의 형성(BC 800년 경): Sparta(3000평방 마일), Athenai(1000평방 마일) 등등.

polis의 경제: AttikēKorinthos(Corinth) 지방은 숲이 없고 땅이 침식되어 농사 짓기에 적합하지 않았음. 식량 수입에 의존함. 올리브와 포도 재배와 수출. 무역의 발달. 항해술 발달. 상업의 발달 개인의식의 발달.

인간은 본성적으로 polis(공동체 생활을 하고자 하는) 동물이다(ho anthrēpos physei politikōn zōon)”(Aristotle, Polittica 121253a)

polis: 흔히 도시국가(city-state)로 번역됨. 성채(akropolis) 또는 시민전체를 가리킴. 일종의 공동체(koinōnia).

 

(2) 정치체제의 변화: {9-10}<희랍인들에 관한 한, 그것은 거의 전적으로 정치 체제와 그에 따른 제반 사회 변혁이 마련해 준 여건들이었다고 볼 수 있겠다. 고대의 국가 개념에 있어서 일차적으로 내포되는 것은 언제나 독재자요 전제군주다. 이러한 고대 국가의 기본적 구조로부터 제외되는 예외가 희랍이었다. 희랍인들의 본격적인 지적 활동{비극과 서정시, 철학}이 비롯되는 것은 이 참주시대부터라고 볼 수 있다.>

BC. 9세기 이전: 군주체제(basileia 또는 monarchia)

BC. 9,8세기부터: 귀족체제(aristokratia) 과두체제(oligarchia) 참주체제(tyrannia) 혹은 민주체제(democratia).

 

(3) Miletos 특권적 배경: {30-1}Thales가 예언한 BC 585년의 일식으로 LydiaMedia 간의 전쟁이 종식된 지 25년 뒤(BC 560)<KroisosIonia와 인접한 동방의 강국 Lydia의 왕위에 오른다. 그는 왕위에 오르자 Ionia의 도시 국가들을 공국으로 만들었다. 그러나 Miletos만은 앞서서 참주 Thrasyboulos와 당시의 Lydia의 왕 Alyattes 간에 이미 화평 조약을 맺고 있었으므로, Kroisos에 와서도 이 약속을 계속 지켜지고 있어서 예외로 머물 수 있었다. 게다가 Kroisos왕은 자기의 지배권 하에 있는 이오니아의 도기 국가들에 대해서도 선정을 베풀고, 심지어는 경제적으로 여유 있고 지적인 생활을 가능케 하는 문화 정책을 썼다. 자유로운 교역 당시 Ionia 도시 국가의 수도 이러한 여건 탓으로 밀레토스의 시민들은 무척 개성적이며 자유로운 생활을 누릴 수 있었다. 이러한 생활 자체야말로 학문을 하기에 가장 알맞은 조건이었을 것이다.>

 

호메로스 서사시의 귀족주의 성격

pp. 11-2

<Homēros IliasOdysseia는 이 무렵{BC. 800년 경의 귀족체제}의 귀족들이 기호에 맞추어 집대성된 서사시다. 그러나 자연 현상과 인간의 감정이나 일들을 인격화시킨 희랍 신화 속의 신들은, 단순히 귀족들의 즐거움을 위해서라기보다도 귀족 사회의 위계를 합리화시키는 필요에서 나온 것이다. Zeus 주신과 다른 신들의 사이에, 신과 인간의 사이에 넘을 수 없는 간격이 있음을 그대로 유추함으로써, 귀족과 하층 계급간의 위계를 하나의 불가침적인 것으로 굳혀 놓으려는 데에 희랍의 신화는 그 성립근거를 갖는다. 그리하여 귀족들은 인간이 신들의 세계를 넘봄을 오만(hybris)으로 보았 듯, 천민이 귀족을 넘봄도 그대로 오만으로 보아, 그 오만에 대한 응보(nemesis)가 무엇인지를 신화를 통하여 보여 주고자 했었다.>

상인과 평민들의 노예 전락: 불만의 누적과 참주체제 등장의 배경

 

서정시, 비극, 철학의 등장과 참주체제

p. 12

<불만스런 사회체제{귀족체제}를 근본적으로 뒤집어 엎은 다음, 판이한 시책을 편 사람들이 참주들이다. 그들은 원래 자기들 자신이 불행한 처지에 있었던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집권과 더불어 많은 경우에 유례없는 선정을 베풀었다. 그들은 일체의 계급 차별을 없애고 축제를 베풀며 예술적-지적 활동을 적극적으로 권장했다. 이 무렵에 서정시와 철학이 그리고 희랍 비극이 나타나는 것도 이러한 정책적-사회적 여건의 뒷받침에 의해서이다.>

 

희랍 문화의 형성 배경 요약: (1) 정책적 뒷받침과 사회체제의 변혁 (2) 개성에 대한 자각

 

서사시의 등장과 마법시대의 종말

pp. 14-5

Homeros(BC. 900-800년 경) 서사시의 특징: <첫째는 호메로스의 이 작품들 속에 희랍신화가 본격적으로 등장되고 있다는 사실이요, 다른 하나는 이 작품들, 특히 Ilias인간들의 위대한 행적을 기림(klea andrōn aeidein)”을 주제로 삼고 있다는 것이다. 인간이 사멸할 존재들(thnētoi)”이라면 그들은 불사의 인간들(anthrōpoi athanatoi)”이다. 그들이 힘이 세다는 것과 불사라는 점을 제외하곤 인간과 다를 것이 전혀 없다. 올림포스의 신들은 철저한 의인화의 산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희랍 신화를 통해서 희랍인들의 사고 방식의 중요한 전환을 읽을 수 있다. E. Hamilton이 지적하고 있듯이, 희랍 신화는 마법의 시대보다도 훨씬 진보된 인간지의 산물이다. 세계의 진행과 모든 현상이 최소한 악령들의 악의에 가득 찬 장난에 의해서 일어나지는 않는다는 확신이 희랍신화를 낳게 한 것이다. 인간을 닮은 신들은 그들의 처신에 있어서도 적어도 인간적일 것이라고 믿음으로써 터무니 없는 공포의 질식 상태로부터 희랍인들은 해방될 수 있었다.>

희랍 이전의 모든 종교는 마법적(magical)이었다. 마법은 지대하게 중요한 것이었다. 인간에 적대하여 작당한 무서운 악령들에 대한 인간의 유일한 방비가 마법이었다. 무수한 악령들이 인간에게 온갖 종류의 재액을 가져다 주려고 열을 내고 있었다”(E. Hamilton, The Greek Way, A mentor Book, p. 210)

 

서사시의 이념

pp. 16-8

(1) Homeros(BC. 800-750)-용기(andreia < anēr, manliness):

호메로스의 시대의 훌륭함 = “사람다움사내다움” = “용감성(andreia)”: aristocratiaaristos = best, bravest, noblest

, 당시 귀족의 최고의 이념은 andreia였다는 것. 참된 사람(anēr, (pl)andres).

<Troia의 영웅 Hektōr가 목숨을 내던진 것과 희랍군의 영웅 Achilleus가 목숨을 내던진 것도 이 andreia를 자기에게 실현, 즉 구현하기 위해서였다.>

; “하지만 아니야, 제대로 싸워 보지도 않고 명예롭지 못하게 죽고 싶진 않아. 뭔가 훌륭한 행동을 하고 죽었음을 후세의 사람들로부터 듣도록 하고서 죽고 싶어”(Hektōr의 말, Ilias, xxii, 304-5).

 

{17}<귀족의 외적인 행동에서 사람다움을 찾은 당시의 희랍인들에 있어서 그들의 관심의 초점이 인간 일반의 내면적-정신적인 데에 있지 않고, 다만 일부의 인간들인 귀족들의 외적 조건을 만족시키는 것에 있었음을 우리들은 쉽게 알아 챌 수 있다. > 언제나 가장 훌륭하여 타인들보다 빼어남(aien aristeuein kai hypeirochoni emmena allōn)”(Ilias, vi, 208).

 

(2) Hesiodos(BC.700년 경?)-올바름(dikē):

일과 나날-귀족중심 인간관의 변화. 계급과 빈부를 떠난 보편적인 인간다움이 무엇인가를 탐구함. {17-8}<호메로스에 있어서 진정한 인간의 범주에서 배제되어 버렸던 버려진 인간들인 평민이 헤시오도스에 의해 귀족과 전혀 같은 차원에서 다루어진다는 것은 분명히 인간 의식의 중요한 변혁을 의미한다. 그가 제시하는 사람다움의 조건은 극히 소박한 것이었으니, 그것은 부지런히 일하고 옳은 행동을 취함이었다.> Sinclair, T.A.

호메로스 시대의 dikē관습의 의미로서, 외적인 조건에 불과했다. 그러나, dikē<헤시오도스의 시대에 있어서의 인간들의 의식 구조를 아주 적절하게 드러내 보이고 있는 가치 개념이라 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것은 모든 인간을 같은 지평에서 보는 질서 내지 가치 척도의 개념이기 때문이다. 그 신분이 어떠한 사람이든 dikē에 저촉되는 행동을 취함은 질서 파괴의 오만(hybris)이다.> → 『일과 나날은 귀족들의 이러한 오만을 폭로하는 내용도 담고 있다.

*헤시오도스의 이러한 경고는 참주체제의 등장으로 현실화된다.

 

서사시(epic)와 서정시(lyrikos, melē)의 매개-Hesiodos

pp. 19-20

 

<서사시는 비개성적이다. 개인의식을, 사람마다의 개성의 자각을 싹트지 못하게 하려는, 그리하여 귀족체제를 유지하고 타당화시키려는 귀족들의 요구가 낳은 하나의 수단이었다. 그러나 아이러니칼하게도 헤시오도스는 이러한 귀족들의 구미가 고안해 내게 한 이 표현 수단을 역이용했다. 그는 귀족들의 착취와 오만을 서사시의 형식을 빌어 나무랐고, 그와 더불어 평민들에게 평등 의식을 불러일으켰다. 역사는 헤시오도스의 안타까운 부르짖음의 6보격(hexametre)의 전주곡과 함께 어느 사이에 평등 의식을 구체화시키는 방향으로 성큼성큼 옮겨 가고 있었다. 기원전 7세기는 바야흐로 개인 의식의 커다란 조류를 맞게 되는 시기였기 때문이다. 전쟁과 귀족 체제의 붕괴를 겪는 소용돌이 속에서 희랍인들은 개성을 자못 실감 있게 자각하기 시작했다. 따라서, 희랍인들의 관심의 초점은 외적인 데서 내면적인 문제로 옮겨가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그들은 평등사상에 눈 뜨게 되고 인생과 자연의 무상에 민감해지며, 그리고 무엇보다도 사랑을 노래할 줄 알게 된다. 이처럼 내면적인 것에로 눈길을 돌리기 시작한 그들은 자기들의 관심거리를 표현하는 데 있어서 6보격의 비개성적인 서사시의 형식이 부적당함을 알게 된다. 그리하여 그들의 필요에 의해서 찾아내진 것이 elegos(悲歌), iambos시 그리고 특히 서정시였다. 이들 모두에 있어서는 음악적인 요소가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

 

이 이행의 정치적 의미는 <귀족체제로부터 참주체제로의 이행>, <계급차별의 시대로부터 평등 의식의 시대로의 이행>이다. <그것은 짓눌리었던 개성을, 억압되었던 감정을 마음껏 드러낼 수 있는 시대에로의 이행이다. 그러한 시대적 요구가 그 표현 수단으로서 낳은 것이 서정시적 형식일 뿐이다.>

 

iambos, elegos, lyrikos

p. 20

 

이들 중에서도 iambos시는 그 운율이 극히 단조롭고 담화투에 가까운 대중성 때문에 음악적인 요소가 쉽사리 탈락되었지만, elegos와 서정시는 오래도록 음악과 밀접한 연관성을 지니고 있었다. 특히 서정시는 그 lyrikos(lyra에 맞추어 노래 한다는 뜻)라는 말이 의미하듯 음악적이다. 이러한 형식의 시들이 그 음악성에 있어서 LydiaPhrygia로부터 받은 영향이 컸다고는 하지만, 이러한 시 형식의 보다 근본적인 성인(成因)은 당시의 희랍인들의 의식 구조의 변화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시인들

p. 21

 

* elegos 시인들:

BC 700년 경 - Kallinos, Tyrtaios, Mimnermos,

BC 700-600년 경 - Solōn

BC 600년 경 - Theognis

 

* iambos 시인들:

BC 700년 경 - Archilochos

BC 600년 경 - Sēmonidēs, Hippōnax

 

* lyrikos 시인들:

BC 700년 경 - Alkman

BC 600년 경 - Alkaios, Sapphō, Anakreōn, Stēsichoros, Ibykos, Simōnides.

BC 500년 경 - Pindaros.

 

서정시와 철학

pp. 24-5

 

<이 두 유형의 서정시들{독창의 서정시와 합창의 서정시}은 다음에 있을 철학적 탐구에 각각 중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1) 독창의 서정시: 자연과 인생의 무상, 덧없음(aei metaballontōn)을 자각시키면서,

영원한 삶에 대한 종교적 희구를 낳았다: Dionysos 숭배, Orpheus 비교, XenophanēsPythagoras의 종교.

영원한 원리에 대한 탐구, 즉 자연철학적 사유를 부추겼다: Miletos 학파의 등장. physis에 대한 탐구.

 

(2) 합창의 서정시: 희랍인들의 전체주의, polis적 사유를 촉진시켰다. 나아가 개별적, 개인적인 것을 넘어서는 보편적인 것에의 탐구를 추동했다. - 이 서정시는 국가적 종교 행사에 필수적으로 수반되는 것이었다.

사물들을 전체로서 (=보편적 관점에서) 보려는 천성은 희랍인들의 삶에서 찾아 볼 수 있는 본질적 건전성의 기원이다”(Kitto, H.D.F., The Greeks(Penguin Books, 1973), p. 176)

 

physis

26-8

 

변화를 가능하게 하되 변하지 않는 것:

아무런 일도 부질없이 일어나지는 않는다. 일체의 것이 어떤 근거에서 그리고 필연적으로 일어난다(ouden chērma matēn gignetai, alla panta ek logou te kai hyp' anankēs)”(Leukippos, fr. 2).

복되도다 .../.../ 불사의 physis/ 늙지 않은 질서와 무엇이 일어 났으며 / 그리고 그것이 어떻게 또 어째서 일어났는가를 아는자는”(Euripides, fr. 910).

physis는 숨기를 좋아한다”(Herakleitos, fr. 123): Diels의 번역과 같이 이것은 Wessen, ousia(본질, 실재성, 실재성을 지닌 것들)를 가리킨다.

Peri tou mē ontos ē peri physeōs(비실재 또는 physis에 관하여) Gorgias의 책 이름: 여기서 physis = to on(실재)[to mē on(비실재)]

 

자연이라는 의미와는 많이 다르다. ‘근원적인 것’, ‘본질적인 것에 가깝다. {28}<물론 Sophistēs들 이후에서부터 이 physis는 자연이란 말로 옮겨 놓아도 무난하지만, 적어도 그 이전에 있어서는 to on 또는 archē와 동의어로 봄이 옳을 것 같다. 그러나 엄밀히 말해서 physis는 초기 자연 철학자들의 물활론(hylozoism)적 견해 때문에 질료적인 개념이요, archēto on에는 그러한 제약이 없다.>

 

archē(근원, 원리)Aristotle의 용어다. 이것을 materia로 보느냐, forma로 보느냐, 하나로 보느냐 여럿으로 보느냐에 따라 희랍철학의 전개는 달라진다.

 

historia, alētheia, problēma, kosmos

pp. 29-30

 

* historia(zētēsis): 탐구 현상에 대한 이론적, 학문적 태도. ‘근거를 밝히거나 설명을 해 줌’(logon didonai), ‘현상들의 구제’(sōzein ta phainomena), 곧 진리, alētheia 신화적 태도.

* alētheia: 현상들의 구제, <간과된 채로 망각된 상태에 있는 것을 비망각의 상태로, 비간과의 상태로 바꿔 놓음>, 간과하지 않는 것, 즉 문제화, problēma

* problēma = pro-(앞에) + blēma(던져진 것): <현상을 문제거리로 삼고서, 그것을 자기들이 해결해야할 과제로 보는 데서 희랍인들의 탐구는 비롯된다.>

* kosmos: 법칙과 원리가 지배하는 체계. Miletos 학파에서부터 Sophistēs에 이르기까지 탐구의 결실이 되는 개념.

 

서정시의 쇠퇴

p. 32

 

서정시의 효용성 상실의 원인: (1) 평민출신의 참주들 등장으로 운율에 대한 중요성이 격감. 이들 참주들에게 표현수단으로서의 운율은 오히려 번거로운 장식물이었다(Sinclair). (2) physis의 탐구와 같은 학적 탐구에 있어서는 부적당한 형식.

Thales 이후 Anaximandros는 최초로 산문으로 글을 썼다.

 

비극의 등장

pp. 32-6

 

- 비극의 발생: Peisistratos의 재세(BC 561-527)-Megara와의 전쟁으로 Salamis를 정복. 상공업을 권장하고 문예 장려 정책을 씀.

(1) BC 539, 대 디오뉘소스제를 연중 행사로 거행하기 시작. 여기서 비극이 처음 공연됨. 이는 종교적인 정당화를 통해 귀족 권력을 누르기 위해서였다. 즉 비극의 최초 시발은 매우 정치적인 동기에 있었다는 것.

(2) 페르시아에 의한 Ionia 병합과 Athenai로 문화 중심지의 이전. Peisistratos의 문예 장려 정책과 맞아 떨어짐.

 

- 비극의 성숙: Salamis 해전(BC 480)의 승리[~Perikles 시대(30년기)]

BC 494, Ionia의 최후 보루인 Miletos 함락.

Ionia의 후원국이었던 Athenai에 대한 Persia Darius왕의 침략: Marathon 전투(BC 490). Athenai 승리.

BC 486, Darius의 후계왕인 Xerxes가 희랍의 모든 국가들에게 복속을 요구. 거절당함.

페르시아의 희랍 본토 공략. AttikeAthenai 정복.

마지막 병력이 Korintos 지협과 Salamis 앞바다에 집결함. Salamis 해전 승리: Themistoklēs 지휘.

{34-5}<그 극적인 순간, 그러한 비-(悲壯)의 순간이야말로 참된 비극을 탄생시킬 수 있는 절호의 순간이었다. 희랍 특유의 참된 비극은 그와 같은 역사적인 순간을 배경으로 해서 비로소 탄생될 수 있었던 것이다. 삶이 안이하게만 영위될 때, 비극은 그 무대를 갖지 못한다. 커다란 파도와도 같이 밀려드는, 아니 노도와도 같은 pathos가 밀어닥칠 때, 비극은 싹튼다. 그러기에 pathos의 상징인 Dionysos 신의 의식에서 비극이 상연되었다. 인간의 위대함이 입증됨과 더불어 비로소 비극은 시작된다. 비극이 추구하는 미는 비장미다.>

pathos-사건, 닥침, 겪음, 수난, 처지, 상태 등을 의미. 감정이나 격정이란 의미는 부차적이었음.

 

비극은 탐구정신의 산물이다

p. 36

 

단적으로 말해 희랍 비극은 희랍인들의 집요한 탐구정신이 낳은 위대한 산물이다. 그것은 서사시와는 아예 차원을 달리하는 인간 탐구의 기록이다. 그것들{서사시와 서정시}은 인간에 관한 피상적인 탐구에 머물고 말았다. 이에 비해 희랍 비극은 얼버무림을, 모호함을 싫어하는 희랍인들의 기질이, 사실을 사실대로 보려는 그러한 기질이, 철저하게 알려는 탐구 정신이 가져온 성과다. 이제야 희랍인들은 인간의 적나라한 모습을 직시할 채비를 하게 되었다. 비극을 통해 희랍인들은 인간 자신을 탐구하기 시작했다.

 

비극의 목적

pp. 36-9

 

(1) 공연을 통한 일반적 효용의 달성: katharsispolis적 전체 의식.

(2) 인간 자체, 인간 일반에 대한 앎. 이것이 보다 근본적인 목적이다: 개인적 인간이 아니라 보편적 인간의 상을 잡으려고 함. → 『시학IV(historikospoiētēs의 작업 비교) 참조.

{38}<그렇다면 시인은 이처럼 인간을 일반화시켜 놓고서 그 다음엔 무엇을 해보자는 것인가? 그것은 인간의 최악과 최선을, 최소와 최대를, 나약하기 그지없음과 강대하기 그지없음을 알아보려는 탐구 작업이다. 그러한 극소-극대의, -장의 양면을, 그러한 비극을 알아보려는 작업이다. 그것은 인간의 모순됨을, 그러기에 삶이 살 보람이 있고 아름다울 수 있음을 사람들에게 보여 주며 깨우치게 하자는 것이 비극 시인의 절실한 바람이다. 그러한 본래적인 인간에 대한 비망각과 비은폐, 비간과, alētheia의 집요한 결과가 낳은 것이 비극이다. 그것은 바로 진리에의 추구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physisnomosaretē

pp. 39-49

 

- 개념사 배경: 30년기. Salamis 해전 승리 이후 Perikles 시대. {40}<그것은 아테네가 헬라스 중의 헬라스, 아테네(Hellados Hellas, Athenai)”로 탈바꿈하며서부터라고 말할 수 있겠다. 이 아테네의 탈바꿈으로부터 철학의 중심 무대는 이오니아 지방으로부터 아테네로 옮겨지고, 아테네는 이제 명실 공히 헬라스의 학교(hellados paideusis)”로 된다.>

 

- physis nomos: physis의 탐구에 대한 소피스트들의 비판과 nomos(관습, 인습)의 강조.

* Prōtagoras: “만물의 척도는 인간이다. 있는 것들에 대해서는 있는 것으로서, 없는 것들에 대해서는 없는 것으로 보는 척도다”(Diels-Krantz의 책, Protagoras, fr. 1)

{40}<프로타고라스의 이 명제는 무엇보다도 physis의 탐구에 관한 철학자들의 지나친 애착에 대한 비난을 듬뿍 담고 있다. {} 인간은 physis에 관한 많은 탐구를 해왔지만, 그것은 어리석은 일로서, 인간에게는 보편적인 지식에 이를 수 있는 길이 근원적으로 막혀 있다. 왜냐하면 모든 것은 각자가 보기 나름이요, 그 보기 나름의 것이 그에게 있어서의 진리이기 때문이다. 각자가 갖게 되는 의견(doxa)이 각자에게 있어서의 진리이다. 따라서 만인이 함께 같이 가질 수 있는 보편적인 지식(epistēme)이란 불가능하다. 이는 법(nomos)이나 행위(praxis)의 문제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법은 그 자체가 어떤 합리적인 근거를 갖고 있어서 구속력을 행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들이 제정한 것(synthēkē)불과하며, 오래도록 시행해 오는 과정에서 굳혀진 관습(nomos)일 뿐이니, 자연(physis)의 이치에 따른 어떤 절대성을 갖는 법이나 행위의 원칙은 없다 .>

 

- aretē:

(1) 개념 배경: nomos에 대한 옹호와 함께 등장한 개념. 당시의 sophistēs들이 그 시대가 필요로 하는 aretē를 가르친다는 맥락에서 출현함. 변론을 위한 수단으로서의 aretē-<강한 주장을 약하게 만들고, 약한 주장을 강하게 만드는 것>, 즉 수사술의 연마.

{41}<Sophistēs들의 시대에 와서 새삼 문제 삼게 된 aretē는 희랍적인 사고를 가장 잘 특징지어 주는 말들 중의 하나다. 왜냐하면 aretē는 그 시대마다의 희랍인들의 이상 내지 신앙을 가리키는 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aretē는 원래부터 고차원적인 의미를 지닌 것은 아니었다. 그것은 희랍인의 이상이 높아짐과 더불어 그 의미를 달리해 간 것이다. 그리고 aretē에 있어서 또 한 가지 특이한 것은, 그것이 극히 평범하고 일상적인 것에서부터 시작해서 극히 학문적인 데에 이르기까지 골고루 쓰인 말이란 점이다.>

 

(2) 의미: {42}<사물이나 사람에 있어서의 그 특이성에 따른 최선의 상태>, <같은 종류의 사물들이나 같은 부류의 사람들에 있어서 가장 이상적인 상태>

훌륭함, 빼어남. goodness, excellence. .

국사를 훌륭히 처리할 수 있음이 남자의 aretē, ... 여자의 aretē... 제 집안 일을 잘 처리하는 것이다. ... 아이나 노인에 따른 aretē, 남자에 따른 aretē, ... 자유인과 노예에 따른 aretē가 각각 다르다[Plato, Menon, 71e]. 즉 가장 남자다움이, 가장 여자다움이 그네들 각자에 있어서의 aretē이다”(W. Jager, Paideia 1. Berlin 1954, S. 30)

기능, (하는) , ergon과 관계되는 말: ~에 능함.

*인간 일반의 aretē가 무엇인지 물은 것이 희랍적 사유방식이다. 보편적인 aretē를 탐구한 것이다. Socrates

 

(3) 철학자들의 aretē

* Socratesaretē = epistēmē: {45-6}<소크라테스는 도대체 사람의 사람다움, aretē가 소피스테스들이 내세우는 그런 것일 수 없음을 통박하는 분주한 행각에 나섰다. 이 행각에 있어서 그가 내세운 주장이 널리 알려져 있는 aretēepistēmē이다라는 명언인데, 이는 무엇보다도 소피스테스들을 겨냥한 것이다. 각기 각자가 속하는 분야에서 해야 할 일(ergon)이 무엇인지에 대한 앎(epistēmē)을 가져야 한다. 훌륭함(aretē)는 앎(epistēmē) 없이 실현을 볼 수 없다. 마찬가지로, 사람으로서의 훌륭함의 실현은 사람의 할 일 내지 구실이 즉 사람의 고유한 기능이 무엇인지에 대한 앎이 없이는 불가능하다. 그것이 그에게 있어서 내 자신에 대한 앎(gnōnai emauton)의 강조로 나타났고, 이를 아폴론 신전의 잠언을 빌려 너 자신을 알라(Gnōthi sauton)라는 명언으로 나타났다. 그가 혼에 대한 보살핌(tēs psychēs epimeleisthai)이나 혼이 가능한 한 훌륭하게 되게끔혼에 관해서 마음을 쓸 것을 사람들에게 당부한 것도 같은 생각에서였다. 혼에 대한 보살핌이나 자기 자신에 대한 앎의 강조는 혼에서 인간 고유의 기능 내지 구실을 찾아 낼 수 있음을 일깨우기 위함이다. 그걸 소크라테스는 이성(logos)으로 보았고, 이성은 무엇보다도 말(logos)을 쓸 줄 아는 능력이며, 또한 말을 매개로 사물들의 이치(logos)추론(logismos)할 줄 아는 능력이다. kakia(나쁨, 나쁜 상태, )는 무지(amathia)로 말미암는다는 소크라테스의 또 다른 명언들은 이러한 그의 생각을 달리 표현한 것에 불과하다.

* Plato, Aristotlearetē = nous: 정신, 직관력, 지식, {47}<다시 말하면, nous는 인간다운 삶의 주체인 동시에 가장 고차원적인 인식 주관이다. 그러므로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에 있어서 nous는 인간다움(aretē)의 최상의 요건이다. Sokrates에게 있어서의 aretēepistēmē이다는 그들에게 있어서는 aretēnous이다로 된다. 플라톤은 nous의 대상인 ta noēta(직관되는 것들), 즉 이데아 내지 형상(eidos)들을 알게 되어, 그것들에 삶이 지표를 얻게 될 때에야, 사람이 사람다움, 즉 사람으로서의 훌륭함을 실현할 수 있게 된다고 보고 있다.>

 

- nous는 인간 안의 신적인 것(theion)이다: {48}<누우스는 헬라스 사람들이 오랜 동안의 끈질긴 탐구 활동을 해오는 가운데 자신들 속에서 마침내 찾아낸 것으로서, 분명히 인간의 것이면서, 인간 이상의 것이다. 처음에는 인간의 목숨(psychē)이 하루살이들(ephēmerioi)의 그것과 같다고 보았던 헬라스인들이 차츰 비관적인 인생관을 극복하여 가다가 마침내 인간의 psychē에서 nous를 찾아 내었을 때, 그들은 그것이 이제까지의 모습에 있어서의 인간을 넘어선 것이라 보지 않을 수 없었다.>

 

- Plato: 파이돈에서는 두 종류로, 국가에서는 네 가지 덕목으로 요약한다.

아레테의 구분: “절제라든가 정의 따위의 aretē는 구태여 철학이나 이성이 동원되지 않고서도 습관과 단련만을 통해서도 이룩되는 것”(파이돈80b) , aretē - 철학이나 이성을 통해 이룩되는 것. 습관과 단련을 통해서 이룩되는 것.

 

- Aristotle: aretē - 윤리적 아레테(hē ēthikē aretē): 습관(ethos)으로부터 얻어짐. 지적 아레테(hē dianoētikē aretē): 가르침을 통해 생기고 늘어남.

만일에 nous가 인간에 비해 신적인 것이라면, nous에 따른 삶은 인간적인 삶에 비해 신적인 것이다. 그러나 우리들은 인간이기에 인간적인 것들을, 그리고 사멸하는 자이기에 사멸하는 것들을 생각하라고 충고하는 사람들의 말에 따라 그대로 할 것이 아니라, 가능한 한 불사하도록 하며 자신 속에 있는 것들 중에서 최선의 것에 따라 살기 위해 최선을 다하도록 해야만 된다. 왜냐하면 비록 그것이 크기에 있어서는 작을지라도, 힘과 가치에 있어서는 그 무엇보다도 훨씬 더 우월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정녕 우세하고 보다 훌륭한 것일진대, 이것이야말로 바로 참된 자기인 것으로 여겨짐 직하다. 그렇다면, 사람이 자기 자신의 삶을 선택하지 않고 다른 것의 삶을 선택한다면, 그것은 우스꽝스런 일일 것이다. 또한 앞서 말한 바가 지금에 있어서도 타당하다. 왜냐하면 각자에게 있어서 고유한 것이 본성적으로 각자에게 있어서 가장 훌륭한 것이며 가장 즐거운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만일에 nous가 정녕 가장 사람다운 것이라면, nous에 따른 삶이야말로 사람들에게 있어서 가장 훌륭하며 가장 즐거운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삶은 가장 행복한 삶이기도 하다”(니코마코스 윤리학X, 7.).

 

{49}<그들이 nous를 강조했다 해서, 삶을 포기하거나 육신을 저주할 것을 권유한 것은 아니다. 단순한 동물로 머물 뿐 거기에 logosnous처럼 덧보태어진 것(epiktēsis)이 없다면, 인간에게는 아무것도 특유의 것이 없다. 덧보태어진 것들(ta epiktēta)이 바로 인간 특유의 것들이요, 또한 그러한 것들을 덧보태어 가진 그 만큼만 인간으로서 산다는 것을 헬라스인들은 말하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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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극 공연의 모습

pp. 277-8

 

- 디오뉘소스 축제: 디오뉘소스 신에 대한 축제 중 대대적인 것에는 1월에 열리는 레나이아(Lēnaia) 축제3-4월에 열리는 대디오뉘소스 축제(ta megal Dionysia)가 있다. 전자의 기간에는 희극이 후자의 기간에는 주로 비극이 공연되었다. 대디오뉘소스제 때에는 방방곡곡으로부터 약 3만명이 운집했다. 펠로폰네소스 전쟁(BC 431-403) 전까지는 6일간 계속되었다(전쟁 당시에는 5일로 줄이고, 경연자 수도 셋으로 줄임).

첫째 날: 축제 대행진-포도나무 가지로 장식한 포도주통을 앞세우고, 그 뒤에 한 마리 염소, 그리고 무화과와 온갖 과일들을 담은 광주리들의 행진, 그리고 남근상(phallos)의 행렬, 갖가지 물통의 행렬 등등이 이어졌다.

둘째 날: 디튀람보스 공연-50여명의 코러스의 가무. 전체적인 종교의식의 시작을 알림. 10편 정도가 공연됨.

셋째 날: 희극 공연. 5명의 작가들이 한 편씩 공연.

넷째 날~여섯째 날: 3일 간 3인의 비극시인들이 경연함. 비극 세편(삼부작, trilogia)과 사튀로스극 한 편씩 모두 네 편(4부작, tetralogia).

 

- theatron

노마씨 그림파일
노마씨 그림파일

- 비극의 담당자들:

* chorēgos: 재정 담당자. 아이스퀼로스는 둘, 소포클레스는 셋 등등. 부유한 사람들 중 국가가 임명함.

* 배역은 일인 다역이 많았으며, 코러스 단원은 15. 시인은 감독을 맡았으며, 경우 따라 실제 연기까지 함.

* 배우들은 가면과 굽이 높은 장화(kothornos)를 신음.

 

- 비극의 양적 구성:시학(De arte poetica) XII.

(1) 서사(prologos): 독백 또는 대화로 시작. 예비적 지식을 전달.

(2) 등장가(parodos): 코러스의 등장에 따라 가무. 측면 출입구인 parodos를 통해 등장. 다섯 명씩 3종열로 섬. 한 줄은 무대쪽을 보고 서며, 관객이 가까이 잇는 맨 갓줄은 관객들을 향해 선다. 관객쪽 줄 가운데에 코러스장(koryphaios, chorēgos)이 선다. 코러스장은 단독으로 가무를 하기도 하고, 때로는 배우와 대화도 나눈다.

(3) 스타시몬(stasimon): “자리잡음이란 뜻. 본가무. 여기서부터 코러스가 활동. 코러스는 대개 마지막 무대까지 남아 있는다. 이 본가무를 하는 중에 코러스들은 오르케스트라에서 좌우로 이동하면서 가무를 한다. 왼쪽으로의 가무를 strophē , 오른쪽으로의 가무를 antistrophē라 함. 반복조의 가무(ephymnion)도 있음. 정지가무(mesōdos), 부가정지가무(epōdos)

(4) 삽화(episodion): 코러스의 스타시몬과 교대로 나오는 배우들의 대화 장면. 오늘날의 막에 해당.

어원으로 보면 episodion(부가물, 첨가된 것)이 비극의 주가 아니었고, 코러스의 가무, stasimon이 주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배우의 역할은 아이스퀼로스로부터 시자해서 점점 중요해 진다.

(5) 엑소도스(exodos): 마지막 stasimon이 끝난 뒤의 결미 부분.

 

mythos의 철학적 의미

p. 284

 

모방=행위(praxis, ergon)의 모방, 즉 인간의 활동하고 있는 상태’(en+ergon: energia-현실태)의 모방이다. 이것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적 입장과도 통하는 바다. <그에게 있어서는 플라톤의 이데아처럼, 참실재가 사물을 떠나서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사물 자체가, 하나의 이것(tode ti)”인 각각의 개체가 실재하는 것(to on)”이다. 다시 말하면, 사물 자체가 실재서(ousia) 내지 본질을 자기 속에 가능태(dynamis)로서 지니고 있고, 그 사물은 자신의 가능한 상태를 현실태(energeia), 즉 현실적인 상태로 실현하는 데서 그것다웁게 된다.> 그러므로 이때 모방은 모상이 아니라 본질을 대상으로 한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