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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판데믹, 정치적인_것의_묵시록

by Nomadia 2020. 2. 29.

 

#판데믹, #정치적인_것의_묵시록

 

‘코로나 19’ 바이러스 확진자가 1000명을 육박하고 있다. 전파 양상도 전방위적이다. 개인간은 물론, 가족, 단체를 막론하고, 2차 3차 감염에까지 이어진다. 대구-경북 지역은 거의 ‘봉쇄’ 수준에 이르렀다.

 

더 무서운 것은 이 바이러스가 잠복 기간에도 전염력이 강하다는 사실이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으니 사람들의 불안과 공포가 극에 달한다.

 

더 심각한 것은 이 병의 원인이 무엇인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우한 수산시장의 동물 도살에서 시작되었다는 설도 있고, 실험실에서 유출되었다는 설도 있다. 변종 바이러스임은 확실하지만 취약점이 발견되지 않으니, 퇴치할 수 있는 약도 없다.

 

이러니 원인을 아는 것 따위는 사람들의 안중에 없는 것으로도 보인다. 하긴 하루하루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확진자와 사망자 집계를 앞에 두고 전문가조차 ‘방역’ 외에 다른 조치를 생각할 겨를이 없다. 일종의 지성적인 자포자기 상태에 도달한 것이다.

 

몇 가지 선택지가 남는다. 전면적인 허무주의 안에서 넋놓고 죽음을 기다리거나, 지금 당장 ‘탓’(허상으로서의 원인)을 할 대상을 찾는 것, 또는 국가 방역시스템을 지켜보면서 성찰의 자세를 취하는 것이 그것이다.

 

생물학적인 실체(entity)로서의 바이러스가 인문적인 정치경제학 안에서 덧코드화되면서 생명정치(biopolitics) 또는 생명권력(biopower)이 시작되는 지점도 이곳이다.

 

생명정치에서 중요한 것은 현상의 원인을 진단하는 합리적 과정이라기 보다, 정치적 기량을 동원하여 인간의 신체를 분할하고 재조합하며, 이것을 계급과 연령이라는 인구학적 수준에서 재배치하는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정치적 공간 안에 생명적 주체를 생산 또는 재생산한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전면적인 허무주의를 피하고, 지금 당장 요청되는 부차적인 원인을 전경화하면서 사회적 결속의 해체와 가치의 붕괴를 방지하기 위해서다.

 

이럴 경우, 실재 원인에 대한 성찰은 한가한 담론으로 전락한다. 보다 중요한 것은 ‘경계’를 명확하게 하는 것, ‘적’을 분명히 지정하는 것, 통계적인 유의미성이다. 그리고 사태가 진정되도록 통치권 주위로 주체들을 호명하는 것이 남는다. 통치권이 호명하는 주체는 그 자체로 분할된 신체성을 띈다.

 

한편으로는 ‘미확진자’가 있으며, 다른 편에 ‘확진자’가 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적’이 호명되는데 그것이 ‘신천지’다. 결과적으로 여기에 ‘정상’은 존재하지 않는다. 모두가 잠재적인 ‘확진자’로서의 ‘미확진자’며, 주위의 사람들이 모두 예후할 수 없는 ‘신천지’일 것이다.

 

바이러스는 전면화된다. 31번 확진자라는 익명의 주체는 사회적 네트워크를 심대하게 교란하는 거대한 상징이 되고, ‘신천지’는 이 31번 확진자의 클론들이 생체무기를 ‘우리’ 사회에 난사하는 거대한 테러집단이 되는 것이다. 이들에 대한 공격은 보건위생법 상의 적법 조건을 충족시킨다. 이제 “전쟁 상황”인 것이다.[1]

 

전광훈을 비롯한 수구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이 사람들의 불안을 조롱하면서, 집회를 강행한 결과 이들도 ‘31번-신천지’라는 상징적 외연 안에 들어오게 된다. 국가 기구는 미확진자로서의 ‘국민’과 확진자로서의 ‘31번-신천지’를 나누는 경계를 더욱 예리하게 다듬어 나간다. 전광훈은 구속되고, 과천 신천지 본부는 말 그대로 ‘털린다.’

 

우리는 이 과정에서 생물학적 바이러스가 진정한 의미의 ‘정치적 주체’가 되어가는 것을 목도한다. 여기에 ‘대구-경북’이라는 지역성까지 더해지면, 완연하게 한국적인 바이러스-정체성이 형성된다. 이렇게 해서 적을 공격하거나, 공격을 당하는 쪽은 자신들이 ‘피해자’고[2] 상대방이 ‘가해자’라고 여기지만, 이것은 모두 환영일 뿐이다.

 

분명 공격의 주체는 바이러스이며, ‘우리 모두’가 감염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감염은 생물학적일 뿐 아니라 인문학적-정치적이다.

 

기존의 정치와 종교의 그 분할선(진보/수구, 정통/이단)을 맹렬하게 질주하는 바이러스는 적대의 품 안에서 더 잔인해 진다. 왜냐하면 생물학적 공포는 이미 적대를 타고 넘어, 정치적 혐오, 사회적 배제를 곳곳에서 양산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침을 하거나, 구역질을 하거나, 얼굴이 붉어지거나 ... 등등의 행태는 직감적으로 ‘31번-신천지’와 연결된다. 피하고, 두려워한다. 모두가 이렇게 될 때 모두가 서로에게 적대자며, 분할선은 집단이 아니라, 마침내 개인들 간에 놓여진다.

 

분명히 하자. 우리가 두려워하는 것은 무엇인가? 31번-신천지인가? 잠재적인 확진자로서의 타인들인가? 아니면 자기 자신인가? 또는 (신천지의 입장에서) 문재인 정부나 이재명 경기지사, 박원순 서울 시장을 필두로 한 방역당국인가? 권영진 대구 시장의 무능인가?

 

아니다. 우리가 두려움에 떨며 복종하고 있는 것은 비인간(nonhuman)인 바이러스다.[3] 이것은 우리가 인정하고 싶지 않은 두려움이며 복종이기 때문에 드러나지 않으며, 그럴수록 더욱 광폭해질 것이다.

 

바이러스라는 이 비인간 주체의 광포함은 이번 사태가 해결된다고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에 핵심이 있다. 이 광포함을 달래기 위해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매 번 되풀이되는 ‘신종’ 바이러스의 창궐에 수많은 희생제물을 바치는 것 뿐이다. 혹자는 이것을 ‘자연의 파업’이라고 하지만[4] 따져 보면, 그 자연이란 ‘인위’와 구분되지 않는다.

 

바이러스를 생산한 그 자연의 생산력에 인간의 생산력도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인간의 생산력을 추동하는 과학과 기술은 이제 자연의 회복력이 허용하는 한도에서 국지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으며, 예컨대 유전공학과 인공지능이라는 방식으로, 전면적인 변형을 현실적으로 수행하면서 인간 자신도 변형한다.

 

그러므로 근본적인 해결은 요원하다. ‘코로나 19’는 일부일 뿐이다. 주기적으로 찾아 오는 전세계 유행병은 앞으로도 ‘신종’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끊임없이 등장할 것이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비명을 지르며 적대와 혐오의 전쟁터로 끌려갈 것이다.

 

여기에 어떤 정치적인 것[5]의 희망이 있는 것일까? 나는 ‘아직’ 희망은 없다고 본다. 이를 생명정치의 임계점이자 정치적인 것의 종언이라고 부르고 싶은 것이다. 판데믹 안에, 정치적인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오직 비-인간 바이러스의 전제적 통치만이 창궐할 뿐이다.[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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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재명, 지금은 “전쟁상황”> https://sedaily.com/NewsView/1YZ27M7HUS 참조.

[2] <신천지, 코로자 19 “최대 피해자” 주장>

https://www.yna.co.kr/view/AKR20200223061800005 참조.

[3] 늘 우리는 ‘인간-나-너-우리’라고 생각한다. ‘비인간-인간-나-너-우리’는 성립하지 않는 것이다. 이 도식은 말 그대로 침탈이자 폭력으로 현상한다.

[4] <누가 우물에 독을 풀었나>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2002242043025&code=990100&utm_campaign=list_click&utm_source=reporter_article&utm_medium=referral&utm_content=%C3%A4%C8%BF%C1%A4_%B1%E2%C0%DA%C6%E4%C0%CC%C1%F6 참조. 이 주장은 지금이 인류세(Anthropocene)임을 고려한다면, 다소 안이한 이분법에 따라 논의를 진행한다.

[5] ‘정치’와 ‘정치적인 것’이 구분은 칼 슈미트에서부터 시작되어 최근의 랑시에르에 이르기까지 지속된다. 나는 이에 따라 ‘정치적인 것’(le politique)을 공통성을 창조하는 다중들의 네트워크라는 의미로 사용한다.

[6] 나는 글을 읽어주는 분들에게 빚을 진 기분으로, 진부한 희망을 전달하고 싶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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