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서지: Yuk Hui, Machine and Sovereignty: For a Planetary Thinking, Minneapolis: University of Minnesota Press, 2024
*‘< >’ 안의 숫자는 원문의 페이지수, ‘[ ]’ 안의 숫자는 주석의 순번임.
<153>
5장. 디지털 지구의 노모스
“오, 나의 친구들이여, 친구는 없다.” (...) 만약 “친구가 없다”면, 내가 어떻게 너희를 나의 친구들이라 부를 수 있겠느냐, 나의 친구들이여? 무슨 권리로? 너희가 어떻게 나를 진지하게 받아들일 수 있겠느냐? 내가 너희를 나의 친구들이라 부른다면, 나의 친구들이여,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면, 나의 친구들이여, 내가 어떻게 감히 너희에게, 친구는 없다고 덧붙일 수 있겠느냐?
- 자크 데리다, 『우정의 정치학』
중립화의 과정이라는 의미에서 기술은 더 이상 중립적인 영역이 아니다. 모든 강력한 정치는 기술을 이용할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현 세기는 잠정적으로만 기술의 세기로 이해될 수 있다. 궁극적으로 이 세기가 어떻게 이해되어야 할지는, 어떤 유형의 정치가 새로운 기술을 지배할 만큼 강력한지, 그리고 어떤 유형의 진정한 우군-적군 집단이 이 새로운 영역 위에서 발전할 수 있는지가 알려질 때에야 비로소 드러날 것이다.
- 칼 슈미트, 『중립화의 시대』
디지털 지구의 노모스를 탐구하려면 우리는 주권의 근본적인 질문을 다시 살펴야 할 것이다. 이것 없이는 헤겔과 슈미트의 국가 이론을 끊임없이 적용할 위험이 있다. 지난 장에서 우리는 슈미트의 홉스 논문을 기계론과 유기체론 사이의 대립을 넘어 그의 정치 사상의 인식론적 토대를 밝히려는 시도로 읽으려 했다. 슈미트의 생기론은 내전이든 외침이든 정치적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모든 규범을 중지시키는 대립물의 복합(Complexio Oppositorum)의 보류와 결정으로 구성된다. 주권자는 예외를 결정하는 권력이다. 이것은 한편으로 독재로 가는 길을 열고 생존 그 자체의 조건으로서 예외 상태를 정당화하며, 다른 한편으로는 실정법 학자와 자연법 학자 사이의 논쟁에서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주권 또는 법 자체의 기원에 관한 형이상학적 문제에도 답한다. 이번 장에서는, 먼저 <154>법의 토대가 갖는 우연성의 문제와 슈미트의 생기론이 이 문제를 어떻게 개념적으로 해결하는지 다시 볼 것이다. 둘째, 우리는 새로운 정치 형태이자 헤겔의 정치적 국가의 후계자인 슈미트의 거대공간(Großraum)에 관한 제안을 검토할 것이다. 우주 기술과 디지털 기술의 발전과 함께, 슈미트를 따라 공간 혁명에 대응하여 새로운 정치 형태가 출현하는 것을 예상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러한 거대한 규모에 대한 숙고가 진정한 행성적 사유로 우리를 이끄는가? 여기서 수행될 해체(deconstruction)는 슈미트의 사상을 불신하거나 옹호하려는 시도가 아니라, 주권과 기술 사이의 관계에 대한 슈미트의 분석을 재구성하고 디지털 지구의 관점에서 그 한계를 드러내는 길을 닦는 것이다.
§21. 주권의 우발성에 관한 첫 번째 해체
앞서 우리는 자연법 전통이 어떻게 도전을 받았는지 보았다. 예를 들어, 홉스와 루소의 경우, 인간의 정의에서 존재론적 진리로 제시된 자연권은 그것을 저술한 이들의 상상 속에 사는 어떤 허구적 인간의 파생물로 간주되었다. 상상의 자연 상태는 마침내 또 다른 허구적 인물인 주권자로 이어진다. 이 주권자는 홉스에게서 신민들의 복종과 보호를 교환하며, 루소에게서 모든 공동체적 존재 형태에서 전제되는 일반의지로 이어진다. 루소에게 주권자는 일반의지와 동일하지 않다. 오히려 주권자는 일반의지에 의해 통제되는 권력이다. ‘일반의지’는 다수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을 “하나로 묶는 공동의 관심사”[1]를 의미하거나 칸트적 의미에서 공통감(sensus communis)을 의미한다. 역사주의[2]와 신칸트주의의 공격을 받는 자연법은 경험적 현실에 폭력을 가하는 비역사적 합리주의로 불신된다. 이것은 인간이 실천적 근거에서 법을 만들고 실정권이 존재론적 토대를 갖지 않는다는 실정법의 승리를 의미하는가? 이것이 역설적으로 들릴지 모르지만, 실정법의 권위가 끊임없는 의심에 노출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는 자연법에 대한 탐구를 “본질적으로 선한 것, 본성적으로 선한 것”에 대한 호소로 보게 된다. 우리는 자연법에서의 존재론적인 것이 인간학적인 것으로서 의문을 제기받기 때문에, 인간의 정치적, 사회적 삶에 대한 답을 실정법에서 찾는 순환 논증을 본다. 그러나 실정법의 토대는 존재론적 진리를 갖지 않는 권위이므로, 모든 법이 파생되어야 할 확고한 토대를 찾기 위해 다시 자연법으로 돌아간다.
<155>레오 스트라우스(Leo Strauss)에게 이 해결 불가능한 문제는 현대의 위기로 남아있다. 역사주의와 실증주의의 도입은 그가 소크라테스로부터 에드먼드 버크까지 추적하는 자연법 전통에 도전했다. 스트라우스는 그의 저서 『자연권과 역사』(Natural Right and History)에서 역사주의, 실증주의, 관습주의가 모두 인간이 존재론적 진리, 특히 역사에 접근하는 것을 거부하기 때문에 허무주의가 될 위험이 있음을 보여주기 위해 그들에 맞서 논쟁했다. 스트라우스는 막스 베버를 겨냥하여, 베버가 가치로 가득 찬 사회학이 아니라 사실에 충실한 사회학을 원했기 때문에 자기모순적임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사회학이 사회 현상의 인과적 설명을 목표로 한다면, “그것이 무엇인지 그대로 보아야”[5] 한다. 베버는 사실로부터 사물/사태를 보는 것, 즉 실증주의적 인식론을 원했지만, 존재론적 질문을 우선시하지 않았다. 반대로 스트라우스는 존재론적인 것이 인간에게 접근 가능하며, 그것이 또한 인간에게 선행자의 권위에 반항할 정당성과 힘을 준다고 주장하는 철학적 전통을 믿는다. 그러나 이 논증은 다시 순환적이다. 그 선행자들도 자신들이 존재론적인 것을 안다고 주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플라톤은 자연권의 전근대적 사상가로 묘사된다. 플라톤의 『국가』가 완벽하다면, 그 이유는 그것이 자연권에 기반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본성[자연]에 따른 도시’이다. 그러나 플라톤은 『국가』 3권에서 소크라테스의 말에 따라, 호메로스의 시를 검열하고 도시의 수호자가 될 잠재력을 가진 선별된 아이들을 ‘세뇌’하기 위한 여러 기술을 제안하지 않았는가? 역사주의와 실증주의에 대한 스트라우스의 비판은 자연권 역시 역사적이라는 반론을 효과적으로 해결하지 못하며, 실제로 홉스와 루소에 대한 그의 의존은 인간 본성이 단지 상상적일 뿐임을 보여줄 뿐이다. 법의 토대에 대한 탐색은 또한 주권에 대한 탐색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질문이 발생한다. 주권이란 정확히 무엇인가? 주권자는 정확히 어디에 있으며 누구인가? 주권자는 왕인가 아니면 인민인가? 아니면 그들 중 누구도 아닌가? 정치 이론가 옌스 바르텔손은 그의 저서 『주권의 계보학』(Genealogy of Sovereignty)에서 주권이 사실은 우발적이라고 제안한다. “주권이 우발적이라고 말하는 것은 주권이 필연적이거나 본질적이지 않지만, 현대 정치 담론에서 그 중심적이면서도 모호한 위치가 이전의 우발적 사건들의 결과임을 말하는 것이다.”[6]
우리는 종종 주권이라는 용어를 베스트팔렌 조약과 연관시킨다. 그러나 니콜라스 오너프(Nicholas Onuf)가 지적했듯이, 이 단어는 뮌스터와 오스나브뤼크 조약(the treaties of Münster and Onasbrück)에서 단 여섯 번만 나타나며, 형용사 ‘주권적인’은 네 번만 나타난다. 그리고 사실, 이 용어는 주권의 아버지인 보댕(Bodin)에 의해 이미 1576년에 정의되고 논의되었다.[8] 보댕은 주권이 단일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으로 유명하지만, 소위 베스트팔렌 국가가 <156>베스트팔렌 조약에서 유래한 것은 국가가 자신의 영토에 대한 독점권을 가지며 전쟁을 선포할 독점적 권리를 가진다는 생각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우리는 주권 개념이 역사적으로 출현했고 훨씬 나중에야 이론화되었기 때문에 그것의 우발성을 이해할 수 있다. 주권의 우발성이 가지는 또 다른 의미는 더 철학적인데, 즉 그것이 필연적이지 않지만, 홉스의 『리바이어던』에서처럼 정치적 삶의 일관성을 유지하는 권력에 대한 요구 때문에 필연적으로 되었다는 것이다. 홉스의 『리바이어던』에서 주권자는 인민의 복종에 대한 대가로 보호를 교환하도록 요구받는다. 슈미트가 주장하듯이, 주권자는 이런 의미에서 신화적이다. 지난 장에서 우리는 주권자의 존재를 법적 인격체(persona moralis)로서 전제했는데, 이를 우리는 슈미트가 홉스를 읽는 방식에서 발견하는 이미지, 즉 기계 속의 영혼에 비유했다. 홉스 역시 주권자를 허구적 인물로 특징짓는다. 우리는 기계 속에 영혼이 없으며, 주권이라는 커튼 뒤에 개인이 없다는 것을 안다. 만약 누군가 커튼을 열려고 시도한다면, 그 뒤에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발견하고 크게 실망할 것이다. 슈미트는 주권을 경계 개념(Grenzbegriff), 즉 가장 바깥 영역(die äusserste Sphäre)에 속하는 것이라고 부른다.[10] 윌리엄 라쉬(William Rasch)는 이를 칸트적 의미의 경계 개념으로 번역할 것을 제안한다.[11] 라쉬의 설명이 더 자극적인데, [그에 따르면] 칸트가 경계 개념으로 의미하는 것은 알려질 수 없지만 인식 가능한 것에 한계로서 작용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경계 개념은 무엇보다도 부정적 개념이다. 예를 들어, 예지계(noumenon)는 감성적 직관이 도달할 수 없는 영역을 구성하기 때문에 경계 개념이다. 감성적 직관은 과학적 지식의 대상인 현상계(phenomenon)의 영역으로 제한된다. 『순수이성비판』 A판에서 예지계의 동의어였던 물자체는 현상 뒤에 놓인 것이다. “현상들이 범주의 통일에 따라 대상으로 사유되는 한, 그것들은 현상(phenomenon)이라고 불린다. 그러나 만약 내가 오로지 지성의 대상이며, 비록 감성적 직관이 아니더라도 (하지만 지적 직관coram intuitu intellectuali에 의해) 직관에 주어질 수 있는 사물을 가정한다면, 그러한 사물들은 예지계의 것(noumena)(지성적인 것intelligibilia)라고 불릴 것이다.”[12]
우리가 알다시피, 예지계는 지적 직관이 긍정될 때만 부정적 개념이기를 멈춘다. 인간은 지적 직관의 능력을 소유하고 있지 않으므로, 그러한 경계 개념은 지식을 제약하는 동시에 그 토대를 확립한다.[13] 상상력의 설명 불가능한 표상(예컨대 아름다움)과 <157>이성의 논증 불가능한 개념(예컨대 자유)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말할 수 있다.[14] 예를 들어, 자유 개념은 실천적 목적에서 요청되는데, 이것이 없으면 도덕성은 생각될 수 없을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역설에 부딪힌다. 주권자는 법의 토대가 되어야 하지만, 그것이 무엇인지 식별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것은 환영(phantom[유령])이다. 법은 종종 기하학과 비교되는데, 예를 들어 그로티우스와 홉스에게서 법은 강력한 기하학적 정신을 지닌다. 전자는 “수학자들이 물질적 대상에서 추상된 기하학적 도형을 다루듯이, 나는 모든 특수한 상황이 없는 상태에서 법을 구상했다”고 주장하고, 후자는 기하학이 “지금까지 신이 인류에게 베풀기를 기뻐한 유일한 과학”이라고 말한다.[15] 이 비교에 비추어 볼 때, 우리는 기하학이 이 문제를 어떻게 다루는지, 그리고 그것이 그 환영에 대한 통찰을 제공할 수 있는지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우리는 데이비드 흄의 『인간 본성론』에 나오는 관련 논의를 참고할 수 있다. 이 스코틀랜드 철학자는 기하학에 관한 정의와 논증을 명확하게 구별했다. 흄의 동기는 연장(extension)의 불가분성에 대한 수학적 반론을 거부하려는 것이었다. 만약 누군가 면을 “깊이가 없는 길이와 너비로 정의하고, 선을 너비나 깊이가 없는 길이로, 점을 길이, 너비, 깊이가 모두 없는 것”으로 정의하고, 이에 상응하는 논증이 없다면, 그것들이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는가? 흄이 반박하고자 했던 반론 중 하나는 다음과 같으며, 흄은 그것이 불만족스럽다고 생각했지만, 이는 이는 여기서 우리 논의와 매우 관련이 깊다.
기하학의 대상들, 즉 그것이 비율과 위치를 검토하는 그 면, 선, 점들은 마음속의 단순한 관념일 뿐이다. 그리고 자연 속에 존재한 적이 없을 뿐만 아니라, 결코 존재할 수도 없다. 그것들은 결코 존재하지 않았는데, 왜냐하면 아무도 정의에 전적으로 부합하는 선을 그리거나 표면을 만들려고 주장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들은 결코 존재할 수 없는데, 왜냐하면 우리는 그것들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이러한 바로 그 관념들로부터 논증을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16]
흄은 모든 관념이 존재에 대응하는 것을 가져야 한다는 이유로 이 반론이 불만족스럽고 모순된다고 생각한다. 점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수학자도 이미 자신의 마음속에 점의 관념을 가지고 있다. 만약 그가 이미 점의 관념을 가지고 그것이 점의 존재를 내포한다면, 점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반론은 유효하지 않다. 우리가 계속 나아가기 전에, 우리는 몇 가지 개념을 명확히 해야 할 것이다. 정의, 존재, 논증은 동일하지 않다. <158>기하학에서 그러한 정의는 현상 세계에서 논증될 수 없을지라도 관념성(ideality)의 존재를 지칭한다. 그러나 그것은 그 자체로 그것들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것들의 존재를 가정하지 않고서는 기하학적 논증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점의 예를 참조하여 이것을 이해할 수 있다. 따라서 점은 차원을 가지지 않는다. 우리가 우리 앞에 있는 점을 상상할 때, 그것은 더 이상 점이 아니라 이미 면이다. 내가 타이핑하고 네가 읽고 있는 이 점들은 점이 아니라 면이다.[17] 점의 관념성은 물 한 잔과 같은 존재로 지각될 수 없지만, 이것이 그것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단지 그것이 무엇인지 그대로 논증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할 뿐이다. 그러나 관념성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관념화(idealization)가 필수적이다. 이 관념화는 또한 외재화(externalization)를 의미하며, 이는 점을 종이 위에 도형으로 투사하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서 우리는 첫 번째 해체에 부딪힌다. 관념성이 논증될 수 없을지라도, 그것은 도식적 기술적 보충물(supplement)을 통해 파악될 수 있다. 예를 들어, 그리기와 쓰기 말이다. 베르나르 스티글러는 유사한 역설에 대해 논평하면서 (흄이 아닌 플라톤과 후설을 참조하지만), 정의, 존재, 논증 사이의 논리적 순환을 설득력 있게 명확히 한다.
수학적 관념성으로서 점을 개념화하기 위해서는 점을 도형화하는 것이 요구되며, 추론을 투사하기 위해 점을 직관적으로 투사하는 것이 요구된다. 또한 이러한 의미에서 외재화는 도형에 필수적이다. 이 도형은 칸트가 도식(schema)이라고 부르는 것, 즉 지성(understanding)과 직관의 통일을 가능하게 하는 것의 투사를 허용하는 이미지이다. 이 선험적 형식으로서의 공간 사유는 도형을 표상하는 이러한 투사 능력을 전제한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이 투사가 외재화라는 점이다. 그것은 직관을 위한 투사를 허용하지만, 더 중요하게는 다시당김의 공간 (retentional space)을 구성한다. 이 공간은 시간의 흐름(이성이 사유할 때의 그것)의 추론을 점진적으로 지원하는 기억의 매개체이다.[18]
이 진술에서 스티글러는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에 나오는 도식화의 선험적 조건을 언급하며, 선험적 파악이 기술적 보충물에 의존한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그것을 해체한다. 유클리드 기하학에서 정의된 점, 선, 면과 같은 기하학조차도 그 토대를 논증할 수 없다는 것이 사실이라면, 우리는 그것이 법에서도 마찬가지인지 물을 수 있다. 점, 선, 면이 비록 논증 불가능할지라도 기하학의 토대라면, 주권자 또는 다른 어떤 <159>법적 개념도 법에서 유사한 위치를 차지할 수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그 권위는 처음부터 궁극적으로 승인되지 않은 것(unauthorized)이었다.[19] 기원의 결여(default of origin)는 “지배자와 피지배자 모두와 구별되는 허구적 또는 도덕적 인격체로서의 국가라는 관념을 언급하지 않고는 공권력의 본질에 대해 일관성 있게 이야기하기를 거의 기대할 수 없다”는 쿠엔틴 스키너(Quentin Skinner)의 「주권 국가-어떤 계보학」(The Sovereign State: A Genealogy)의 주장과 유사하게 허구적 존재로 대체되어야 할 것이다.[20]
『국가에 관한 일반 이론』(Allgemeine Staatslehre)에서 공법학자이자 법실증주의자인 게오르크 옐리네크(Georg Jellinek)도 유사한 관찰을 했다. 옐리네크는 법치국가(Rechtstaat)의 주권이 존재한다는 것을 거부했다. 대신 그는 국가가 곧 주권이라고 제안한다.[21] 인민은 허구적이다. 우리가 보는 것은 오직 개인이듯이, ‘일반의지’는 모든 개인의 집합과 같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누군가 인민이나 왕이 사실상의(de facto) 주권자라고 주장하고 싶을지라도, 그들 중 누구도 주권자는 아니다. 그러나 주권자는 순전히 비현실적이지도, 현실과 접촉이 없는 순전히 허구적인 것도 아니다. 대신, 종이 위의 점의 정의와 그것의 논증이 같지 않은 것처럼, 그 존재는 있는 그대로 논증될 수 없다. 슈미트가 말했듯이, 법적 개념은 “이해할 수 없는 것 내부로부터 파악할 수 없는 것으로의 도달”(der Griff aus dem Unbegreifbaren in das Ungreifbare)이다.[22] 이 정의는 궁극적인 신비에 관한 것이다. 비록 그것이 법적 개념을 실체로 파악하려는 시도를 환상적으로 깨뜨렸을지라도 말이다. 파악할 수 없는 것 (Unbegreifbar)은 현실에서 어떤 자율성을 소유하는 개념으로서 파악될 수 없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을 개념으로 환원함으로써, 누군가는 그것에 일종의 폭력을 가할 필요가 있지만, 그것은 또한 자신을 포착하려는 모든 용기를 적극적으로 넘쳐흐른다.
우리는 한스 켈젠과 칼 슈미트 사이의 주권 문제에 대한 논쟁에서 이 파악할 수 없는 것(Unbegreifbar)의 함의를 살펴볼 수 있다. 한스 켈젠의 법실증주의에서 근본 규범(Grundnorm)은 주어진 모든 법체계의 가장 근본적인 규범이다. 법체계에서 하나의 규범은 다른 규범에 의해 유효성을 부여받으며, 이는 계속 이어진다. 그것들은 유효성의 사슬을 구성한다. 예를 들어, 형법은 헌법에 의해 권한을 부여받는다. 켈젠은 유효성(Geltung)을 모든 사람이 규범에 복종하도록 의무화하는 구속력으로 간주한다.[23] 모든 규범 중에서 근본 규범은 나머지 규범에 유효성을 부여하는 근거이다. 근본 규범은 전제되는(presupposed)(그리고 창조되지 않는) 유일한 비실정법이며 논리적으로 필수적이다.[24] 법체계의 선험적 논리적 조건으로 기능하는 이 전제된 근본 규범은 무엇인가? 『순수법 이론』(Pure Theory of Law)에서 켈젠은 그의 탐구를 칸트의 탐구와 비교한다. 칸트가 “형이상학적 가설 없이, 우리의 감각으로 지각된 사실들을 자연 과학이 공식화한 자연법으로 해석하는 것이 어떻게 가능한가?”라고 묻는다면, 켈젠은 <160>“신이나 자연과 같은 초법적 권위에 의존하지 않고, 특정한 사실들의 주관적 의미를 객관적으로 유효한 법적 규범의 체계로 해석하는 것이 어떻게 가능한가?”라고 묻는다.[25] 켈젠의 신칸트주의적 법 이론에서 법의 유효성은 더 높은 수준에서 파생되며, 모든 법의 유효성은 근본 규범에 기원을 둔다. 그러나 근본 규범은 있는 그대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하는 ‘것처럼’(as if) 전제된다. 헤르만 헬러는 흄이 수학자를 반박한 것과 같은 방식으로 켈젠을 비난한다.
그것은 “제헌 권력에 의해 적용되는” 원규범이다. 헌법은 “전제된 원규범으로부터 법적으로 관련된 유효성을 얻지만, 그 내용은 제헌 권력의 경험적 의지 행위로부터 얻는다.” 따라서 우리는 법적으로 관련된 유효성을 이미 가지고 있는 ‘헌법’을 먼저 가진 다음, 비로소 ‘제헌’ 권력을 가지는데, 이것은 내가 따를 수 없는 논리적 술수이다![26]
근본 규범에 의해 근거 지어진 유효성은 기하학적 요소들의 관념성과 유사하다. 유효성은 관념성과 마찬가지로, 이미 전제되어 있지만, 예를 들어 도표와 같은 자기 자신이 아닌 다른 수단을 통해서만 밝혀질 수 있다. 근본 규범은 헌법이 아니라 유효성을 가지고 전제되는 무언가이다. 구속력을 가진 이 무언가는 어디에서 유래하는가? 법이 선형적으로 사유될 때 기원의 결여가 있다. 실증주의의 논리적 형식주의는 선형적 추론이 전제되는 순간 그 정당성을 쉽게 잃는다는 사실에 어려움을 겪는다. 그렇게 함으로써 전제된 근본 규범이 개인이나 물체처럼 세계에서 긍정적으로 발견될 수 없기 때문이다.[27] 슈미트는 그의 저서 『헌법 이론』Constitutional Theory, 1928)에서 켈젠의 근본 규범을 겨냥했고 그것을 동어반복이라고 비난했다.
이와 대조적으로 켈젠에게는 오직 실정적 규범, 다시 말해 실제로 유효한 규범들만이 유효하다. 규범은 그것들이 적절하게 유효해야 하기 때문에 유효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들은 합리성, 정의 등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고, 오직 실정적 규범이기 때문에 유효하다. [칸트의] 정언명법은 여기서 갑자기 끝나고, 규범적 요소는 무너진다. 그 자리에는 순수한 사실성의 동어반복이 나타난다. 무언가가 유효하다면 그리고 유효하기 때문에 유효하다.[28]
<161>슈미트는 『정치 신학』에서 켈젠의 실증주의를 다시 한번 비웃으며, “규범적으로 볼 때, 결정은 무(nothingness)에서 나온다”고 말했다.[29] 슈미트는 켈젠의 근본 규범을 예외를 결정하는 권력으로 대체한다. 이 단 하나의 진술은 주권을 신성한 권력과 동일시함으로써 세속 국가와 종교 사이의 끊어진 연결고리를 갱신한다. 전제되거나 논증될 수 있는 토대가 있다는 가정 대신, 슈미트는 정당성의 궁극적인 원천으로서 예외 또는 비상사태에 대한 결정 권력에 의존한다. 법의 토대를 정의하는 것은 더 이상 사실이나 규칙이 아니라, 생기(vitality)를 위해 모든 규범을 중지시키는 권력이다. 따라서 주권은 결정의 전적인 권력이다. 우리가 지난 장에서 보았듯이, 슈미트는 기계론과 유기체론을 거부하고 생기론을 선호하며, 주권의 면역학 (immunology)을 개시한다. 이 거부는 여기서 실증주의의 기계론적 경향과 유기체론적 기원의 포기로 재현된다. 한편으로 켈젠적 규범주의는 거부되어야 할 기계적 형식주의로 기능한다. 다른 한편으로 근본 규범의 자기-정립(self-position)과 그 생성도 거부되어야 한다. 그것은 “말하기의 환상적인[phantastisch] 방식”이기 때문이다.[30]
§22. 적과 친구의 우발성에 관한 두 번째 해체
『악당들-이성에 관한 두 편의 에세이』에서 자크 데리다는 슈미트의 주권 정의를 따르지만, 슈미트의 정의를 완전히 수용하는 대신, 슈미트의 정의가 자명하다고 지적한다.[31] 데리다에 따르면, 주권은 모든 법을 중지시키는 순간에 무조건적이거나 절대적이다. 법을 금지하는 것이 법에 의해 가능해지므로 이것은 역설적이다. 무조건성과 주권 사이의 이러한 유희는 한계가 항상 무한한 것을, 계산 가능한 것이 계산 불가능한 것을 전제한다는 논리에 기반하며, 그 반대도 마찬가지이다. 계산적 이성은 제한되는 한, 항상 그것을 초과하는 무조건성을 전제한다. 그러나 조건적인 것과 무조건적인 것은 단지 서로의 단순한 부정으로만 파악된다. 주권자는 무조건적이거나 절대적인데, 그것이 법에 의해 부과된 모든 한계를 초과하거나 넘쳐흐르기 때문이다.
계산적 이성(ratio, intellect, understanding)은 자신이 근거하는 계산을 초과하는 경향이 있는 무조건성의 원칙에 스스로를 끌어 매고 복종해야 할 것이다. 이 불가분성, 즉 주권과 무조건성 사이의 이 동맹은 영원히 <162>환원 불가능하게 보인다. 그것의 저항은 절대적이며 어떤 분리도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주권은, 특히 보댕, 루소, 또는 슈미트가 이해하는 현대 정치 형태에서, 정확히 무조건적이고, 절대적이며, 그 결과로 특히 분할 불가능하지 않은가? 예외에 대한 권리를 보유하는 한, 그것은 예외적으로 주권적이지 않은가? 예외를 결정할 권리와 권리와 법[le droit]을 중지시킬 권리는 어떤가?[32]
이것은 우리를 주권을 칸트적 의미의 경계 개념으로 특징지었던 라쉬(Rasch)의 설명으로 되돌린다. 예지계처럼, 주권의 무조건성은 법체계에 한계를 설정한다. 동시에 그것은 법체계를 가능하게 한다. 슈미트에게 주권은 신성한 권력처럼 모든 법을 초월한다는 의미에서 무조건성이다. 신이 섭리를 통해 기적을 행할 수 있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주권은 예외 상태를 결정할 수 있다. 성모 마리아는 그러한 기적의 화신이며, 기적으로서 그녀는 슈미트의 기독교 역사 및 정치 신학 해석의 중심이다. 우리가 주권이 무조건적이라고 주장하더라도, 모든 주권적 사례가 무조건적이라는 결론이 나오지는 않는다. 주권의 무조건성을 긍정함으로써 데리다는 우리를 계산 불가능한 것과 같은 다른 무조건성에 대해 숙고하도록 초대한다. 계산 불가능한 것의 무조건성은 순전한 합리성을 넘어선 사유를 위한 틈을 여는 것이다. 그것은 또한 철학자이자 전 베네치아 시장이었던 마시모 카치아리(Massimo Cacciari)의 의미에서 도달 불가능한 것(Unreachable)이다. 그것은 우리로 하여금 “실천적-경제적 행동에 있어서 쉽게 계산 가능한 공간”[33]을 넘어, 다시 말해 경제 및 군사 경쟁에 기반을 둔 ‘현실 정치’(real politics)를 넘어서도록 강제하는 것이다. 데리다가 지적하는 이성의 무조건성은 다음 장들에서 다시 다룰 것인데, 그것은 다음 조건을 요구한다. “그것은 모든 상대주의, 문화주의, 민족 중심주의, 그리고 특히 민족주의를 넘어서는 보편성을 요구하거나 전제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상대주의들이 이성에게 가하는 모든 현대적 위험을 언급하기 위해 내가 명명하고자 제안하는 비이성-민족주의(irratio-nationalism) 또는 비이성-민족-국가-주의(irratio-nation-state-ism)를 넘어서야 할 것이다. 당신이 원하는 대로 철자를 쓰도록 하라.”[34]
새로운 보편성으로 가는 이 틈은 또한 적과 친구의 이분법을 초과한다. 그것은 데리다가 『우정의 정치학』에서 상세히 설명한 무조건성의 또 다른 형태, 즉 주권 없는 환대(hospitality)의 무조건성으로 나아간다.[35] 이러한 배치와 무조건성과 주권 사이의 상호 작용은 슈미트의 정치적 개념 외부에서 새로운 길을 열어준다. 다시 말해, 데리다는 슈미트를 거부하지 않았다. <163>오히려 「법의 힘」에서 그는 보댕, 홉스, 슈미트가 주장하는 주권자의 무조건성과 현상학적 판단 중지 (epochē)로서 예외의 필연성을 유지한다.[36] 그러나 이것은 슈미트에 대한 데리다의 찬양으로 해석되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그는 또한 주권을 초과하는 무조건성의 다른 형태를 찾으려 하기 때문이다. 무조건적 환대는 “권리와 법을 넘어, 망명권, 이민권, 시민권, 심지어 보편적 환대의 권리에 의해 조건 지어진 환대를 넘어서 타자의 도래에 제한 없이 자신을 드러내는 것”이다. 또한 그것은 “법적, 정치적, 경제적 계산을 초과한다. 그러나 그것 없이는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으며, 아무도 도착하지 않는다.”[37] 그러나 주권이 해체되었을지라도, 그것이 아직 극복된 것은 아니다. 해체는 또한 선형성의 해체이지만, 그것은 아직, 적어도 완전히는, 재귀성이라는 문제를 명확히 설명하지 못한다. 결과적으로, 해체로부터 비롯된 무조건성은 보충물(supplement)의 역사, 즉 기술의 역사에 따라 사유되어야 할 과제로 남아있다. 이것이 스티글러가 데리다를 비판하는 핵심이다.[38]
위의 분석은 주권이 우발적이고 자의적임을 보여준다. 그러나 그것은 법체계의 토대이자 보증으로서 동시에 필연적이다. 주권자나 국가는 어느 순간이든 예외 상태를 선포할 수 있다. 예외가 규범이 되면, 그것은 예외이기를 멈춘다. 달리 말하면, 유일한 예외는 예외의 부재일 것이다. 정치 체제의 불안정성 또는 적의 공격 위협을 고려할 때, 예외 상태는 정당화될 수 있다. 적대(enmity)의 환원 불가능성은 정치적인 것에 관한 슈미트의 존재론적 논증의 기초이며, 주권의 필연성을 정당화한다. 따라서 정치적 생기론은 또한 정치적 면역학을 내포한다. 적대를 무시하는 것은 중립화, 탈정치화이며, 자신을 타자에게 취약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우리는 슈미트가 주권 이해에 있어 헤겔보다 더 나아간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슈미트에게 주권은 서로를 파괴할 수 있는 다양한 여타 주권들과 공존하기 때문이다.
적대 문제는 정치 신학의 중심이며, 우리는 유럽 심리학에서 그것의 지속성을 볼 수 있다. 슈미트는 “유럽은 카테콘(katechon)의 이념을 상실한 채 길을 잃었다”고 썼다.[39] 카테콘은 적그리스도, 즉 적을 전제하기 때문이다. 카테콘은 적그리스도의 도래를 저지하는 것이다. 적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사람들은 전멸의 위험에 노출된다. 이것은 지난 장에서 전개된 생기론적 또는 실존주의적 해석을 조건 짓는 적대의 필연성으로 우리를 되돌린다. <164>로버트 하우즈는 그의 탁월한 논문 「유럽과 신세계 질서」(Europe and New World Order)에서 “슈미트의 문제는 그가 ‘정치적인 것’을 구성하는 종류의 적대를 허용할 세계의 새로운 분할에 대한 믿음과 희망을 고수했던 것”이라고 주장한다.[40] 경제적 제국주의 하에서는 적대 문제가 없다는 것은 아마도 부정확할 것이다. 오히려 적대 문제는 자본, 에너지, 상업 제품의 순환을 위해 훼손된다. 그러나 그러한 제국주의는 또한 적대와 반작용의 조건이기도 하다. 제국주의는 부분적인 것을 보편적인 것으로 바꾸려 하는 국가 형태의 표현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것은 필연적으로 저항과 다원주의에 대한 탄원을 불러일으킨다.[41] 좌파의 많은 이들이 다원주의에 대한 이 주장을 환영할 수 있지만,[42] 슈미트가 제안했던 다원주의가 어떤 종류인지는 검토되어야 할 과제로 남아있다. 그러나 슈미트는 적대를 훼손하는 것의 불가능성을 보여주는 대신, 정치의 절대적 시작, 즉 아르케(archē)로서의 적대로 시작한다.
한 걸음 물러서서, 우리는 적의 본질이 무엇으로 구성되는지 물어야 한다. 법적 용어, 특히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적이 침략자(aggressor)와 동일시되어 왔다. 침략자는 “전쟁을 선포하고, 경계를 무너뜨리며, 특정 절차와 기한 등을 따르지 않는다”[43] 슈미트는 이것이 지나치게 기계적이기 때문에 이 정의에 이의를 제기한다. 친구을 뜻하는 독일어 Freund의 원래 의미는 가족과 같은 혈연관계와 관련이 있었다. 적을 뜻하는 Feind라는 용어는 어원적 의미가 덜 명확하며, 경멸받는 누군가, 불화를 개시하는 사람을 지칭한다. 데리다는 순수한 우정과 적대 같은 것은 없다는 것을 입증함으로써 친구과 적 사이의 대립을 해체했다. 이것은 적대가 실존적 질문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슈미트가 1945년에서 1947년 동안 수감 생활 중에 쓴 「세포의 지혜」(Weisheit der Zellen)에서 다소 흥미로운 언급을 발견한다.
나는 세상에서 누구를 나의 적으로 인정할 수 있는가? 분명히 나에게 질문을 던질 수 있는 그 사람만을 인정할 수 있다. 그를 적으로 인정함으로써 나는 그가 나에게 질문을 던질 수 있음을 인정한다. 그리고 누가 정말로 나에게 질문을 던질 수 있는가? 오직 나 자신뿐이다. 또는 나의 형제다. 타자는 나의 형제로 판명되고, 형제는 나의 적으로 판명된다. (...) 사람들은 자신의 적을 통해 자신을 분류한다. 사람들은 자신이 적대 행위로 인식하는 것을 통해 자신을 평가한다.[44]
적은 ‘나’에게 질문을 던지는 사람이다. 이 적은 나 자신을 의미하거나, 형제인 타자이다. 여기서 ‘나’는 한 사람, 한 개인이다. <165>『파르티잔의 이론』(Theory of the Partisan, 1963)에서 우리는 유사한 진술을 발견한다. “적은 우리 자신이 가진 질문의 형태이다”(Der Feind ist unsere eigene Frage als Gestalt).[45] 적에 대한 정의는 실존적이며 위에서 인용된 침략자의 정의와 근본적으로 다르다. 그러나 이 적은 어느 정도까지 자의적이지 않은가? 적은 침략자일 수도 있고, 나를 깔보는 사람일 수도 있으며, 나의 형제일 수도 있고, 나 자신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누가 적이 아닌가?
적대라는 질문은 두 가지 사례를 개방한다. 하나는 나의 생명을 위협하는 침입자에 대한 면역 저항이며, 다른 하나는 나를 보호하려는 의도에도 불구하고 내부로부터 나를 실제로 파괴하는 자가면역적 사건(autoimmune event)이다. 나에게 질문을 던지는 것이 내 밖에 있는 타자가 아니라 내 안에 있는 타자이기 때문에 자가면역이다. 내 안에 있는 이 타자는 누구인가? 『법철학 강요』의 끝 부분에서 헤겔은 다른 주권 국가를 존중하고 그들의 내정에 간섭하지 말 것을 제안한다. 그러나 이 존중은 상호 인정에 달려 있다. 따라서 역설적으로 그들은 서로의 내정에 무관심할 수 없다.[46] 상호 인정은 다른 국가의 내정에 간섭하는 것을 의미하며, 특정 질서를 부과하는 것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질문을 던지는 것을 포함한다. 데리다가 글로벌 자본주의의 자가면역적 사건[47]이라고 불렀던 9/11 테러 이후, 비상사태는 테러리즘이라고 이름 붙여진 모든 것에 적용 가능하게 되었다. 6장에서 우리는 자가면역 문제가 오늘날 행성 정치의 주요 문제를 어떻게 구성하는지 더 자세히 볼 것이다. 자가면역은 엄밀히 말해 세계화의 증상은 아니다. 세계화는 단지 그것을 더 잘 보이게 할 뿐이다. 자가면역은 정치에 근본적이다. 적이 내 안에 있는 타자이기 때문이다. 세계화는 신체를 확대하고 내 밖에 있는 타자를 내 안에 있는 타자로 통합한다. 오늘날 미국은 중국을 타자로 대할 수 없으며, 중국도 미국을 타자로 대할 수 없다. 면역 체계의 과장은 개별성의 파괴로 이어질 것이다.
이전 섹션에서 끝낸 곳으로 돌아가 보면, 우리는 주권의 발현이 보충물에 의존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도표 (그리기와 스케치)에 의존하는 기하학처럼, 주권은 그 자체와 다른 무언가에 의해 입증된다. 첫째는 영토적 경계에 의해, 둘째는 적을 공격하고 파괴하는 권력에 의해 입증된다. 이러한 의미에서, 주권이 국가의 개별성과 동일시될 때 적대는 필수적이다. 데리다는 “힘 없이는, 가장 강한 자의 힘 없이는 주권이 없으며, 가장 강한 자의 이성 (reason) - 그것이 모든 것을 압도하는[avoir raison de] 이성 - 도 없다”고 말할 때 매우 강력한 발언을 한 것이다.[48] <166>이 번역은 데리다의 의미를 완전히 반영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avoir raison은 또한 무언가에 대해 옳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독일어에서도 유사하게 옳다 는 것은 문자 그대로 권리를 갖다(Recht haben)이다. Recht와 raison은 옳거나 정확하다는 주장 속에서 식별될 수 있다. 더욱이 이성을 갖는다는 것은 또한 무언가에 대한 권리를 갖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어떻게 힘의 행위 없이 무언가에 대해 옳고, 무언가에 대한 권리를 가질 수 있겠는가? 정말로, 이 힘, 즉 삶과 죽음에 관한 또는 그 이상을 지배하는 이 힘은 정확히 무엇인가?
계속하기 전에, 우리는 위 논의들을 세 가지 핵심 주제로 요약하고자 한다.
1. 경계 개념으로서의 주권은 제한하는 동시에 제한되는 것을 가능하게 한다. 예외를 결정하는 자로서의 주권자는 내재적인 생명력(vital force)에 의존함으로써 법의 근거에 관한 형이상학적 문제를 해결한다. 그러나 주권은 경계 개념인 한 입증 불가능하다. 기하학적 이념들과 마찬가지로, 입증할 수 없지만, 사유의 외화를 통해 감각적으로 만들 수 있다. 이 외화된 것은 (관념화와 대조적으로) 이념화 과정에 필수적인 보충물이다.
2. 예외를 결정하는 힘으로 파악되는 주권은 우발적이다. 그것은 본질적으로 우발적임에도 불구하고, 친구와 적을 선택함으로써 필연적이 된다. 이 필연성은 자신의 절멸에 대한 절대적인 두려움에 의해 조건 지워지며, 이 두려움이 없으면 주권은 아무것도 아니다. 주권자는 정치화(politicization), 즉 친구와 적을 식별함으로써 중립화에 저항한다. 주권의 이러한 생기적 측면은 끊임없이 적을 식별하도록 스스로를 강제한다.
3. 슈미트의 적 개념은 이해되어 온 것보다 더 미묘하다. 적은 실존적이며 심리적인 위기의 결과이다. 행성적 조건은 적 개념의 문제성을 명시적으로 만든다. 내 안의 타자로서 적은 개별 국가의 자아에서 행성적 자아(planetary self)로 전환된다. 전 지구적 대결은 점점 더 자가면역적 공격(autoimmune attacks)이 되고 있다.
생명력으로서의 주권은 그 자체로 존재하지 않는다. 법은 그 기록된 형태로 주권을 가시적으로 만들지만, 주권을 강력하게 만드는 것은 기술(technology)이다. 진정한 기독교적 에피메테우스, 현대의 아벨인 슈미트는 결핍을 필연적인 것으로 전환함으로써 주권 개념을 명시적으로 만들었다[49]. <167>결국, 슈미트의 주권에 대한 설명은 데리다가 주장하는 것처럼 정말로 ‘자명한 것’은 아니다. 주권이라는 용어가 장 보댕 이후에야 인기를 얻었음에도 불구하고, 노모스의 발전 과정에서 이미 전제되고 있었다. 모든 정치 형태의 기저에 있는 노모스는 역사, 국가, 사람들에 종속될 뿐만 아니라, 역사주의자들이 믿는 것처럼 더 근본적으로는 기술적 조건에 종속된다. 그러므로 슈미트의 프로젝트는 타자와 함께 생각함으로써 주권을 이해하고, 유럽을 기술의 역사에 배치함으로써 법의 역사를 구상하는 것이다. 우리는 슈미트의 사상을 기술과 자유주의를 동일시하는 것으로 보는 무비판적 공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대신 우리는 기술이 슈미트 사상의 근본이며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 그리고 우리가 어디로 갈 수 있고 가야 하는지를 이해하는 데 필수적임을 보이려고 시도할 것이다.
§23. 주권과 공간의 요소적 철학
아마도 우리는 주권이 기술적 존재 양식으로 가시화되는 대지의 노모스가 가진 역사와 동일하다고 말할 수 있으며, 이는 정확히 우리가 입증하려고 시도하는 바이다. 슈미트의 『대지의 노모스』는 유럽 중심적인 대지의 노모스, 그리고 대지의 행성화(planetary becoming)와 당시 두 세계 강대국(미국과 소련)의 적대적 대결을 고려할 때 대지적 노모스의 가능한 새로운 구성이 어떻게 등장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역사적 설명이었다. 슈미트는 지정학 교과서와는 다소 다른 유형론을 사용하여 공간을 이해했다. 국가 영토, 식민지, 종속국, 보호국과 같은 기능적 공간으로 땅을 나누는 대신, 슈미트는 공간적 질서(spatial order)로서의 주권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발전시키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50] 공간을 분석하는 이 특정 방식은 슈미트가 주권의 발생론적(genetic) 개념을 공식화하도록 허용한다. 대지, 즉 토양은 처음에 분할의 대상이었다. 슈미트에게 노모스는 취하는 것(nehmen)뿐만 아니라 공간을 분할하거나 분배하는 것(teilen)도 의미한다. 인간은 땅의 동물이므로, 노모스의 주요 함의는 땅의 측정과 분할, 그리고 땅들 사이의 전쟁이다. 정치와 그 법률 시스템은 토지 분할에 기반을 두고 있다. 토양 분할 문제는 즉시 할당과 소유, 그리고 나중에 주권이라고 불리는 문제를 함축한다.[51] 노모스는 질서(Ordnung)인 동시에 장소 또는 방향(Ortung)이다.[52] 공간은 세계 속에 위치한다. 다시 말해, 공간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세계이다. 세계가 없다면 공간은 단순히 기하학적 차원에 불과할 것이다. <168>공간에 대한 슈미트의 해석은 대체로 하이데거적 의미를 띠고 있다. 실제로 그는 『땅과 바다』(Land and Sea)에서 어떤 ‘독일 철학자’에 대해 모호하게 언급한다.
오늘날 우리는 공간을 더 이상 깊이의 단순한 차원, 상상할 수 있는 모든 내용이 비어 있는 것으로 이해하지 않는다. 우리에게 공간은 인간적 에너지, 활동, 성취가 속한 힘의 장이 되었다. 오늘날, 다른 어떤 시대에서도 불가능했을 생각이 우리에게 처음으로 가능해졌고, 한 동시대 독일 철학자가 다음과 같이 명확히 표현했다. 세계가 공간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공간이 세계 안에 있다.
공간은 세계에 속하며, 세계는 영적 민족(spiritual Volk)의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아니다. 방향이 변할 때, 질서도 변해야 할 것이다. 방향의 변화는 새로운 공간의 발견 때문일 뿐만 아니라, 새로운 방향을 따르는 사람들의 생기 에너지의 변화 때문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아메리카 대륙의 발견과 달 착륙은 각각 유럽과 전 세계의 공간 의식을 갱신했으며, 따라서 이 새로운 구성을 적절히 다룰 수 있는 질서가 등장했다. 유럽의 방향에서 비롯된 유럽 중심적 노모스는 슈미트 시대의 행성적 조건 하에서 질서로서 그 한계에 직면한다. 슈미트가 여러 곳에서 옹호한 바, 이 유럽 중심적 노모스는 일방적이거나 패권적인 것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이질적이다. “『유럽 국제 공법』에는 또한 세계의 통일성이 있었다. 그것은 유럽 중심적이었지만, 단일한 세계 지배자의 중앙 권력이 아니었다. 그 구조는 다원적이었고, 서로를 범죄자가 아닌 자율적 질서의 담당자로 여길 수 있는 여러 정치적 거인들의 공존을 허용했다[54].”
유럽 중심적 대지의 노모스는 서로 다른 주권 국가들 간의 공존을 허용하는데, 이는 국가 내부와 외부 사이의 엄격한 분리를 유지한다는 의미이다. 즉 각 국가는 자율적이며 다른 주권 국가의 내정에 개입하지 않으며, 이는 또한 주권에 대한 현대적 이해이기도 하고, 국가의 능동성(agency), 즉 내부 및 외부 정치의 기본 단위로서의 국가를 긍정하기 때문에 유럽 중심적이다. 이 정치 개념은 비유럽 지역에는 이질적이다. “16세기 이래 유럽 국제 공법은 원래 그리고 본질적으로 국가들, 유럽 주권자들 간의 법이었다. 이 유럽의 핵심이 대지의 나머지 지역의 노모스를 결정했다. ‘국가성’(Statehood)은 모든 시대와 모든 민족에 유효한 보편적 개념이 아니다.”[55] 여기서 슈미트는 또한 헤겔의 국가를 “객관적 이성과 도덕의 영역”으로 긍정하며, “헤겔의 고상한 형이상학적 공식화는 국가가 이 시대의 공간적으로 구체적이고 역사적이며 조직적인 형태였음을 의미하며, 이는 적어도 유럽 토양에서는 능동적 행위자(agency)가 되었다”고 한다.[56] 그러나 주권 국가의 이러한 모나드론은 아름다운 허구로 남아 있다. 헤겔이 여기서 말하는 바를 이해한다면 국가는 모나드가 아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적을 겨냥하고 쏠 수 있는 창문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대신, 국가들 간에는 상호 인정에 대한 요구도 있으며, 이러한 상호 인정은 자동적으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권력 투쟁과 전쟁의 결과이다. 우리는 슈미트의 유럽 시스템에 대한 옹호가 위선적임을 보이려는 의도는 없지만, 이 점에 대해 그에게 질문해야 할 것은 분명하다. 오히려 우리는 이질성의 문제가 오늘날에도 우리를 괴롭히고 있음을 지적하고자 한다. 기술 발전은 정치 권력의 차이를 의미하며, 이질성은 주권 국가들의 기술적 차이 사이의 끊임없는 협상의 결과이다. 우리가 시도해 온 것은 주권 개념이 그 기원 이래로 어떻게 기술적(technological)이었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이는 우리가 제1장에서 헤겔을 통해 주권 국가가 기술적 현상임을 입증하려고 시도한 방식과 같다. 헤겔에게서 정치적 국가의 정당화를 찾는다면, 전후 슈미트에게서는 거대공간(Großraum)의 정당화 시도를 찾는다. 슈미트에 따르면, 거대공간은 세기 전환기에 에너지 및 전기 공급이 소규모공간(Kleinräume)을 거대공간경제(Großraumwirtschaft)로 통합했을 때 ‘기술-산업-경제-조직 영역[Bereich]’에서 기원한 용어이다.[57] 이러한 관점에서 우리는 슈미트의 국가 철학이 기술 철학이기도 하다고 말할 수 있다. 슈미트는 거대공간 개념을 ‘기술-산업-경제적’인 것으로 축소하는 것을 꺼렸는데, 이는 그가 이 개념이 국제법에 미치는 중요성에 더 관심을 가졌기 때문이다.[58] 그는 이 점이 확장되는 것을 허용하는 데 너무 신중했다. 따라서 그는 또한 그것을 놓쳤으며, 결과적으로 그의 기술 해석은 불완전하다.
슈미트에 따르면, 땅에 기반한 공간 질서는 약 600년 전 바다가 국제법의 주제에 추가되었을 때 급진적으로 변했다. 그리스가 여러 섬들로 이루어져 있고 에게해와 지중해로 둘러싸여 있기 때문에 이는 터무니없게 보일 수 있지만, 이에 대해 슈미트는 그리스인들에게 “바다는 단어의 원래 의미에서 특성이 없었다. 이 단어는 그리스어 카라세인(charassein)에서 유래하며, 새기다, 긁다, 날인하다를 의미한다”[59]고 답한다.
<170>따라서 해양 질서 대신 영토 질서가 그들의 일반적인 공간 질서 이해의 중심이었다. 방향은 질서를 암시한다. 땅과 바다는 두 가지 다른 국제법을 요구한다. 이 영역 구분은 슈미트에게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바다는 또한 지구를 구체(globe)로 발견하는 방법이며, 육지에서만 유효했던 유럽 국제법의 한계를 드러내기 때문이다. 한 요소에서 다른 요소로의 지배권 이동은 공간 혁명(spatial revolution)을 나타내며, 이는 공간 의식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킨다. “새로운 땅과 바다가 역사적 힘의 새로운 추진력, 새로운 에너지의 분출에 의해 인간의 집단 의식의 시야에 들어올 때마다, 역사적 존재의 공간도 변한다. 그러면 정치-역사적 활동의 새로운 측정과 방향, 새로운 과학, 새로운 질서, 새롭거나 재탄생한 사람들을 위한 새로운 삶이 나타난다. 그 확장은 너무 깊고 놀라워서 양과 측정뿐만 아니라 가장 바깥쪽 인간 지평선과 함꼐 공간 개념 자체의 구조까지도 바뀐다. 그러면 공간 혁명에 대해 말할 수 있다.”[60] 에른스트 캅(Ernst Kapp)의 지리학적 사고는 슈미트의 국제 질서의 요소 철학(elementary philosophy)에 영향을 미쳤다. 캅은 물의 요소를 따라 제국의 진화를 읽을 것을 제안했다. 우리가 이미 보았듯이, 캅은 특히 기관 투사(organ projection)의 관점에서 문명의 역사를 읽은 헤겔주의자였다. 캅에 따르면, 중동의 초기 포타미아(Potamian) 문화 또는 강 문화(티그리스, 유프라테스, 나일) 다음에는 탈라식 시대(thalassic age)(폐쇄된 바다와 지중해 분지)가 이어졌다. 이들은 차례로 그가 ‘해양 문명’(oceanic civilizations)이라고 부르는 것으로 이어졌다 [61]. 물은 문명의 역사를 재구성할 수 있는 렌즈 역할을 했다. 슈미트는 이 전략을 채택하여 바다 요소를 땅과 공기의 중간 항으로 만들었다. 동시에 슈미트는 캅의 처음 두 단계를 비틀었는데, 탈라식 문화(thalassic culture)가 물과 밀접하게 접촉했음에도 불구하고 해안이라는 개념으로 정의된다는 점을 강조했다. 슈미트는 베네치아의 예를 들었다. 베네치아는 중세 탈라식 문화였지만, “베네치아 생활의 모든 의례적, 상징적 행위는 해양적 존재라기보다는 해안과 야영지의 문화를 지향한다”고 말했다.[62] 땅, 바다, 공기라는 요소들은 슈미트가 『땅과 바다』를 쓴 후 체계화하고자 했던 행성적 정치(planetary politics)의 기초를 구성한다.[63] 17세기 말 이래로, 해상 항해를 주도하는 자가 세계를 지배했다. 그리고 목자들의 나라에서 선원들의 나라로 변모한 영국이 바다에서 지배적인 세력이 되었다. 과학 혁명은 유럽 대륙과 영국 제도 모두에서 일어났지만, 산업 혁명은 영국에서 처음 일어났다. 슈미트는 해상 항해가 기술 및 과학 발전과 불가분의 관계가 있으며 이를 촉진했다고 주장했다. 해양 세력의 부상과 라야스(rayas, 스페인-포르투갈 국경선) 및 우정선(amity lines, 프랑스-영국 국경선)과 같이 해상 전쟁과 해적 행위를 규제하는 국제법은 대지의 노모스를 재구성했다. “그러나 리바이어던(leviathan)의 성격에 영향을 미친 변화는 산업 혁명의 결과였다. 그것은 18세기 영국에서 시작되었다. 1735년 최초의 용광로, 1740년 주철, 1768년 증기 기관, 1770년 방적기, 1786년 기계 직조기가 모두 영국에서 빛을 보았다.”[64]
<171>해양 괴물의 부활은 영국에서 처음 빛을 보았고 이로써 영국은 대륙 유럽 국가들의 육상 권력에 맞서 해양 권력을 발전시킬 수 있었다. 이것은 육지에 기반한 첫 번째 공간 질서의 종말을 이어받아 공간 질서를 재확립하는 두 번째 이정표였다. 노모스(점유와 분할)로서의 기술은 합법성에 선행하는 정당성[65]에 해당하는데, 이는 합리성이 과학 및 기술과 강력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의미이다. 그것은 교회와의 충돌에서 합법성을 위반하지만 정당성을 구현하기 때문에 합법성을 초월하기도 한다. “대지의 두 번째 노모스는 이러한 땅과 바다의 발견에서 생겨났다. 그 발견은 초대받지 않았다. 그것들은 발견된 사람들이 발행한 비자 없이 이루어졌다.”[66] 대지의 두 번째 노모스는 유럽 중심적으로 남아 있는데 이는 권력의 형태와 공간 분할의 법이 유럽에서 비롯되어 기독교 공화국(res publica Christiana)의 연속성을 유지하기 때문이다.[67] 무엇보다도, 그것은 유럽적 가치의 보편화에 기반한 보편성이라는 이름으로 일방적이며 이는 유럽 세력이 원주민이 거주하는 ‘자유로운 토양’(free soil)을 점유하도록 허용했다. 식민지 개척자들은 비자를 신청할 필요가 없었다. 대신, 그들의 정당성은 종교와 미학에서 직접적으로 파생된 것이 아니라, 그들의 기술적 힘에서 파생되었다. 이 대지의 두 번째 노모스는 또한 유럽의 대지 노모스가 바다 노모스로 확장된 것이며 이는 더 최근에 발견된 땅을 그 법적 시스템에 통합했다. “유럽 중심적 대지의 노모스는 제1차 세계 대전(1914-18)까지 지속되었다. 그것은 이중 균형에 기반을 두었는데, 첫째는 땅과 바다의 균형이었다. 영국만이 바다를 지배했으며 해양 권력의 균형을 허용하지 않았다. 대조적으로 유럽 대륙에는 땅 권력의 어떤 균형이 존재했다.”[68]
유럽 중심적 노모스의 붕괴는 대체로 유럽 국제 공법이 행성 질서의 균형을 유지하는 데 실패했기 때문이다. 20세기 전환기에 다소 역설적인 상황이 발생했다. 한편으로, 주권 국가, 더 정확히는 민족-국가가 유럽을 넘어선 근본적인 정치 개념이 되었고(비록 슈미트는 유럽 국제 공법의 실패를 한탄했지만) 다른 한편으로 미국과 소련의 부상과 그들의 국제 정치는 유럽 제국을 공간 분할의 보증인으로 대체했다. 영국 제국의 해양 권력은 미국의 해병대 권력에 자리를 내주었고, 대륙 유럽 국가들의 육상 권력은 소련 탱크 군대에 자리를 내주었다. 이 대립적 이중성은 역사가 특정 합리적 통일로 진보하도록 허용하는 지양을 요구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통일성 속에 숨겨진 것은 보편주의로 가장한 제국주의이다. 슈미트의 시각에서는 미국의 새로움을 파괴한 20세기 미국 외교 정책에서 그러한 제국주의를 찾을 수 있다.
서에서 동으로의 이러한 세계사적 전환만큼이나 심오했던 사실은 신세계에 대한 오랜 믿음이 내부로부터 - 미국의 내부 발전으로부터 - 변했다는 것이다. 미국이 제국주의 외교 정책에 착수했을 때 국내 상황이 변했고 그 새로움의 시대는 끝났다. 서반구의 신규성이라고 부를 수 있는 모든 것의 전제와 기초는 이념적으로나 현실적으로나 사라졌다.[69]
슈미트는 시어도어 루즈벨트(Theodore Roosevelt)와 우드로 윌슨(Woodrow Wilson)이 먼로 독트린(Monroe Doctrine, 1823)을 제국주의와 보편주의의 도구로 재구성(Umdeutung)한 것을 언급했다.[70] 먼로 독트린은 미주 국가들의 독립을 긍정하고, 외국의 식민지화와 미국 내정에 대한 개입(특히 러시아와 신성 동맹)을 거부하며, 그 반대도 마찬가지이다. 슈미트에게 먼로 독트린은 “군주적-기독교적-왕조적” 정당성 원칙에 대한 대항 독트린으로 존재한다.[71] 윌슨은 먼로 독트린을 “초국가적 및 초민족적 세계 이데올로기”(überstaatliche und übervölkische Welt ideologie)로 대체했다.[72] 제국주의는 전 지구적 보편주의(global universalism)를 동반하며 이는 공간의 복잡성을 약화시키거나 더 정확히 말하면, 공간에 대한 지배가 공간적 경직성을 극복하는 마찰 없는 자본 이동을 보장함으로써 모든 이질성을 제거한다. 슈미트는 루즈벨트가 유럽의 극동 식민지화를 피하기 위해 일본에게 소위 아시아 먼로 독트린(Asian Monroe Doctrine)을 구축하도록 제안한 것을, 특히 중국에서 앵글로색슨 자본의 경제 발전을 돕기 위한 구실로 보았다. 이는 중국을 식민지로 만드는 행위였다.[73] 슈미트가 전 지구적 보편주의 또는 헤게모니적 자유주의라고 부르는 것은 오늘날 우리가 세계화라고 알고 있는 것일 수 있다. 세계화는 자유로운 순환과 교환의 통로를 확립함으로써 모든 경계를 넘어섰다. 그러나 유럽 식민주의가 제국주의가 아니었던 것처럼, 미국만을 제국주의와 연관시키는 것은 어렵다. 계몽주의 이래로 유럽 제국주의는 이미 그 기술 발전을 통해 작동하고 있었다. 계몽주의의 보편주의는 또한 공간의 동질화였는데, 이는 다양성의 가능성으로서 동질성을 강요하거나, 차이가 동일한 것에 기반한다는 의미에서 유사 다원주의(pseudo-pluralism)의 기초로서 일원론을 강요했다. 19세기에 영국 해양 권력은 자유 세계 무역과 자유 세계 시장의 이 매끄러운 평면을 보장하는 역할을 했으며, 슈미트는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공간 감각이 결여된 전 지구적 보편주의라는 지배적인 개념은 분명히 국가와 구별되는 경제의 현실, 즉 돈, 자본, 노동의 자유로운 이동을 가진 자유 세계 무역과 자유 세계 시장의 경제를 표현했다. (...) 그러한 세계관에 대한 강력한 보증은 영국의 지배적인 위치와 전 지구적 자유 무역 및 해양의 자유에 대한 영국의 관심에 있었다.[74]
오늘날 우리는 걸프전부터 이라크 전쟁, 그리고 현재 인도-태평양 해양 개입에 이르기까지 미국의 해양 권력을 통해 이러한 질서의 지속을 본다.[75] 「대지의 새로운 노모스」(The New Nomos of the Earth)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슈미트는 세 가지 세계 정치 시나리오 중 하나로 미국의 힘이 세계 질서의 보증인으로서 영국의 권력을 대체할 것이라고 보았다. 이것이 바로 20세기 세계화 동안 일어난 일이다. 오늘날 공간은 국내적으로나 세계적으로나 잘 발달된 물류 시스템 덕분에 덜 중요해졌다. 그러나 전 지구적 팬데믹(global pandemic)이 닥치고 나서야 우리는 전 지구적 물류가 당연하게 여겨질 수 없으며, 오히려 취약하다는 것을 이해하기 시작했다.[342] 항구 하나가 한 요소의 공급을 지연시켜 전 세계적으로 많은 제품의 부족을 초래할 수 있다. <174>동시에 우리는 또한 세계 일부 지역에서 국내 물류의 급속한 성장을 관찰한다. 예를 들어, 중국에서는 신선한 리치(lychee)가 하루 안에 남부 지역에서 북부 지역으로 운송될 수 있다. 우리가 세계화, 또는 더 정확히는 세계화의 현재 단계가 적대적인 국가들 간의 긴장 증가로 인해 끝났다고 주장할 수도 있지만 요소적 권력의 숙달 또한 빠르게 확장되어 왔으며, 이는 행성화의 다른 단계를 구상할 수 있는 수단을 제공할 수 있다. 헤겔주의적 용어로 말하자면, 우리는 세계화가 추상적 보편으로 남아 있으며, 지난 세기에 드러난 모순이 우리가 구체적 보편을 위해 준비토록 한다고 주장할 수 있다.
§24. 포스트-국가적 정치 형태로서의 거대공간과 다원주의의 문제
우리는 슈미트에게 동서양의 분열이 문화라기보다는 기술의 문제라고 결론 내릴 수 있다. 「세계의 통일」(Die Einheit der Welt, 1952)에서 슈미트는 다원주의를 옹호하며 세계 통일에 찬성하는 정치적 경향에 의문을 제기했다. 동서양 간의 정치적 갈등이 세계 통일의 주요 원인이다. 이는 미국 제국주의에 의한 현재 질서의 보존과 우리가 나중에 논의할 거대공간 건설과는 대조적으로 「대지의 새로운 노모스」의 세 가지 시나리오 중 하나를 구성한다. 둘째, 세계의 통일성은 또한 기술 발전, 특히 전기 및 통신 네트워크에 의해 야기된다. 그러나 이 형태의 통일성은 추상적이고 동질적으로 남아 있다. 슈미트는 산업 자본주의와 레닌의 공산주의가 모두 전기화된 대지(electrified earth)를 건설하려고 했다는 사실을 조롱했다.[76] 공산주의 국가들은 아이러니하게도 자본주의 서방과 동일한 목표를 가졌던 것처럼 보인다. “특히 동양은 서방 지식인들의 산물인 원자 폭탄과 다른 산물들을 손에 넣은 것과 같은 방식으로 헤겔의 역사 철학을 손에 넣어 그 계획에 따라 세계의 통일성을 실현하려고 했다.”[77]
세계사는 헤겔이 예측한 방향으로 움직이는 것처럼 보인다. 세계 정신으로 가장한 기술적 합리성은 행성적 도식 내의 어떤 국가도 벗어날 수 없는 세계사의 추진력이다. 슈미트는 이미 동양이 헤겔의 역사 철학과 서방 지식인들을 취하여 그들 자신의 세계 계획을 개발하는 것을 보았다. 오늘날 미국과 중국 간의 경쟁을 볼 때, 슈미트가 이미 그것을 예상했다는 것은, 비록 그가 저술에서는 중국보다는 소련을 더 언급하고 있었지만 놀라운 일이 아니다. <175>현재 적어도 중국이나 러시아와 서방 세계 간의 경쟁은 서방 기술을 기반으로 하고 있지만 그것이 헤겔의 절대자를 향해 움직이고 있는지는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이다. 중국의 주권적 권력을 약화시키기 위한 미국의 가장 효과적인 전략은 대만 방어가 아니라 국가 안보상의 이유로 중국의 특정 기술 접근을 차단하는 것이다. 기술의 관점에서 본 동서양 간의 적대감은 동질화의 한 형태일 뿐이다.
슈미트가 읽고 맹렬히 비판했던 아놀드 토인비(Arnold Toynbee)의 <리이스 강연>(Reith Lecture)에서 역사가는 기술이 동서양의 새로운 세계 질서의 핵심이라고 지적했다. 우리는 토인비가 그의 리이스 강연에서 왜 16세기에 극동인들이 유럽 방문자들과의 첫 접촉 후에 문을 닫았지만 19세기에는 그들에게 문을 열었는지 질문했던 것을 상기한다. 토인비는 16세기와 17세기에 유럽인들이 종교와 기술을 극동에 수출하기를 원했다고 설명한다. 따라서 유럽인들이 그들의 신념과 생활 방식을 바꾸려 한다는 것을 즉시 인식한 극동인들은 방문자들을 그들의 땅 밖으로 내쫓았다. 17세기 말에 유럽에서 중요한 사건이 일어났다. 토인비에 따르면 기술이 종교에서 분리된 것이다. 19세기에 유럽인들은 종교 대신 기술만을 극동에 수출할 터였다. 결과적으로 극동인들은 기술이 도구적이며 그들 자신의 사상으로 기술을 숙달할 수 있다고 믿었다. 중국에서는 “중국 사상은 정신으로, 서양 기술은 도구로”라는 슬로건을, 일본에서는 “일본의 혼과 서양의 도구”를, 그리고 한국에서는 “동양의 도와 서양의 기(Qi, utensil)”를 발견한다. 토인비의 강연을 언급하며 슈미트는 주장한다. “그러나 오늘날 동양의 공산주의 혁명은 동양이 기독교적 종교성에서 분리된 유럽 기술을 점유하는 것으로 구성된다.”[78] 비록 슈미트가 나중에 17세기 말에 일어난 일이 기술이 종교에서 분리된 것이 아니라 해양 권력과 육상 권력 사이의 반대와 균형을 만든 영국 제도가 유럽 대륙에서 분리된 것이라고 덧붙였지만.[79] 슈미트는 기술의 중심성을 부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그것을 인정한다. 그러나 그는 기술이 동양에서 어떻게 인식되었는지를 이해하는 데 실패한다. 왜냐하면 토인비가 틀리지 않았고 <176>중국, 일본, 한국에서 언급된 슬로건들이 증명하듯이 기술은 종교와 분리된 것으로 간주되며 그 합리성과 보편성 덕분에 가장 세속적인 지식 중 하나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더욱이 여기서 레닌의 전기화된 대지는 공산주의의 꿈뿐만 아니라, 차례로 세계화의 질서를 정의하는 기술의 동질화 경향을 나타낸다. 인간은 주요하게도 기술적 존재이다. 따라서 기술은 인류 진화의 근본이다. 진화 과정은 처음에 발산(divergence)으로 나타났고, 그 후 전투와 정복은 공간과 시간의 다양한 정도의 수렴(convergence)을 가져왔다. 공간의 정복은 또한 운송 네트워크에서 통신 네트워크에 이르는 기술적 수단에 의해 규제되는 공간 질서의 재편성이며, 이는 차례로 시간 동기화의 매체가 된다. 현재의 산업화된 세계는 생 시몽이 꿈꿨던 유토피아가 아니었다. 생산성 증대와 운송 네트워크의 발전은 상품과 부의 더 균등한 분배나 사회주의의 실현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대신 공간 질서는 매끄러운 평면(smooth planes)으로 통합되었으며, 이는 자본주의의 이윤 창출을 위한 모든 형태의 에너지(화석 연료, 리비도적, 성적 등)의 순환을 촉진했을 뿐이다. 경계와 외세 개입에 대한 반대로 정의된 주권은 점차 산업 세계와 자본주의 시장이 개발한 새로운 프로토콜에 자리를 내주었다. 따라서 우리는 민족-국가-자본 삼위일체(nation-state-capital trinity)를 발견한다.
슈미트는 인터넷 시대에 살지 않았으며 베를린 장벽 붕괴 이후 세계 통일이 사실상 어떻게 실현되었는지 관찰할 기회도 없었다.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코제브의 “보편적 동질 국가”와 자유 시장을 기리는 『역사의 종말과 최후의 인간』(The End of History and the Last Man)을 쓸 수 있었다 [80]. 디지털화된 세계는 전기화된 세계를 대체하고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현실이 되었다. 그러나 우리가 알듯이, 디지털화는 전지구적 통일을 가져오지 않는다. ‘자유 시장’과 마찬가지로, 그것은 서로 다른 상업적 이해관계와 이데올로기적 조작에 따라 파편화되어 있다. 오늘날 국가들은 구글, 아마존, 페이스북과 같은 플랫폼의 행성화에 저항할 필요성을 점점 더 인식하고 있으며, 이는 사생활 침해 및 독점에 대한 표준적인 법원 절차부터 시장 및 사용자로부터의 차단과 같은 극단적인 조치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기술의 동질화는 또한 기술 접근이라는 새로운 형태의 보편성을 정의한다. 제3장에서 논의된 테야르 드 샤르댕이나 트랜스휴머니스트들과 달리, 슈미트는 전기화된 대지에 매료되지 않았으며 오늘날 살아 있다면 디지털 대지가 그를 흡수하지도 않을 터이다. <177>슈미트에게 그러한 통일성은 해결책이라기보다는 문제이다. 전기화된 대지나 디지털 대지는 신자유주의 경제의 헤게모니를 유지하는 데 사용될 수 있지만, 반드시 다원주의를 가능하게 하지는 않는다.
데리다의 독해에서, 슈미트의 주권 재정의를 통한 다원주의 회복 시도는 약리학적인 것이 된다. 플라톤의 약국(Plato’s pharmacy) 또는 파르마콘(pharmakon)에 대한 데리다의 이론에 익숙한 독자들에게는 글쓰기 - 또는 일반적인 기술(technology) - 는 좋지도 나쁘지도 않지만 동시에 치료제이자 독이다. 글쓰기는 인간이 모든 것을 기억하도록 허용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또한 그들이 잊게 만드는 것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그들의 기억이 이제 기술 속에서 그리고 기술을 통해 외재화되었기 때문에 더 이상 기억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주권의 약리학은 두 가지 방식으로 해석될 수 있다. 첫째, 민족-국가-주권(nation-state-sovereignty)은 한편으로는 절대 권력, 즉 국제법을 포함한 모든 법의 정지를 초래할 수 있다. 주권자는 국가를 불량 국가(rogue state)로 만들 수 있게 하는 존재이다. 다른 한편으로, 주권자는 또한 특정 상황에서 특정 일방적인 “보편적” 세력에 저항하는 존재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주권자는 “자유주의나 보편주의의 가면 아래 시장에 불과한 세계에서 여전히 특정 이익에 봉사하는 합리화를 대표할 수 있는 특정 국제 세력, 특정 이념적, 종교적, 또는 자본주의적, 심지어 언어적 헤게모니에 대한 필수적인 방어벽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81] 미국 정부가 명명한 ‘불량 국가’들이 미국 제국주의에 대한 저항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기술의 실현을 통한 동서양의 통일과 슈미트의 시각에서 주권의 억압은 제국주의적 보편주의의 승리에 불과하다. 슈미트에게 진정한 통일성은 정신(spirit)의 형태로 존재하지만 전기화된 대지와 같은 물질적 형태로는 반드시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다시 말해 기술은 맹목적인 힘이 되지 않도록 방향을 요구한다. 슈미트는 헤겔에게서도 세계 정신의 통일성을 찾을 수 있다고 주장하며 물질적 통일성과 정신적 통일성을 구별했는데, 이는 우리가 제1장에서 이미 탐구한 생각이다. 슈미트는 헤겔이 물질적 통일을 의미하지 않았음을 인정했다. 다시 말해 물질적 통일이 헤겔적 의미에서 정신적 통일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이제 이 헤겔 철학은 겉으로는 관념론적(idealistic)이다. 그것은 인류의 목표를 전기화된 대지의 물질적 통일이 아니라, 스스로 회귀하는 정신과 절대 이념의 통일성에서 본다.”[82]
헤겔이 정신적인 것을 물질적인 것과 분리했다고 주장하는 것은 분명히 너무 논쟁적이지만 헤겔의 통일성 개념과 전기화된 대지 사이에 관계가 없다고 주장하는 것도 그만큼 논쟁적이다. <178>우리가 보여주려고 노력했듯이 정신은 순전히 마음속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정신은 외화(소외, alienation)이자 동시에 내화(기억, recollection)이다. 그것은 “스스로 회귀하는 정신”을 정의하는 외화와 내화의 재귀적 과정이다. 헤겔이 『법철학 강요』의 끝 부분에서 민족-국가에 기반한 세계 질서에 대해 우유부단했던 것은 코제브와 후쿠야마가 그를 따라 주장하듯이 헤겔이 이미 역사의 종말을 보았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동서양의 통일은 아직 일어나지 않았지만 아마도 또 다른 세계 대전이 발발할 때 실현될 터이다. 그러한 전쟁은 우리가 가장 바라지 않아야 할 것이기도 하다. 슈미트는 통일에 찬성하지 않는다. 그는 「세계의 통일성」에서 ‘통일성’이 왜 반드시 좋은 것인지 질문했듯이,[83] 그것이 제국주의의 이데올로기로 가득 차 있다고 비난했다. 슈미트가 옹호하는 것은 다원주의이다. 이 다원주의는 그가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이미 실패했다고 보았던 개별 민족-국가에 더 이상 국한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은 그가 거대공간(Großraum)이라고 부르는 것에서 새로운 정치적 형태를 찾는다. 이러한 의미에서 우리는 기술적 전략이 거대공간을 뒷받침하며, 그 연합은 기술에 달려 있음을 이해할 수 있다. 즉 “새로운 기술을 숙달할 만큼 강력한 정치 유형과 이 새로운 땅[Boden]에서 발전할 수 있는 진정한 친구-적 집단화 유형이 무엇인지”에 달려 있다.[84]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폭격 이후, 전후 집단화를 만든 것은 원자 폭탄이었다. 오늘날 이 시나리오는 인공 지능을 중심으로 하는 집단화로 가장 잘 설명된다.
이것은 슈미트가 “대지의 새로운 노모스”에서 설명한 세 가지 시나리오 중 마지막 시나리오이다. 즉, 먼로 독트린을 한 국가에서 국가들의 집합체로 확장하는, 서로 다른 영토들이 행정 단위의 클러스터(clusters of administrative units)를 형성하는 연합 또는 집단화이다. 새로운 행성적 조건으로 인해 주권 국가의 쇠퇴는 불가피하게 되었으며 슈미트에 따르면 한편으로 미국 제국주의는 먼로 독트린을 포기하고 끊임없이 자본을 위한 새로운 시장을 열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 동양은 기술적 가속으로 인해 동일한 게임 논리 내에서 새로운 계획을 부과하고 있다. 거대공간은 앵글로-색슨 경제 제국주의에 대한 저항으로서 대지의 새로운 노모스에 대한 슈미트의 응답이며, 동시에 먼로 독트린을 구제하고 이질성과 자율성의 이름으로 지구의 유럽 질서를 재활성화하려는 시도이다. 거대공간은 개별 국가의 주권을 약화시키는 행성화와 슈미트가 유럽 국제 공법의 기초라고 믿는 이질성 사이의 타협이라고 말할 수 있다.
<179>정치적 국가와 마찬가지로, 거대공간은 역사적이고 기술적인 산물이다. 슈미트는 헤겔이 『법철학 강요』에서 국가에 대해 했던 것과 유사하게 거대공간을 이론화하기를 원한다. 17세기에 해양 권력과 육상 권력 사이의 구분이 선박과 농장 간의 대립, 즉 영국과 대륙 유럽으로 예시되는 두 가지 존재 형태와 동일했다면 육지와 바다 간의 대립은 당시 유럽 국제 정치를 설명한다. 그러나 이 구성은 전기화된 대지가 그 구체화(질베르 시몽동의 의미에서)를 향해 진전되었을 때 도전을 받았다. 제2차 세계 대전은 또 다른 요소, 즉 공기를 더욱 지배적으로 만들었다. 공기는 육지와 바다에 이은 세 번째 요소이며 원자 폭탄 투하와 이제 점점 더 많은 드론을 포함한 다른 유형의 전쟁을 도입했다.[85] 그것은 육지와 바다를 모두 포괄하며, 거대공간의 상상을 가능하게 한다. 슈미트는 『대지의 노모스』, 『땅과 바다』, 그리고 다른 텍스트들에서 이 새로운 요소인 공기에 대해 반복적으로 이야기했다. 오늘날 공기 요소는 공군과 그 군사적 지배력뿐만 아니라, 외계 공간(outer space)으로부터 적을 파괴할 가능성과 화성과 달의 식민지화를 통한 새로운 영토 주권 창출과 같은 더 장기적인 목표에서도 표현된다. 이 외계 공간 탐사는 아직 일반인들의 상상을 넘어선다. 왜냐하면 대지는 오래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살 곳으로서 유일하기 때문이다.
비행기의 발명은 육지와 바다에 이은 세 번째 요소의 정복을 의미했다. 인간은 평야와 파도 위로 높이 솟아올랐고, 그 과정에서 새로운 운송 수단과 새로운 무기를 획득했다. 기준과 척도는 추가적인 변화를 겪었다. 그러므로 인간이 자연과 동료 인간을 지배할 가능성은 가장 넓은 범위로 주어졌다.[86]
육지, 바다, 공기는 각 요소를 통제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세 가지 다른 종류의 기술에 해당한다. 요소들이 시간 순서대로 발견되었다고 생각하는 것은 부정확할 터이다. 기술이 이러한 요소들을 지구의 공간 질서 이해에서 지배적으로 만들도록 허용했는데 이는 그것들이 더 이상 통제되어야 할 요소가 아니라 “인간의 지배와 효과적인 권력 확장”(menschlicher Herrschaft und effektiver Machtentfaltung)의 공간이라는 의미이다.[87] 모든 공간 혁명은 질서의 중단과 방향의 재구성을 나타낸다. <180>우리가 슈미트의 공간 혁명 이론을 체계적으로 읽는다면 기술은 주권자(sovereign)를 정의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주권자의 권력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그것은 항상 주권을 초월하고 권한을 부여하는 것이다. 동시에, 기술에 의해 완전히 결정되지 않기 위해 주권자는 기술적 규범을 포함한 다른 규범들을 정지시킬 수 있는 힘인 생명력으로서 스스로를 재창조해야 한다.
슈미트의 주권 이론은 경제적 지배가 아니라 자율성과 결정에 우선순위를 두는데 이는 우리가 이미 탐구한 정치적 생기론이다. 슈미트의 이론은 바다와 공기의 관점에서 심해와 외계 공간을 다루었지만, 1985년 그의 사망으로 인해 사이버 공간의 주제는 분명히 그의 구상을 넘어선 것이었다. 슈미트는 전기화된 세계의 통일성을 조롱하는 것을 멈추지 않지만,[88] 기술이 공간 질서를 이해하는 데 중요하며, 기술 진보가 과거의 정치 및 법적 교리를 쓸모없게 만든다는 것은 그에게도 분명하다. 그렇지 않으면 그는 스스로와 모순될 터이다. 전기화된 대지는 오늘날 디지털 대지가 되었다. 피터 티엘(Peter Thiel)이 주장하듯이, 슈미트적 의미에서 미래의 공간은 심해, 외계 공간, 사이버 공간이다. 우리가 슈미트의 공간 철학을 따른다면, 많은 이론가들이 시도했듯이, 육지, 바다, 공기 이후의 새로운 요소로서 사이버 공간과 외계 공간을 추가하는 것이 중요하다.[89] 사이버 공간은 이미 국가들 간의 전쟁터가 되었으며, 외계 공간은 과학 연구라는 이름으로 그렇게 준비되고 있다.
슈미트의 통일성 비판 뒤에 있는 매력적인 아이디어가 다원주의에 대한 그의 열망이라는 점은 반복할 가치가 있다. 세 가지 공간 요소에서 바라본 행성적인 새로운 방향은 질서를 중단시켰다. 거대공간은 21세기 공간 혁명에 대한 진정한 응답일까? 1972년의 푸른 구슬(blue marble) 이미지와 1960년대 외계 공간에서 찍은 저품질 지구 사진들은 지구를 위에서 전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능력, 즉 행성에 완전히 새로운 공간 의식을 부여했다. 한나 아렌트는 『인간의 조건』에서 스푸트니크(Sputnik, 1957년) 발사가 원자 분열을 포함한 다른 어떤 과학적 사건에도 뒤지지 않는 사건이라고 간주했다.[90] 종종 후기 슈미트의 행성적 사고로 제시되는 거대공간은 우리가 다양성, 민주주의, 자유와 관련하여 제안하려는 행성적인 것과 긴장 관계에 있다. 이것을 이해하기 위해, 우리는 슈미트의 거대공간 개념을 더 깊이 탐구해야 할 터이다. 제2차 세계 대전 이전에, 거대공간은 주권 국가의 쇠퇴, 미국 제국주의와 소련의 기술적 가속의 위협에 대한 대응이자, 라이히(Reich)를 위한 필연성으로 정당화되었다. 라이히는 거대공간 내에서 서로 다른 사람들을 통일하는 것이다. <181>그렇다면 라이히는 확대된 국가이고 거대공간은 확대된 소규모공간일까? 슈미트는 답한다. “라이히는 단순히 확대된 국가가 아니며, 마찬가지로 거대공간이 확대된 소규모공간도 아니다. 또한 라이히는 거대공간과 동일하지 않지만, 모든 라이히는 거대공간을 가지며, 이로써 라이히는 개별 국민의 국가적 토양 위로 올라서는 것처럼, 배타적인 국가 영토로 공간적으로 특징지어지는 국가 위로 올라선다.”[91]
라이히와 거대공간은 국가와 유사한 개념으로서 역사적(historical)이고 구체적(concrete)이다. 라이히는 개별 국가의 경계와 특정 민족의 토양을 넘어 확장된다. 슈미트가 독일 라이히를 포스트-베스트팔렌(post-Westphalian) 국제 질서를 위한 유일한 옵션으로 옹호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라이히는 국민과 국가를 부정하지 않는다. 대신, 그것은 행성적 조건 하에서 국제 정치 질서를 구상하기 위한 새로운 틀을 제공하는 척한다.
그것[라이히의 개념] 안에는 국민의 개념에서 시작하여 국가 개념에 포함된 질서의 요소들을 남겨두지만, 동시에 오늘날의 공간 개념과 진정한 정치적 생명력에 부합할 수 있는 새로운 국제법 사고방식의 핵심이 있다. 그것은 국민과 국가를 파괴하지 않고, 서구 민주주의의 제국주의적 국제법처럼, 불가피한 구 국가 개념의 극복을 보편주의적-제국주의적 세계법으로 몰아가지 않으면서 ‘행성적’, 즉 대지 공간적(erdraumhaft)일 수 있다.[92]
우리는 여기서 라이히와 거대공간이 민족적(volkliche) 개념으로 남아 있으며, 새로운 행성적 공간 표현, 즉 공기와 동시대적임을 관찰할 수 있다. 슈미트에게 라이히만이 새로운 공간 혁명 이후 정치적 생명력이 되기에 충분하며, 국가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거대공간과 라이히는 이질성과 다원성을 추구하는 것으로 자리매김하며, 이는 서구 자유 민주주의의 제국주의적 국제법에 저항하는 전략이다. 우리는 이러한 다원성에 대한 추구가 오늘날 좌파와 우파의 정서와 공명하며, 슈미트의 이론을 다시 매력적으로 만들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어떤 종류의 다원주의가 문제이며, 그것이 단지 지배를 위한 위장은 아닌지 아직 질문해야 한다. 다원주의는 단순히 권력의 다양성이나 다극성만을 의미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단순히 일원론에 기반한 다원주의일 수도 있 다. 슈미트의 상상 속에서 새로운 질서는 첫째, <182>거대공간 간 관계(inter-Großräume relations), 둘째, 서로 다른 거대공간의 라이히 간 관계(inter-Reich relations), 그리고 마지막으로, 거대공간 내부와 외부 모두에서 국제 관계(zwischen-völkische Beziehungen)로 도식적으로 분석될 수 있다.[93] 후커(Hooker)는 그의 저서 『슈미트의 국제 사상』(Schmitt’s International Thought)에서 맑스가 헤겔의 유기적 국가를 비판했던 것과 매우 유사하게, 슈미트의 거대공간 개념이 실질적인 것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거대공간이라는 개념은 현상 유지에 대한 비판이라는 지위를 넘어선 실질적인 내용이 거의 없다. 정치적 고유성을 위한 새로운 기초의 필요성에 대한 그 주장에는 분명히 흥미가 있지만, 그것이 도달하는 결론은 부적절하다. 왜 대륙적 형태의 정치가 영토에 대한 철저하고 반보편적인 인식을 주장하는 데 더 나은가? 왜 국가 형태가 진정으로 특수한 것으로 부활될 수 없는가? 거대공간의 ‘정치적 이념’이 『정치적인 것의 개념』(The Concept of the Political)에서 정치 공동체를 정의했던 단순한 실존적 집단성의 의미와 구별되는 것은 무엇인가? 슈미트는 이러한 근본적인 질문들을 다루는 데 전적으로 실패했으며, 그의 입장에 대한 철저한 정당화를 제공하지 못한다.[94]
이러한 논평은 여러 면에서 타당하다. 후커는 1945년 이후 슈미트의 초기 저술에 나타난 라이히에 대한 칭송이 거의 금기가 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거대공간은 『대지의 노모스』에서 미래의 지정학- 다시 말해, 라이히 이후의 거대공간 지정학 - 에 대한 제안으로 남아 있다. 다시 말해, 슈미트에 따르면, 거대공간이 주권 국가보다 더 선호되는 이유는 거대공간이 내부적으로는 동질적이지만 외부적으로는 서로 구별되기 때문이다. 이질성은 거대공간 간 관계로 유지되지만 내부적으로 거대공간은 국가처럼 동질적일 수 있다. 거대공간은 또한 민족-국가과 반드시 같지는 않은 새로운 종류의 집단화를 의미한다. 예를 들어 기술은 사람들의 집단화의 기초가 되는데, 1929년의 슈미트에 따르면 그것은 다가오는 세기의 새로운 정치 기반이 될 것이며 이는 오직 “새로운 기술을 숙달할 만큼 강력한 정치 유형”과 “이 새로운 땅[Boden]에서 발전할 수 있는 진정한 친구-적 집단화[Freund-und Feind-Gruppierungen] 유형”에 달려 있다.
§25. 줌(Giving)의 식민주의, 새로운 거대공간, 그리고 디지털 주권
우리는 국가 이후의 거대공간이 보편과 특수 사이의 더 높은 수준의 화해를 구성하는지, 그리고 <175>그렇다면 어떤 방식으로 그러한지 궁금해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특정 민족 집단이 정치적 국가를 지배하여 공식 언어, 달력, 생활의 리듬을 정의한다고 가정해보자. 다른 민족 집단은 그들의 명백한 차이를 유지할 수 있지만, 그들은 지배적인 민족에 의해 정의된 국가 행정 기계에 복종해야 한다. 이것이 이미 거대공간의 다원주의적 논리일까? 교토 학파 철학자들은 대동아 공영권을 정당화해야 했을 때 동일한 문제로 고민했다. 그들은 또한 슈미트를 따라 공영권을 거대공간이라고 불렀다.[95] 그들의 정당화는 모든 다른 아시아 사람들이 일본의 도덕적 에너지(moralische Energie)에 의해 통일될 수 있으며, 서구 근대성의 퇴폐를 극복하는 그러한 도덕적 에너지를 시연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일본인뿐이었다는 것이다.[96] 거대공간이 헤겔의 정치적 국가에 대한 철학적 정당화 이후 이론적 진전을 가지고 있다면, 그것이 민족-국가(Volk-Staat) 상관관계와 헤겔이 『법철학 강요』의 끝에서 결론지었던 게르만 민족의 지배를 해결할 것으로 기대해야 한다.
슈미트는 이러한 질문들에 대해 명확한 답을 남기지 않았다. 그가 제안하는 다원주의는 때때로 역설적으로 그가 약화시키려는 기술적이고 경제적인 합리성과 일치하는 것처럼 보인다. 기술이 친구와 적의 집단화가 발전할 새로운 기반이라는 슈미트의 예상은 오늘날 마이크로칩이 미국 주도의 연합(일본, 네덜란드 및 기타 연합 구성원 포함)과 중국을 분리하는 분수령이 되었을 때 명백해 보인다. 미국의 제재를 위반하는 모든 비중국 기업은 적대감의 지표이며, 그 반대도 마찬가지이다. 이 원칙은 소프트웨어 및 온라인 플랫폼의 사용에도 적용된다. 미국 플랫폼을 검열하는 국가들은 종종 같은 그룹, 즉 북한, 중국, 러시아에 속하는 것으로 간주된다. 그러나 이러한 서구 플랫폼의 대체품을 볼 때, 우리는 그것들이 실제로 매우 유사한 서비스이며, 유사하거나 정확히 동일한 기술을 사용하고 있음을 본다.
따라서 기술에 기반한 친구와 적의 집단화는 역동적이지만, 가장 중요한 발전은 국가 간 및 대륙 간 인프라였다. 그것은 단순히 소위 취함(taking)의 식민주의에 속하는 헤게모니의 행사가 아니다.[97] 그러한 취함의 식민주의는 식민지화 역사의 시작 이래로 지배적이었다. 실제로 취하는 행위의 구성 행위는 유럽 노모스이다. 슈미트의 적대란 내전과 다른 나라와의 전쟁 모두에서 토지와 바다의 점유를 전제로 하며, 이는 또한 유럽 노모스의 관점에서 식민지화의 정당화로 작용한다. <184>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우리는 포스트-유럽 시대(post-European era)에 진입했기 때문에 식민주의는 다른 형태를 취한다. 유럽 중심적 노모스는 행성 조건에서 대폭 수정되어야 하며, 코제브의 말에 따르면, 더 이상 취하는 것(nehmen)이 아니라 주는 것(geben)이 된다. 1957년, 카를 슈미트는 코제브를 쾰른의 개인 라인-루르 클럽(Rhein-Ruhr-Club)에 초청하여 「유럽 관점에서의 식민주의」(Colonialism from a European Perspective)라는 제목으로 강연을 하게 했다. 슈미트의 노모스를 취함과 점유로 보는 개념과는 대조적으로, 코제브는 주는 것을 식민주의의 새로운 형태로 고려할 것을 제안했다. 식민지 국가들로부터 취하는 대신, 이제 유럽은 재정적, 물질적, 기술적 지원의 형태로 이들 국가들에게 취하는 것보다 더 많이 주었다. 코제브의 근거는 사업이 잘 유지되려면 가난하고 나쁜 고객이 아니라 좋은 고객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줌 식민주의(gebender Kolonialismus)는 자본주의의 새로운 형태와 양립할 수 있다. 맑스의 19세기 산업 자본주의 분석에서, 자본가들은 노동자들의 삶의 질을 개선하지 않고 그들로부터 최대치를 취한다. 이는 맑스주의자들이 맑스가 묘사한 형태로 자본주의를 본질화(essentialize)할 때 여전히 오류로 남는데. 왜냐하면 그들에 따르면 자본가들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순진하고 눈이 멀었기 때문이다.[98] 포스트-맑스주의적 자본주의는 헨리 포드(Henry Ford)로 예시되는데, 그는 노동자들로부터 취한 것을 재분배함으로써 전략을 변경했다. 포드 이후로, 프랑스의 조르주 프리드만(Georges Friedman)과 미국의 대니얼 벨(Daniel Bell)과 같은 사회학자들이 문서화했듯이, 직원들의 근로 조건과 삶의 질에 대한 일반적인 개선이 있었다. 코제브에 따르면, 새로운 유형의 식민주의는 과거처럼 원하는 것을 단순히 취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신흥국과 저개발국에 취한 것보다 더 많이 제공해야 한다. 코제브는 당시 프랑스와 영국을 줌의 정치(politics of giving)를 가진 유일한 서방 국가로 지명했다. 오늘날 우리는 많은 선진국뿐만 아니라 개발도상국도 이러한 의미에서 주는 행위를 하고 있음을 본다 [503]. 미국, 독일, 일본은 지난 몇 년 동안 기부금에서 프랑스를 앞질렀다.
이 겉보기에 ‘반식민주의적’ 행위는, 코제브에게 유럽이 행사해야 하는 식민주의의 새로운 형태이며,[99] 슈미트의 “반제국주의적” 행위가 독일 라이히에 대한 정당화였던 것과 같다. 1957년에 글을 썼던 코제브는 보다 완화된 헤게모니적인 연합을 위해 라이히를 피해야 했다. 육지, 바다, 공기의 영토가 정의되는 한, 시장과 인프라는 라이히의 주권이 다른 국가로 확장되어 다른 국가의 내정이 외교 정책의 일부가 될 수 있는 다른 수단이 된다. 시장과 인프라는 자본과 상업 상품의 순환을 보장하는 두 가지 주요 요소로 구성된다. 또는 <185>어쩌면 우리는 그것들이 전후 거대공간을 만드는 수단이라고 말할 수 있다. 1957년에 코제브는 중국을 소련의 줌의 식민주의를 받는 국가로 보았지만, 그는 또한 중국의 기술적 기반의 “극적인” 변화를 알아차렸다. 65년이 지났고, 코제브의 ‘줌 식민주의’ 제안은 서구 너머로 확산되었고 훨씬 더 유물론적인 제스처를 취한다. 줌의 식민주의는 거대공간 형성에 핵심이다. 중국은 이 점에서 선두 국가 중 하나로 서 있다. 회상하자면 중국의 일대일로 구상(One Belt One Road Initiative, BRI)은 지난 10년 동안(2022년까지) 아시아와 유럽, 아프리카, 라틴 아메리카, 남태평양 전역의 125개국 및 29개 국제 기구와 170개 이상의 협력 협정을 체결했다. 중국은 경제적 프로토콜뿐만 아니라 기술적 프로토콜도 부과함으로써 거대공간을 건설했다. 이에 대한 대응으로, 2022년 여름에 G7은 6천억 달러 규모의 글로벌 인프라 및 투자 파트너십(Partnership for Global Infrastructure and Investment)을 출범하며, 이는 중국의 BRI에 대한 ‘진정한 대안’(true alternative)으로 주장되었다. 우리는 앞으로 이러한 구상이 점점 더 많아질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우정의 제스처로 제공되는 투자라는 선물은 쉽게 적대감의 선물이 될 수 있다. 주는 것과 취하는 것은 같은 동전의 양면이다. 투자국은 합법적으로 다른 나라를 파산으로 몰아넣거나, 갈등 시에는 러시아가 유럽에 대한 가스 공급을 중단한 방식과 유사하게, 기술과 자원의 통제를 통해 불법적으로 다른 나라의 일상적인 운영을 방해할 수 있다. 친구와 적의 경계선은 시장 창출과 인프라 건설을 통해 이러한 경우에 흐려지는데, 이는 시장과 인프라의 발전이 코제브가 명확히 하려고 시도했던 것처럼 식민주의의 새로운 형태이기 때문이다. 친구와 적의 결정은 노골적으로 마키아벨리적이다. 오늘날 이것은 더 이상 통찰이 아니라 거의 자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가장 아이러니한 점은 외교관들이 이것을 명확히 할 때 이 자명한 사실을 부인한다는 데 있다. 또한 이러한 상호 침투 때문에 먼로 독트린을 고수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한데, 이는 각 국가의 이해관계가 여러 수준에서 연결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국가의 이해관계와 쉽게 충돌하기 때문이다. 베를린 장벽의 붕괴와 소련의 붕괴 이후, 약 30년 동안 행복한 상호 침투가 있었지만, 거의 모든 경우에 세계화라는 이름으로 선진국에서 개발도상국으로, 그리고 개발도상국에서 저개발국으로 진행되었다. 세계화가 자가면역 효과(autoimmune effect)를 낳는 지점에 이르렀는데, 이는 데리다가 9/11 사건 이후 발표한 것과 유사하며, 피터 티엘이 계몽주의 이래로 서구의 아킬레스 건이라고 묘사하는 것과도 같다.[100] <186>중국, 러시아, 중동은 모두 미국 제국주의의 자가면역 공격의 증상으로 이해될 수 있다. 세계화를 이끄는 바로 그 제국주의적 추진력인 미국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하에서 갑자기 이에 반대하는 것을 듣는 것은 거의 믿을 수 없는 일이었으며, 세계에서 소위 가장 강력한 공산주의 국가인 중국이 세계화와 자유 시장을 옹호했다.
그러나 이 선물은 국제 원조에 국한되지 않는다. 국제 원조는 소프트 파워, 디지털 플랫폼과 함께 세 가지 선물 형태 중 하나로 남아 있을 뿐이다. 소프트 파워는 문화 영역에 속하며, 이는 다른 나라 사람들의 심리사회적 삶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예를 들어, 미국 소비주의는 세계를 대중화하고 조나단 크래리(Jonathan Crary)와 같은 저자들이 묘사한 “지역 및 국가 문화의 청산”을 가져왔다. 또는 스티글러(Stiegler)가 말했듯이, 소비주의는 개별화 상실을 유도하는데, 이는 그 중독성이 더 높은 존재 의미 추구를 방해하는 심리적 장애물을 생성하기 때문이다. 어떤 의미에서, 미국이 소비주의 문화를 전 세계적으로 확산시키는 데 성공했기 때문에, 이미 승리했다고 말할 수도 있다. 다시 말해, 중국 경제가 저가품과 명품 모두의 소비주의에 크게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미국은 이미 중국과의 경쟁에서 승리했다. 이것은 열역학적 이데올로기(thermodynamic ideology)의 승리라고 말할 수 있는데. 이 이데올로기에 따르면 경제적 자유가 정치적 자유보다 더 근본적이며, 이 경우 시민은 무엇보다도 소비자이다. 열역학적 이데올로기는 지난 수십 년 동안, 특히 2008년 금융 위기 이후, 도전을 받아왔지만 그 힘을 계속 행사하고 있다. 무역 전쟁은 열역학적 이데올로기의 규칙이 위반될 때 발생한다. 예를 들어, 우리는 종종 신문에서 한 국가가 글로벌 시장에 참여하기 위해 특정 산업에 보조금을 지급한 혐의로 다른 국가들에게 비난받는 것을 읽는다. 이 동일한 수사법은 이제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국가 모두에서 사용된다.
우리는 기술적 세계화를 통해 전 지구적 ‘공동체’가 형성되는 것을 목격했으며, 이 공동체 내에서 면역학적 공격과 자가면역 공격이 새로운 규범이다. 생태학적 변이(ecological mutations)와 무역 전쟁도 이러한 종류로 볼 수 있다. 진행 중인 디지털 대지와 관련하여, 우리는 주권자가 디지털 플랫폼을 통해 영토를 넘어 그 권력을 확장하는 것을 본다. 역설적으로, 이는 또한 주권자가 통제력을 잃을 수 있으며 법을 완전히 정지시키는 데 실패하고 예외 상태가 지역화될 뿐임을 의미한다. 많은 외교관들의 언급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다른 국가들에게 그들의 주권 하에 있는 것이므로 내정에 개입하지 말라고 요청하는 것은 순진한 일이다. <187>유럽 국가들이 러시아가 그들의 제재에 에너지 공급을 끊음으로써 대응하지 않을 것으로 예상했던 것도 마찬가지로 순진한 일이다. 검열을 예로 들 수 있다. 국가가 플랫폼을 검열할 때, 그것은 자국민이 서버에 접근하는 것을 차단할 뿐이다. 영토 밖의 다른 사람들은 여전히 접근할 수 있다. 그 서버는 전자의 법적 영토 내에 있지 않으며, 후자의 법에 따르면 그 존재는 불법이다. 일신론에 비유되는 중앙 집중화된 권력 형태는 분산된 인프라의 세계에서 실패할 위험이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분산화와 분산 기술은 종종 주권에 반대되거나, 심지어 무정부주의의 한 형태로 간주되는데, 이는 예외 상태란 영토가 효과적으로 봉쇄(enclosed)될 수 있을 때만 실행될 수 있기 때문이다.
벤자민 브래튼(Benjamin Bratton)이 정확하게 지적했듯이, 디지털 플랫폼은 주권 권력의 일부이며, 이러한 이유로 그는 ‘클라우드’(clouds)가 새로운 요소라고 주장한다. 클라우드는 서버가 서비스를 제공하는 어느 나라에나 있을 수 있기 때문에 고정된 위치를 가지지 않는다. 클라우드는 주로 개인의 사유 재산으로 여겨지는 개인 데이터를 저장한다. 에드워드 스노든(Edward Snowdon)이 2013년 6월 NSA의 거대한 감시 프로그램을 폭로한 이후, 많은 국가들이 데이터 현지화를 위한 다양한 시도를 시작했다. 러시아 국가 두마(State Duma)는 2014년에 러시아 사용자 데이터를 러시아 영토 내에 보존하기 위한 데이터 현지화 법률을 채택했다. 유럽 연합은 2018년에 일반 데이터 보호 규정(General Data Protection Regulation, GDPR)을 도입하고, 2019년에 유럽 클라우드 프로젝트 GAIA-X를 공개했다. 이는 브래튼이 디지털 영토와 접근 프로토콜을 정의하는 클라우드의 먼로 독트린이라고 특징짓는 것에 해당할 수 있으며, 그는 이를 스택스(Stacks)라고 부른다. 클라우드 컴퓨팅의 사회경제적 발전에 대한 더 자세한 역사적 설명은 여기서 다룰 범위를 벗어나지만 우리에게 흥미로운 것은 플랫폼이 그들의 분산된 인프라로 어떻게 주권 권력의 확장을 구성하며, 이는 불가피하게 다른 주권 권력과 충돌한다는 점이다. 미국과 중국 간의 디지털 플랫폼을 둘러싼 최근의 갈등, 특히 틱톡(TikTok)의 사례는 사용자 데이터 통제가 정치적 권력에 얼마나 중요한지를 가시적으로 만들었다. 틱톡은 미국에 본사를 둔 회사이지만, 중국 회사인 바이트댄스(ByteDance)가 소유하고 있으며, 중국 국가가 주주이고, 국가는 당연히 플랫폼의 외국 사용자 데이터에 접근할 궁극적인 권한을 가진다. 이는 차량 호출 서비스(ride-hailing) 거대 기업 디디 글로벌(Didi Global)을 비롯한 다른 첨단 기술 및 에너지 회사들이 뉴욕 증권 거래소에서 자발적으로 철수한 것으로 입증되듯이, 그것은 주권자에 관한 슈미트의 개념을 강조한다.[106] 또한 이는 <188>최근 승인된 ‘외국 적대국 통제 애플리케이션으로부터 미국인을 보호하는 법’(Protecting Americans from Foreign Adversary Controlled Applications Act)에 의해 더 잘 예시되는데, 이 법은 미국 정부에게 바이트댄스가 틱톡을 폐쇄하거나 매각하도록 강요할 권한을 부여한다.
구글(Google)은 후자보다 훨씬 더 포괄적인 서비스를 제공하므로 틱톡에 비해 더 중요한 예시이다. 구글은 선물로 제시되는데, 이는 제한된 양의 클라우드 스토리지 내에 머무는 경우 무료 서비스이며, 이는 부유하든 가난하든 인터넷 연결 상의 누구든지 그러한 서비스에 접근할 수 있도록 보장한다. 이러한 이유로, 구글이 보유하는 사용자 데이터의 양은 엄청나며 지속적으로 증가한다. 구글이 어느 날(예컨대 사고로 인해) 이 정보를 삭제한다고 상상해보라. 사람들이 겪을 고통의 수준은 특정 기억뿐만 아니라 삶이 조직되는 방식에도 관련된다. 디지털 플랫폼은 이론적으로 영토적 한계가 없는 주권 권력 작동의 새로운 시나리오를 만들었다. 플랫폼이 현지 법률 시스템을 준수하더라도, 그들은 구글이 미국 주권 권력을 확장하는 방식과 같이 주권 권력을 병행적으로 확장한다. 다시 말해, 클라우드의 먼로 독트린은 그 자체로 모순적이다. 미래의 경쟁은 계산 능력과 그 인프라의 속도와 견고성에 기반할 것이며, 다른 사람들이 첨단 기술에 접근하고, 자신의 디지털 영토에 진입하는 것을 차단하는 전략에 기반할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국내 및 국제적 틀거리 모두에서 부과되는 더 많은 규제를 볼 터이다.
그러나 디지털 주권에 대한 담론은 민족-국가의 담론을 넘어서게 하지는 못하는데, 이는 주로 새로운 형태의 통치성(governamentality)과 정보 전쟁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2020년에 시작된 전 지구적 팬데믹과 아시아 태평양을 향한 지정학적 중심의 이동은 전 지구적 면역학적인 방어를 촉발했다. 비상사태가 대부분의 국가에서 선포되었고, 이는 개별 국가 내부 및 외부의 물류 재편성뿐만 아니라, 감염 및 예방 접종 보고와 같은 데이터 수집을 통한 감시 사회를 강제했다. 팬데믹 동안 국경 통제의 부과는 세계화의 공간 의식을 역전시켰다. 아침에 회의를 위해 아시아에서 유럽으로 비행하고, 다음 날 컨퍼런스를 위해 유럽에서 북미로 비행하는 가능성이 그러하다. 그러한 국경 의식은 또한 디지털 주권의 담론에 반영되었다. 디지털 주권은 방화벽과 이데올로기에 의해 유지되는 가상 국경(virtual border)으로 축소된다. 그것은 반동적이고 평범하게 될 위험이 있다. 그것은 국가 안보라는 이름으로 ‘실제 정치’(real politics)에 종속됨으로써 새로운 행성적 구성을 찾으려는 척한다. 그것은 이제 대규모 언어 모델의 최근 성공 이후, 더 많은 가치를 얻는 국가 승인 디지털 추출주의(state-authorized digital extractivism)로 되돌아간다. <189>새로운 공간 질서로서의 슈미트의 거대공간 개념은 개별 주권 국가의 취약성을 극복하고 다극적인 국제 질서를 창출하기 위한 것이었다. 디지털 영역의 맥락에서 거대공간을 구상하는 것이 가능할까? 문제는 슈미트의 거대공간이, 비록 그의 다원주의 정치에 대한 추구가 21세기 정치의 중심 질문으로 남아 있음에도 불구하고, 국가의 정치적 형태만을 확장한 것처럼 보인다는 점이다. 주권과 기술 사이의 친밀한 관계를 고려할 때, 미묘한 기술 개념이 미래 정치 사상에 대한 새로운 통찰을 제공할 수 있는지 숙고하고 싶어진다. 이는 우리가 남은 장들에서 탐구하고자 하는 과제이다.
디지털 기술은 탈영토화(deterritorialization)의 수단이 될 것이었다. [그러나] 이 새로운 공간 혁명은 우리에게 새로운 질서를 주기는커녕, 종종 제2차 냉전이라고 불리는 어떤 직관적인 면역학으로 우리를 되돌렸다. 디지털 주권에 대한 담론은 감시 사회와 데이터 수집 정치를 강화한다. 다시 말해, 국가는 자국민의 데이터에 대한 독점권을 갖고, 이를 그들의 국민과 외세의 개입에 효과적으로 사용하려 한다. 미디어가 자국민의 데이터로 구성된 디지털 리바이어던에 대해 이야기해 온 것도 바로 이러한 의미에서이다. 이는 거의 매일 신문에서 읽을 수 있는 가장 피상적인 이미지 중 하나로 남아 있다. 우리가 제4장에서 리바이어던에 대한 논의로 돌아간다면, 리바이어던은 알고리즘의 자동화를 국가 행정의 일부로 유지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메가머신을 정지시키고, 재귀적 계산 과정을 중단하고, 프로그램을 새로 시작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존재임을 알 수 있다. 아마 우리는 여기에서 데리다(Derrida)적인 질문으로 결론을 내릴 수 있을 것이다. 즉 이 힘, 한 시대를 열어젖히는 힘이 우리에게 행성 시대의 진정한 다원주의를 줄 수 있을까?[108]
5장 주석
1. Rousseau, Social Contract, 175.
2. 특히 카를 폰 사비니(Carl von Savigny)의 1814년 저서 Concerning the Vocation of Legislation and Jurisprudence. 여기서 사비니는 시간과 국가에 관계없이 자연법이 비역사적으로 유효하다는 것을 거부했으며, 또한 로마법으로부터의 역사적 연역을 통해 법의 본질을 이해할 것을 제안했다. Ulmen, “The Sociology of the State,” 14–15 참조.
3. Rasch, “The Emergence of Legal Norms,” 97. 라쉬는 신칸트주의 철학자 에밀 라스크가 그의 “Rechtsphilosophie”(1905)에서 제기한 비판을 인용했다. “이에 따라 공동체의 권위라는 기준은 완전히 제거되고, 그 자리에 이성(Vernunft)이 더 높은 형식적 법의 원천으로 나타나며, 이 이성으로부터 ‘법’이 인간의 규정 없이 그리고 이에 반하여 흘러나오므로, 이성에 부합하지 않는 법은 형식적으로 무효화되고 더 이상 법이라고 불릴 자격이 없으며, 단지 잔혹한 자의와 폭력일 뿐이다.”
4. Strauss, Natural Right and History, 91.
5. Strauss, Natural Right and History, 50.
6. Strauss, Natural Right and History, 119.
7. 바르텔손(Bartelson)은 그의 Sovereign as Symbolic Form에서 주권의 다양한 정의를 제시한 후, 에른스트 카시러(Ernst Cassirer)의 상징적 형태 개념을 참조한다. 카시러의 상징적 형태는 넓은 의미에서 상징의 신화적, 표상적, 의미론적 기능을 식별할 수 있는 다양한 의미 체계를 나타내며, 좁은 의미에서는 상징의 의미가 완전히 이해될 수 없는 유기적 전체(예:컨대 게슈탈트Gestalt 이론에서처럼)를 의미한다. 나는 바르텔손이 카시러의 상징적 형태를 주권의 본질을 해명하는 데 적용한 것이 만족스러운 방식인지는 확신할 수 없다.
8. Onuf, The Mightie Frame, 95.
9. 켄트 대학교 법대 동료들이 이 차이점을 강조해 준 것에 감사드린다.
10. Schmitt, Political Theology, 5.
11. Rasch, Carl Schmitt, 53–54.
12. Kant, Critique of Pure Reason, A249, 312.
13. Kant, Critique of Pure Reason, B 308, 318. “그러한 직관, 즉 지적 직관은 우리의 인식 능력 밖에 절대적으로 놓여 있으므로, 범주의 사용도 경험의 대상을 포함하는 경계를 넘어 확장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14. Kant, Critique of Judgment, 170.
15. Bartelson, Sovereignty as Symbolic Form, 22에서 인용됨.
16. Hume, Treatise of Human Nature, 1.2.4., 33.
17. Stiegler, Philosophising by Accident, 52. 원문에 이탤릭체.
18. Stiegler, Philosophising by Accident, 53.
19. Suganami, “Understanding Sovereignty through Kelsen/Schmitt,” 522.
20. Skinner, “The Sovereign State: A Genealogy,” 45.
21. Rasch, Carl Schmitt, 56.
22. Schmitt, Glossarium, 388.
23. Kelsen, Pure Theory of Law, 193.
24. Raz, The Authority of Law, 95. 또한 Kelsen, General Theory of Law and State, 116 참조. “인간의 행위를 법적 행위로, 그리고 그 산물을 구속력 있는 규범으로 해석하는 것, 즉 그 자체로 법으로 제시되는 경험적 자료를 법으로 해석하는 것은 오직 근본 규범이 유효한 규범으로 전제된다는 조건 하에서만 가능하다. 근본 규범은 법적 자료에 대한 모든 실증주의적 해석의 필수적인 전제일 뿐이다.”
25. Kelsen, Pure Theory of Law, 202.
26. Heller, Sovereignty, 92.
27. Suganami, “Understanding Sovereignty through Kelsen/Schmitt,” 521. “그러나 소위 근본 규범에서 실정 법규범의 기원을 찾으려는 지적 시도 전체는 실패할 수밖에 없다. 그것이 달성하는 것은 불필요한 순환적 안심뿐이다.”
28. Schmitt, Constitutional Theory, Part I §9.1, 64.
29. Schmitt, Political Theology, 21.
30. Schmitt, Constitutional Theory, Part I §9.2, 64, 번역 수정됨; Eine Norm setzt niemals sich selbst는 문자 그대로 “규범은 결코 스스로를 규정하지 않는다”를 의미하며, “규범은 스스로를 확립하지 않는다”로 번역되었다. 우리는 유기체의 원리인 Selbstsetzung (자기-규정)의 의미를 놓칠 수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실증주의에 대한 슈미트의 비판이 단순히 기계적이라는 것은 그 자신에 의해 문제시된다.
31. Derrida, Rogues, 154. “주권자가 예외에 대해 예외적으로 그리고 수행적으로 결정하는 자, 권리 또는 법을 중지시킬 권리를 스스로 보유하거나 부여하는 자라는 것을 배우기 위해 슈미트를 기다릴 필요가 없었다. 또한 이 정치-법적 개념이 다른 모든 개념과 마찬가지로 신학적 유산을 세속화한다는 것을 알기 위해 그가 필요하지도 않았다.”
32. Derrida, Rogues, 141.
33. Cacciari, Europe and Empire, 55.
34. Derrida, Rogues, 149. 원문에 이탤릭체.
35. Derrida, Rogues, 149.
36. 또한 Derrida, “The Force of Law,” 971 참조.
37. Derrida, Rogues, 149.
38. 스티글러가 데리다와 단절한 것은 르루아-구랑과 질베르 시몽동의 영향을 받아 초월론적 또는 준초월론적 분석에서 기술성에 대한 내재적 역사 분석으로 전환하려는 노력으로 볼 수 있다는 점은 흥미롭다. 데리다의 작업에서 보충물이 중요한 역할을 함에도 불구하고, 스티글러는 해체 철학자가 그 역사에 무관심하다고 비난한다. Stiegler, “Discrétiser le temps,” 주석 6 참조.
39. Schmitt, Ex Captivitate Salus, 29.
40. Howse, “Europe and the New World Order,” 101–2.
41. Cacciari, Europe and Empire 참조.
42. Rasch, “A Just War or Just a War,?” 1683 참조. “민족주의자 슈미트는 또한 ‘완고하게’ ‘서구’(West)에 저항하기를 원하는 이들에게 이론적 발판을 제공하는 국제적 다문화주의자 슈미트일 수도 있다.” 헤르더에 대해서도 같은 말을 할 수 있다.
43. Schmitt, “Über das Verhältnis der Begriffe Krieg und Feind,” in Positionen und Begriffe, 245.
44. Schmitt, “Wisdom of the Cell,” in Ex Captivitate Salus, 71.
45. Schmitt, Theory of the Partisan, 85.
46. Hegel, Outlines of the Philosophy of Right, §331. “이 정당성이 다른 국가의 인정을 통해 완전해지는 것은 그에 못지않게 본질적이지만, 이 인정은 한 국가가 다른 국가들에게 인정받으려 할 때, 그 국가들 또한 인정해야 한다는, 즉 그들의 독립을 존중해야 한다는 보장을 요구한다. 따라서 그들은 서로의 내정에 무관심할 수 없게 된다.”
47. Derrida, “Autoimmunity,” 94.
48. Derrida, Rogues, 101.
49. 우리는 그리스 신화에서 에피메테우스가 인간에게는 선물을 주지 않고 동물에게만 주고 판도라의 상자를 열었던 잘못을 저질렀다는 것을 상기한다. 슈미트는 Glossarium, 180에서 에피메테우스를 아벨과 비교했다. 얄마르 팔크(Hjalmar Falk)는 기독교적 에피메테우스로서의 슈미트를 기독교적 프로메테우스주의, 즉 “기술성의 반(反)종교”, “기술적 진보의 종교”, “기술적 기적의 종교” 등과 대립시킨다. Falk, “The Modern Epimetheus” 참조.
50. Schmitt, “Raum und Großraum im Völkerrecht,” in Staat, Großraum, Nomos, 239.
51. Heaney, Rhythm 참조.
52. Hooker가 그의 저서 Carl Schmitt’s International Thought에서 Ortung(방향, 위치 지정)과 Ordnung(질서) 사이의 관계를 강조하는 것은 중요하다. 왜냐하면 이는 또한 지역성의 문제, 즉 방향을 잡는 것, erörtern(토론/심문하다)의 필요성을 가리키기 때문이다.
53. Schmitt, Land and Sea, 92.
54. Schmitt, “Die Einheit der Welt,” in Staat, Großraum, Nomos, 500. “유럽 공법에도 세계의 통일이 있었다. 그것은 유럽 중심적이었지만, 한 명의 세계 군주의 중앙 권력은 아니었다. 그 구조는 다원적이었고, 여러 정치적 주체들이 서로를 범죄자가 아니라 자율적인 질서의 담지자로 간주하며 공존할 수 있도록 했다."
55. Schmitt, Nomos of the Earth, 126–27.
56. Schmitt, Nomos of the Earth, 149.
57. Schmitt, “Raum und Großraum im Völkerrecht,” in Staat, Großraum, Nomos, 235–36.
58. Schmitt, “Völkerrechtliche Großraumordnung,” in Staat, Großraum, Nomos, 271.
59. Schmitt, Nomos of the Earth, 43.
60. Schmitt, Land and Sea, 49.
61. Schmitt, Land and Sea, 9–10.
62. Hooker, Carl Schmitt’s International Thought, 75.
63. Schmitt, “Welt großartigster Spannung,” in Staat, Großraum, Nomos, 514. “Land und Meer라는 작은 저술을 통해 나는 세계사적 대립의 힘으로서 원소들의 중요성에 대한 개념을 처음으로 얻었다.”
64. Schmitt, Land and Sea, 53, 이탤릭체는 필자의 것임.
65. Schmitt, Nomos of the Earth, 73. “그러나 그 본래적 의미에서 노모스는 법률에 의해 매개되지 않는 법적 권력의 완전한 직접성이다. 그것은 단순한 법의 합법성이 처음으로 의미를 갖게 되는 구성적 역사적 사건 - 정당화 행위 - 이다.”
66. Schmitt, “The New Nomos of the Earth,” in Nomos of the Earth, 352.
67. Schmitt, “The New Nomos of the Earth,” in Nomos of the Earth, 352.
68. Schmitt, “The New Nomos of the Earth,” in Nomos of the Earth, 352.
69. Schmitt, Nomos of the Earth, 293.
70. Schmitt, “Großraum gegen Universalismus,” in Positionen und Begriffe, 295, “Völkerrechtliche Großraumordnung,” in Staat, Großraum, Nomos, 290.
71. Schmitt, “Völkerrechtliche Großraumordnung,” in Staat, Großraum, Nomos, 282.
72. Schmitt, “Großraum gegen Universalismus,” 297.
73. Schmitt, “Großraum gegen Universalismus,” 299.
74. Schmitt, Nomos of the Earth, 235.
75. 교토 학파 철학자 니시타니 케이지(Keiji Nishitani)가 슈미트의 해양 권력 분석과 유사하게 공명하는 분석을 수행했다는 점은 흥미롭다. 니시타니는 세 가지 문명, 즉 지중해(로마 세계), 대서양(영미 세계), 태평양을 분석하고, 태평양이 지구의 패권적 중심이 되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한 일본이 대서양 문명의 가장자리에 있으면서 태평양을 탐험할 역사적 의무를 가지고 있다고 보았다. Goto-Jones, Political Philosophy in Japan, 107 참조.
76. Schmitt, “Die Einheit der Welt,” in Staat, Großraum, Nomos, 503. 또한 Schmitt, Political Romanticism, 13 참조.
77. Schmitt, “Die Einheit der Welt,” in Staat, Großraum, Nomos, 505 “특히 동양은 기독교적 종교성으로부터 분리된 유럽 기술을 손에 넣었듯이 헤겔 철학을 손에 넣어, 자신의 계획에 따라 세계의 통일을 실현하고자 했다.”
78. Schmitt, “Die geschichtliche Struktur des heutigen Welt-Gegensatzes von Ost und West,” in Staat, Großraum, Nomos, 537. “그러나 오늘날 동양의 공산주의 혁명은 동양이 기독교적 종교성으로부터 분리된 유럽 기술을 손에 넣는 데 있다.”
79. Schmitt, “Die geschichtliche Struktur des heutigen Welt,” in Staat, Großraum, Nomos, 540. “그러므로 17세기 말에 분리된 것은 아놀드 토인비가 생각하는 ‘기술적 파편’이 아니라 다른 무언가이다. 한 유럽 섬이 유럽 대륙에서 분리되었고, 그 섬에 의해 지탱되는 새로운 해양 세계가 단단한 대지의 세계와 대립하게 되었다.”
80. Fukuyama, The End of History and the Last Man.
81. Derrida, Rogues, 158. 이와 유사한 주장이 이라크 전쟁 이후 미국의 일방주의적 정책에 맞선 유럽의 책임과 자율성에 대한 하버마스와 데리다의 공동 기고문에서도 제기되었으며, 이는 유럽 정치 지도자들이 미국과의 유럽 통합을 촉구하던 시기에 나온 것이다. Habermas and Derrida, “February 15” 참조.
82. Schmitt, “Die Einheit der Welt,” in Staat, Großraum, Nomos, 501. “이제 이 헤겔 철학은 겉보기에는 이상주의적이다. 그것은 인류의 목표를 정신과 절대 이념의 통일에서 찾으며, 전기화된 지구의 물질적 통일에서 찾지 않는다.”
83. Schmitt, “Die Einheit der Welt,” in Staat, Großraum, Nomos, 496.
84. Schmitt, “The Age of Neutralization and Depoliticizations,” in The Concept of the Political, 95.
85. Schmitt, Nomos of the Earth, 178.
86. Schmitt, Land and Sea, 57. Land and Sea는 1942년에 출판되었다. 그보다 앞선 에세이 “Völkerrechtliche Großraumordnung” (1941년 Staat, Großraum, Nomos에 재수록됨)에서 슈미트는 그가 바다에 의해 야기된 공간 의식과 유사할 것이라고 기대했던 공중의 ‘공간 의식’에 대한 실망을 표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대신 슈미트는 다음과 같이 비웃었다. “반대로, 대기 공간에서 국가의 영토적 주권이라는 개념은 국제 비행 및 무선 통신의 모든 기존 조약 및 기타 규정의 토대가 특히 강조되는 방식이 되었다. 기술적 관점에서 볼 때, 특히 영토적으로 작은 국가의 경우, 현대 항공기이 몇 시간 안에 많은 작은 국가 위를 비행할 때 얼마나 많은 ‘주권’에 복종해야 하는지, 또는 끊임없이 초당 속도로 대기 공간을 통해 지구를 순환하는 모든 전기 파동에 대한 수많은 국가 주권들이 어떻게 될지 생각해보면, 이는 이상하고 심지어 기괴하기까지 하다.” Staat, Großraum, Nomos, 304.
87. Schmitt, “Völkerrechtliche Großraumordnung,” in Staat, Großraum, Nomos, 308.
88. “Grossraum gegen Universalismus”에서 슈미트는 아시아 먼로 독트린에 대해 논하며 존슨 롱(Johnson Long)이 저술한 La Mandchourie et la doctrine de la porte ouverte(1933)라는 책을 언급했는데, 저자는 이 책에서 아시아 먼로 독트린의 문제점을 개괄했다. 슈미트는 이를 세 가지 요점으로 요약했다. 세 번째 요점은 현대 교통 시스템의 발전으로 인해 먼로 독트린이 시대에 뒤떨어진다는 것이다. 먼로 시대에는 미국이 고립되어 있었고, 이것이 독트린의 배경이었지만, 1933년에는 교통 기술이 이미 세계화된 세계를 만들었다. 슈미트는 이 저자(존슨 롱)가 모순적이라고 비판하며, 이는 현대 교통 기술이 미국 제국주의가 다른 이들의 내정에 더 효과적으로 개입할 수 있도록 허용한다는 것을 보여줄 뿐이라고 썼다.
89. Bratton, The Stack.
90. Arendt, The Human Condition, 1.
91. Schmitt, “Völkerrechtliche Großraumordnung,” in Staat, Großraum, Nomos, 309. “라이히는 단순히 확대된 국가가 아니며, 거대공간이 확대된 소공간이 아닌 것과 마찬가지다. 라이히는 또한 거대공간과 동일하지 않지만, 모든 제국은 거대공간을 가지며, 이를 통해 국가 영토의 배타성으로 공간적으로 특징지어지는 국가뿐만 아니라 단일 민족의 민족 기반 위로 솟아오른다.”
92. Schmitt, “Der Reichsbegriff im Völkerrecht,” in Positionen und Begriffen, 312: “라이히의 개념 안에는 민족 개념에서 출발하고 국가 개념에 포함된 질서 요소를 완전히 유지하면서도, 동시에 오늘날의 공간 표상과 실제 정치적 활력에 부합할 수 있는 새로운 국제법적 사고방식의 핵심이 있다. 그것은 민족과 국가를 파괴하지 않으면서, 그리고 서구 민주주의의 제국주의적 국제법처럼 오래된 국가 개념의 불가피한 극복으로부터 보편주의적-제국주의적 세계법으로 나아가지 않으면서, ‘행성적,’ 즉 대지-공간적일 수 있다.”
93. Schmitt, “Völkerrechtliche Großraumordnung,” in Staat, Großraum, Nomos, 305.
94. Hooker, Carl Schmitt’s International Thought, 147.
95. Williams, The Philosophy of Japanese Wartime Resistance, 211–13 참조. 거대공간이라는 용어는 가타카나로 グロース・ラウム으로 표기되며 한자로는 広域圈 (kōikiken, 문자 그대로 “광대한 영토의 영역”)으로 번역되고, 이는 다시 대동아공영권과 동일시된다.
96. Williams, The Philosophy of Japanese Wartime Resistance, 247. 니시타니는 “도덕적 에너지(Moralische Energie)가 그러한 모든 변혁의 본질적인 요소”라고 주장했다. 이 주장을 다시 말하자면, 대동아의 윤리적 토대(konpon)는 일본의 도덕적 에너지가 지역의 다양한 민족들에게 전파됨으로써 확보되어야 하며, 이 과정은 그들 각자의 주체성 수준을 향상시키는 데 실질적인 방식으로 도움이 될 것이라는 것이다.
97. Parsley, “Seasons in the Abyss” 참조.
98. Kojève, “Colonialism from a European Perspective,” 117. "맑스와 맑스주의자들은 단 한 가지 방식으로만 진정으로 오류를 범했다. 그들은 자본가들이 다양한 두께의 책에서 맑스주의 이론을 ‘반박했다’고 스스로 믿었던 부르주아 정치 경제학자들과 지식인들이 일반적으로 그랬던 것처럼, 정확히 똑같이 순진하고 근시안적이며, 정확히 똑같이 현명하지 못하고 맹목적이라고 가정했다.“
99. Kojève, “Colonialism from a European Perspective,” 122. “이제, 만약 그러한 국가가 실제로 전체 잉여 가치, 또는 그 이상을 이런 식으로 투자한다면, 우리는 확실히 더 이상 전통적인 의미에서 식민주의에 대해 이야기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때는 사실상 더 이상 아무것도 취하지 않고 있으며, 심지어 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해당 국가가 징수한 것보다 훨씬 더 많이 지출할 때, 그것은 심지어 실제로 반식민주의적이라고 불려야 한다.”
100. Thiel, “The Straussian Moment,” 207. “현대 서구는 스스로에 대한 신뢰를 잃었다. 계몽주의와 탈계몽주의 시대에, 이러한 신뢰 상실은 엄청난 상업적이고 창조적인 힘을 해방시켰다. 동시에, 이러한 상실은 서구를 취약하게 만들었다. 파괴하지 않고 현대 서구를 강화할 수 있는 방법, 즉 목욕물과 함께 아기를 버리지 않는 것이 아닌 방법이 있는가?”
101. Crary, Scorched Earth.
102. Stiegler, For a New Critique of Political Economy.
103. Glasze et al., “Contested Spatialities of Digital Sovereignty,” 6.
104. Glasze et al., “Contested Spatialities of Digital Sovereignty,” 14.
105. Bratton, The Stack, 35.
106. Reuters, “Majority Shareholders Vote in Favor of Delisting Didi from New York,” [https://www.reuters.com/markets/europe/majority-shareholders-vote-favor-delisting-didi-new-york-2022-05-23/](https://www.reuters.com/markets/europe/majority-shareholders-vote-favor-delisting-didi-new-york-2022-05-23/).
107. Chris Rufo, “US House Energy and Commerce Committee Approves Bill that Would Force China-Based Company ByteDance to Sell TikTok,” [https://www.jurist.org/news/2024/03/us-house-energy-and-commerce-committee-approves-bill-that-would-force-china-based-company-bytedance-to-sell-tiktok](https://www.google.com/search?q=https://www.jurist.org/news/2024/03/us-house-energy-and-commerce-committee-approves-bill-that-would-force-china-based-company-bytedance-to-sell-tiktok).
108. 아마도 이러한 의미에서만 시대를 만드는 힘으로서 카테콘의 정치를 논하는 것이 생산적이며, 맛시모 카치아리(Massimo Cacciari)가 The Withholding Power에서 탐구한 바이다. 카치아리는 카테콘적 힘으로 간주되는 제국 권력이 새로운 시대와 그 자신의 죽음의 시대를 모두 만든다고 말한다. “자의식만이 권력이 종말론적 성격을 띠도록 허용한다”(28). 이후 구절에서 카치아리는 또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다가오는 배교를 그 자신 안에 담고, 심지어 예고함으로써 카테콘은 그 자신의 죽음을 위해 일한다. 목적의 이종 발생을 통해 그는 자신을 쓸어버릴 그 씨앗을 ‘양육’하고 있었다는 것을 발견한다”(7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