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뢰즈의 플라톤 비판에서 ‘인위적’ 재생산들이 표현되는 방식은 오래된 [플라톤식의] 복사본의 방식이 아니라, 미래에 대한 어떤 믿음이나 자연에서의 어떤 카오스적 변화에 관한 표현 방식이다. [다시 말해 인위적인 것들, 문화적인 생산물과, 과학적 결과물들은 어떤 원본으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니다. 그러한 것들은 원본 자체가 존재하지 않으며, 그들 자신이 인위적인 시뮬라크르들이다. 다만 이런 것들은 미래를 앞당겨 놓고 그것을 현행화하는 과정에서 발생한다. 그 미래는 사실상 예측불가능한 지점에 놓여 있으므로 카오스적 변화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그 ‘도래할 것’으로서의 미래라는 카오스에서 인위적인 창조물들(문화, 개념, 철학 자체)이 선별된다. 따라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선별하는 방법, 그것의 발명이다.]
- Eugene B. Young, Gary Genosko, Janell Watson, The Deleuze & Guattari Dictionary, Bloomsbury, 2013, 286 참조.
들뢰즈는 1990년에 클레-마텡(Clet-Matin)이 자신에 대해 쓴 책의 서문에서, ‘시뮬라크르’ 개념이 그의 철학에서 결코 본질적인 부분이 아니라고 언급한다. 그러나 시뮬라크르 개념은 들뢰즈의 동일성 비판에 있어서 가장 강력한 형식들 중 하나로 간주된다. 또한 이 개념은 어떠한 선행 모델의 사본들도 아닌 차이 그 자체에 의해 다양화되는 어떤 세계에 대한 긍정이기도 하다.
간단히 말해서 ‘시뮬라크르’는 ‘복사’를 의미한다. 『의미의 논리』의 들뢰즈가 플라톤을 가장 밀착해서 논하는 부분에서 이를 알 수 있다. 플라톤은 모델, 사본, 그리고 시뮬라크르에 해당되는 사본의 사본이라는 세 수준의 위계관계를 내놓는다. 여기서 플라톤의 진정한 관심사는 모델로부터 시뮬라크르는 제거하는 어떤 절차인 바, 시뮬라크르는 부정확한 것이며, 모델을 배신하는 것으로 간주된다. 그는 이러한 위계를 이런저런 장소들에서 사용하며, 각각의 경우마다 ‘거짓된 지원자’ 또는 시뮬라크르를 구별하는 문제를 제기한다. 예를 들면, 『소피스테스』에서 소크라테스는 우리가 선(모델)을 추구하는 철학자(좋은 사본)와 이익과 명성을 추구하려고 철학자와 동일한 기술들을 사용하는 소피스트(나쁜 사본-철학자의 시뮬라크르)를 구별하는 수단들을 논한다.
들뢰즈는 플라톤에게 모델과 사본의 구별이 가장 중요한 것으로 간주되지만, 그보다는 참된 사본과 거짓된 사본의 구별이 플라톤주의의 핵심이라고 언급한다. 사본의 사본은 모델로부터 떨어져 나온 것으로서, 모델-사본 체계 전체를 의문에 부치고, 그것을 순수 시뮬라크르의 세계와 대면하도록 강제한다. 들뢰즈에게 이것은 플라톤 체계의 도덕적 본성을 폭로하는 계기가 된다. 즉 플라톤 체계는 근본적으로 동일성, 질서, 그리고 시뮬라크르의 근거없음의 운동들을 넘어 어떤 모델을 안정적으로 지시하는 것을 가치있게 보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들뢰즈가 세계를 현상들, 즉 현재 파괴되어 가고 있는 실재 세계의 ‘가상’(simulation)으로 구성된다고 생각한다는 뜻은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현상’이라는 말 자체의 의미가 의문에 부쳐진다는 것이다. 시뮬라크르는 세계 뒤 또는 배후의 어떤 것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를 구성하는 것이다. 따라서 여기서 들뢰즈에 의해 침식되고 있는 대상은 존재에 대한 표상적 이해방식이고, 이에 수반되는 존재에 관한 도덕적 해석이다. 나아가 이러한 이해방식은 마찬가지로 문제적인 어떤 특정한 부정성을 포함하는 것이다. 어떤 종류의 사본이 되는 또 다른 사본이란 그것이 아닌 어떤 것을 지칭하는 것이 틀림없다. 즉 어떤 사본은 현존하지 않는 어떤 것을 대표하는 것이다. 그것은 이러한 다른 어떤 것(언어학이 ‘지시체’라고 부르는 것)을 요구하는 바, 이것이 바로 사본에 의미와 중요성을 부여한다.
다른 한편 시뮬라크르는 이러한 것과 단절하는 것으로서, 자신의 힘을 위해 그것을 넘어선 어떤 것에 의존하지 않는다. 여기서 ‘힘’이란 어떤 것을 단지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시뮬라크르는 세계라는 범위로부터, 그리고 모델에 대한 지시 없이 동일성들을 생산할 수 있다. 이 경우에 철학자는 선을 추구하는 자가 아니라, 세계 안의 물질적 유효성으로터 새로운 개념들을 창조할 수 있는 사람인 것이다. 개념들은 뭔가 행위하는 어떤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안티오이디푸스』와 『천의 고원』에서 출현하게 될 어떤 생산-기계로서의 세계를 이해할 만한 실마리를 볼 수 있다.
들뢰즈는 또한 시뮬라크르에 대한 사유를 영원회귀의 사유와 연결한다. 들뢰즈가 자주 주장하는 바에 따르면, 우리는 영원회귀를 되돌아오는 것과 관련하여, 그리고 동일성이 아니라 차이의 긍정과 관련하여 이해해야 한다. 영원회귀는 좋은 사본과 나쁜 사본을 구별하는 것이라기 보다, 시뮬라크르 자신의 생산적 역능에 기반하여 모델/사본이라는 그림 전체를 거부하는 것이다. 모델/사본은 동일성의 가치 위에 근거하고 있으며 세계에 부정성을 주입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 Jonathan Roffe, ‘SIMULACRUM’, ed., Adrian Parr, Deleuze Dictionary, Edinburgh University Press, 2003, 25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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