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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다가다 번역

강제노동으로부터 창조노동으로_기본소득에 관한 대담(가이 스탠딩 & 마르티나 타지올리)

by Nomadia 2021. 4. 20.

*원문출처: RADICAL PHILOSOPHY 2.09 / Winter 2020-21

https://www.radicalphilosophy.com/interview/from-forced-labour-to-creative-work

 

강제노동으로부터 창조노동으로

- 가이 스탠딩(Guy Standing)과 마르티나 타지올리(Martina Tazzioli) 대담

 

마르티나 타지올리: 당신의 작업에 대해 통상적인 질문에서 시작하고 싶군요. 불안정성(pracarity[불안정 노동])과 하나의 계급으로서의 프레카리아트’(precariat)의 출현에 관한 성찰과 기본소득(basic income)에 대한 당신의 이론작업과 어떻게 연결되는지요?

 

가이 스탠딩: 그렇지요, 나는 두 주제에 관헤 수 년간 연구해 왔습니다. 내가 19869월 기본소득지구네트워크(BIEN)을 설립할 때는 물론 데처리즘(Thatcherism)과 신자유주의 경제학이 전면에 나설 때였지요. 이 둘은 유연한 노동 시장[정책]을 강제하고 있었어요. 그리고 그때 나는 국제노동기구(International Labour Organisation)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그러한 유연한 노동 시장이라는 것이 나에게는 노동자들의 불안정성을 증가시키는 것을 의미했지요. 나는 신자유주의의 전반적인 전략이 불평등과 경제적 불안정성을 증가시킬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그 당시로서는 처음으로 도덕적인 이유에서, 윤리적 이유에서 그리고 인민들에게 안정성과 자유를 부여할 방법으로서 기본소득에 찬성했지요.

 

그래서 나는 기본소득에 대해 철학적인 접근을 가지기도 했지만, 동시에 노동경제학자로서 노동 시장에 관해 연구하고 있었던 겁니다. 그리고 어떤 더 파편화된 사회가 신자유주의 정책들로 인해 전개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1980년대 이전에는 프레카리아트가 요구되지 않았지만, 1990년대에 그리고 그 이후로 맑스의 용어로 이해하자면 19세기와 20세기의 옛 계급구조의 어떤 분열현상이 일어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맨 꼭대기에는 금권정치를, 그리고 중간층에는 고용안정성을 가진 봉급생활자를 가지게 되었지만, 이 두 계층 아래에서 프레카리아트는 증가하는 반면, 옛 프롤레타리아트(19세기와 20세기에 사람들이 분석했던 산업 프롤레타리아트)는 감소하는 사태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명맥하게 많은 인민들에게 불안정성이 증가하고 있다는 것이지요.

 

나는 2011년에 프레카리아트라는 책을 썼지만, 실제로는 그 이전에 수 년 동안 프레카리아트의 성장에 관해 논의해 왔습니다. 그리고 프레카리아트의 성장은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기본소득을 지지하게 될 것이라는 기대에 대한 주요 근거 중 하나였다고 봅니다. 만약 당신이 그 모든 불안정성과 그에 수반하는 문제들과 더불어 증가하는 프레카리아트를 보게 된다면, 그것을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 소득 안정성을 보장하는 일련의 기본소득 체계를 가져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 분명합니다. 따라서 통합된 접근에 따르면, 이 두 가지[프레카리아트 증가과 기본소득-역자]는 함께 가는 겁니다.

 

MT: 당신은 책에서 기본소득에 제한이 없어야 한다고 논합니다. 다시 말해 그것은 불안정하고, 빈곤한 사람들 뿐 아니라, 모든 사람들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는 거지요, 그렇지 않습니까?

 

GS: 그렇습니다. 하지만 옛 노동계급은 일정 수준의 노동 안정성을 향유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그들은 안정된 상근직을 갖고 있었고, 주택, 상대적으로 안정된 임금 등등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기본소득을 지지하게 만드는 것은 프레카리아트의 지지를 얻는 것보다 더 힘들었지요. 프레카리아트로서 당신은 변동이 심한 임금, 불안정한 직업을 가지게 되고, 얼마간의 안정성을 가져다 줄 정부보조금에 접근할 수도 없는 등의 불이익을 겪게 됩니다. 이러한 이유로 프레카리아트는 옛 프롤레타리아트가 그랬던 것보다 더 기본소득을 지지하는 경향을 가지게 될 것이고, 나는 이러한 예상이 실현되리라고 생각합니다.

 

MT: 책에서 당신은 기본 소득이 무제한적이어야 하고 시민의 자격과는 상관없어야 한다고 논합니다. 이것은 이주민과 한시적으로 체류하는 사람들도 기본소득 지급 대상일 수 있다는 의미인가요?

GS: 기본소득 지급은 행동적 측면에서 제한이 없어야 합니다. 달리 말해 당신은 보조금을 취득하기 위해 XY 또는 Z를 해야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지요. 나는 실용적인 이유로 우리가 통상적인 거주 시민들에게 그리고 합법적으로 국가에 들어오고 얼마 동안 그 국가에 머물러 있었던 이주민들에게 기본 소득을 줄 수 있다고 말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철학적으로 근거지워진 기준이 아니라 실용적인 이유에서 말이지요. 하지만 만약 우리가 그와 같은 일련의 규칙들을 허용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기본소득을 도입하기 위한 정치적 지지를 결코 얻지 못할 겁니다. 왜냐하면 신-파시스트들이 일반적인 외국인/이방인 혐오를 반-이주민 논리로 만들어버릴 것이기 때문입니다. 기본소득은 우리가 이주민들의 욕구와 열망을 무시해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지요. 나는 열린 사회를 믿으며, 사람들이 존엄하게 대우받고 지원받아야 한다고 봅니다. 나는 단지 이주민들이 어떤 국가에 들어올 때, 자동적으로 그리고 즉시 기본 소득을 받지는 않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존중 받아야 하며 지원을 해야 하지요. 하지만 그것은 기본 소득이 아닌 다른 형태의 지원이어야 합니다.

 

MT: 기본 소득과 관련해서 국가의 역할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리고 몇몇 사람들이 기본 소득을 향해 제기하는 비판, 즉 국가의 중심적 역할과 시민들의 국가에의 의존성과 관련된 비판에 대해 당신은 어떻게 대응하십니까?

 

GS: 철학적으로 그리고 경제학자의 관점에서 나는 우리가 국가라는 것이 의미하는 바를 재-음미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그것은 분명 정부 이상이고, 삶의 과정들을 통치하는 우리 사회 안의 [국가]기구들을 의미합니다. 신자유주의 시대에 일어나는 일들은 국가가 어떤 일반적인 신자유주의적 환경을 창조하기 위한 도구로 변화되어 왔다는 것인데, 여러 가지 끔찍한 것들 가운데에서도 이것은 공통적인 것들, 모든 편의시설, 우리의 땅, 물의 사유화[민영화]를 포함합니다. 삶의 모든 부분이 사유화되어 왔습니다. 이는 불안정성에 대한 감각을 부단히 강화했지요. 역설적인 것은 그 결과 국가가 훨씬 더 강압적으로 되었다는 점입니다. 그것은 삶을 자본이 좋아할 만한, 이윤 획득을 옹호하는, 모든 것에 대한 사유화를 추구하는 그런 기구들을 통해 지배하지요. 따라서 나는 우리가 어떤 다른 종류의 국가를 요구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기본소득은 사람들에게 세습되는 부에서부터 모든 것들에 이르기까지 사회적 수익을 나누면서 어떤 정의감을 가져다 주는 방식인 겁니다. 이것은 인격의 자유와 특히 공화주의적인 자유에 대한 감각을 사람들에게 부여할 수 있는 하나의 수단입니다. 이러한 감각은 당신이 권위에 의해 그리고 무소불위의 권력을 점하고 있는 사람에 의해 지배되지 않는다는 그런 감각입니다. 기본소득이 이 모든 것을 다 하지는 않을테지만,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 수는 있습니다. 다시 말해 그것은 사람들에게 공화적 자유의 감각을 준다는 겁니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리가 인간으로서 기능하기 위해 요구되는 안정성도 부여하지요. 기본 소득이 실시됨으로써 우리가 유모 국가’(nanny-state[복지국가를 비꼬는 말-역자]라고 조롱받는 국가를 만들어내리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지금 우리가 가진 것은 일종의 가혹한 온정주의적 간섭 국가며, 이것은 확실히 두려워할만한 것이지요. 이 국가는 당신에게 당신이 욕구하는 것을 말해 준다고 여기며, 당신의 필요를 돌본다고 추정하지요. 그리고 만약 당신이 그러한 온정주의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징벌적이며 강제적이 됩니다. 우리는 그러한 국가로부터 멀어지고, 행동 경제학(behavioural economics)으로부터 멀어지고, 국가 온정주의로부터 멀어져 인민이 자유에 관한 감각을 가질 수 있게 하는 어떤 국가를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실제적인 공통체들을 창조하거나 재창조할 수 있으며, 사회적 연대를 만들어낼 겁니다.

 

또한 나는 우리가 기본소득을 무슨 만병통치약처럼, 어떤 독보적인 정책인 것처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진보적인 정치학의 일부, 우리가 사회를 재창조할 필요가 있다고 말하는 어떤 새로운 진보적 방식으로 바라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는 신자유주의 기획이 사회를 원자화하고, 사회를 부수어 버렸고, 거부해 왔기 때문입니다. 나는 이제 막 공통적인 것의 약탈(Plunder of the Commons)이라는 책을 써서, 20198월에 출간되었지요. 이 책은 공통적인 것이 어떻게 상품화와 사유화에 의해 탈취되어 왔는지, 어떻게 그것이 특별히 금융자본에 의해 식민화되어 왔는지를 보여줌으로써 프레카리아트와 기본소득에 관한 내 분석의 구도를 완결하려는 시도입니다. 만약 우리가 새로운 진보적 정치학을 가져야 한다면, 사회를 위해 공통적인 것들을 재전유할 필요가 있습니다.

 

MT: 당신은 인지자본주의 이론과 포스트-포디즘 경제에서 우리 모두가 생산물이며, 생산하고, 심지어 일하지 않을 때조차 그러하다고 주장하는 저자들과 어떻게 관련되는지요? 내 생각에는 크리스티안 마라찌(Christian Marazzi)나 안드레아 푸마갈리(Andrea Fumagalli)와 같은 경제학자들은 기본소득에 대해 다소 다르게 접근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들은 그것을 실제로 다음과 같이 말함으로써 정당화합니다. 즉 우리 모두는 가치를 생산하는데, 그 가치는 비록 우리가 임금 노동으로 지불받지 않더라도 사회적 협업으로부터 나온다는 것이지요. 그들은 기본소득을 그들이 생산을 보다 넓게 개념화하면서도, 우리 모두가 생산적임을 주장함으로써 정당화합니다.

 

GS: 나는 수 년에 걸쳐 이 전체 주제에 대해 푸마갈리와 토론했지요. 그는 오래된 친구이며, 나는 당신이 그의 관점과 나의 관점이 매우 가깝다는 것을 발견하리라 여깁니다. 우리의 논의에서 우리는 가끔 복지(welfare) 대신에 공통-(common-fare)라는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하지만 나는 인지 자본주의에 관한 생각이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것에 개입하기에는 아마도 너무 추상적이라고 보며, 생산주의적이라는 단어 또한 문제적이라고 믿습니다. 당신은 교환가치와 사용가치 간의 맑스주의적인 구별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나는 기술혁명이 수행하는 것이 부불노동(unremunerated work), 즉 어떠한 교환가치도 가지지 않는 그런 노동의 양을 증가시키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바로 지금 하고 있는 것을 채택해야 합니다. 예컨대 당신은 물론 나에게 [임금을] 지불하지 않으며, 나는 어떤 것도 벌어들이지 않지요. 우리는 지불노동과 관련하여 점점 더 부불노동을 하고 있는 겁니다. 우리는 점점 더 작업장 바깥에서, 공식적인 노동-시간 바깥에서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노동과 지불노동을 쉽게 구분할 수 없을지라도, 우리가 종사하는 노동의 많은 형식들이 지불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나에게 기본소득의 전체적인 본질, 또는 당신이 선호하듯이, 공통 배당(common dividends) - 내가 새로운 책에서 제안한 노선에 따르면 우리가 창조해야하는 공통 기금에서 사람들에게 지불되는 것 은 이 공통-재와 근대 자본주의의 본성에 관한 이러한 감각을 혼합하는 방식입니다. 여기서는 특히 만약 당신이 프레카리아트에 속한다면 노동이 아닌 많은 일을 해야하지요. 이 일들은 어떠한 교환가치도 가지지 않고 사용가치만을 가집니다 동시에 만약 당신이 기본소득 체계에 속한다면, 당신은 공동체의 일에 보다 많은 시간을 쓸 수 있게 될 것이에요. 이러한 일은 우리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이기도 하지요. 당신은 사람들이 그들의 일에 대해 보다 큰 지배감각을 가지도록 할 수 있으며, 따라서 사회적 연대를 강화하고, 사회적 감각을 강화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당신에서 그러한 안정성에 관한 기본 감각을 부여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우리가 어떠한 안정성도 가지지 않는다면 그리고 어떠한 분배 체계도 가지지 않는다면, 그때 많은 사람들은 착취와 억압에 보다 더 취약해질 겁니다.

 

MT: 페미니스트 그룹들 이를테면 아르헨티나의 니 우나 메노스(Ni Una Menos) 그룹과 이탈리아의 우나 디 메노(Una di Meno)와 같은 에 의해 제기되는 바, 사회적 재생산을 포함함으로써 기본 소득에 대한 생각을 확장하는 자기-결정 소득(self-determination income)을 도입하자는 주장에 대해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는지요? 보다 폭넓게 봐서 당신은 오늘날 사회적 재생산이라는 의미에서 생산의 의미를 확장하자는 요구가 있다고 생각하시는지요?

 

GS: 나는 내가 그러한 특정 이슈에 대해 주장할 위치에 있는지 잘 모르겠어요. 나는 분명 페미니스트인데, 왜냐하면 모든 의미에서 평등을 옹호해야 하며, 모든 사람들이 그들의 잠재력을 실현시킬 수 있도록 해야한다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내 입장은 우리 사회의 부는 과거에서부터 지금까지 우리의 공통성에 의해 매우 광범위하게 창조되어 오고 있으며, 우리 모두는 역사적인 생산물들을 공유할 동등한 권리를 가진다는 겁니다. 이것은 사람들이 돌봄과 사회적 생산이라는 모든 차원에서 다른 사람들을 보살피는데 보다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것이지요. 그리고 그러한 공통의 부는 우리에게 보다 많은 창조적이고 생산적인 시간을 줄겁니다. 마찬가지로 그것은 우리가 수립하고자 하는 생태적인 목표를 추구하도록 도우기도 할 겁니다. 나는 당신이 급진적인 페미니즘에 대해 방금 말했던 것과 이러한 의견이 부합한다고 보며, 그래서 그러한 페미니즘이 마음에 듭니다.

 

MT: 당신은 기본소득이 부유한 국가와 이른바 개발도상국, 즉 대략 복지 국가 체제가 작동하는 국가들과 그렇지 않은 국가에서 이해되고 채택되는 방식이 다소 다르다고 보시나요? 또는 아직은 그렇지 않다고 보시나요?

GS: 어떤 측면에서 기본 소득이 개발도상국에 도입되는 것이 더 쉬워요. 왜냐하면 거기서 여러분들은 사회적인 복지 국가에서 작동중인 그 모든 복잡한 기구들을 가지지 않을테니까요. 나는 최근 이에 대해 노동당에 보고서를 하나 제출했고, 국가의 여러 부문에 우리는 지침들을 제안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당신은 기본소득을 시범적으로 실험하기 위해, 다른 어떤 것을 대체해야 합니다. 영국적인 맥락에서, 2012년에 토리당이 보편적 신용을 도입했는데, 이것은 창피하고, 참혹한 시스템이었으며, 기본소득의 시행을 보다 복잡하게 만들어버렸습니다. 그런식으로 기본소득을 실행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그리고 당신은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 중앙정부로부터 매우 많은 제도적인 지원을 필요로 하게 됩니다. 우리는 시범적인 기획들을 인도에서 수행했어요. 거기서 우리는 기존의 복지체계를 대체하지 않고 일종의 온건한 기본소득을 도입했지요. 우리는 위생과 건강 그리고 학교교육과 여성의 위치, 장애인의 위상 등등이 증강된 것을 발견했습니다. 나는 만약 우리가 칼라브리아(Calabria)나 맨체스터에서 체계를 도입하려 했다 해도, 매우 유사한 효과를 낼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노동에 관한 나의 보고서는 윌리암 베버리지(William Beveridge)와 그가 1942년에 기초를 잡은 복지 보고서로부터 몇몇 영감을 얻은 것이에요. 베버리지는 그가 도입하고자 했던 시스템을 그것이 다수의 큰 재난들을 물리칠 것이라고 말함으로써 정당화합니다. 그는 그가 제안하는 사회보장체계가 그가 불렀던 바대로, 그 거대한 재난들을 극복하는데 도움을 줄것이라고 생각했지요. 나도 또한 기본소득에 대한 생각을 어떤 좋은 사회에 관한 아이디어와 연결하고자 합니다. 오늘날 우리가 물리치고자 하는 거대한 재난은 불평등, 불안정 그리고 막대한 개인부채로서, 이 모든 것들은 막대한 억압을 만들어내지요. 기술적 변화들, 자동화와 인공지능도 또한 불평등과 불안정성을 증가시킵니다. 아는 이러한 것들이 노동을 줄이거나 대체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나는 우리가 보다 적은 일이 아니라 더 많은 일을 하고 있으며, 많은 사람들에게 그것이 지속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기본소득에 관한 공적 논쟁에서 우리를 승리로 이끌만한 다음 것은 멸종에 대한 공포지요. 생태위기로부터 나오는 멸종은 우리가 끝이 없는 경제 성장, 상품화, 욕망의 부추김 등등이라는 생산-기반적인 미래에서 멀어질 것을 우리에게 요청할 것입니다. 나는 우리가 생태세금을 부과받게 될 것이며, 만약 우리가 그 세금이 생산하는 이익을 공정하게 나누어 가진다면, 그것을 채택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생각해요. 정치가들과 사회의 엘리트들 사이에서 똑같이 중요하다고 간주될 만한 미래의 위험은 신-파시즘의 위협입니다. 영국의 보리스 존슨과 미국의 도날드 트럼프와 같은 인물들에 의해 지배되는 상황에서, 진보적 정치인들은 사람들에게 기본소득을 통한 몇몇 보장장치를 제공해야 합니다. 만약 그들이 안정성을 보장하지 못한다면, 더 많은 사람들이 파시즘으로 돌아설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우리가 좌파적 입장에서 보다 더 효과적으로 활용해야만 하는 주장입니다.

 

MT: 당신은 보편적 기본소득(UBI)의 해방적 효과에 대해 말했지요. 하지만 이러한 해방이란 반자본주의적인가요? 또는 이것은 궁극적으로 자본주의를 더 잘 가동시키는데 일조하는 것인가요? 기본소득에 관한 전망이란 그 자체로 단순히 계급 체계 자체를 보존하는 것이지 않나요?

 

GS: 나는 정말이지 기본소득이 해방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시 말해 억압받거나 착취당하는 그 입장이 그들을 보다 취약하게 만드는 사람들, 또는 둘 모두인 사람들은 종속되거나 지배받는 것을 거부하기 위해 아니요라고 말할 더 커다란 능력을 가집니다. 나는 물론 그 어떤 특정 정책도 저절로 온전한 해방을 성취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나는 보편적 기본소득이 기존의 다른 사회정책보다 훨씬 더 해방적이라고 봅니다. 난 기본소득에 대해 비판적인 그러한 사람들에게, 보다 온정주의적인 것이 아닌 이보다 더 해방적인 다른 정책을 가르쳐달라고 말하고자 합니다. 나는 기본소득의 본질이 모든 종류의 온정주의를 거부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반면 노동복지나 사회보장의 많은 형식들은 사실상 보다 더 온정주의적인 것에 기반하는 더더욱 직접적인 분배로서, 그 핵심적이 논법은, 만약 당신이 어떤 식으로 행동한다면, 그때 우리는 당신에서 어떤 것을 줄것이고, 당신은 감사해할 것이다라는 것입니다. 대조적으로 나는 기본소득에 관한 신뢰 뒤에 있는 모든 철학적 전통이 해방적이며 비-온정주의적이라고 생각합니다.

 

MT: 당신은 기본소득에 관한 아이디어가 정치적 스펙트럼 상의 좌와 우 둘 모두에게 어필한다고 생각하는지요? 만약 그렇다면 기본소득은 계급체계를 보존하는 것은 아닌지요? 또는 그것은 폭발적인 실업과 관련해서 과연 유용할까요?

 

GS: 나는 노동이라는 뜻깊은 권리 이점에서 나는 맑스에 동의합니다 가 부르주아에겐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노동의 권리는 다만 당신이 아니요라고 대답할지 안할지에 대한 것이지요. 그 권리는 당신이 원하지 않는 직업을 거부할 권리입니다. 그러므로 당신은 일할 권리를 가지기 위해서 기본소득을 가져야 하는 것이지요. 이 두 가지는 서로 모순되지 않아요. 그것들은 둘 다 필수적인 구성요소입니다. 노동의 의무라는 것은 노동할 권리가 아니에요. 자포자기 심정으로 밖으로 나가 당신이 좋아하지도 않지만 해야하는 직업을 구하는 것은 일할 권리가 아닙니다. 나는 또한 현재나 미래의 대규모 실업의 위기가 존재한다는 것을 믿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할 수 있는 풍부한 일자리가 널려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역사상 그 어떤 시간보다 지금 직업을 가진 더 많은 사람들을 가지고 있어요. 그래서 나는 갑작스럽게 우리가 할 일이 없어질 것이라고 믿지 않지요.

 

우리가 본래적으로 하고자 원하는 무한한 것들이 있습니다. 서로를 돌보는 것, 사회를 보살피는 것, 우리 자신을 보살피는 것, 환경을 고갈시키기보다 환경을 돕는 것들 등등 말입니다. 그래서 나는 우리 모두가 잉여분이 되리라는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지요. 내가 전적으로 지지하는 바는, 인간으로서 우리가 노동, 즉 필요의 또는 강요된 노동의 양을 줄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로 하여금 우리가 본질적인 노동에 사용할 수 있는 시간량과 창조적인 활동으로서의 여가를 증가시키는 것을 허용하도록 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