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서지: Karen Barad, Meeting the Universe Halfway, Durham: Duke University Press, 2007, 247-275.
번역: 박준영(노마씨, 수유너머 104)
_ ‘< >’ 안의 숫자는 원문의 페이지 숫자임
_ '[ ]'의 숫자는 주석의 숫자임.
_ 주석은 번역하지 않음.
<247>
7장 양자 얽힘-실험 형이상학과 자연의 본성
과학학의 전통은 과학적 실천의 본성에 대해 성찰하기 위해 스스로를 참여자가 아니라 어떤 구경꾼으로 위치시키는 것이다. 과학의 도구를 우리 자신의 손에 쥐기 보다는, 과학적 실천의 분위기(실험실 냄새의 가장 훌륭한 혼합물들, 예컨대 지하 실험실의 확실한 곰팡이 냄새, 기계 그리스의 냄새, 유해한 화학물들 그리고 여타 유기적이고 비유기적인 물질과 이론과 모델 구성의 달콤한 노력)를 풍부하게 이끌어내고 관통하도록, 그것들이 우리의 바로 그 세포들을 침범하는 감각들이 혀와 감정을 움직이도록 할 때, 우리의 열정으로 어떤 선택 샘플을 밝히고, 우리의 입술에 기구들을 장착한다. 대개의 경우 그들이 민족지학자들이든 철학자든 또는 역사학자든 과학학자들은 이런 즐거운 중개인의 역할을 담당한다.[1] 나의 기획은 과학을 조금 거리를 두고 정립하는 과학학 접근법에서 출발한다. 내 생각에 과학학과 자연에 관한 연구는 같이 간다.
이것은 물리학자인 닐스 보어에게도 진실이었다. 보어는 바깥으로부터 과학에 대해 생각함으로써가 아니라 과학을 함으로써 그의 인식론적 교훈을 배웠다. 사실상 보어에게 이러한 고찰들은 밀접하게 연결된다. 보어에 따르면 양자 물리학의 중심적 가르침은 우리가 우리가 이해하고자 하는 자연의 부분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자연의 본성에 관한 총체적인 고찰은 과학적 실천들의 본성에 관한 부수적인 고찰을 포함한다. 특히 보어는 과학적 실천들이 자연의 구성요소들 간의 간-행으로 이해되어야 하며, 우리의 지식-형성 실천들은 우리가 기술하는 현상에 영향을 주고 그것의 부분이 된다고 논증한다. 우리의 가장 뛰어난 과학 이론가들이 우리에게 말한 바에 따른 자연의 본성과 과학의 본성 둘 모두를 이해하기 위한 보어의 자연주의적 언급은 그의 양자 물리학 해석의 발전 안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2] 질문은 그가 이러한 언급에 충실하게 머무르는지 아닌지, 또는 <248>그가 궁극적으로 인간 관찰자가 자연의 본성에 기초적인 존재라고 마무리 짓는 지점에 기반하는 인간주의적 가정들을 받아들이는지 아닌지이다.
과학과 과학학을 함께 실천하기 위해, 즉 자연과 하나의 얽힌 실천으로서 자연에 관한 연구를 연구하기 위해, 나 자신의 자연주의적 언급을 실행할 때, 나는 바깥으로부터 과학을 반성하는 과학학의 전통적 실천과 단절한다. 즉 나는 단순히 과학을 반성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과학적 실천의 본성에 대한 얽힌 질문들을 제기하는 동안 과학적 실천에 연루된다. 특히 이 장에서 나는 양자 역학의 기초에 놓인 일련의 해결되지 않은 질문으로 주의를 돌리며, 그것이 의미하는지 바를 어떻게 이해하는지의 문제로 다시 돌아올 것이지만, 이번에는 과학과 하나의 얽힌 시도들로서 과학학을 실행하기 위해 보다 새로워진 도구들을 가지고 그렇게 할 것이다. 즉 양자 물리학에 의해 제기된 근원적인 철학적 도전들로 행위적 실재론의 전개를 시작했으므로, 나는 주요한 문제로 되돌아가 행위적 실재론이 몇몇 해결되지 않은 기초 문제들을 해결하는데 도움을 줄 어떤 유용한 통찰을 제공하는지에 대해 묻는다. 나는 보어의 양자 물리학에 관한 해석을 설명한 3장에서 시작된 과제로 돌아감으로써, 그리고 보어가 과학적 실천에서 인간 참여자에 부여한 역할을 상세하게 음미함으로써 시작한다. 나는 보어의 인간 개념, 인간 관찰자, 그리고 인간의 인식적 실천에 대한 의존이 어떤 설득력 있는 해석을 제공하는 그의 능력을 훼손한다고 논증한다. 따라서 나는 보어의 경우에서보다 더 신뢰할 만한 자연주의적ㅇ니 해석을 제안한다. 특히 나는 행위적 실재론에 기반하는 양자 물리학의 해석을 제안한다. 요컨대 이 장에서 나는 새로운 과학적 결과를 제안한다. 즉 인간주의적 요소들을 제거하는 보어의 해석을 기초지우는 양자 물리학을 해석하는 방식이 그것이다.
나는 이 장을 물리학에 대한 배경지식이 조금도 없는 독자들이 접근가능한 것으로 만들도록 하고자 한다. 이 주제는 쉽지 않지만, 그것은 수학이 어렵기 때문이 아니다. 사실상, 이 전제 장에서 두 가지 다른 종류의 정식만이 있으며 그것들은 다양한 것과 부가적인 것의 수학적 작동 외의 다른 것을 초래하지 않는다.[3] 그러한 도전은 아래에서의 논증들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며, 이것은 약간의 인내심 이상의 것이고, 특별히 우리의 직관에 반하는 결과가 나올 때 그러하다. 양자 역학의 기초 안의 주제들은 섬세하며 복잡하고, 그러므로 필수적인 세부사항들에 주의를 기울일 때, 우리가 엄격하게 주제에 연루되는 것이 결정적이다. 이것은 손쉬운 질문과의 어떤 신중한 연루에 있어서 본질적이다. 형이상학자들, 과학 철학자들, 그리고 후기구조주의자들과 마찬가지로 정체성의 본질, 존재, 의미화, 그리고 인과성과 같은 그것에 가장 중심적인 어떤 것들을 포함하면서, 매력적이며 오래된 <249>철학적 궁지를 위한 근거를 검토하는 것으로서 기여한다. 사실상 그 모든 세부사항들과 뉘앙스를 파악하지 않는 사람들을 위해 발견되는 것들로 풍부하다. 다른 한편 독자는 단순히 매혹되는 것, 즐거운 것 그리고 신비로운 것에 대해 그리고 양자이론의 잘 꾸며진 애매함들이 여기서 만족스러운 것을 발견하지 못할 것이라는 돈키호테적인 촌극에 의해 관심을 가진다. 내 생각에 거기에는 이미 너무나 많은 과도하게 단순화되고, 혼란스러우며, 양자 물리학의 용도에 관한 눈부신 묘사들이 있다. 사실상 여행에 착수하기보다 오히려 방관자로 있게 되는 사람들에게 쓸모있는 많은 선택지들이 있다. 나는 후기구조주의 또한 공원에서 자유롭게 거닐지 않는 인문학들과 사회 과학의 장에서 보다 편안한 산책을 느끼는 독자들을 상기하고자 한다. 우리는 그러한 전망을 성공적으로 탐색하기 위해 요청되는 어렵고 힘든 노동에 헌신한다. 그러나 난해한 지대를 통과하는 여행은 그만한 가치가 있으며, 심지어 가장 훌륭한 위상학적 지도는 단순히 체현된 경험의 아름다움만을 파악하는 것은 아니다.[4]
앞서의 단락에서 공간적 은유와 연구주제의 목적의식적 전개는 신중하게 그리고 역설적으로 의도된다. 나는 망설이는 여행자를 고전적인 여행의 은유를 사용하여 과학적 발견의 모험을 드러내기 위해 부추기고, 유혹하고 애타게 한다. 그 경로는 단일하거나 곧장 나 있지 않고, 한 발 마다 많은 얽힌 수준들, 여행에 동참하지 않는 독자들을 위해 지평 너머로 남겨질 완전히 복잡한 양상들이 일어난다. 나는 우선 장면을 설정하고, 주요한 논점들 중 몇몇을 지정하면 그때 근거가 우리 발 아래에 떨어진다.
예비적 고찰
"물론, 만약 당신이 그 기호들을 관찰된 양적인 것에 결합하는 한, 모든 이론은 진리이다.
"- 아인슈타인, 슈레딩거, 「과연 에너지는 단순히 통계적인 개념일 뿐인가?」에서 인용
양자이론이 태어난지 75여년 지난 후, 핵심적인 질문이 그것의 기초와 관련하여 남겨졌다. 수식체계는 존재한다. 뉴턴의 방정식으로 형식화된 고전역학의 법칙들은 양자 역학의 슈레딩거 방정식에 의해 대체되어 왔다. 하지만 해석적 질문 – 수식체계를 해석하는 방식에 대한 질문 – 은 해결되지 않은채 남겨진다.
실제로 1926년 말에 이르러 양자 역학 법칙은 두 가지 분리된 공식들로 등장했다. <250>하이젠베르그, 본(Born)과 조단(Jordan)의 행렬 역학(하이젠베르그의 생각에 관한 탐구는 1925년 초여름에 발전되었다) 그리고 슈레딩거의 파동 역학이 그것이다. 우순 둘 사이에는 경쟁이 있었지만, 1926년 말에 슈레딩거는 두 공식들이 “기초 가설들, 수학적 장치 그리고 일반적 지침에 있어서 그 명백한 분리에도 불구하고” 수학적으로 대등하다는 것을 발견했다(Jammer 1974, 22). 보어는 이 수식체계를 보충적으로 수용한다. 즉 슈레딩거의 공식은 물질의 파동적 행위를 형상화하는데, 반면 하이젠베르그의 공식은 보충적인 입자 행위를 형상화한다. 하지만 이러한 연결 너머의 애매함이 이 수학적으로 등가인 수식체계를 해석하는 방식에 대해 남아 있다. (수학적인 등가성이 있기 때문에, 물리학자는 단수형으로 양자수식체계라고 말한다.) 핵심논점은 다음과 같다. “수식체계는 아직 본격적인 이론이 아니다. 이론은 일련의 [...] 대응 규칙들과 설명 원리 또는 모델을 담고 있어야 한다”(ibid., 23). 엄격하게 말해서 그렇다면 양자 역학은 이론이 아니라 하나의 수식체계이다. 또는 아인슈타인이 슈레딩거와 그의 새로운 아이디어에 대해 논쟁할 때 이야기했던 바, “물론 모든 이론은 진리다. 당신이 그 기호들가 관찰된 양적인 것들을 적합하게 연결하는 한에서”[5]
그 해결되지 않은 해석적 구조에도 불구하고 양자역학 이론은 과학사에게 가장 정확한 것으로 신뢰받고 있다. 이것이 어떻게 가능한가? 일관된 해석틀이 없는 상황에서 대체 물리학자들은 어떻게 그들이 계산한 것과 측정한 것을 관련짓는 법을 아는 건가? 이 분명한 효과를 위한 기초는 무엇인가? 수식체계가 해석적 구조의 정립 없이도 그토록 광범위하게 과학 공동체에 의해 수용되어 왔던 것은 어째서인가? 이러한 것들은 중요한 질문이다. 이러한 주장이 의미하는 바를 음미해 보자.
우선 물리학자가 어떤 방정식을 해결했다고 주장할 때 그것이 의미하는 바를 고려해 보자. 예컨대 뉴턴의 방정식 F=ma를 가져오자. 이 방정식은 다음과 같은 관계성을 기호화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힘은 질량과 가속도의 곱과 같다. 즉 주어진 입자의 질량 m에 가해지는 외적인 힘 F는 질량에 대한 힘의 비율에 의해 주어진 것, 즉 가속도를 가진 입자를 규정한다. 이제 가속도는 속도의 변화율인데, 이는 그 자체로 위치의 변화율이다(뉴턴의 방정식을 2차 미분방정식으로 만드는 것). 만약 우리가 어떤 시간 t라는 최초 조건 뿐 아니라 주어진 질량을 가진 입자에도 가해지는 일련의 힘들을 안다면, 그때 입자의 궤도를 결정하는 것, 즉 그 위치가 시간 안에서 어떻게 변화하는지 결정하는 뉴턴의 방정식을 풀 수 있다. 특히 이는 시간과 관련되는 2차 미분방정식이므로 뉴턴 방정식의 해결은 두 가지 <251>변수들, 즉 최초 위치와 최초 운동량(운동량은 질량 곱하기 속도다)의 최초값에 관한 설명을 요청한다. 뉴턴의 방정식은 결정론적이다. 즉 최초 위치과 운동량이 주어지면(힘들의 집합과 입자의 질량은 함께 간다), 모든 시간에 걸친 입자의 전체 궤도가 결정되고, 전체 과거와 미래가 계산가능해지는 것이다.
이제 양자역학의 경우로 되돌아 오자. 슈레딩거 방정식도 마찬가지로 미분방정식이다. 뉴턴의 방정식에서처럼 슈래딩거 방정식도 질량 m의 입자에 가해지는 힘들을 표현하는 어휘(또는 좀 더 정확히는 관계적인 잠재적 에너지)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해를 규정하는 최초(또는 경계적인) 조건들을 표시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하지만 우리가 계산하는 것은 입자의 궤도가 아니다. 오히려 우리는 시간과 공간에서 변화하는 ‘파동 함수’를 위해 해를 구한다.[6] 슈레딩거의 공식이 물질의 파동 운동을 해결한다는 것을 상기하자(3장의 파동-입자 이원성을 보라). 그러나 이러한 ‘파동’은 파도나 음파와 같은 의미의 파동이 아니다. 그것이 ‘꿈틀거리며 움직이는’이라는 것은 분명하지 않으며, 사실상 슈레딩거 파동함수의 값들은 실재, 수라기 보다 상상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은 처음부터 어떤 물리적 양을 직접 표현하는 것으로 문자 그대로 취해질 수 없지만, 몇몇 물리적 양과 관련되어 보다 복잡하게 존재할 수 있다.[7] 슈레딩거 방정식이 많은 상이한 물리적 상황들에 적용될 수 있다는 사실은, 특히 만약 당신이 파동 함수가 무엇지 안다면, 마땅히 좋은 일이다. 그러나 사실상 이것은 여전히 풀리지 않는 기본적 주제들 중 하나다. 물리학자들은 파동 함수가 우리가 물리 체계나 무엇이 존재하는지에 대해 알 수 있는 바에 대해 말해주는지 아닌지에 대해서조차 일치하지 않는다.[8] 양자 물리학의 상이한 해석들은 파동 함수를 다르게 이해한다.
해석 주제를 논의하게 될 때, 많은 가능성들이 제기되어다. 그러나 그것이 계산 과정에 들어서면, 소위 말하는 코펜하겐 해석을 사용하는 어떤 수단적 합의가 있게 된다. 물리학자들이 일반적으로 그들이 이번엔 ‘표준적인’ (코펜하겐) 해석을 적용한다고 할 때의 의미는 그들이 파동함수(의 제곱 절대값)을 질량 m의 입자가 주어진 위치에서 주어진 시간에 발견될 개연성(농도)을 드러내기 위해 취하고 있다는 뜻이다. 본질적으로 논점은 이것이다. 슈레딩거 방정식은 우리가 주어진 물리적 환경에 대해 아는 것이 가능한 바 모든 것을 계산할 수 있도록 하며, 그것은 뉴턴 물리학에서처럼 어떤 정확한 궤도가 아니라, 입자가 어떤 시간 t에서 측정될 때, 어떤 위치 x에서 발견될 개연성의 상술이다. 많은 상황들에 그토록 효과적으로 그 자체 작동하게 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상술]태도이다. 예컨대 파동함수는 에너지 상태들의 불연속적인 집합을 계산하는데 활용할 수 있는데, 이때 에너지 상태는 <252>원자 안에서 실험 측정에 대해 이 값들을 검사하기 위해 전자에 의해 점유된다. (전자가 더 높은 에너지 준위에서 더 낮은 것으로 ‘비약’할 때, 그것들은 어떤 주파수 또는 색깔로 빛의 입자인 포톤을 방출하는데, 이는 준위들 간 에너지의 차이와 상응한다. 각각의 원자는 가능한 에너지 준위의 상이한 분포를 가지는데, 이는 어떤 특이한 스펙트럼을 가진다. ‘분광 데이터’는 에너지 준위의 계산에 기반하는 예견들과 비교될 수 있다.) 오늘날 양자역학의 수식체계는 관찰된 분광 데이터와 많은 여타 물리적 양들도 정확히 설명한다.
사실상 양자 역학 이론은 물질의 가장 작은 입자에서부터 블랙홀과 같은 우주적 대상의 안정성에 대한 질문들에까지, 몇몇 펨토초(femtoseconds), 즉 아주 작은 시간 분절 크기의 양극 상태와 형태를 변화시키는 레이저 펄스에서부터 우주의 시작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사건들에 걸치는 현상들을 해명할 능력에 있어서 엄청나게 강력하다는 것이 증명되었다. 양자 물리학은 양자장 이론, 소립자 물리학, 응집물질 물리학 그리고 우주론을 포함하는 무수한 새로운 탐구 분야를 낳음으로써 엄청나게 풍부하다고 입증되었다. 마찬가지로 양자 물리학의 경험적 효과는 기술에서 입증된다. 그것은 반도체 접합 레이저에서부터 MRIS와 PET 스캔과 같은 의료 이미지 기술에 이르기까지 많은 것을 낳았다. 어떤 과학자가 쓰다시피, “일부 추산에 따르면, 미국 국민총생산의 30%가 양자 이론에 기반한 기술들로부터 나온다고 알려져 있다. 양자역학에서 제공되는 통찰이 없이는, 휴대폰도 없을 것이고, CD 플레이어도 없고, 휴대용 컴퓨터도 없을 것이다. 양자역학은 물리학의 한 분과가 아니다. 그것은 물리학 자체다”(Folger 2oor).
하지만 해석 문제가 세부적으로 평가될 때, 표준적인 코펜하겐 ‘해석’이 전혀 일관된 해석이 아니라는 것이 분명해진다. 오히려 그것은 어떤 일관된 사유라기 보다, 상이한 요소들의 패스티시이며, 부분적으로 협상되고 매개적인 조합이거나 양자역학을 기초하려고 애를 쓴 지도적인 물리학자들의 연구결과의 조합 또는 중첩이다.[9] 양자 수식체계의 막대한 생산성을 고려할 때, 물리학자들 중 엄청난 다수가 해결되지 않은 해석 문제를 괄호치는 동안 수식체계의 계산상의 성공들에 집중했으며, 지금도 집중하고 있다. 의미심장하게도 계산상의 성공은 미국에서 이론 물리학자들에게 특별히 중요한 강조점인데, 이들은 1930년대 동안 물리학계에 자리를 잡기 위해 분투했다. 양자역학이 출현하기 이전까지 기간에 미국에서 물리학은 실험 물리학을 의미했다. <253>물리학의 중심이 대서양을 가로질러 서쪽으로 옮겨지면서 가장 두각을 나타낸 보어와 아인슈타인 같은 몇몇 유럽의 이론 물리학자들을 사로잡은 해석에 관한 질문은 실용적인 미국 스타일로는 ‘숫자 끄집어 내기’를 강조하는 식으로 건성건성 처리되었는데, 이 주제는 이제 전세계 현대 물리학계를 규정하기 시작했다.[10]
보어와 아인슈타인의 지적인 에너지를 위한 피뢰침이었던 이 해석적 주제들에 관한 논의는 1935년에 정점에 이르렀다. 이 주제들은 해결되지 않은 채, ‘단순히 철학적’인 영역으로 치부되어 수 십년 동안 방치되었다. 가장 근원적인 형이상학적 주제들 중 몇몇을 해결하기 위한 경험적 수단을 제공했던 1960년대 존 벨(John Bell)의 놀라운 발견과 1980년대의 결정적인 실험, 보어-아인슈타인 논쟁에서 강조되었던 그것조차 물리학 공동체에는 불충분한 관심만 가져다 주었다(Ballantine 1987). 사태가 변하기 시작한 것은 단지 지난 10년 상간이다. 두 가지 핵심적인 요인들이 이러한 전환에 기여했는데, 아인슈타인, 보어, 슈레딩거와 여타 사람들의 고전적인 ‘사유’ 실험을 현실화할 수 있게 한 기술적 진보와 중요한 기술적 함축을 가진 양자 정보이론이라는 새로운 장(8장을 보라)에 대한 열광이 그것이다. 특히 지난 10년 간, 소위 단순히 철학적인 주제들이 양자 컴퓨터, 양자 암호해독기 그리고 양자 원거리 이동과 같은 실천적인 혁신에 지대한 결과들을 가진다는 것이 분명해졌다. 이러한 양자 정보 이론 프로젝트들은 여전히 준비 중에 있지만, 컴퓨터 공학, 금융, 국가 안보 그리고 방위산업을 우선적으로 혁신하리라고 약속한다. 그리고 수 백만 달러의 R&D 연구 지원이 계속 이루어지고 있다. 그래서 미국가안보국(NSA), 국방첨단과학기술 연구소(DARPA), 국가정찰국(NRO), 첨단연구기획국(ARDA), 미항공우주국(NASA), 미국립표준기술원(NIST), 미에너지국(DOE) 그리고 육군, 해군 그리고 공군을 포함하여 여러 미국 정부 기관들은 양자 얽힘과 같은 ‘단순히 철학적인’ 주제들, 즉 양자역학에서 해석적 주제의 중심에 놓여 있는 생각들에 지금 관심을 가지고 있다.
이 장은 다음과 같이 구성된다. 나는 다음 절에서 여러 중요한 사유 실험들의 기여를 포함하여 양자 역학이 수립된 75년 전부터 양자역학을 성가시게 해 왔던 몇 가지 역설들과 곤경들에 관한 개괄로 시작한다. 그리고서 나는 <254>고전적인 사유 실험이 실제 실험실에서 받아들여지게 하는 새로운 기술적 발전에 의해 가능해진 탐구의 새로운 영역 – 실험 형이/상학(meta/physics) - 을 논의할 것이다. 다음으로 나는 보어 해석의 몇몇 신중한 반론들과 한계들을 살펴볼 것이며, 몇 가지 통상적인 오해를 일소할 것이다. 마지막 절에서 나는 행위적 실재론이 새로운 해석을 위한 기초라고 보고, 양자 역학의 영역에서 어떤 오래된 역설을 해결하기 위한 그것의 잠재력을 평가하고, 그것을 최근에 제안된 몇몇 더 새로운 해석들과 비교한다.
물리학자와 고양이들-양자역학의 기초적 쟁점들
"그것은 모두 매우 신비롭다. 그리고 당신이 그것을 더 많이 살필수록, 그것은 더더욱 신비로워 보인다."
-파인만 외, 『파인만의 물리학 강의』
"양자역학으로 충격을 받지 않는 사람은 그것을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 보어, 『닐스 보어의 철학적 글쓰기』
양자역학은 우리의 상식적인 세계관에 대한 몇몇 가장 총체적인 도전을 노정한다. 이 절은 양자 역삭의 핵심적인 기본 쟁점을 드러낸다. 그것은 네 가지로 하위 절로 구분된다.
1. 토마스 영의 주제에 대한 양자적 변형: 중첩, 혼합, 그리고 ‘선택-경로’-간섭 상보성(하나의 입자에 대한 중첩)
2. EPR 역설: 물리적 실재의 본성에 관하여(두 입자 얽힘)
3. 슈레딩거의 고양이 역설(다입자 얽힘, 거시적 객체들)
4. 측정의 문제(다입자 얽힘, 거시적 장비들)
1. 토마스 영의 주제에 대한 양자적 변형: 중첩, 혼합, 그리고 ‘선택-경로’-간섭 상보성
우리는 어떤 고전적인 방식으로 설명하기가 불가능한, 절대적으로 불가능한, 그리고 그것 안에 양자역학의 핵심이 있는 어떤 현상을 검토하기 위해 선택한다. 실제로 그것은 유일한 신비를 담로 있다. 우리는 그것이 작동하는 방식을 ‘설명함’으로써 그 신비를 떠나보낼 수 없다. 우리는 당신에게 그것이 작동하는 방식을 말할 뿐이다. 그것이 작동하는 방식을 말하는 중에 우리는 양자역학의 그 모든 기초적인 기묘한 특색에 대해 말해 줄 것이다.
<255>중첩은 양자역학의 신비를 체현한다고 알려져 있다.[11] 그래서 우리는 중첩으로 관심을 돌림으로써 기초적인 쟁점에 관한 탐색을 시작한다. 중첩은 무엇인가? 그것은 어디에서 오는가? 어떻게 그것은 양자 역학 수식체계 안에 등장하는가? 그리고 마지막으로 덧붙이자면, 그것의 의미는 무엇이며, 우리는 중첩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처음에 말했듯이, 슈레딩거 방정식(SE)은 입자들의 파동행위를 재현한다고 알려져 있다. 파동이 개별실체가 아니라 공간 안에 연장된 장애물들이라는 것을 상기하자. 해변의 파도를 생각하라. 입자와는 달리 파동은 서로 간에 중첩될 수 있다. 예컨대 두 파도가 중첩될 때, 따라 오는 파도의 진폭은 성분파들(component waves)의 결합된 진폭이다. 즉 한 파동의 진폭은 다른 파동의 진폭에 합쳐지며, 그 결과는 그 결합된 진폭을 가진 파동이다(2장을 보라). 뒤따르는 파도는 성분파의 선형적 결합 또는 중첩을 알려져 있다. 수면파(water waves)와 같이, 슈레딩거 파동함수 또한 중첩을 형성하기 위해 함께 합쳐질 수 있다. 예컨대 Ψ1와 Ψ2(그리스어 글자 Ψ, 프시psi는 전통적으로 파동함수를 표현하기 위해 쓰인다)는 어떤 특정 상황에서 SE에 두 가지 해를 표현한다.[12] 우선 그것은 주어진 문제에 하나보다 많은 해가 있다는 점에서 이상해 보이지만, 이것은 흔히 있는 일이다.(특정 사례들을 살핌으로써 하나의 해보다 많은 해가 있다는 것이 의미하는 바를 이해하는 것은 너무나 쉬우며, 우리는 그 다음으로 넘어갈 것이다.) 만약 Ψ1과 Ψ2가 둘 다 SE에 대한 해라면, Ψ1과 Ψ2라는 두 해들의 어떤 임의상 선형적 결합은 마찬가지로 SE의 해가 된다. 다시 말해 만약 Ψ1과 Ψ2가 해들이라면, 그리고 만약 우리가 어떤 임의적인 숫자(복소수)에 따라 각각의 해들을 곱하고 그것들을 더하면, 그 총합은 그 계수들이 적합하게 정규화되는 한 해가 될 것이다.
(즉 그것들은 다음과 연관된다. |a|2 + |b|2 = 1. 이러한 제약의 이유는 이 다음에 설명된다). (이 방정식이 우리가 수면파와 함께 이야기했던 사례의 일반화이지만 단순히 성분파 각각을 더하는 대신, 우리가 각 성분파가 처음에 한 숫자에 의해 곱해지도록 허용하고 있으며, 그 다음 우리가 그것들을 함께 더한다는 것에 주목하자. a = b = 1의 경우 방정식은 성분파들의 단순한 덧셈으로 축소된다.) 즉 개별적인 해의 중첩은 실생가능한 파동함수들이다. 수학적으로 말해 이것은 SE가 선형 방정식이라는 사실에 기인한다. 그러므로 중첩의 실존 자체는 물질의 파동적 움직임의 특성이다.
몇 가지 예들을 생각해 보자. 우리가 입자의 몇몇 속성을 측정하길 원한다고 해 보자. 이 속성을 ‘색’이라 부르자. 그리고 만약 매번 <256>우리가 입자의 색을 측정하면, 어떤 입자에서도 우리는 두 가지 가능한 값들, 즉 ‘빨강’ 또는 ‘초록’ 중 하나를 얻는다고 해 보자. 이런 종류의 체계 – 속성이 측정되는 하나(즉 색)는 두 가지 가능한 값들 중 하나를 취할 수 있다 – 는 두-상태 체계라고 불리워진다. (만약 N개의 가은한 값들이 있다면, 그것은 N-상태 체계일 것이다.) 두-상태 체계는 두 가지 특정 해를 가지는데, 이는 또한 고유함수(eigenfunctions) 또는 고유상태(eigenstates)라고 불린다(eigen은 특성을 지칭하는 독일어다). 우리는 한 고유상태는 Ψr, 다른 고유상태는 Ψg라고 부를 것이다. 만약 우리가 고유함수 Ψr의 ‘색’이라고 불리워지는 속성을 측정한다면, 그 대답은 ‘빨강’이라는 것을 발견하며, 이와 대응해서 우리가 Ψg의 속성을 측정하면, 우리는 그 대답이 ‘초록’이라는 것을 발견할 것이다. 측정값 ‘초록’와 ‘빨강’은 상응하는 고유값(eigenvalues)으로 불리워진다. SE의 선형성은 Ψr와 Ψg의 어떤 임의적인 선형적 조합이 마찬가지로 해라는 것을 의미한다. 즉 그것 또한 어떤 물리적으로 허용되는 상태인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중첩을 다음과 같이 표현할 수 있다.
즉, 어떤 두-상태 체계에서 SE에 가장 일반적인 해는 이러한 형태에 속한다(즉 두 고유함수들의 선형적 결합). (그리고 짐작하겠지만, N-상태 체계에 가장 일반적인 해는 N 항들의 선형적 결합이다.) 사실상 계수 a와 b는 ([복소]수는 1과 같다, 즉 |a|2 + |b|2 = 1 인 한에서) 어떤 (복소)수이기 때문에, 허용된 또는 가능한 물리적 상태이다. (계수들에 대한 이러한 제한의 이유는 뒤에서 명확해질 것이다.) 다른 한편, 두 가지 특수한 상태들, 즉 두 고유상태들 Ψr과 Ψg가 있다.(첫번째 고유상태 Ψr은 a=1이고 b=0일 때, 일반적 해의 특수한 경우다. 다른 고유상태 Ψg는 a=0이고 b=1일 경우, 일반적 해의 특수한 예이다.) 고유상태들은 명백히 체계의 특수한 상태들이다. 아는 그것들의 특수한 본성에 대하여 뒤에 좀 더 말해야만 한다.
그래서 우리는 중첩이 수학적으로 존재한다는 것을 배웠다. 그리고 그것들은 SE의 선형성의 결과이다. 그러나 중첩은 무엇을 재현하는가? 우리 그것들을 어떻게 물리적으로 이해하는가?
이를 다루기 위해서, 만약 우리가 고유상태들의 중첩의 색을 측정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 고려해 보자. 우리가 색 속성을 측정할 기구들을 만든다면 어찌 될 것인가? 그림 17은 그러한 장비를 위한 도식을 보여준다. 우리의 목적을 위해, 색-측정 장비는 단순히 한 개의 입구와 두 개의 가능한 출구를 가진 블랙박스이다. 우리는 그 블랙박스의 안쪽을 신경쓸 필요는 없다. 우리가 알 필요가 있는 전부는 그것이 색에 따라 입자들을 정렬한다는 것이다. 즉 만약 우리가 왼쪽으로부터 입자를 보낸다면, 박스 안에서 입자의 색이 측정되고, 입자들의 색이 빨강으로 측정되면 위쪽 슬릿을 통해 오른쪽으로 나오거나, 색이 초록으로 측정되면 아래쪽으로 나온다.
<257>
우선 고유상태를 활용하여 장비를 검사해 보자. 만약 우리가 고유상태 Ψr에 의해 표현되는 100개의 입자들을 장비 안으로 보내면, 그때 모든 입자들은 모두 고유값 빨강을 가지는 것을 표시하며 위쪽으로 나올 것이다. 이와 흡사하게 고유값 Ψg에 의해 표현되는 100개의 입자들을 장비 안으로 보내면, 100개 입자 모두가 고유값 초록을 가짐을 가리키기 때문에 아래쪽으로 나올 것이다. 우리는 이 간단한 실험을 통해 우리 장비가 올바르게 작동하고 있다는 것을 보게 되지만, 돌이켜 보면 우리는 그것들이 또한 고유상태들의 특수한 본성이란 그것들이 문제시되는 속성을 위한 확실한 특성들을 가진 상태라는 것을 가리킨다고 이해할 것이다.
이 사실을 헤아릴 가장 좋은 방법은 파동함수가 고유상태들 중 하나가 아닌 어떤 대조적인 사례를 생각해 보는 것이다. 우리가 중첩에 의해 표현되는 100개의 입자들을 보낸다고 가정해 보자.
이것은 |a|2 + |b|2 = 1라는 요건을 충족시키는 무수한 중첩들 중의 하나이며, 이런 경우,
을 만족시킨다.) 이 사례에서 우리가 발견하는 것은, 실험상의 오류 한도 내에서, 100개 입자들 중 1/4 또는 25개의 입자가 빨강 고유값을 가리키면서 위쪽으로 나오며, 100개의 입자들 중 3/4 또는 75개가 초록 고유값을 가리키면서 아래쪽으로 나온다는 것이다. 이 실험의 결과를 진술하는 또다른 방법은 어떤 주어진 입자들에서 그것이 빨간색으로 발견될 확률이 25%라는 것이고 초록색으로 발견될 확률이 75%라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계수상 구속을 이해할 수 있다. 구속 방정식 |a|2 + |b|2 = 1은 각각의 측정에서 결과치가 허용된 고유값들 중 하나일 것이라는 점을 보증한다. 즉 구속방정식은 다음과 같이 읽는다. 즉 빨강이 발생할 확률 더하기 초록이 발생할 확률은 100%다. 각각의 측정은 빨강 또는 초록을 산출할 것이다. 여기에는 다른 가능한 결과치도 존재하지 않는다.
<258>이 실험에 기반하여, 어떤 추론가능한 가설이 있게 되는데, 그것은 중첩이 상이한 색들을 가진 입자들의 혼합을 드러낸다는 것이다. 뒤에서 우리는 이 가설을 검토할 것이다.
계속해서 이 사례를 우리가 물리학에서 마주치는 실제적 사례들 중 보다 구체적이고 대표적인 것을 만들어 보자. ‘색’ 대신에 우리가 측정하길 원하는 특성이 ‘스핀’이라고, 그리고 포함된 값이 ‘빨강’과 ‘초록’이 아니라 ‘위’ 또는 ‘아래’ 중 하나라고 해 보자.[13] 우리가 막 논의했던 것보다 이 체계에서 보다 복잡한 것이라곤 없다. 이것 또한 두-상태 체계이며, ‘스핀’의 모든 측정은 ‘위’ 또는 ‘아래’ 중 하나의 값을 산출하며, 이는 각각 Ψu와 Ψd로 부호화된다. 즉 Ψu와 Ψd는 각각 ‘위’와 ‘아래’라는 고유값을 가진 체계의 두 가지 가능한 고유상태들을 표현한다. 이 체계의 가장 일반적인 해는 다음과 같다.
여기서 a와 b는 (복소)수이며 |a|2 + |b|2 = 1이다. (a = 1, b = 0일 때, Ψ = Ψu이고 a = 0, b = 1일 때, Ψ = Ψd라는 것에 주목하라. 즉 가장 일반적인 해는 고유값들과 모든 가능한 중첩상태 둘 모두를 포함한다.)
그런데 스핀은 실제로 벡터량으로 불리워지는 것이다. 고전적으로 말하자면, 당신은 스핀을 공간 안에서 어떤 특정 방향을 가지는 벡터 또는 화살표로 생각할 수 있다. 화살의 방향은 스핀축(회전축)의 공간에서 방향을 가리키며, 화살의 크기는 객체가 얼마나 빨리 도는지를 가리킨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벡터를 세 개의 스핀 성분이 x-, y- 그리고 z- 방향들을 따른다고 말함으로써 특성화할 수 있다. 그래서 스핀은 세 개의 성분 즉 Sx, Sy 그리고 Sz에 의해 규정된다.
공간 상의 특정 방향을 따르는 스핀값을 측정하기 위해 사용할 수 있는 장비는 슈테른-게를라흐 장치(Stern-Gerlach apparatus), 줄여서 SG이다.[14] SG 장비는 어떤 특정 방향을 향하는 비동질적인 자기장을 가진다. 우리는 세 방향 중 어떤 것, 즉 x-방향, y-방향 또는 z-방향을 따르도록 자기장을 향하게 할 수 있다. 자기장이 z-방향으로 향할 때, 우리는 이를 줄여서 SGz라고 표기하며, 이와 유사하게 SGx 그리고 SGy라고 표기한다. SGz는 z-방향의 스핀, 즉 Sz를 측정하고, 이와 유사하게 다른 두 성분들도 그러하다. 이 장비는 그 축을 따르는 그것들의 스핀값에 의존하는 두 자취들로 입자선을 분할함으로써 ‘위’와 ‘아래’ 값 사이를 구별한다. 즉 몇몇 입자들은 자기장에 의해 위쪽으로 굴절하며, 몇몇 입자들은 아래쪽으로 굴절한다. 위로 굴절되는 한 쪽 입자들은 ‘위’의 스핀 고유값을 가지며 그 상응하는 고유상태는 Ψu로 부호화된다. 이와 흡사하게 아래쪽으로 굴절되는 입자들은 ‘아래’의 스핀 고유값을 가지며, 그 상응하는 고유상태들은 Ψd로 부호화된다. 그래서 SG 장비는 색-측정 장비와 매우 유사하다. 예컨대 SGz 장비는 하나의 입구와 두 개의 출구를 가지는데, <259>위쪽 출구는 위 스핀 고유값을 가지는 입자들을 모으고, 아래 쪽 출구는 아래 스핀 고유값을 가지는 입자들을 모은다(그리 8을 보라).
이제 이 장비를 몇몇 측정을 위해 사용해 보자. 만약 우리가 Ψu 고유값으로 재현되는 입자선들을 SGz 장비 안으로 보낸다면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가? 우리는 그것들 모두가 위쪽 출구에서 출현하는 것을 발견한다. 이와 유사하게 만약 들어오는 입자선들이 고유상태 Ψd에 의해 표현된다면, 그것들 모두는 아래쪽 출구에서 등장한다. 이제 우리가 SGz 장비 안으로 잇따르는 중첩 상태에 의해 표현되는 입자선들을 쏜다고 해 보자.
만약 우리가 이 선을 SGz 장비 안으로 향하게 하면, 모든 입자들의 1/2은 위쪽을 통해 출현하고 1/2은 아래쪽을 통해 출현한다(왜냐하면 계수들의 제곱량이 둘 다 1/2이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만약 우리가 200개의 입자를 보내면, 우리는 z-방향에서 측정된 고유값 위를 가진 100개의 입자들과 z-방향에서 측정된 고유값 아래를 가진 100개의 입자들을 발견할 것이다. [15] 이제 두 번째 SGz 장비의 아래 쪽 선을 막아 버리고 SGz 장비 안으로 고유값 위를 가진 선을 보낸다고 하자(그림 19).
여기서 일어나는 일은 우리가 기대했던 바와 같다. 즉 첫 번째 SGz 장비의 위쪽 출구를 통해 나타나는 모든 입자들과 두 번째 SGz 장비의 위쪽을 통해 나타나는 입자가 나타나는 모든 입자들이 z-방향에서 고유값 위로 측정되었다는 것을 가리킨다. 이러한 실행은 결과들의 일관성(그리고 장비가 제대로 작동한다는 사실)을 간단히 확증한다.
이제 두 번째 SGz 장비를 SGx 장비로 바꾸자(그림 20).
<260>전에 특정된 중첩하는 200개의 입자들로 시작하면서 그것들을 SGz 장비 속으로 보내면 z-방향에서 고유가치 위로 측정된 결과가 위쪽으로부터 출현하는 100개의 입자들을 산출하는데, 이것은 SGx 장비 속으로 지나치면서, 그 결과 입자들 중 50개는 x-방향에서 고유가치 위로 측정되면서 위쪽으로 출현하고, 50개는 x-방향에서 고유가치 아래로 측정되면서 아래로 나온다. 이러한 결과에는 아무런 특이사항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우리는 단순히 두 번째 스핀-측정 장비의 결과로 위로 나오는 입자들은 z-방향에서 스핀-업[선회증가]하고, x-방향에서 스핀-업하며, 아래로부터 나오는 입자들은 z-방향에서 스핀-업하고 x-방향에서 스핀-다운[선회감소]한다고 결론 맺을 것이다 이 결과들은 모두 중첩은 상이한 스핀을 가진 입자 혼합을 표현하고, 장비들은 단순히 그것들을 정렬할 뿐이라는 우리의 처음 가설과 일치한다. 지금까지는 좋다.
이제 세 개의 장비를 가진 다소 보다 복잡한 실험을 해 보자(그림 21).[16] 우리가 마지막 실험에서 세 번째 스핀-측정 장비 – z-방향에서 스핀을 측정하는 또 다른 장비 - 를 부가한다고 해 보자. 이제, 당신은 이것인 다소 어리석다고 생각할 것인데, 왜냐하면 우리는 이미 첫 번째 SGz 측정으로부터 입자들의 스핀에 속하는 z 성분을 알며, 그래서 세 번째 것은 어떤 새로운 것을 우리에게 말해주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상 당신은 만약 예컨대 SGz 장비로부터 나오는 위쪽 입자선이 마지막 SGz 장비의 들어가는 쪽으로 향한다면, 그때 z-방향에서 스핀-다운되었던 것들이 Sz의 첫 번째 측정 이후에 차단되기 때문에, 50개 전부의 입자들이 나오는 곳 위쪽으로부터 출현하리라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이 직관은 그릇된 것으로 증명된다! 만약 우리가 실험을 수행한다면, 우리가 발견하는 것은 입자의 절반, 즉 <261>그것들 중 25개가 마지막 장비의 위쪽 출구로 나타나고, 똑같은 수, 즉 25개는 아래쪽 출구 쪽으로 나온다. 하지만 어떻게 이럴 수 있는가?
모든 것은 중앙에 놓인 SGx 장비없이도 그저 좋은 것으로 보인다(두 개의 SGz 장비들이 이어져 있는 이전의 실험을 보라). 하지만 무언가 SGx 장비를 우리가 포함할 때 잘못되어 버린 것으로 보인다. 그것은 마치 SGx 장비가 z-방향에서의 두 번째 스핀 측정을 ‘망쳐 버리기’ 위해 어떤 것을 행했던 것처럼 보인다. 우리는 이 결과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나? x-방향에서의 스핀값의 측정은 z-방향에서의 입자의 스핀값을 다소 방해했던 것인가?
그것은 우리가 여기서 목격하고 있는 것이 스핀 성분들에 있어서 어떤 불확실성 또는 미결정성의 결과라는 것을 드러낸다. 사실상 우리는 스핀-벡터의 세 성분들 중 하나 이상을 동시에 결정하는 것이 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지칭하는 어떤 표현으로 이끌어 가기 위해 양자 역학의 수식체계를 활용할 수 있다.[17] 하이젠베르그에 따르면, 이것의 이유는 세 가지 성분들이 동시에 알려질 수 없고, 보어의 생각에서, 이는 그것들이 동시에 결정값을 가지지 않기 때문이다. 이러한 두 가지 비등가적인 위치들 즉 불확실성과 미결정성 사이를 구별하는 것이 중요하다. 하이젠베르그의 불확실성 원리는 인식론적 원리이다. 즉 그것은 측정이 기존의 값을 방해하고 이에 따라 그 상황에 관한 우리의 인식에 어떤 제한을 둔다는 생각을 옹호한다. 이와 대조적으로 보어의 미결정성 원리(일명 상보성의 양적 표현-이 다음 논의를 보라)는 존재론적 원리이다. 즉 논점은 측정이 고유한 속성들의 선재하는 값을 방해한다는 것이 아니라, 오직 속성들이, 해당 개념에 상응하는 정의를 부여하는 특정한 물질적 배치들의 존재를 부여받을 때 결정된다는 것이다. 그와 같은 조건들이 없으면, 해당 속성들은 결정값을 가지지 않는다. 그리고 한 속성들의 집합의 결정성(determinateness)은 물질적으로 상보적인 집합의 결정성을 배제한다(3장에서 상세하게 논의된 보어의 해석과 하이젠베르그의 불확실성 원리와 보어의 미결정성 원리 간의 중요한 차이에 관한 논의를 보라. 마찬가지로 확실히 하기 위해 이후의 논의들을 보라. 이 장은 3장과 4장의 내용에 관한 사전 지식을 요한다). 나는 각각의 가능성을 차례로 고려할 것이다.
하이젠베르그에 따르면 스핀의 x-성분의 정확한 측정은 입자를 방해하는데, 이전의 z-방향에서 스핀값의 값이 변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일단 x-성분을 측정하면, 우리가 전에 측정했던(즉 x-성분을 측정하기 이전) z-성분과 동일한 결과를 발견하기를 기대하지 말아야 한다. 다시 말해 x-성분이 있다는 사실은 z-성분 <262>물질의 두 측정 사이에서 측정된다. 이러한 생각은 형이상학에 관한 전통적인(뉴턴적인) 관점과 훌륭하게 맞아 떨어지는데, 이에 따라 개체적으로 결정되는 속성들을 가진 개별적 객체들이 있게 되며, 측정은 특수한 물리적 양의 선재하는 값을 드러낸다. 하지만 뉴턴 물리학의 경우와는 달리 하이젠베르그의 불확실성 원리는 우리에게 이러한 선재하는 값들을 결정하는데 제한이 있다고 말해주는데, 이는 측정이 필연적으로 통제불가능한 방해들을 들여오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실험 2 이후 결론을 짓고 싶어도(그림 20을 보라) 두 번째 스핀-측정 장비의 위쪽 출구로 나오는 그 입자들이 Z-방향에서 스핀-업하고 x-방향에서 스핀-업한다고, 그리고 아래쪽 출구로 나오는 입자들이 z-방향에서 스핀-업하고 x-방향에서 스핀-다운한다는 결론을 내리는 것은 정당화되지 않는다. 그러나 이러한 결과가 중첩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을 분명히 하지는 않는다. 우리는 저 방정식(7.5) 같은 표현들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는가? 측정되고 있는 입자들의 속성들의 본성과 측정의 본성에 대해 말하는 것은 무엇인가? 우리는 이것을 객체들이 결정값을 가진 규정적 속성들을 가진다고 가정하는 전통 형이상학과 어떻게 일치시킬 수 있는가? 중첩은 우리의 무지를 표현하는가? 파동함수는 존재하는 것이라기 보다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을 표현하는가? (뉴턴 물리학의 경우, 우리는 이러한 것들이 동일할 것이라고 추정할 것이다.)
보어의 해석에 다가가기 전에 이 쟁점에 도달하기 위한 보다 많은 실험을 부가해 보자. 다음 탐지기로 나아가기 전에 분리된 위와 아래 선을 재결합할 가능성을 수용하는 변형된 SGx 장비를 만든다고 해 보자.[18](우리는 이를 자석을 적절히 배치함으로써 만들 수 있다.) 전체 실험 배치는 기본적으로 실험#3에서 사용했던 것과 동일하지만, 이제 SGx 장비는 변형된 SGx 장비로 대체된다(그림 22).
만약 그 선들이 나누어지고 오로지 위쪽 선만이 장비의 출구를 통해 지나가며 SGz 장비의 안으로 들어갈 때, 변형된 SGx 장비에서 아래쪽을 향하는 선이 막힌다면, 그때 실험#3에서와 동일한 결과가 획득될 것이다. 하지만 만약 입자선들이 변형된 SGx 장비를 나와 SGz 장비 안으로 들어가기 전에 입자들이 재결합하도록 허용된다면, 즉 만약 두 경로 모두 막히지 않는다면, 그때 모든 입자들은 실험#1에서처럼 마지막 SGz 장비의 위쪽으로 나올 것이다. 이것은 마치 변형된 SGx 장비가 거기 없는 것처럼 보인다. 어떻게 이럴 수 있는가? 어떤 차이가 그런 재결합을 만들어내는가? x-방향에서 위와 아래로 나누어지는 측정은, 경로 중 하나가 마침내 막히든 안 막히든지 간에, 즉 입자선들이 재결합하도록 허용되든 되지 않든 간에 z-방향에서 스핀을 꼭 그만큼 방해하지 않는가? <263>이 실험의 결과들은 쟁점이 무엇보다도 방해의 문제가 아니라고 지적하는 것 같다.[19] 우리가 이후 더 진전된 탐구를 하면 할수록 더 많은 질문이 측정의 본석과 자연의 본성에 관해 제기될 것으로 보인다.
만약 우리가 보어의 해석 논리를 따라 어떤 더 좋은 시도를 하게 될지 생각해 보자. 보어의 사유는 덜 직관적인데, 왜냐하면 그것이 고전 형이상학으로부터 어떤 급진적인 이탈을 초래하기 때문이다. 보어에 따르면 양자역학은, 스핀의 세 성분들이 동시적으로 결정된다고 가정해야 할 것이 때문에, 스핀을 공간 안의 특정 방향을 가리키는 어떤 주어진 양을 가진 벡터로 생각하는 것이 옳지 않다는 것을 우리에게 말해준다. 오히려 보어의 생각에, 그 측정에 대한 적합한 조건들이 존재하는 경우에만 양이 결정된다. 특히 적절한 경우에, 어떤 결정값은, 만약 이 속성을 측정하기 위한 장비가 준비되는 한에서 스핀의 z-성분을 위해 존재한다. 그와 같은 장비가 없다면, 해당 속성값은 결정되지 않을 것이다.
보다 특수하게, SGz 장비가 준비될 때, 특수한 물질적 배치(실험자의 의지가 아니라)는 마치 해당 경계들과 속성들이 결정되는 것처럼 ‘관찰의 객체’와 ‘측정 장비’ 사이에 어떤 절단을 수립한다. 특히 SGz 장비가 준비되면, z-방향에서 스핀의 개념은 의미있는 것이 되며 해당 속성값은 정의된다. 그와 같은 장비가 없다면, z-방향에서 스핀의 개념은 의미가 없으며, 객체의 경계들과 속성들에 관한 물질에 속한 어떤 사실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20]
실험#3의 결과는 다음과 같이 이해될 수 있다. 첫 번째 SGz 장비가 장착될 때 Sz가 결정된다. 하지만 SGx 장비가 두 번째 측정을 위해 장착될 때, 스핀의 x-성분이 결정되며, z-성분은 더 이상 결정되지 않는다(즉, 그 값과 관련되는 물질에 관한 사실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제 Sx 측정을 따라 Sz가 다시 측정될 때, 입자들이 두 출구로 나타난다는 것이 어떻게 가능한지 이해할 수 있다. 논점은 Sx의 <264>중간 측정치가 물질화한다는 것인데, 왜냐하면 x-성분이 측정될 때, z-성분이 더 이상 결정되지 않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마지막 SGz 장비가 장착될 때, z-성분은 결정되지만, 이것은 단지 그것이 미결정된 후이며, 따라서 아래 고유값보다 위 고유값을 가질 이유가 없는 것이다. 우리는 마찬가지로 이러한 결과를 하이젠베르그의 해석과 맞아 떨어지게 할 수 있었다. 문제는 보어의 해석이 어떻게 실험#4를 대표할 것인지이다(이것은 하이젠베르그에게는 불가해한 것처럼 보인다).
우리는 실험#4의 결과를 보어의 해석을 사용하여 이해할 수 있는가? 보어에 따르면 예컨대 우리가 SGz 장비를 가지고 측정하는 스핀의 z-성분 결정값은 그 장비와 함께 입자의 간-행의 결과이다. 즉 속성은 현상의 특성이며, 몇몇 선재하는 측정-독립적인 객체가 아니다. 변형된 SGx 장비의 입자선들 중 하나, 이를테면 아래 쪽이 막힐 경우, 장비는 스핀의 x-성분을 측정하기 위한 적합한 장치로 기능할 것이다. 이런 경우, 스핀의 x-성분은 결정될 것이고, 그 값은 위와 아래 중 하나로 정의될 것이다. 스핀의 z-성분이 계속 측정될 때, 따라서 그것은 미결정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실험#3에서처럼 동일한 결과를 얻을 것이다. 다른 한편, 우리가 어느쪽 입자선도 막지 않는다고 해보자. 이런 경우 그 장비는 스핀의 x-성분을 측정하기 위해 적합하지 않으며 z-성분이 결정되어지는 반면 그것은 미결정상태로 남는다. 따라서 우리는 실험#1과 동일한 결과를 얻는다(마치 변형된 SGx 장비가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그래서 보어의 해석은 실험#4의 전체적으로 예기치 않은 결과들을 해명할 수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다른 한편으로 실험#4의 결과와 하이젠베르그의 해석이 어떻게 일치하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이 실험들로부터 취할 수 이는 여러 가지 논점들이 있다. 우선 그 결과들은 선재하는 값들을 차단하지 않으며, 오히려 장비가 상보적 양들을 미결정으로 남겨둔 채, 해당 속성에 관한 생각에 정의를 부여하고, ‘객체’와 ‘측정 수단’ 사이에 어떤 절단을 수립하며, 그리고 해당 측정량에 대한 결정값을 생산하는 특수한 물질적 배치라는 보어의 해석과 일치한다. 이것은 인간 관찰자가 결과를 결정한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데이터가 우리가 원하는 바를 산출하지 않고, 오히려 장치들의 물질적 배치의 특수한 본성이 절단의 수립에 관한 특수성들에 책임이 있다[응답가능하다]는 것이다. 즉 측정에 있어서, 우리는 측정되는 양에 있어서 항상 허용된 고유값들 중 하나 – 즉 결정값 - 를 발견한다. 이 중요한 점을 인지하면서 물리학자들은 측정에 있어서 각 입자들은 <265>허용된 고유상태들 중 하나(장비에 의해 규정되는 문제시 되는 그 속성 중 하나) ‘안’에 있다고 말한다. 이 점은 실험의 결과 안에서 일관성으로 나아가는데, 다시 말해 측정이 선재하는 값을 드러내지 않더라도, 그것들은 어떤 임의적인 활동을 하지는 않고, 오히려 확정적이고, 일관되며 재생산가능한 값들이 취해진다는 것이다.[21] 결론적으로 마지막 두 실험은 중첩이 드러내는 것과 관련하여 우리의 최초의 가설이 그릇된다는 것을 분명히 한다. 즉 중첩은 결정된 속성들과 입자들의 혼합을 재현하지 않는다. 오히려 중첩은 존재론적으로 미결정의 상태들을 재현한다. 이 상태는 해당 속성과 연관된 물질의 그 어떤 결정된 사실도 가지지 않는다.
중첩(superposition)과 혼합(mixture) 사이의 중요한 차이를 보다 상세하게 살펴 보자. 기술적으로 말해서, 혼합은 입자들의 모임 또는 앙상블을 가리킨다. 이때 각각의 입자들은 해당 속성의 결정값을 가진다. 이는 어떤 주어진 입자의 상태가 결정된 것이지만 알려지지 않은 것과 같다. 특히 혼합에서 각각의 입자들은 결정된 고유상태에 의해 재현된다. 혼합체들은 자주 통계적으로 기술되지만, 중요하게도 이런 경우 확률의 쓰임새는 양자 미결정성과 연결되지 않고, 단순히 주어진 입자를 위한 속성의 값이 알려지지 않는다는 사실과만 연결된다. 즉 통계학의 사용은 우리의 무지를 드러낸다. 다시 말해 각각의 입자는 결정된 속성과 더불어 속성들을 가지지만, 우리는 어떤 주어진 입자에 대한 특정 속성들의 값들에 대해 불확실한 채일 것이다.
대조적으로 중첩은 양자 미결정성을 체현한다. 만약 우리가 SGz 장비 안으로 Ψu와 Ψd 고유상태의 중첩에 따라 재현되는 입자선들을 쏜다면, 어떤 입자들이 고유값 ‘위’로 출현하는지, 그리고 어느 것이 고유값 ‘아래’로 등장하는지에 대한 우리의 무능력은 Sz 결정값을 가진 상태와 관련된 우리의 무지에 따른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은 그 값들이 측정 이전에 그 자체로 미결정되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 확률의 사용은 양자적 현상들의 본성에 고유한 것이다.[22]
중요하게도 중첩과 혼합은 물리적으로 구별가능하다. 즉 그것들은 상이한 흔적을 남긴다. 중첩은 간섭 효과를 허용하지만, 혼합은 그렇지 않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 전형적인 두-슬릿 실험을 생각해 보자(3장을 보라). 장치들은 두 개의 슬릿이 있는 칸막이와 하나의 스크린이라는 재료로 구성되어 있다(그림 23).
적합한 조건 아래에서 빛 또는 물질 중 하나를 방출할 때, 칸막이를 향해 가는 원자료[입자선들-역자]는 간섭패턴의 형태로 스크린에 흔적을 산출할 것이라는 사실은 매우 잘 알려져 있다. 물질의 파동적 본성을 증명하는 이 실험은 양자역학의 상징이 되었다. 앞서 파인만 인용문에 따르면, 두-슬릿 실험은 양자 역학에서 가장 기본적인 주제를 탐색하는데 사용될 수 있다. <266> 빛(또는 다른 종류의 파동들)이 간섭패턴을 전개할 수도 있지만, 그것이 물질적 입자들이 될 때 충분히 다른 것이 될 수도 있다. 이것은 파동이 서로 간에 간섭하기 때문이다. 즉 둘이나 그 이상의 파동적이 교란은 공간 안에 어떤 주어진 지점에 존재할 수 있으며, 합성 교란은 각각의 성분 교란의 증폭의 합이다. 다시 말해 파동은 중첩을 형성할 수 있다. 그러나 입자들은 어떤가? 파동과 달리 입자는 국지화된 개별실체이며, 오로지 하나의 입자만이 공간 안의 어떤 주어진 지점에 한 번에 한 번 존재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 경우에 간섭 패턴은 어떻게 가능한가? 입자 상태들의 중첩을 가진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두-슬릿 실험에서는, 입자들이 한 번에 하나씩 장치를 통과한다해도 간섭 패턴이 생산된다는 것에 주목하는 것이 중요하다. 어떻게 이럴 수 있는가? 확실히 우리는 각 입자가 위쪽 슬릿이나 아래쪽 슬릿을 통과해 나간다고 예상했다. 사실상 우리는 스크린을 향해 가는 중에 입자가 어느 쪽 슬릿을 통과하는지 탐지하는 실험을 설계할 수 있었다. 즉 실험 실행 중에, 우리는 (보어가 제안한대로) (하나나 둘 모두) 스프링이 달린 두 슬릿으로 이루어진 칸막이를 설치할 것이다.(그림 24) 이러한 변형은 우리가 위쪽 슬릿을 가진 칸막이의 이동을 관찰함으로써 어느 슬릿으로 각 입자가 통과해 가는지 탐지하도록 해 준다는 의미이다.
움직이는 칸막이를 가진 두-슬릿 배치를 활용하자는 주장은 <267>불확실성 원리를 회피하고, 그에 따라 양자이론의 불완전성을 보여주기 위한 시도에서 아인슈타인에 의해 처음 제안되었다. 그의 사고실험은 – 일반적으로 ‘반동 슬릿’(recoiling slit) 실험을 지칭된다 – 우리가
논의했던 바의 어떤 변형이다. 아인슈타인은 그와 같은 장비를 사용함으로써 입자와 움직이는 칸막이 사이에서 이동하는 운동량 – 즉 측정의 결과로 입자가 겪는 방해 - 을 측정하는 것이 가능하며, 따라서 불확실성 원리와는 반대로 운동량과 위치 둘 모두를 알 수 있다고 논했다. 보어는 아인슈타인의 추론에 있는 결함을 지적함으로써 그의 문제제기에 응답했다. 즉 그것은 두 가지 방식을 한 번에 가지는 것이 불가능하며(이중-슬릿 정모와 간섭 패턴 둘 모두), ‘반동-슬릿’ 배치는 간섭 패턴을 파괴할 것이라고 논증한 것이다. 보어의 사유에서 각각의 선택-슬릿 정보와 간섭 사이, 즉 입자와 파동 행위 간에 어떤 필연적인 교환관계가 있다. 보어는 이것을 파동-입자 상보성이라고 한다. 최근 이것은 보다 일반적으로 ‘선택-경로’(which-path) - 간섭 상보성(이 장 후반부의 실험적 증거에 관한 절을 보라)으로 지칭된다.[23] 논점은 만약 우리가 탐구 대상의 파동같은 본성을 가정하는 어떤 질문에 의미있게 질문하고 대답하도록 허용되는 실험적 배치를 도입한다면 – 그것이 통과해 가는 선택 슬릿처럼 -, 그때 우리는 입자같은 행위를 발견하며 그 어떤 간섭 패턴도 발견하지 못하게 된다. 보어에 따르면 파동-입자 상보성에는 그 어떤 신비적인 것도 없다. 그것은 단순히 <268>다른 것들의 배제에 대한 어떤 고전적 변수들에 의미를 부여하는 실험적 배치의 물질적 특수성에 관한 문제다. 즉 그것은 객체와 관찰 행위소들 간에 특수한 절단을 수립하며, 해당 속성의 결정값을 생산한다. (비록 그의 논증이 이제 논의될 것처럼 잘못 이해되었다 해도) 보어의 논증이 궁극적으로 승리했다. 사실상 보어의 사유는 그 실험이 1990년대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수행되었다 해도(그리고 아무도 그것이 실제로 수행되라라고 기대하지 않았다), 양자물리학에서 정전적인 것이 되었다. 하지만 아인슈타인을 포기하기 않았다(그리고 나는 다음 절에서 그의 다른 시도들에 대해 논할 것이다.)
이제 고정되고 움직이는 이중-슬릿 실험을 위한 해당 파동 함수를 검토해 보자. 우선 우리가 각 입자들이 스크린에 이르는 길에 어느 슬릿을 통과하는지에 대한 질문에 어떤 확실한 대답을 제공할 수 있는, 움직이는 칸막이를 가진 것과 같은 이중-슬릿 장치를 현장에 가지고 있다고 가정하자. 그것이 위쪽 슬릿을 지나가는지(Ψt), 아래쪽 슬릿을 지나가는지(Ψb)에 따라 각각의 입자에 꼬리표를 붙이자. 이럴 경우, 우리는 입자들의 혼합체를 가지게 되는데, 어떤 것은 파동함수 Ψ = Ψt 어떤 것은 Ψ = Ψb이며, 스크린 위에서 발견되는 분포 패턴은 개별적인 분포 패턴의 합인데, 입자들 중 어떤 것들은 위쪽 슬릿을 통과하고, 다른 것들은 아래쪽 슬릿을 지나간다. 특히 여기에서는 어떤 중첩도 어떤 간섭 패턴도 관찰되지 않는다.
이와 대조적으로 우리는 고정된 칸막이로 설치된 이중-슬릿 장치를 생각해 보자. 이 경우에 ‘선택-슬릿’에 관해 그 어떤 결정된 의미도 없으며, 결정된 선택-슬릿 값도 존재하지 않는다. 이런 상태에서 파동함수는 두 개의 고유상태의 중첩이다.
이 파동함수는 미결정된 ‘선택-슬릿’ 값을 가진 입자를 부호화한다. ‘선택-슬릿’에 대한 생각에 의미를 부여하는 실험적 배치 – 즉 입자가 어느 슬릿을 통과해 가는지 결정할 수 있도록 하는 실험적 배치 (예컨대 움직이는 칸막이에 설치된 슬릿들을 가진 것) - 가 없는 상태에서 이 정보는 단지 알려지지 않은 것이 아니다. 그것은 존재론적으로 미결정적이다. 이것은 어떤 움직이는 선택-슬릿 탐지기를 가진 장치의 경우처럼, 몇몇 입자가 위쪽 슬릿을 통과해 가고, 몇몇은 아래쪽 슬릿을 통과해 가는 식의 입자 혼합체를 우리가 가진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논점은 고정된 칸막이의 경우에 입자가 어느 슬릿을 통과해가는지에 대한 문제의 그 어떤 사실적인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결과의 확률적 본성은 존재론적 미결정성에 뿌리를 박고 있는 것이지 고전적인 무지에 근거하는 것이 아니다. 스크린 위 입자의 결과적인 분포는 간섭 패턴을 현성한다. 이것은 <269>움직이는 선택-슬릿 탐지기를 갖춘 장치의 경우 발견되는 분포와 대조되며, 간섭 무늬를 전개하지 않는다. 사실상 이것이 양자역학의 일반적 형상이다. 즉 간섭패턴은 중첩의 표시라는 것이다.[25]
요약하면, 중첩은 양자적 세계의 어떤 기초적 형상이다. 혼합은 물리적으로 중첩과 구별가능하다. 즉 이 둘은 상이한 객체적 흔적들을 남긴다. 간섭 패턴은 중첩의 객체적 표식이다. 혼합물은 간섭패턴을 생산하지 않는다. 고전 물리학의 세계에는 입자의 혼합물이 있으며, 그 어떤 중첩도 없다. 중첩은 세계에 관한 우리의 고전 형이상학적 전망에 도전한다. 입자 흔적들로 만들어진 중첩 또는 간섭패턴은 양자적 행위의 구별되는 흔적이다.
2. EPR 역설: 물리적 실재의 본성에 대하여
1935년 아인슈타인, 포돌스키 그리고 로젠(EPR)은 다름 아닌 물리적 실재와 실행 가능한 물리이론의 본성을 다룬 논문을 출판했다. 이러한 심오한 철학적 주제가 물리학 저널에 게재된 것은 통상적인 일은 아니다. 이 짧은 논문은 양자역학의 실행가능성에 의문을 제기하면서, 이 이론이 불완전하며, 물리적 실재의 완연한 본성을 해명할 수 없다고 결론 맺는다. EPR 논증은 새로운 실험적 발견에 기반하지 않는다. 오히려 저자들은 그들이 주장하는 사고실험이 불확실성 원리를 우회하는데 사용될 수 있다고 제안하면서, 그렇게 된다면 양자역학 이론은 물리적 실재를 기술하는 과제에 부적합하다는 것이 논증된다고 한다. 특히 저자들은 그들이 [측정에] 방해 받지 않고서 어떤 체계의 위치와 운동량을 동시에 결정하는 방법을 고안했다고 주장했다. 결과적으로 그들은 그러한 속성들이 물리적 실재의 요소들임을 논증하면서, 그 이론이 그러한 것들을 해명하지 못하므로 불완전하다고 논한다.
그러한 것들에 완전히 분배되는 의미가 무엇이든지 간에, 다음과 같은 요청이 어떤 완전한 이론에게 요청되는 것으로 보인다. 즉 모든 물리적 실재의 요소들은 물리 이론 안에서 대응요소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 만약 어떤 체계를 방해하는 방식이 아니라면, 우리는 확실성을 가지고(즉 통일성과 같은 확률을 가지고) 물리적 양의 값을 예견할 수 있으며, 그때 이러한 물리적 양에 상응하는 물리적 실재의 요소는 존재하는 것이다.(Einstein, Podolsky, and Rosen 1935, 138)
이들 논증의 핵심은 다음과 같다. 상호간 일정한 시간 동안 상호작용하는 A 그리고 B라고 불리는 두 독립적인 체계를 고려하자. <270> 이 시간동안 상태는 서로 간에 상호관련되어진다. 저자들은 이러한 ‘상호관계’를 체계 A를 측정함으로써, 또 다른 체계 B의 속성을 연역할 수 있다는 주장의 기반으로 지적한다.[26] 그들 논증의 핵심 사항은 A에 대해 수행되는 측정은 A와 B가 서로간에 상호작용을 끝낸 이후에만 발생한다는 것이다. “측정의 그 시간에 두 체계는 더 이상 상호작용하지 않기 때문에”, 저자들은 “ 첫 번째 체계[A]에 일어나게 될 만한 어떤 것의 결과에서, 아무런 실제적인 변화도 두 번째 체계[B]에 발생하지 않는다”고 추론한다(Einstein, Podolsky, and Rosen 1935, 140).[27] 그들의 설명을 따라 그들은 체계 A에 대해서만 측정을 수행함으로써 두 상보적 변수들, 즉 체계 B에 속하는 위치와 운동량의 값을 연역하는 방법을 고안했다. 그 자체로 보면 그들은 불확실성 원리를 우회했는데, 왜냐하면 그들은 이러한 값들을 “두 번째 체계를 방해하지 않는 식으로”(140) 규정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체계 B의 속성들이 물리적 실재와 대응함에 틀림없으며, 그리고 불확실성 원리가 이러한 것들을 제공하지 않으므로 불완전하다고 결론 내린다.
EPR 논문의 핵심은 A와 B 사이의 상관관계다. 중요한 의미에서 중심적인 쟁점은 정확히 이 상관관계의 본성이다. 문제가 되는 이 특별한 종류의 상관관계는 ‘얽힌 상태’라고 불리워진다. 얽힌 상태란 단지 어떤 예전의 상관관계가 아니라, 양자역학적 상관관계임이 드러난다. 사실상 우리가 보게 될 바와 같이 양자 얽힘은 초-상관관계(이것은 고전 물리학의 기초 위에서 이끌려 나올 수 있는 어떤 파악가능한 상관관계도 앞서 간다)이다. 그러나 양자 얽힘에 관한 이러한 이해는 발전하기 위해 수 십년이 걸렸으며 이 분야에서 의미있는 발견을 만들어냈던 많은 연구자들이 아인슈타인 사후 나왔다. 아인슈타인과 그의 동료들이 관련되는 한, 그들은 상관적 결과들을 설명하는 실행가능한 방식들만을 가졌으며, 이것은 뉴턴적 형이상학으로 되돌아가는 것에 상당한다고 생각했다. 그들의 논증들을 상세하게 설명하기 이전에, 어떤 얽힌 상태에 관한 수학적 정의를 처음으로 제시해 보자(그 의미를 파악하는 것은 이 장의 많은 부분을 차지할 것이다).
양자 얽힘이란 무엇인가? 중첩과 마찬가지로 얽힘은 특유하게 양자역학적이다. 즉 이는 그 어떤 고전 물리학과도 상응하지 않는 입장의 행위에 관한 상을 나타낸다.[28] 얽힌 상태의 본성을 설명하기 위해 위에서 고려했던 바, 두 가지 스핀 고유상태, 즉 ‘위’ 또는 ‘아래’를 가진 입자의 예로 돌아가자. 얽힘의 본성을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는 적어도 <271>그와 같은 입자 두 개, A와 B를 고려할 필요가 있다. 우리가 이 예에 대해 좀 더 상계할 필요가 있기 때문에, 이제 두 입자가 있으므로, 입자 A의 ‘위’ 고유상태를 이전의 하부첨자와 같은 표기법을 사용한 (Ψu)A보다 (↑)A로 표현하자. A와 B 체계들의 얽힌 상태는 다음과 같이 부호화될 수 있다.
여기서 c1과 c2는 계수이다(즉 복소수이다). 첫 번째 항은 체계 A의 상태가 (↑) (즉 측정될 때, 고유값이 ‘위’이다)이며 체계 B의 상태는 (↓) (즉 측정될 때, 고유값이 ‘아래’)라는 것을 의미한다. 두 번째 항은 그 역, 즉 체계 A의 상태가 (↓) 이고 체계 B의 상태는 (↑)임을 의미한다. 이러한 A와 B의 얽힌 상태에 대해서는 주목해야할 여러 중요한 것들이 있다. 우선 그것들의 얽힘에 대한 특수성이 있다. 즉 이 방정식(7.7)은 우리에게 체계 A와 B가 대립적으로 상관관계 맺는다는 것을 알려준다. 만약 A의 상태가 위라면, B의 상태는 아래며, 역도 마찬가지다. 결정적으로 체계 A의 경우를 체계 B의 경우에 곱하는 식으로 이 표현을 쓰는 것은 가능하지 않다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 즉 Ψ는 두 분리된 항들의 결과로 인수분해될(A상태 곱하기 B상태) 수 없다. 다시 말해 체계 A와 B의 얽힌 상태는 두 개의 독립된 구성요소들, 즉 분리되어 결정된 체계 A와 B로 합성된 합성수 체계, 예컨대 어떤 혼합체로는 적합하게 이해될 수 없다. 오히려 방정식 7.7에 의해 부호화된 A와 B의 얽힌 상태는 어떤 단일한 실체로 이해되어야 한다. 나는 아래에서 얽힘에 대해 훨씬 많은 것들을 말할 것이다. 우선은 EPR 논증으로 되돌아 가자.
이제 우리는 얽힘에 대한 다소 기술적인 세부사항들을 알게 되었으므로, 아인슈타인, 포돌스키 그리고 로젠이 불확실성 원리를 공격하기 위해 제안한 그 방식에 대해 훨씬 더 많은 세부적인 것들을 검토하자. 스핀 벡터에 있어서 불확실성 원리는 다음과 같다. 스핀-벡터의 하나 이상의 구성요소를 한 번만에 동시적으로 결정하는 것은 원리적으로 불가능하다. EPR 실험은 처음부터 상호작용하고 상호관련된/얽힌 체계A와 B를 허용함으로써 준비된다. EPR 얽힌 상태가 방정식 7.7에서 규정되는 그 순간을 가정해 보자.[29] EPR 논증은 다음과 같다. 만약 우리가 몇몇 축을 따라 도는 체계 A의 스핀을 측정하면서 ‘위’임을 발견한다면, 즉 해당 고유상태가 (↑)임을 의미하는 z-방향이라면, 그때 체계 B를 방해하는 어떤 방식도 없이, 즉 오로지 체계 A에 대한 측정을 수행함으로써 우리는 B의 상태가 (↓)라는 것을 확실하게(즉 100% 확률로) 알 것이며(즉 이 결과는 B에 대한 어떤 측정도 수행하지 않고 따라 나온다) 그 역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우리는 <272>B의 스핀의 하나의 구성요소 즉 z-구성요소를, 그것을 방해하지 않고서, 아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불확실성 원리의 어떤 위반을 구성하지 않는다. 불확실성 원리를 피해갈 방법을 찾기 위해, 우리는 이런 식으로 적어도 그 스핀 구성요소들 중 두 개를 결정해야만 할 것이다.
여기서 스핀 구성요소들이, 우리가 측정하는 스핀이 어느 축을 따라 도는가에 상관 없이, 언제나 대립적으로 상관관계를 맺는 어떤 특수한 상태가 있다는 것이 드러난다(즉 만약 하나기 ‘위’라면, 다른 하나는 ‘아래’다). 이는 단일항 상태(singlet state)로 일컬어지며, 이는 계수에 다음과 같은 값이 주어지는 방정식 7.7에 의해 기호화된 상태이다.
이제 우리는 불확실성 원리를 우회하기 위한 어떤 위치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즉 우리는 얽힌 상태가 하나의 단일항 상태가 되도록 준비한 것이며, 위의 방법을 A에 대한 측정을 수행함으로써 B의 스핀을 결정하기 위해 이번에는 다른 방향에서 반복한다. 실제로 우리가 어떤 축을 선택하든지 간에 우리는 체계 A에 대한 측정을 수행할 수 있고 어떤 식으로든 체계 B를 방해함이 없이 그 축을 따라 체계 B의 스핀값을 확실하게 알게 된다. 단일한 얽힘 상태를 사용하는 것에 있어서 놀라운 것은 몇몇 축을 따르는 A의 스핀 값이 무엇으로 밝혀지든 간에, 동일한 축을 따르는 B의 스핀 값은 언제나 대립적으로 상관관계를 맺는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어떤 축을 따르는 체계 A의 스핀 측정은 그 축을 따르는 체계 B의 스핀을 즉각적으로 결정한다! 비록 그 체계들이 독립적으로 존재하며 더 이상 상호작용하지 않는다고 해도 그러하다. 이제 우리가 두 방향을 동시에 체계 B의 스핀값을 아는 것과 같이 두 방향을 동시에 따르는 체계 A의 스핀을 동시에 측정하는 것은 가능하지 않더라도, 만약 우리가 아래와 같은 것을 따른다면, 손쉽게 그 쟁점과 관련하여 동일한 사태에 해당하는 검사를 실행할 수 있다. 즉 우리가 검사에 관심을 가지는 것은 객체들이 측정행위와 독립적으로 결정된 속성들을 가지는지 아닌지이기 때문에, 우리는 체계 A와 B가 대립적인 방향들 안의 그 광원으로부터(여기서 그것들은 얽힌 상태로 존재한다) 떠나도록 정돈함으로써 이러한 검사를 성취할 수 있는 것이다. 이때 입자들이 거기 도달하는 경로에 있는 동안, 세 방향(x, y 또는 z) 중 어떤 것을 따라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있는 스핀 탐지기를 향해 그것들 각각이 움직인다.[30] 핵심은 예컨대 입자들이 광원을 떠난 후에, 두 SG 장비 모두가 x-방향으로 향하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에, 입자들이 광원을 떠날 때, z-방향에서 스핀 결정값을 가질지, 이에 앞서 다른 방향들에서 결정값을 가질지 둘 모두에 대해 (미결정성의 원리에 따라) “어떤 선행하는 일치를 이룰” 수 없었다는 것이다. 그렇다 해도 <273>양자 역학은, 측정을 위해 어느 축이 선택되든 상관 없이(입자들이 광원을 떠나 잘 나아간 후) 측정에 따른 스핀값은 대립적으로 상관관계를 맺고 있음이 발견된다고 예측한다! 어떻게 이럴 수 있는가?
당신은 아인슈타인을 따라 양자역학이 완전한 이론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이러한 결과를 설명하는데 심한 압박을 느낄 것인 반면, 만약 우리가 단순히 물리 체계들이 측정과는 (완전히) 독립적으로 규정적 속성들을 가진다는 것에 동의하면, 즉 우리가 체계들 각각이 세 방향을 따라 결정된 스핀값을 가진다는 고전 형이상학의 입장을 취한다면, 결과가 쉽게 해명될 수 있다고 논증할 것이다. 그리고 만약 양자역학이 우리에게 이 스핀 구성요소들 각각의 값들을 말해주지 못한다면, 그 이론은 확실히 부적합하다. 왜냐하면 어떠한 진지한 이론도 우리에게 물리적 실재에 대해 알아야 할 것들이 그 이론에 모두 있다는 것을 말해줄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EPR 논문에서 형성된 논증의 핵심이다. 이것은 다소 상세하게 들여다 보도록 하자.
아인슈타인과 그의 동료들은 다음과 같이 추론한다. 우리가 체계 B를 위한 스핀값을 그것을 직접적으로 측정함이 없이, 즉 B를 방해하는 경로 없이, 어떤 축을 따라서도 결정할 수 있다는 사실(A에 대한 모든 측정을 수행하기 위해 얽힘을 활용함으로써)은 그것이 줄곧 이러한 속성들을 가졌어야만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왜냐하면 유일한 다른 납득할만한 설명이란 어떤 빛-보다-빠른, 사실상 즉각적인 소통의 형식이 A와 B 사이에 정보를 이전시킨다는 것이지만, 그 경로는 특수상대성 이론을 위반하기 때문이다. 달리 말해 사람들은 오로지 두 가지 가능한 설명만이 있다고 주장한다. 즉 (1) 체계 A에 대한 측정 결과는 어떤 비국소 효과(nonlocal effect), 즉 체계 B의 물리적 실재성에 즉각적인 영향력을 가진다. 또는 (2) 양자역학은 불완전하다. 사람들이 특수상대성 이론과 부딪히게 된다는 첫 번째 선택지를 이해하기 때문에, 그들은 양자역학이 완전한 이론이 아님에 틀림없다고, 그리고 사실상 이해를 막는 어떤 다른 변수들, 즉 만약 발견된다면 결국엔 그들이 드러냈다고 주장하는 바가 실제로 동시에 물리적 실재의 요소들이라는 소위 상보적 변수들을 포함하여 모든 물리적 실재를 해명할 변수들이 있음에 틀림없다고 결론내린다.
EPR 논문이 보어에 끼친 영향은 “놀랄만한” 것이었다고 알려져 있다(Wheeler and Zurek 1983, 142). 실제로 보어의 동료인 레온 로젠필드는 그 논문이 “우리 머리 위에 청천벽력처럼 내려왔던 습격”으로 묘사했다. 확실히 어떤 민첩하고 신랄한 반응이 필요했다. 보어는 모든 것을 내려 놓고, 그의 응답을 신중하게 다듬고 또 다듬었는데, 그는 이를 위해 6주간 준비했다(보어의 기록에 따르면, 그는 각 논문에 공을 들였고 <274>출판 전까지 여러 개의 초고를 썼다. 그의 응답의 핵심은 아래의 구절에 담겨 있다.
우리의 관점에서 이제 우리는 위에 언급된 바, 아인슈타인, 포돌스키 그리고 로젠에 의해 제안된 물리적 실재의 규준은 “어떤 체계를 방해하는 식이 아닌”이라는 표현의 의미와 관련하여 모호함을 담고 있다. 물론 측정과정의 마지막 관건적 단계 동안 탐구 중인 체계의 역학적 방해에 관해 아무런 문제도 고려되지 않는 것과 같은 경우가 있다. 그러나 이 단계에서조차 본질적으로 체계의 미래 행위와 관련있는 가능한 예측 유형을 정의하는 바로 그 조건들의 영향에 관한 질문이 존재한다. 이 조건들은 ‘물리적 실재’라는 개념이 합당하게 붙여질 수 있는 어떤 현상의 기술에 관한 고유한 요소를 구성하기 때문에, 우리는 언급된 저자들의 논증이 양자-역학적 기술이 본질적으로 불완전하다는 그들의 결론을 정당화하지 않는다고 본다.(Bohr 1935)[31]
보어는 물리적 실재에 관한 EPR의 규준에 문제제기를 한다. 그의 응답은 체계 A에 대한 모든 측정을 수행함으로써 체계 B의 속성들을 연역하고 이에 따라 그것이 무엇이든지 간에 어떤 방식으로 B를 방해하기 않는다는 논지는 주의를 딴데로 돌리는 것이라는 사실을 강조한다. 보어에게 방해란 진정한 쟁점이 아니다. 즉 “물론, 체계의 역학적 방해에 관해 아무런 문제도 고려되지 않는 것과 같은 경우가 있다.” 이 경우 체계 B가 방해받지 않았다는 사실(측정이 체계 A에 대해 행해졌으므로)에 관한 단순한 앎을 넘어, 보어는 방해라는 생각을 주제화하는 바로 그 생각이 틀렸다고 주장한다.[32] 물리적 실재의 본성에 관한 우리의 이해에 있어서 보어에게 쟁점이 되는 것은, 방해의 문제라기보다 ‘객체’와 ‘관찰 행위소들’ 간의 존재론적 미결정성의 객관적 해법이다. 즉 “본질적으로 체계의 미래 행위와 관련있는 가능한 예측 유형을 정의하는 바로 그 조건들의 영향에 관한 질문이 존재한다.” 다시 말해, 본질적인 쟁점은 존재론적 모호성이 어떤 특유한 실험적 배치로만 해결되는 방식이다. 만약 실험적 배치가 변화되면, 그 절단에서, 즉 ‘관찰 행위소들’로부터 ‘객체’의 윤곽이 드러나는 중에 그에 상응하는 변화가 존재하며, 인과 구조(그에 따라서 “체계의 미래 행위”)가 그 절단에 의해 수립된다. 따라서 보어는 “어떤 현상의 기술에 관한 고유한 요소를 구성하”는 이러한 “바로 그 조건들” - 전체 실험 배치 – 이 모호함을 해결하는데 필수적이며, 결과적으로 관찰-독립적인 객체라는 몇몇 추상적 관념이 아니라, 전체 실험적 배치를 포함하는 현상이라는 생각에 “‘물리적 실재’라는 개념이 합당하게 <275>붙여질 수 있”다. 보어는 다음과 같은 근거에서 EPR 논증을 거부한다. 아인슈타인, 포돌스키 그리고 로젠에 의해 사용되는 물리적 실재에 관한 규준은, 그들이 측정한다고 가정하는 그리고 처음부터 결정되어 있다고 추정되는 객체의 경계들과 속성들의 본질적인 모호함(미결정성)이 주어진 실험적 배치 바깥에서 해결되지 않으므로, 객관적이거나 명확하지 않다. 그리고 그들이 상이한 상보적 변수들을 측정하기 위해 상이한 실험적 배치들을 사용하기 때문에, 물리적 실재에 관한 그들의 규준에는 본질적인 모호함이 있다.
보어의 응답은 EPR 논변을 성공적으로 차단시켰으며, 최종적으로 쟁점을 해결했던 것인가?[33] 보어의 응답은 대부분의 물리학자들을 만족시켰다고 알려져 있다. 다른 한편 아인슈타인은 만족하지 않았다. 보어는 그가 결국 아인슈타인을 설득하지 못했다는 것에 낙담했다. 그들이 결국 보어의 응답에 의해 설득되었든 아니든, 다름 아닌 순전한 실용주의가 아니라면, 대개의 물리학자들은 문제가 해결되었다고 생각했다. 즉 양자역학은 지금껏 가장 성공적인 계산도구라는 것이 증명되었으며(양자 수식체계가 원자 반지름의 10-10에서 1015에 이르는 범위 - 25 크기질서 - 에서 성공적으로 현상들을 예측한다는 것을 증명하는 실험적 증거들이 있다), 만약 물리학의 거인들이 이론의 해석과 관련하여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그때 이 철학적 질문들은 간단하게 괄호쳐질 것이다. 이러한 사고 실험들은 현실화되지 못할 것이라고, 즉 아인슈타인과 보어 간의 실험실적인 대결은 결코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고 오랫동안 추정되어 왔다. 대부분의 물리학자들이 관련되는 한, 이 문제는 ‘단순히 철학적인’ 또는 형이상학적인(문자 그대로 물리적으로 검사가능한 영역을 넘어서는) 것이었고 거기에는 그 어떤 물리적인 결론도 존재하지 않았다. 시간에 관한 실증적인 기조가 주어지면, ‘단순히 철학적인’이라는 표식은 경멸적인 어조를 띄었고 근원적인 주제에 대한 무시하는 태도를 강화했다.[34] 근원적인 주제들은 간단히 무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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