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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ilos_Poietikes_Demos

인민의 존재론 단편 -#4

by Nomadia 2020. 1. 29.

Charles Wilbert White, <The Contribution of the Negro to Democracy in America>, 1943

 

#4. 이제 ‘사건의 철학’과는 다른 방향에서 ‘해석의 철학’에 대한 질문이 미리 단서를 확보할 수 있게 된다. 이에 대해 짚고 넘어 가보자. 그리고 나서야 우리는 ‘사건과 해석’이 인민의 존재론에서 의미하는 바를 드러낼 수 있을 것이다.

 

앞서 ‘해석’이 드러난 맥락은 사건을 철학 안에 정위하면서부터다. 그렇다면 해석은 우선 그 기능이라는 측면에서 우리 앞에 드러난다. 하지만 이러한 ‘기능’의 측면은 처음부터 소극적으로 머문다. 왜냐하면 해석의 기능이라는 것이 단지 사건의 철학을 그 과정 안에서 구성하는 도구이기만 하다면, 그것이 하등 실존의 근거로 등장할 리가 만무하기 때문이다.

 

만약 그렇다면 인간은 해석 없이도 충분히 자신의 삶을 영위하고, 철학을 향유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앞서 살펴본 대로, 인간의 삶과 역사는 ‘사건인 한에서의 사건’에 의해 둘러싸여 있으며, 그 조건 하에서 사태와 더불어 존재한다. 그리고 사건은 그 본래적 의미가 ‘거리’에 의해 표현되는 것이고, 양식화된(습관화된) 일상은 이 거리에 의해 규정되며, 이 규정성은 적극적으로 해석될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다면 인간은 사유와 시간, 공간의 벡터가 구성하는 힘들의 소멸에 직면하여, 어떤 긍정적인 삶의 양식(습관)도 문화와 문명도 창조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이는 모든 사실과 배치된다. 그러므로 해석은 그것의 도구적 측면이 아니라 적극적이고 능동적이며 창조적인 측면에서 인간과 세계를 뿌리에서부터 떠받치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사건의 철학은 해석에 의해 그 본래적인 ‘의미’를 획득하게 되는 것이며, 그 의미획득의 매순간마다 해석은 사건의 철학에서의 그 ‘철학’과 마찬가지로 철학, 즉 해석의 철학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가장 주목해야 하는 점은 이 해석과정 자체가 의미를 통해 ‘해석의 철학’을 하나의 사건으로 드러낸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해석은 사건의 철학에서의 그 ‘철학’과는 다른 부박하고, 도구적이며, 기술적인 작업으로 전락하고 만다.

 

그러한 해석은 뿌리의 근처에도 가지 못한다. 그렇다면 첫 번째 질문에 이어 또 다른 질문이 다음과 같이 구성된다. 즉 <‘사건인 한에서의 사건’을 표현하는 구성요소들은 해석의 철학에서 어떻게 의미를 획득하는가?> 이것은 또한 다음의 질문을 도출한다. <해석의 철학은 의미획득의 과정에서 어떻게 ‘사건인 한에서의 사건’이 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