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치/ 역능'(from 들뢰즈 사전들)
║배치(Agencement; Assemblage)
1960년대 중반에 이르기까지 가타리는 정치적 전위들과 심리치료 시설에 적용하기 위해 집단적 환상이라는 어떤 개념을 발전시켰다. 하지만 그는 ‘집단’(group)의 사회-심리학적 구축이 너무 실증적이며, 개인 중심적이고, 그것의 이해가 과도하게 언표들에 의존적이며, 역사과 연결되어 투쟁하는 상상력과 욕망에 무지하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러나 1970년대 후반에 그는 보다 추상적인 ‘배치’(가끔 ‘arrangement’로 번역되기도 함)라는 개념을 내세우고, 집단이라는 개념을 포기했다. 이는 비인간(non-human) 즉 집합적 혼합체에 속하는 기계적 요소를 부가하기 위해, 집단과 개체들 간의 차이를 혼동하는 것을 피하려는 것이었다. 어떤 고도로 기술적인 묘사는 ‘기계적 무의식’이라는 개념 안에서 전개되는데, 이 개념은 상이한 종류의 공속성들(consistencies)과 핵들(nuclei)에 기반하는 것으로서, 『천의 고원』에서 여러 맥락에서 등장하며, 이때 영토성에 관한 집중적 논의에서, 그리고 그것을 개방하는 ‘선’들에 대해 논의하면서 나타난다. 여기에는 기호론적이며 지리학적인 요소가 있는데, 이것은 두 가지 특성을 공유한다. 하나는 기계적 성격이며, 다른 하나는 언표적 역능이다. 『카오스모제』가 출간된 이래, 이 개념은 무한속도의 카오스적 층위를 포함하는 것이 되며, 이는 잠재적이고 현행적인 기능들 사이의 관계들을 재도입하는 네 가지 존재론적 틀거리들에 관한 분석에 속한다. 두 가지 기능들의 절합은 더 오랫동안 강조되고 있다. 그것은 표현과 내용이다. 이 항목이 가타리의 연구로부터 도출된 정의들, 즉 들뢰즈와 더불어 가타리가 연구한 것으로부터 유래하는 정의들과 들뢰즈 자신이 푸코에 관한 연구에서 사용한 그 자신의 것 사이를 나눈다는 점에 주목하라.
1. 가타리의 집단적 환영과 욕망에 관한 설명에서, 이질적(혼합된) 요소들의 집합은, 그것으로부터 주체화가창조되며, 언표행위(enuniation)의 기호론적이고 기계적인 과정의 다양성에 포합된다. 언표행위적 요소들은 집합적인 것이지, 인간적인 것도 아니고 몰적인 본질도 아니다.
여기서 우리는, 오직 하나의 개체가, 그나 그녀가 총체화불가능한 강도적 다양체를 고려할 것이기 때문 에, 스스로를 표현한다 할지라도, 언표행위의 집합적 배치에 관해 이야기할 것이다[MU 55].
배치는 개체들을 포함할 것이지만, 또한 기능들, 기계들, 다기한 기호론적 체계들도 포함한다. 분자적 질 서로 되돌아 간다는 것은 욕망하는 기계들을 취함으로써만 가능하다. 다시 말해 집단과 개체 이전의 지 점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 우리는 대량-생산된 제도적 구조들을 탈구(misarticulating)시키는데 성공 할 것이다. 그리고 욕망에 대해 잔여적 위치, 즉 그들 스스로를 신경증적 교착상태로부터 해방시킬 가능 성을 부여하는 데에도 성공할 것이다. [GR 154-5]
하나의 단일한 배치를 형성하는 다양체들의 다양체들만이 존재한다. 이것은 동일한 배치 안에서 작동한 다. 즉 덩어리 안의 무리 그리고 무리 안의 덩어리(packs in masses and masses in packs). [TP 38, 34]
발생적이고 변형적인 정신분석을 위한 상호작용하는 실증적 장들은 공속하는 몰, 분자 그리고 추상적 인 것들이 상호작용하는 어떤 핵 또는 핵들을 전개하며, 이 공속요소들은 상이한 기호론적 요소들과 언표행위적 초점들과 함께 강하게 그리고 약하게 상호작용한다. 그러는 동안 기계적 ‘잠재력’은 여전히 보존된 다.
하나의 배치는 기계적 핵이라는 정식으로부터 다소간 그 자유도의 차이를 그린다. 하지만 이 정식은 준 안정적이다. 정식을 구성하는 추상기계는 그 자체로 어떤 ‘실재적인’ 공속성을 가지지 않으며, 어떠한 ‘질량’도, 어떠한 고유한 ‘에너지’도 어떠한 기억도 지니지 않는다. 추상기계는 일/사태의 상태와 기호의 상태 사이에 있는 어떤 가능성의 결정화로부터 나오는 초과탈영토화된(hyperdeterritorialized) 무한소적 지시작용들일 뿐이다.[MU 47; kor. 66, 번역 수정]
(특수한 유형): 이행의 요소들(Components of passage): 여러가지 임무들을 수행함으로써 수립되는 횡단적 관계들은 내적인 그리고 상호적인 배치를 허용하는 것이다. 이것은 변조하는(modulating) 공속성 처럼 그리고 양상들을 탈영토화의 상이한 수준들과 절합함으로써 추상기계가 도출되는 것과 같다. 그리고 이는 구체적 기계들의 잠재성들에 기반하는 것이다. 상호배치들은 요소들의 경화 경향에도 불구하고, 돌연 변이와 무작위성(improvisation)의 새로운 요소들에 열려진 채로 있다(특히 생물학적 측면에서 그러하다).
이행의 요소들은 분자적 개체군을 대상으로 하는 단순한 추이효과도, 단순한 통계적 방향전환일 수도 없 다. 이것들은 기계적 핵의 추상적 공속성이 감추고 있는 다이아그람적 열쇠들의 담지자들이다. 가능한 세계와 실재하는 세계가 충돌하고 증식하는 것은 바로 이 이행의 요소들을 통해서이다.[MU 147; kor. 180, 번역 수정]
2. 분열분석가의 철저한 검토의 대상은 대상의 구성요소들을 시험에 부치는 것이다. 이는 통합을 보조하거나 욕망의 탈주를 돕기 위해서다. 이때 욕망은 그 역능의 감소 즉 블랙홀들을 풀어 놓거나 역능을 빼앗음으로써 폐색된 것으로서, 공명 효과들과 몰적 구성들을 불러낸다.
우리는 여러 상이한 종류의 ‘배치하기’를 수립하는 것에 특히 관심을 가질 것이다. 여기서 배치하기는 이행의 요소의 등급들을 지나가는 어떤 요소들을 활성화한다.[MU 188, kor.225 번역수정]
3a. 들뢰즈와 가타리의 연구에서, 이 개념은 고원(mileu, 장소)에 외적인 어떤 기능을 위한 고원의 배열 (arrangement)이나 특성을 말한다. 애초에 이것은 영토의 기능(또는 궁극적으로 어떤 탈영토화된 코스모 스의 기능)을 말하는 것이었다.
영토는 첫번째 배치, 어떤 배치를 구성하기 위한 첫번째 사태이다 [...] [TP 356, 323]
b. (특수한 유형): 탈영토화된 배치: 들뢰즈와 가타리의 기계권(mechanosphere, 생기론과 기계론이 결 한한 우주론)에서, 고원 요소들의 구체적인 배열로서 더 이상 영토적인 것을 위한 기능을 하지 않을 때 스 스로를 해방한다. 하지만 대신에 이것은 영토적인 것을 잘라내거나, 통과해 가는 추상기계의 한 작동 부분 으로 통합된다. 또는 다른 배치의 부분이 된다.(이것은 영토적 배치들의 부분으로 남는 고원 요소들, 또는 너무 추상적이거나 너무 ‘구체화된’ 기계들과 구분된다.)
많은 경우, 영토화되고, 배치된 기능은 어떤 새로운 배치를 구성하기 위해 충분한 독립성을 요청하는데, 이때 이것의 다소간 탈영토화되며, 탈영토화의 과정 중에 있게 된다.[TP 357, 324]
들뢰즈와 가타리의 카프카 독해와 그들의 욕망의 탈주선에 대한 설명에서, 추상기계에 의한 탈영토화 의 적절한 대상. 이것은 그것의 탈영토화를 수행하기 위한 역능이나 힘 외에 어떤 실재성도 지니지 않는다.(추상적으로 존재하는 것).
4. 기호에 관한 들뢰즈와 가타리의 이론에서, 배치는 어떤 수평축 위에서 신체적 복합물들과 내용과 표 현의 비신체적 형식들을 동시에 생산하는 것이다. 이러한 생산은 신체들의 배열, 집합적 언표행위들, 그리 고/또는 고원들에 따른다. 또한 수직축 위에서 이것은 거의 (탈)영토화될 것이다. 이때 이것은 생물학적, 사회적, 역사적 또는 정치적 환경에 따른다.
우선 수평적인 첫째 축에서 본다면, 배치는 내용과 표현이라는 두 개의 선분(ségment)을 포함한다. 한 편에서 그것은 신체의, 능동과 수동의, 기계적 배치(agencement machinique)며, 서로 간에 반응하는 신체의 혼합이다. 다른 한편 그것은 행위와 언표의, 언표행위의 집합적 배치고, 신체에 귀속되는 비신체 적 변환의 배치다. 그런데 수직적인 방향의 축에서 본다면, 한편에서 그것은 영토적 측면의 배치 내지 그것을 안정화시키는 재영토화된 배치며, 다른 한편에선 그것을 제거하는 탈영토화의 잘려나간 첨단점 (pointes, 모서리)이다. [TP 97–8, 88; kor. 94, 번역수정]
5. 푸코의 ‘배치’(dispositif)에 대한 들뢰즈의 버전. 이것은 가시적인 것과 언표가능한 것 둘 모두를 조 직화하며, 권력 관계에 따라 다이어그램화 된다.
지식은 어떤 실천적 배치, 즉 진술들과 가시적인것들의 ‘배치’이다. [F 44, 51]
6. 들뢰즈와 가타리의 철학에 관한 설명에서, 이 개념(‘배치’)은 공속면을 (구체적인 배치물들 안에서) 변 형을 통해 지배(또는 영토화)한다.
개념들은 구체적인 배치물들이다. 이것은 기계의 형상화와 같은 것이지만, 평면은 이러한 배치물이 부분 으로 활동하는 추상기계이다.[WP 36]
- G.G. and E.B.Y.
- Eugene B. Young, Gary Genosko, Janell Watson, The Deleuze & Guattari Dictionary, Bloomsbury, 2013, 34-37.
(본문주석 문헌들)
Guattari, Félix. The Machinic Unconscious: essays in schizoanalysis. Translated by Taylor Adkins. Semiotext(e): Cambridge, MA. 2011; kor. 펠릭스 가타리 지음, 윤수종 옮김, 『기계적 무의식』, 푸른숲, 2003.
Guattari, Félix. The Guattari Reader. Edited by Gary Genosko. Blackwell Publishers: Oxford and Cambridge, MA. 1996.
Deleuze, Gilles and Félix Guattari. A Thousand Plateaus: Capitalism and Schizophrenia. Translated by Brian Massumi. Continuum International Publishing Group: New York & London. 2004.
║역능(puissance; force)
이 개념은 들뢰즈의 니체 독해로부터 나온 것이며, 영원회귀 안에서 반복의 모습으로 적용된다. 그리고 이것은 푸코의 ‘권력’과 ‘생체권력’이라는 개념에 대한 독해를 거쳐, 특히나 블랑쇼와의 대화에서 중요하게 취급된다. 한편으로 역능은 니체에게서 어떤 메카니즘이나 측정으로 환원될 수 없는 것이며, 따라서 지식 의 영역 바깥에 놓인 것이다. 더 나아가 역능은 삶/생명의 적극적이고 반응적인 질들을 발생시키는 것이기도 하다. 다른 한편 푸코는 권력을 지식(가시적인 것과 언표가능한 것)을 이용한 역능의 실행으로 정의한다. 하지만 역능의 관계 자체는 지식으로부터 자유롭다(비가시적이고 비언표적으로 존재하기). 그리고 이 것은 능동성과 반응성, 즉 촉발하는 것과 촉발당하는 것 등등의 지표가 된다. 하지만 블랑쇼는 들뢰즈의 니체 독해에 대해 말하면서, “역능들을 분리하는 거리는 마찬가지로 그들의 상호관계, 즉 그것들을 어떤 거리에서 묶어놓는 것이며, ‘외부성’이며, 그것들의 유일한 친밀성이다”(Blanchot, 1993, 160-1)라고 언급 한다.
들뢰즈는 실재로 권력의 다이아그램을 ‘방해하는’ ‘외부성의 역능’, 즉 어떤 살아 있는 저항을 작동시키 고, 새로움을 야기하는 것이 있다고 주장한다. 이것의 논리는 유일한 역능의 대상이 다른 역능이기 때문 에, 역능들은 권력의 전략적 코드화(또는 저항의 현상)로 환원될 수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외부성 으로부터 도래하는 것이며, 이때 외부성은 안쪽과 바깥쪽 세계라는 둘 모두의 한계 안에 접혀있는 것이다. (‘조우’라는 의미에서 이것은 우리로 하여금 감각을 경험하게 하거나 사유를 불러일으킨다.)
1.a. 니체의 개념. 확정되고, 조건지어지며 양적으로 한계지워진 요소(들)의 복수성. 이것은 세계와 가치 와 질들을 생산한다. 또한 양적인 것을 담고 있지만 명확하게 측정될 수 없다. 왜냐하면 그것의 관찰 가능 한 양 뿐 아니라 상대적인 양이 늘 변화하기 때문이다. 과학은 이것을 설명할 수 있다고 잘못 생각한다.
모든 [...] 편견, 소박성들, 오해들 [...]은 모든 곳에서 이러한 수적이고 양적인 것으로 역능의 범위를 환 원할 수 있다고 본다. [Nietzsche, (Will to Power #710), 1968, p. 378]
‘기계적 해석’: 욕망은 양적인 것 외에 아무 것도 아니다. 하지만 역능은 질 안에서 발견되어야 한다. 기 계적 이론은 그러므로 과정으로 기술될 수 있을 뿐 설명되지 않는다[Nietzsche, (Will to Power #660), 1968, p. 349]
역능을 고정된 것으로의 (양적인 것으로의) 측정은 [...] 그것을 변형되지 않는 크기로서의 어떤 전체성으 로 변형하며, [...] 정의된 공간에 정립된 확정적 역능으로 바꾼다. 하지만 그것은 어떤 곳이 ‘비어 있는’ 공간이 아니라, 모든 곳에 존재하는 역능으로서, 역능의 어떤 놀이이며 하나와 다수가 동시에 물결치는 힘이다. [...] 그것은 그 자신 안에서 몰아치고 떠 다니는 역능의 바다인 것이다. [...] [Nietzsche, (Will to Power # 1067), 1922]
b. 들뢰즈의 니체 독해에서, 배치는 다른 것과의 필연적 관계를 통해 우세하고 지배하는 역능들이며, 이 는 살아 있는 신체 뿐 아니라 삶/생명의 능동적이고 반응적인 질을 생산한다.
역능들은 양에 있어서 그들의 차이에 기반하여 지배하거나 지배당한다고 이야기 된다. 역능들은 그들의 질에 기대어 적극적 또는 반응적이라고 말해진다.[N 49, 53]
역능들의 모든 관계는 어떤 신체를 구성한다. 그것은 화학적, 생물학적, 사회적 또는 정치적인 신체들이 다. [N 37, 40]
c. 니힐리즘에 의해 결정될 때, 역능은 그 자신으로부터 돌아선다. 반응적 힘은 다른 힘들과의 관계로부 터 적극적 힘을 분리하고 적극적 힘을 반응적으로 만든다.
반응적 힘이 적극적 힘을 그것이 할 수 있는 것으로부터 분리시킬 때, 적극적 힘도 또한 반응적이 된다. [...] 반응적 힘들은 어떻게 승리하는가? 무에의 의지를 통해, 반응성과 부정성 사이의 친밀성으로 인해 그렇게 한다.[N 59, 57]
2.a. 차이의 전개와 시뮬라크르 체계에 대한 설명에서, 충격 또는 어두운 전조는 계열의 소통을 앞서고 그것을 불러일으킨다. 그리고 그 운동은 소통을 넘어서 그리고 그로부터 나오는 것이다. 사유를 야기하는 어떤 조우.[DR, LS]
[...] 계열은 어떤 종류의 역능의 충격 아래에서 소통한다.[DR 143, 117]
이 매개, 소통을 보증하는 이 역능은 무엇인가? 번개는 차이나는 강도들 사이를 가로지르지만, 그것은 어떤 비가시적이고 지각불가능한 어두운 전조 뒤에 온다.[DR 145, 119]
b. 영원회귀의 반복(세 번째 수동적 종합). 이것은 습관이나 기억보다 복수성과 우발성에 의해 먼저 조 건지워진다.
영원회귀의 폭발적이고 선택적인 힘, 그것의 원심력은 유사-순환의 세 시간들 사이에서 반복을 분배하는 데 놓여 있다. 하지만 또한 그것은 첫 번째 두 개의 반복이 순환하지 않도록 보증한다.[DR 370, 297]
3.a. 니체와 감응에 관한 들뢰즈의 독해에서, 감응하고 감응되는[촉발하고 촉발되는] 능력을 실행하는 힘 에의 의지로 규정되는 관계들.
각각의 경우 역능들 간의 관계는 각 역능이 다른 것, 즉 열등하거나 우월한 역능들에 의해 촉발되는 한 에서 결정된다. 이것은 힘에의 의지가 감응되는 어떤 능력으로서 드러난다는 결론을 도출한다.[N 57, 62]
힘(니체가 ‘힘에의 의지’와 독일어 ‘Welles’, 즉 ‘경향’이라고 부른 것)은 감응하고 감응되는 이 역능이 며, 하나의 역능과 다른 것들 간의 이 관계이다.[C2 135, 139]
b. 푸코에 관한 들뢰즈의 독해에서, 역능은 형식의 외부성을 구성하지만, 그것들 바깥에 있지는 않는 것이다. 역능은 어떤 권력관계를 구성하며, 항의, 유혹, 권능 또는 생산을 포함한다. 또한 이것은 (지식, 즉 내용과 표현의) 형식들 안에서 다이아그램화되는 것이지만, 어떤 주어진 형식 안에서 국지화될 수는 없다. 그리고 이는 어떤 감응[정념]으로서 (힘의 다이아그램 안에서) 적극적이거나 반응적인 것으로 결정될 수 있 거나 저항을 위한 능력을 가동하는 것이다.
권력의 실행은 어떤 감응으로 드러난다. 왜냐하면 역능은 다른 역능들(그것이 관계되는)을 촉발하고 다 른 힘들에 의해 촉발되는 바로 그것의 힘에 의해 스스로를 정의하기 때문이다. [...] 역능은 잠재성을 담 고 있는 다이아그램과 관련하여 잠재성을 전개하는 것이거나, 스스로를 ‘저항’의 가능성으로 드러내는 세 번째 힘을 소유하는 것이다.[F 74, 89]
역능과 관련되는 외부성: 만약 역능이 늘 다른 역능들과 관련된다면, 역능들은 필연적으로 어떤 환원불 가능한 바깥을 가리킬 것이다. 이때 바깥은 더 이상 어떤 형식조차 가지지 않을 것이며, 하나의 역능이 다른 것에 영향을 주거나 다른 것에 의해 영향을 받는 것을 통해 파괴되지 않는 거리들로 구성될 것이 다.[F 72, 86]
4. 역능은 직접적으로 감각되거나, 보여지거나, 들을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소실, 해체 그리고 신체의 요소들의 고립에 의해 공명하거나 가시적인 것으로 드러난다. 이는 회화, 음악 그리고 몇몇 경우에 서 문학과 영화에서 그 적합한 대상을 발견한다.[TP, FB, DR, LS, K, ECC]
회화의 과제는 스스로 가시적이지 않은 힘들을 보이도록 하는 것으로 정의된다. 이와 비슷하게 음악은 스스로 공명을 가지지 않은 힘들을 공명하도록 하는 것이다. [...] 만약 힘이 감각의 조건이라면, 그렇다 하더라도 그것은 감각되어지는 힘은 아니다. 왜냐하면 감각은 그것을 조건지우는 힘들과 완전히 다른 어 떤 것을 ‘주는’ 것이기 때문이다.[FB 56]
5. 라이프니츠에 관한 들뢰즈의 독해에서, 역능의 일차적인 역할은 모나드 안에서 주름을 접고 펼치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부차적인 역할은 접거나 접히는 것이 그 자체로 지각되지 않게 하는 것이다.
원초적 힘들은 자신 안에 있고 자신에 의한 모나드들 또는 실체들이다. 파생적 힘들은 같은 것이지만, 결속하에 혹은 순간 안에 있다. 한 경우에는, 이것들은 무리지어 잡혀 있으면서 조형적인 것이 되고, 다른 경우에는, 축적되어 잡혀 있으면서 탄력적인 것이 된다. 왜냐하면 매순간 변하는 것은 축적들이기 때문이 다(이것들은 항상 재구성되면서 한 순간에서 다른 순간으로 이행한다).[FLB 117; kor. 213-14]
- E.B.Y
- Eugene B. Young, Gary Genosko, Janell Watson, The Deleuze & Guattari Dictionary, Bloomsbury, 2013, 133-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