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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변하는 현대철학 용어사전

강도

by Nomadia 2022. 6. 24.

강도(intensity)

 

강도는 들뢰즈의 철학적 기획에서 핵심 개념이다. 이 개념은 그 자체로 들뢰즈 존재론의 강도적인 잠재성을 표명하는 것이다. 그의 윤리학과 정치학에서 긍정적이고 창조적인 욕망, 그의 미학 이론에서의 감응, 초월론적 경험론을 위해 그의 방법론적 결정을 동기화하는 것, 그리고 차이([]분화)의 이론을 보증하기 위한 것으로 이 개념이 요구된다.

 

들뢰즈의 생성의 존재론은 우리가 사물/사태와 그것들의 질들을 배제적으로 생각할 때 우리가 범하는 오류를 탄핵한다. 왜냐하면 연장성과 연장된 양을 특권화함으로써 우리는 연장된 것의 강도적 발생을 간과하기 때문이다(초월적 가상). 들뢰즈의 역능[]의 존재론에서, 역능은 힘들 간의 관계를 지칭한다. 역능은 힘들이 부여하는 결과들을 통해서만 경험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힘들의 장의 결과들은 연장적이고 질적이다. 초월론적 경험론은 그러므로 연장적 존재자를 구성하는 강도들이 감각되어질 것을 요구한다. 유명한 들뢰즈의 감각되어야 할 것’(sentiendum)이 바로 이것이다. 이러한 감각하기는 우리의 평범한 감각의 수행으로는 성취될 수 없는 것이다. 강도는 상기되고, 상상되며, 사유되며 말해질 수 있다. 강도들안 실체들이 아니라, 잠재적인 것으로서 아직 실재 사건이 아니며, 이 사건의 실존 양태는 그들 스스로를 사태(states of affair)에서 현행화하는 것이다.

 

다음은 들뢰즈의 글들에 간간히 등장하는 주의사항들인데, 이는 반드시 유념해야 한다. 첫째로 잠재적 강도는 그것이 구성하는 연장된 것 외에 다른 곳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이 연장된 것과 동일하지 않다는 것이 사실이라 할지라도, 잠재적 강도는 존재론적인 분리로 귀결되지 않는다. 두 번째, 강도를 파악하게 하는 요청들은 더 이상 순수이성 단독의 의무론을 제한하는 것이 아니다. 강도는 오히려 이러한 의무론의 영역을 확장함으로써 그것이 모든 능력들을 장악하게 한다. 감각으로부터, 기억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사유에 이르기까지 그러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도와의 마주침은 감각의 임무이기도 한데, 이것은 사유 안에서 차이화되는 잠재성을 발생시키기 위해 투쟁하는 모든 능력들의 상호작용에 있어서 첫 번째 필연성이다. 세 번째로 강도는 개별적인 예시를 위한 또는 거짓 지원자를 솎아내기 위한 이데아/패러다임이 아니다. 강도는 현행적인 케이스들을 발생시킬 수 있는 어떤 특이성이지, 그것과 닮은 것을 산출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들뢰즈의 존재론은 차이의 개념 주위에 건설되는데, 이때 차이란 ‘xy와 다르다라는 형식을 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차이 그 자체를 목표로 하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들뢰즈가 강도를 강조하는 이유는 그것이 연장된 양과 다르기 때문이다. 이때 연장된 양의 외적 관계(partes extra partes)는 그들의 본성에 있어서 어떤 상응하는 변화 없이 분리를 허용한다. 하지만 강도는 그 본성상의 변화 없이는 분리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강도들은 측정불가능하며 그것의 서로 간의 거리는 그것들 각각에 대해 어떤 그 자체의 진정한 차이를 형성하는 것이다. 강도량은 부가되는 것이 아니라, 평균화된다. 들뢰즈 존재론의 양측면(잠재적인 것과 현행적인 것)의 맥락 중간에 있으면서, 강도들은 잠재성의 현행화, 연장과 선형적이고 연속적인 시간, 연장된 신체들 그리고 그것들의 질들의 발생을 촉진시킨다. 잠재적인 것과 강도를 보증하는 현행적인 것 사이에 함축된 가역성의 관계는 부엔트로피적인(negentropic) 죽음의 운명을 겪지 않을 것이다.

 

들뢰즈 윤리학과 정치철학 그리고 미학에서의 강도의 역할은 마찬가지로 중추적이다. 들뢰즈의 윤리학은 두 축 주위를 회전한다. 첫번째는 우리가 잠재적 사건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는 스토아/니체적인 명법이다. 두 번째는 스피노자적인 충고로서, 기쁨의 삶을 살기 위해 그리고 역능을 확대하기 위해 좋은 만남을 추구하라는 것이다. 기쁨의 윤리 그리고 우리의 역능을 증가시키는 좋은 만남은 기분 좋음에 속할 만한 것이다. 이것은 만약 잠재성의 강도를 위해서가 아니라면 심리학의 자기조력 형태라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가치 있는 사건이 되는 것은 우리의 삶을 채우는 사고들(accidents)의 역-현행화에 관해 자제력을 요구하는 것이며 이는 결과적으로 강도적이고 잠재적인 사건으로의 우리의 참여를 의미한다. 이와 유사하에 들뢰즈의 정치철학은 만약 다중(the multiple)다수’(the many)와 같지 않다는 사실을 망각한다면, 그저 그런 다중의 기념비가 될 것이다. 우리에게 닥치는 혁명의 역현행화 안에서, 결코 오지 않은 그리고 아직은 결코 그저 지나쳐 버리지는 않는 혁명은 비시간적이고, 잠재적이며, 강도적인 사건으로 파악된다. 이것은 우리에게 주어지는 가치 있는 운명에 대한 긍정이다. 마지막으로 그의 미학에서 들뢰즈는 형상을 감각으로 대체하는데, 이때 강도는 앞서 주어진 것으로 제시된다. 예술가가 목표로 하는 것은 사실상 감각이다. 감각은 직접적으로 그것이 재현하지 않는 역능들의 강도와 연관된다. 감각은 감응이지, 주체적인 것도 객체적인 것도 아니다. 그보다 그것은 그 둘 모두를 의미한다. 우리는 감각 안에서 동시에 그것 때문에 발생하는 어떤 것이 된다.

 

Corustantin V Boundas ‘INTENSITY’ Eugene B. Young, Gary Genosko, Janell Watson,

The Deleuze & Guattari Dictionary, Bloomsbury, 2013, 179-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