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마누엘 칸트의 비판 철학은 근대 사상의 전환점이다. 칸트는 ‘비판적’ 탐구를 이성 자체 안으로 끌어들임으로써, 자신의 철학을 그 이전의 ‘독단적’ 철학과 ‘광신주의’로부터 구별지었다. 이 두 가지 합리주의의 과잉들은 그것이 사유할 수 있는 것과 알 수 있는 것을 뒤섞었다. 또한 경험주의는 이와 반대로 체계적 인식의 가능성을 무시했다. 이러한 지적 상황에서 칸트는 이 둘의 중재를 통해 철학에서 일종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을 이루었다고 스스로를 평가했다.
들뢰즈는 두 가지 점에서 칸트 철학의 자기개념 규정을 거부한다. 첫째로 들뢰즈는 자신이 선별한 철학사적 영향력의 지표에 따라, 그의 철학적 실천은 역사적인 합리주의와 경험주의를 곤란한 상황에 처하게 했던 칸트의 주장을 침식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둘째로 그는 칸트의 철학적 스타일, 즉 사유를 온건한 ‘공통감각’의 영향에 따라 이끄는 것에 논쟁적이다. 칸트 철학의 중심적 과제는 주체의 능력에 대한 ‘비판’이다. 들뢰즈에게 칸트적 ‘비판’은 칸트 철학의 도덕적 가치 지향을 넘어서지 않으며, 이것은 들뢰즈의 눈에 프리드리히 니체의 도덕적 관념들에 대항하는 그러한 비판, 즉 진정한 비판철학자의 비판을 따라가지 못하는 것이다. 동시에 들뢰즈는 일종의 잘못된 한계를 거부하는데, 그것은 칸트가 ‘비판’에 부여한 한계이기도 하다. 그렇다 하더라도 들뢰즈는 ‘초월론적 경험론’의 기획을 위해 주체의 능력에 관한 칸트적 비판 프로젝트를 채택하기도 한다.
들뢰즈에게 칸트의 중요성은 그가 칸트의 용어인 ‘능력’(faculties)을 변형하는 방식과 관련해서 기술될 수 있을 것이다. 들뢰즈는 이 개념을 그의 정동(affect)이라는 개념에 끌어다 맞춘다. 들뢰즈는 칸트의 ‘능력’을 개정하면서 칸트 사유의 이원론적 구조가 문제시한다. 이 이원론은 이성이 경험의 장을 규제한다는 어떤 법률적 개념에 따른 것이다.
칸트주의 철학에서 주체는 자연과 경험 사이의 접점이라는 위상을 가진다. 주체에 속한 지성의 범주는 감각을 유기적으로 구성하는 구조를 구축하고, 경험의 가능 조건을 형성한다. 칸트에 따르면 경험의 형식과 일관성은 감각 경험의 ‘소여’(givens)에 따르기보다 정신의 작업에 따른다. 나아가 대상의 인지 가능성의 조건도 정신 자신의 활동성에 있다. 그러므로 칸트의 유명한 언급 즉 ‘일반적으로 경험의 가능 조건은 마찬가지로 경험 대상의 가능 조건이다’라는 말이 있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만약 칸트가 경험을 인상들(impressions)의 자료 복합물 그리고 우리의 인식능력이 스스로 제공하는 어떤 것으로 바라본다면, 그는 또한 철학의 과제를 감각 지각의 환원불가능한 특유성으로부터 경험을 되찾는 범주들의 비판으로서 간주하는 것이다. 이러한 비판에 부속되는 사안들은 감각의 바깥으로부터 그리고 가능한 경험의 영역 바깥에서부터 인식을 추구하는 비판의 재생이라고 할 수 있다. 비판 철학은 이성의 능력 안으로 이와 같은 인식의 확장을 그것의 연구를 통해 근거지움으로써 보존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게 된다. 이런 것과 극명하게 대조적으로 들뢰즈는 능력이라는 언어를 자연과 경험 간의 중추로서의 주체를 파괴하기 위해 사용하며, 이성의 합법적 사용을 판정하는 하나의 법정으로 간주되는 철학의 역할을 전복하기 위해 사용한다. 경험의 장을 질서잡는 미리 전제된 능력들을 가진 주체 대신에 들뢰즈는 능력들이라는 용어를 어떤 정동의 등록(a register of affect)을 기술하기 위해 사용하는 것이다. 들뢰즈적 의미에서 정동의 역능은 능력들을 끊임없이 그들의 허용된 한계 너머로 밀어부치는 것이다. 이것은 어떤 초월론적 기획인데, 왜냐하면 칸트처럼 들뢰즈도 철학이 단지 감각 경험의 ‘소여들’의 흔적만을 따라가지는 않는 개념들을 창조하는 것이라 보기 때문이다.
비록 들뢰즈의 초월론적 경험론이 칸트의 사유로부터 이런저런 요소들, 특히 능력들과 관련된 그의 개념들을 채택했다 하더라도, 그것은 칸트 철학의 확고한 이원론을 비판하기 위해 그렇게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칸트의 처음 두 비판서는 자유와 감각 세계를 가르며 수립된다. 『순수이성비판』에서 비판철학의 과제는 사유 가능한 것을 사유의 감각적 조건에 따라 알게 되는 것과 혼동하는 것에 기반한 환각적 사용으로부터 이성을 떼어 놓는 것이다(K 1996: 8). 관념들과 가능한 경험 대상들의 그와 같은 혼동이 가지는 위험성은 이성이 만들어낸 어떤 구성물이 경험의 영역에 존재하는 어떤 것과 뒤섞이면서 혼란스러워진다는 점이다. 다른 한편 『실천이성비판』은 도덕적 행위가 환경에 영향을 받음으로써 생기는 위험을 내세운다. 여기서 감각적 세계와 주체의 느낌들은 이성의 이념들에게 어떤 필연적인 지향을 제공하지 않는다. 이러한 위협적인 상황은 이념들이 길을 잃도록 만드는 것이다. 따라서 도덕 법칙의 형식주의는, 그와 같은 행위를 이성의 원칙을 엄격하게 고수하도록 정의함으로서, 감각 세계 안에서 어떤 도덕적 행위의 가능성을 지키도록 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이성의 환상에 대한 경향성이든 환경이나 조건이 구성하는 어떤 요청 또는 어떤 잘못된 한계 아래에 그것을 구속하는 어떤 것이든 간에, 비판적인 제한은 그러한 경우들 각각이 어떤 판관의 모델(juridical model)을 따르도록 한다.
칸트의 텍스트들은 욕망이나 정도를 벗어난 사변에 대한 금욕적 감각을 강화한다. 이것은 이성의 이념들의 안전한 확장과 합당한 사용을 규제하는 ‘이성의 법정’에 대한 되풀이되는 참조 안에서 수행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법정을 향한 중재와 조정을 위한 탄원이라는 방식으로 진행되는 ‘전환’은 두 개의 전선에서 싸움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하나는 ‘모든 경험으로부터 독립한’ 이성의 환각들에 대항하여 이루어지며, 다른 하나는 행위에 대한 상황(circumstance, 조건, 환경)의 요청에 대항하여 이루어진다. 삼대 비판서의 마지막 저작인 『판단력비판』에서는 이러한 경험과 자유 간의 균열을 판단력을 통해 중재하려는 시도다. 이 저작에서 비로소 칸트의 긍정적 영향력이 드러나는데, 이 점이 들뢰즈가 가장 강하게 주장하는 지점이기도 하다. 들뢰즈와 가타리의 『철학이란 무엇인가?』에서는 이 마지막 저작이 첫 번째와 두 번째 비판서의 생각들로부터 어떤 괄목할만한 결별의 흔적을 드러낸다고 논하고 있다. 즉 『판단력비판』은 ‘ ... 칸트의 후계자들이 여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노년의 자유분방한 저작인데, 여기서 모든 정신의 능력들은 그 한계를 벗어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한계들은 칸트가 그토록 신중하게 그의 최초 저작들에서 수립하였던 바로 그것이다’(D&G 1994: 2).
능력들과 그것의 합법적 역할에 관한 법률적 개념들은 들뢰즈에 따르면, 철학으로 하여금 이성의 한계를 해결하는 어떤 것을 수립하도록 하는데, 이것은 ‘숭고’라는 개념을 통해서이다. 중요한 것은 들뢰즈가 칸트의 숭고에 관한 글을 독해하면서 그것을 매우 기이한 방식으로 다룬다는 점이다. 칸트 사유의 범위 내에서 보자면 숭고는 주체의 이성적 능력을 강화하는 것인데, 이는 모든 자연적 형식을 초월하는 것으로서 이성을 보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은 틀림없이 칸트 형이상학의 가장 빛나는 부분이기도 하다. 그런데 들뢰즈는 능력들의 합당한 한계에 n승의 역능을 제한하려는 칸트의 시도에 맞서면서 숭고의 경우 능력들이 규제되지 않은 관계들로 들어서게 되고, 이러한 통제되지 않는 관계들이 능력들을 이끌어가는 것이 된다고 논한다(D 1983, D 1984 그리고 D 1994를 보라).
들뢰즈의 철학적 기획에 있어서 칸트의 이러한 직접적 영향 외에도, 칸트의 위치는 들뢰즈가 취급한 철학자들의 지형에서 매우 이례적이라고 할 만하다. 들뢰즈는 그의 칸트에 관한 책에서 그의 ‘적’[칸트]에 대해 알기 위한 것이 바로 그 책이라고 기술한다. 그러니까 이 책은 들뢰즈가 구축한 철학자들[자신이 영향을 받은 철학자들]의 만신전(pantheon)에 속하지 않는 철학자를 논한 유일한 책인 것이다. 칸트의 특유한 위치는 들뢰즈가 그 자신의 기획이라고 말한 ‘초월론적 경험론’의 귀결로 이해될 필요가 있다. 이렇게 들뢰즈는 자신의 비판이 과거와 불화하는 것이라고 믿었던 합리주의자이자 경험주의자인 사상가에게로 돌아간 것이다. 그러나 들뢰즈의 칸트로의 회귀는 ‘능력’과 ‘초월론적’ 사유라는 칸트적 언어를 통해 수행된다.
- Alison Ross, ‘Kant, Immanuel(1724-1804)’, ed., Adrian Parr, Deleuze Dictionary, Edinburgh University Press, 2003, 137-140
(본문주석 문헌들)
Kant, Immanuel (1996), Critique of Pure Reason, trans. Werner S. Pluhar,I ndianapolis: Hackett.
Deleuze, Gilles and Félix Guattari (1994), What is Philosophy?, trans. Hugh Tomlinson and Graham Burchell, New York: Columbia Universitv Press.
Deleuze, Gilles (1983), Nietzsche and Philosophy, trans. Hugh Tomlinson, London: Athlone Press.
Deleuze, Gilles (1984), Kant's Critical Philosophy, trans. Hugh Tomlinson and Barbara Habberjam, London: Athlone Press.
Deleuze,Gilles (1994), Difference and Repetition, trans. Paul Patton, London: Athlone Press; and New York: Columbia University Press.
우월한 경험론은 선험적 경험론이라고 부를수도 있으며, 초월론적 경험론과도 밀접한 관련을 지닌다. 이것은 감각되지 않는 것, 사유되지 않는 것, 상상할 수 없는 것들이 사유를 강제하는 과정과 방식을 기술하는 것이기도 하다. 또한 인식능력들을 n승의 역량으로 끌어올리는 방향을 전개하는 것이다.
들뢰즈에게 우월한 경험론이 최초로 발견되는 것은 흄에 관한 연구를 통해서다. 『경험론과 주체성』에서 들뢰즈는 “정신은 언제 주체가 되는가?”라고 묻는다. 그리고 “그것은 정신이 자신의 민첩성(vivacité)을 동월할 때, 민첩성이 정신의 한 부분이 될 때, 그리고 이것이 다른 부분과 소통하고, 이렇게 취해진 모든 부분들이 새로운 어떤 것을 생산하고 서로 공명할 때”라고 대답한다(ES 1953, 151).
우리는 이러한 ‘우월한 경험론’에 대한 정의 속에서 즉각 충격적인 점을 발견한다. 즉 들뢰즈의 철학을 내재성의 철학이라고 확고히 주장하고, 여기서 말하는 ‘경험론’이 바로 그 내재성을 드러낸다고 본다면 ‘우월한’(또는 ‘초월론적’)이라는 용어는 위계의 형이상학으로 당장 회귀하는 것으로 보이는 것이다. 하지만 들뢰즈에 따르면 ‘우월한 경험론’ 혹은 ‘선험적 경험론’은 잠재적인 것, 이념의 경험론이다(DR 1968, 356). 이 경험론은 능력들을 극한으로 밀어붙이고, 그것들을 n승의 역량으로 끌어올리기 위한 것이다. 그리고 이 극한으로 밀어붙여진 능력들의 대상은 바로 특이성(singularity)이다.
하지만 여기서 우리가 어떤 ‘인식주체’를 상정하는 것은 가당치 않다. 왜냐하면 들뢰즈에게 주체는 기껏해야 수동적 종합에 따라 구성되는 선험적이지만, 애벌레와 같고, 와해된 금이 간 주체이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다만 흄이 말한 그러한 정신의 ‘민첩성’이 활동하는데, 이것이 칸트적 의미의 ‘능력’을 압도하는 것 이다. 따라서 우리가 ‘선험적’, ‘초월론적’, ‘선험적’ 경험론이라고 말할 때, 칸트적인 초월론에 머물러서는 곤란하다. 그것은 곧장 정신으로 하여금 칸트적 환각이 활동하는 무대가 되도록 할 것이다.
- Arnaud Villani, Robert Sasso ed. Le Vocabulaire de Gilles Deleuze, Vrin, 2003, 127-29 참고.(신지영 옮김, 『들뢰즈 개념어 사전』, 갈무리, 2012, 278, 번역 수정)
(본문주석 문헌들)
Deleuze, Gilles, Empirisme et subjectivité: Essai sur la nature humaine selon Hume, PUF., 1953
Deleuze, Gilles, Différence et répétition, PUF., 19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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