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의 중간에서 만나기>(카렌 바라드), 2장
원문서지: Karen Barad, Meeting the Universe Halfway, Durham: Duke University Press, 2007, 71-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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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박준영(노마씨, 수유너머 104)
<71>
2장 회절: 차이들, 우발성들 그리고 물질이 되는 얽힘들
"반영(reflexivity)은 비판적 실천으로 권유되어 왔지만, 나는 그러한 반영이 반성과 마찬가지로 복사본과 원본 그리고 진짜에 대한 탐색과 실제적인 실재에 대한 염려들을 수립하면서, 같은 것을 다른 장소에 옮기는 것이라고 의심한다. [...]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은 물질-의미론적 장치들에서 어떤 차이를 만들어 내는 것, 기술과학의 빛을 회절시킴으로써 우리의 생명과 신체들의 기록 필름 위에 보다 유망한 간섭패턴을 얻는 것이다. 회절은 세계 안에 차이를 만들어내기 위한 노고에 부여된 광학적 은유이다 [...] 회절 패턴들은 상호작용, 간섭, 증강, 차이의 역사를 기록한다. 회절은 이질적 역사에 대한 것이지, 원본에 대한 것이 아니다. 반성과는 달리, 회절은 어느 정도 왜곡된 형태로 같은 것을 다른 곳에 옮기지 않는다. [...] 오히려 회절은 이 보다 고통스러운 기독교적 밀레니엄의 끝에서 다른 종류의 비판적 의식을 위한 은유가 될 수 있다. 우리는 차이를 만들어 내기 위해 실행하지 동일한 것의 신성한 이미지(the Sacred Image of Same)를 반복하지 않는다. [...] 회절은 필연적으로 일어나는 의미들을 만들기 위한 어떤 서사적, 회화적, 심리적, 정신적, 그리고 정치적 기술이다."
- 도나 해러웨이, Modest_Witnm@Second_Millennium.FemaleMan-Meets_OncoMouse™
회절(diffraction) 현상은 이 책을 위해 딱 맞는 아치형 상징이다. 회절은 이 책에서 논의되는 많은 중요한 주제들을 위한 근원적인 함축들과 더불어, 물리학과 물리철학의 몇몇 핵심 논의의 중심에 놓여 있는 물리 현상이다. 회절은 내가 차이의 관계들에 관한 세부사항들과 특수사항들 그리고 그것들이 물질이 되는 방식을 경청하고 그것에 응답하는 전반에 걸친 통찰들을 읽어 내는데 사용되는 방법론적 접근을 기술하기 위해 딱 맞는 은유이기도 하다.
도나 해러웨이가 제안한 대로, 회절은 반성에 대한 쓸모 있는 대항개념으로 기여할 수 있다. 광학적 현상들이기도 하지만, 반성의 은유가 되비춤과 동일성의 주제를 반영하는데 반해, 회절은 차이의 패턴들에 의해 특징지어 진다. 해러웨이는 <72>앎에 대해 널리 퍼진 어구로서 반성 개념이 가진 중요한 난점들을 강조하기 위해 이 비유적 구분에 우리의 주의를 모은다. 뿐만 아니라 여기에는 자기-고려(self-accounting), 즉 연구에 있어서 이론이나 연구자의 효과를 고려하는 (사회과학적) 방법 또는 이론으로서 반영이라는 평행 개념이 가진 관련된 난점들도 있다.[1] 해러웨이의 논점은 반영의 방법론이 반성에 관한 기하학적 광학을 되비추며 자기-정립에 관한 어떤 비판적 방법으로서 반영에 대한 최근의 모든 강조에 있어서, 그것이 동일성의 기하학들 안에 사로잡힌채 있다는 것이다. 반대로 회절은 차이에 조응한다. 여기서 차이란 우리의 지식-형성적 실천들이 만드는 바이며, 사람들이 세계 위에서 가지는 그 결과들이다. 페미니즘 이론가 트린 민-하(Trinh Minh-ha)와 같이 해러웨이는 “아파르트헤이트(apartheid)적인 차이를 근거짓는 어떤 특수한 분류학적 흔적들이 아니라 내부적인 비판적 차이로서의 ‘차이’를 형상화하는 방법”을 발견하는 것에 흥미를 가진다(Haraway, 1992, 299). 중요하게도 회절은 차이의 관계적 본성에 참여한다. 본질에 속하는 물질이나 중요하지 않은 것이거나 간에 그것으로는 차이가 형상화되지 않는다. 즉 “회절 패턴은 차이가 등장하는 곳을 지도화하지 않으며, 오히려 차이의 결과들이 등장하는 곳을 지도화한다”(ibid, 300). 이러한 물질이 되는 차이들에 대해 사유하기 위해 풍부하고 매혹적인 물리적 현상을 쓸모있게 전개하기 위해 그녀의 주장에 의해 영감받으면서, 나는 차이의 효과들에 참여하고 반응하는 동안 분석의 도구로서 회절 개념에 관해 자세히 상술한다.[2]
물론 회절은 어떤 은유 이상이다. 물리학자로서 나는 세계 내에서 내가 바라보는 거의 모든 곳에서 볼 수밖에 없는 이 물리적 현상의 아름다움과 깊이에 의해 사로잡힌다. 사실상 나는 세계를 구성하는 기초적인 구성요소들이 되는 회절 패턴들 – 차이를 만드는 차이의 패턴으로서 –을 이해할 수 있는 어떤 깊은 감각이 존재한다고 논할 것이다. 그러나 독자는 책의 마지막 장에 이르기까지 확실하게 이러한 존재론적 논점을 기대하지 않아야 한다. 여기에는 우리가 거기 닿을 수 있기 전에 전개되는 논증과 통찰들의 많은 노선들이 있으며, 회절의 본성에 대해 배울 많은 것들이 존재한다. 나는 회절 개념을 이 장에 도입할 것이지만, 우선 나는 이 책에서 회절이 작용하는 상이한 수준들에 대해 무언가를 말하고자 한다.
만약 회절이 분석의 유용한 도구가 될 수 있다면, 그것의 본성과 그것이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관한 총괄적인 이해를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 회절은 어떻게 차이의 효과들이 물질이 되는지를 포함하여 빛의 본성에 관한 다소간 명백한 특성들을 만드는 방법으로서 고전 물리학에서 흥미로운 현상일 뿐 아니라, 그것이 몇몇 관건적인 인식론적이고 존재론적인 주제들을 해결하는데 있어서 우리를 도울 수 있는 양자 역학 안에서 보다 근본적인 역할 또한 수행한다. 내가 설명할 바처럼, 회절은 고전 형이상학의 몰락을 분명히 하는 양자 현상이다. 회절 실험은 <73>빛과 물질의 본성에 대한 ‘파동 대 입자’ 논쟁의 핵심에 있다. 실제로 소위 이중-슬릿 실험(이것은 오직 두 슬릿을 사용한 회절 격자를 활용한다)은 양자 물리학의 수수께끼에 상징적인 것이 되었다. 노벨상 물리학상 수상자인 리차드 파인만(Richard Feynman)은 언젠가 이중-슬릿 실험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것은 “그 어떤 고전적 방식으로도 설명하기 불가능, 절대적으로 불가능한 현상이며 거기에 양자 역학의 핵심이 있다. 실제적으로 그것은 유일한 수수께끼를 담고 있다.” 사실상 최근의 회절 현상(간섭) 연구는 양자 상태들의 얽힘의 본성에 대한 성찰을 제공해 왔으며, 실험실 안에서 물리학자들이 형이상학적 이념들을 검토하는 것을 가능하게 했다. 그래서 회절 장치들이 차이의 효과들을 측정한다는 것이 진실인 반면, 심지어 보다 근본적으로 그들은 앎의 존재론을 포함하여, 변화와 세계의 우발적 존재론의 얽힌 구조를 강조하고, 전개하고 명확하게 한다. 사실상 회절은 빛에 대하여 얽힘들의 실재성을 가져올 뿐만 아니라, 얽힌 현상 자체다.
그것들의 회절의 물리학에 관한 깊은 탐색 없이 중요성과 논점들을 파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얽힘과 회절의 본성에 관한 깊은 의미에 가닿는 것은 물론 철학과 다른 연구 영역들로부터 신중하게 통찰들을 취하되, 물리학의 세부사항들에 주의를 기울이는 철학적 탐구의 양태가 요청될 것이다. 만약 우리가 이해하길 원하는 현상의 세부사항에 충분히 귀를 기울이는 방식으로 우리의 분석 도구들(우리의 회절 장치들)에 적응하기 위해 배운다면, 나는 분석의 회절적 양태가 이런 점에서 도움을 줄 수 있다고 논할 것이다. 그래서 어떤 때에는 회절 현상들이 탐구의 대상이 될 것이고 다른 경우에는 그것이 탐구 장치들로 기여할 것이다. 그것들은 서로 간에 배제적이기 때문에, 둘 모두의 목적들에 동시에 기여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상에 관한 우리의 이해가 새롭게 정련될 때, 우리는 이러한 통찰을 더 진전된 정련으로 밀어넣을 수 있고, 우리 연구를 날카롭게 하기 위해 우리의 도구들을 조율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장의 끝에 이르러 아마도 분명해 질 것인데, 이것은 정확히 그 자체로 다음 단계에 있는 회절적 방법론의 작동이다. 현재의 분석은 따라서 물리적 현상으로서 회절의 세부사항을 통해 사유될 것이 요청될 것이다. 여기에는 회절 장치들을 조율하기 위해, 이런 경우엔 회절인 바, 바로 앞의 현상을 탐색하기 위해, 차이, 공간, 시간, 물질, 인과성 그리고 행위소, 무엇보다 중요한 변항들의 본성에 대해 사유하는 새로운 방식을 생산하기 위해, 회절과 그것들이 만드는 중요한 차이들에 대한 양자적 이해들을 포함한다.
요컨대, 내가 내가 흥미를 가지는 것은 차이들이 만들어내는 얽힌 효과들을 연구하기 위한 회절 장치들을 건립하는 것이다. <74>주요한 목적들 중 하나는 얽힘의 본성을 탐색하는 것이 될 것이고, 이러한 탐색의 과제의 본성 또한 마찬가지다. 얽힘에 대한 탐구에 뒤따라 나오는 것은 무엇인가? 우리는 그것들을 어떻게 연구할 수 있는가? 그것들에 사로잡히지 않고 연구할 어떤 방법이 있는가? 그것들에 대해 우리는 무엇을 말할 수 있는가? 무언가 말해질 수 있는 것에 어떤 한계들이 있는가? 나의 목표는 마치 모든 얽힘들에 대해 말해질 보편적인 어떤 것이 있는 것처럼 일반적인 진술들을 만드는 것도 아니고, 물리학의 권위를 거듭해서 주장하는 것도 아니다. 반대로 나는 나의 탐구가 얽힘이 고도로 특수한 배치이며, 그것들을 연구하기 위해 장치들을 세우는 것이 매우 힘든 작업이라는 것을 명확히 하길 희망한다. 그것은 부분적으로 장치들이 서로간에 간-행하며 변하기 때문이다. 사실상 그것들이 한 순간에서 다음 순간으로 또는 하나의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 변화하는 것은 그렇게 많지 않다. 그러나 공간, 시간 그리고 물질은 얽힘을 재편성하는 간-행에 앞서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얽힌 관계성들은 공간과 시간 안에서 가까운 것으로 나타나지 않는 개별실체들 간의 연결을 만드는 것이 가능하다(이에 대해서는 7장에서 더 설명된다). 논점은 얽힘의 특이함(specificity)이 모든 것이라는 점이다. 장치들은 바로 앞의 얽힘의 특수성에 조율되어야 한다. 각 경우에 핵심 질문은 이것이다. 즉 장치들이 만드는 얽힘과 차이들을 책임있게 탐색할 방법. 나는 이러한 탐색작업이 여타 얽힘들의 연구에 도움을 줄 몇몇 통찰들을 제공할 것이라 희망한다.
나는 아마도 전체 조직, 복잡성 그리고 이러한 현상의 풍부함이 전체 책이 읽히고 나서야 비로소 전반적으로 밝혀지는 바, 그 회절에 관한 생각을 시작부분에 도입한다고 독자들에게 주의를 주어야 한다. 즉 그 회절적 절합은 전체 장들의 정련 작업을 통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회절에 관한 고전적 이해의 개괄로 시작하도록 하자. 간단히 말해, 회절은 파동들이 중첩도리 때 결합하는 방식, 그것들이 차폐물을 만날 때 발생하는 표면적인 굴절과 분산과 연관된다. 회절은 어떤 종류의 파동과도 함께 발생할 수 있다. 예컨대 물의 파동, 음의 파동 그리고 빛의 파동은 모두 알맞은 조건들에서 회절을 전개한다. 파도가 방파제나 어떤 적당한 크기의 구멍이나 틈을 가진 아주 큰 장애물을 치는 상황을 생각해 보자. 파도가 틈을 통해 밀고 들어올 때, 파형은 굴절지고 퍼져 나간다. 특히 다가오는 평행한 평면파는 동심원의 형태로 틈으로부터 나온다. 따라서 파도는 장애물을 지나갈 때 회절된다. 장애물은 파도를 위한 회절장치로 기능한다(그림 1을 보라).
이와 유사하게 만약 어떤 사람이 마분지 튜브의 한쪽 끝으로 말을 한다면, 음파가 다른 쪽 끝으로 나올 때, 모든 방향으로 퍼져나갈 것이다. 이것은 마분지 튜브를 따라 직접 누군가의 귀에 가 닿을 필요 없이 나오는 소리를 듣는 것이 가능하다는 사실에 의해 분명해 진다. 이것은 만약 공기 중에 압력 교란이 좁은 흐름 안에서 튜브로부터 나타난다면 생기는 그런 경우일 것이다.
이와 흡사하게 빛이 슬릿을 통과하거나 모서리를 통과할 때, 구부러져 나타난다. 알맞은 조건에서 회절 패턴이 – 밝은 선과 어두운 선의 교차 패턴 – 이 관찰될 수 있다. 그림 2는 면도날 모서리 주위에 형성된 회절 패턴을 보여준다. [3]당신이 보는 이미지는 면도날이 단색점 광원(단일 파장)에 의해 비춰질 때 그 면도날에 의한 음영 투사이다.[4] (이런 종류의 회절 패턴은 여러 곳에 존재하지만 일상적으로는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 왜냐하면 전구처럼 확산적인 광원이나 파장 스펙트럼을 방출하는 것이 많은 다른 중첩 회절(다른 것을 가리는 패턴들)을 만들기 때문이다. 만약 당신이 이 이미지를 조심스럽게 살핀다면, 면도날에 의한 음영 투사가 사람들이 기대하는 날카롭게 구획된 기하학적 이미지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특히 균일하게 밝은 배경에 의해 모든 면들이 둘러싸인 면도날의 모양 안에 어떤 단일하게 완전히 어두운 영역은 없다. 오히려 자세히 들여다 보면 각각의 모서리들을 둘러싼 불확실한 윤곽이 드러난다. 즉 안쪽과 바깥쪽 모서리들을 따라 ‘실재’ 경계의 결정을 상당히 까다롭게 만드는 어둠과 빛이 갈마드는 선이 있는 것이다. 아마도 보다 놀랍게도 면도날의 톱니모양 바깥 부분에 일치하는 그것의 맨중앙으로도 빛과 어둠이 갈마드는 선이 있다. 이 전체 영역을 밝아야 하지 않는가? 어떻게 중앙에서도 어두운 선이 있을 수 있는가? 이렇게 생산된 패턴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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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동은 입자와 매우 다른 친족 현상이라는 것을 마음에 새기는 것이 중요하다. 고전적으로 말해서, 입자들은 물질적인 개별실체들이며, 각각의 입자는 파동들의 주어진 순간들에서 공간적 점들을 점유하며, 다른 한편으로 그것은 그 자체로 아무 것도 아니다. 오히려 그것들은 (물과 같이) 매개적으로 확산되는 교란들(어떤 지점에서 국지화될 수 없는) 또는 진동하는 장이다. 입자들과 다르게, 파동은 공간 안에서 동일한 지점에서 중첩될 수 있다. 이것이 발생할 때, 그것들의 진폭은 어떤 합성파형(composite waveform)을 형성하기 위해 결합한다. 예컨대 두 물파동이 중첩될 때, 결과적인 파동은 개별적인 성분파(componant wave)들 보다 더 크다. 다른 한편으로 만약 하나의 파동의 물마루가 다른 골과 중첩된다면, 교란은 상대적인 잦아듬의 영역에서 발생하고, 부분적으로 또는 몇몇 경우에 완전히 서로 간에 삭제된다. 그러므로 결과적인 파동은 각각의 개별적인 구성적 파동의 결과적인 총합이다. 즉 이것은 각각의 파동에 의해 개별적으로 형성되는 요동들의 결합인 것이다. 이러한 결합효과의 과정은 중첩이라 불리워진다. 중첩 개념은 파동이란 무엇인가를 이해하는데 있어서 중심적이다.[5]
어떤 친숙한 예를 들어 보자. 만약 두 개의 돌이 동시에 잔잔한 연못에 떨어진다면, 각각의 돌로 인해 물에서 발생하는 요동은 <77>중첩하는 파동요소들 간의 상대적인 차이들(진폭과 위상)로부터 나오는 어떤 패턴을 생산하면서, 바깥으로 퍼져 나가고 서로 간에 중첩된다(그림 3을 보라). [6]파동은 서로 간섭된다고 말해지며, 만들어진 패턴은 간섭 또는 회절 패턴으로 불리워진다.[7]
유사한 패턴이 방파제에 난 두 개의 구멍들에서도 관찰될 수 있다(그림 4를 보라). 장애물 안의 각 구멍들부터 나오는 원형 파형들은 간섭이나 회절 패턴을 형성하기 위해 결합한다.(결과적인 패턴은 돌 두 개가 연못에 떨어짐으로써 나온 간섭 패턴의 절반과 꼭 닮은 것이다.)
잔교를 따라 걸으면 당신은 들어오는 파도에 의해 위 아래로 움직이는 잔교의 판자구조물들을 느낄 것이다. 각각의 판자구조물이 위나 아래로 움직이는 것은 잔교를 따라 각각의 특정 지점에서 전체 파도의 진폭에 따른다. 당신이 잔교를 아래 위로 걷는다면, 당신은 파도 전체의 증가하고 감소하는(즉 높이와 진폭) 강도적 영역의 갈마드는 패턴을 경험할 것이다. 예컨대 A 지점(벽의 틈 중간과 직접 마주보는 잔교의 지점)에서 전체 파형의 강도는 크며, 만약 당신이 잔교 위의 그곳에 서 있다면, 당신은 커다란 진동을 느낄 것이다. 당신이 A 지점 양쪽으로 움직인다면, <78>전체 파형의 진폭이나 강도의 감소를 경험할 것이다. 예를 들어 B1과 B2와 같은 지점에서는, 벽의 틈들 중 하나로부터 퍼져 나오는 파도의 마루들이 다른 쪽에서 나오는 파도의 마루와 만나고 있는데, 이 지점은 상대적으로 잔잔하며, 당신은 잔교가 그리 많이 움직이지 않는다고 느낄 것이다. 그러나 예를 들어 C1과 C2 지점에서 더 아래쪽에서는 벽의 두 틈으로부터 퍼져 나오는 파도의 물마루들이 서로 만나며, 이와 유사하게 골들(troughs)에도, 전체 파장은 다시 높아 지고, 그 지점에서 판자구조물은 적지 않게 아래 위로 진동할 것이다(A 지점 만큼은 아니지만). 이러한 파도 강도의 갈마드는 패턴은 간섭 또는 회절 패턴의 특성이다.[8]
그림 5는 빛 파동과 유사한 상황을 보여준다. 두 개의 슬릿이 빛을 막는 스크린이나 몇몇 다른 장애물 위에 나 있다. 표적 스크린은 슬릿히 새겨진 장애물 스크린 뒤 그리고 그와 평행하게 위치지어져 있다. 슬릿들이 광원에 의해 비춰질 때, 회절 또는 간섭 패턴이 표적 스크린 위에 나타난다. 즉 밝고 어두운 영역의 갈마드는 선들에 의해 어떤 패턴이 찍히는 것이다. 밝은 지점은 파동이 서로 간에 증강되는 장소에 나타나고 – 다시 말해, ‘보강 간섭’이 있게 되고 – 어두운 지점은 파동이 서로를 삭제하는 곳에 나타난다 – 다시 말해 거기에는 ‘상쇄 간섭’이 있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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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우리는 그림 2에서 면도날에 의해 생성되는 회절 패턴을 이해하기 위한 준비가 되었다. 물리학자들은 회절을 파동의 중첩 또는 간섭으로 이해한다.[9] 면도날의 경우 회절 패턴은 면도날의 여러 모서리들을 지나 출현하는 개별적인 파동 구성요소들의 결합(즉 중첩)으로부터 야기된다고 이해될 수 있다. 예컨대 면도날 안의 틈의 (그림의 중간) 둥근 부분 맨 중심과 일치하는 스크린 위에 등장하는 밝은 부분을 생각해 보자. 우리는 이 밝은 지점의 존재를 이해할 수 있는가? 또는 심지어 보다 놀랍게도 그 틈에 있는 검은 선들의 존재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는가? 틈 안에 있는 회절 패턴은 면도날 모서리에서 나오는 빛 파동의 중첩에 의해 생성된다. 그것들이 일치하여 만나는 곳에서 밝은 지점이 등장한다. 어두운 지점들은 그것들이 서로 간에 일치하지 않은 곳에 있다. 즉 그것들은 서로 간에 상쇄된다. 나타나는 패턴은 면도날의 정밀 기하학, 특히 이 경우에는 그것의 대칭과 관련된다.[10]
면도날에 관한 보다 복잡한 기하학을 통해 생각하는 것은 다소 도전적일 것이지만, 그보다 단순한 사례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다. 광원이 BB(납으로 만든 작은 공) 같은 작고 불투명한 객체를 비출 때,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생각해보자. 우리는 BB 뒤의 벽 위에 둥근 음영이 <80>투영되리라 기대할 것이다. 그러나 보다 면밀하게 살피면, 음영의 중앙에 밝은 지점이 있다는 것이 분명해진다.[11] 이것이 어떻게 가능한가? 그것은 파동들이 BB의 측면에서 나타날 때, 성분파들(component waves)의 중첩으로 야기되는 회절 패턴의 일부라는 것이 답이다. 그림 4에서처럼 파도들이 도달하는 파도의 결과로 A 지점(방파제에 있는 틈 사이 중간 지점의 반대편)에서 결합하여 큰 진폭을 가진 파도를 형성하는 곳에서와 동일하게, BB의 모서리들을 지나가는 파동들은 음영의 중심에 있는 다른 파동들과 만난다. 서퍼들(Surfers)은 이러한 현상을 매우 잘 안다. 왜냐하면 그들은 가끔 앞바다에 놓인 크고 둥근 돌의 다른 편에서 훌륭한 파도를 잡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즉 그들은 바닷가에 가까이 불거져 있는 바위나 자투리 땅들에 의해 생겨나는 회절 패턴에 편승하는 것이다. 이 서퍼들은 말 그대로 회절 패턴에 올라타고 있다.
일상 속에는 회절이나 간섭 현상을 관찰할 다른 많은 기회들이 있다. 예컨대 보통 CD 표면에서 관찰되는 무지개 현상은 회절 현상이다. 디지털 정보을 담고 있는 홈들의 동심고리는 색의 스펙트럼 안으로 백색광선(햇빛)을 뿌리는 회절격자처럼 작동한다. [12]비누 거품 또는 웅덩이에 고인 기름의 얇은 막 위에 있는 색들의 소용돌이 또한 회절 또는 간섭현상의 예이다. [13]공작새 깃털 또는 잠자리, 나방 그리고 나비 날개들의 무지개빛 – 이 색들의 색조들은 관찰자의 보는 위치가 변함에 따라 변하다 – 도 마찬가지로 회절 효과이다. 고전 물리학의 관점에서 회절 패턴은 (상대적인 위상과 진폭을 가진) 중첩하는 파동들의 단순한 차이의 결과이다.
몇몇 물리학자들은 간섭과 회절 현상들 간의 역사적 구별을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즉 그들은 ‘회절’이라는 말은 장애물을 만나는 파동의 현상적인 굴절 또는 확산에 적합하고, 파동이 중첩할 때 일어나는 것을 지칭하기 위해서는 ‘간섭’을 사용한다. 하지만 회절과 간섭 현상 뒤에 있는 것은 동일한 물리학이다. 즉 파동들의 중첩 효과가 그것이다. 물리학자 리차드 파인만이 그의 유명한 강의 노트들(1964)에서 지적한 바에 따르면, 간섭과 회절 간의 구별은 그 어떤 물리학적 의미도 가기지 않는 순수하게 역사적인 가공물이다. 그리고 대중 물리학 저서의 저자로서 다음과 같이 논한다. “회절은 가끔 ‘장애물 주위에서 빛의 굴절’로 기술된다. 하지만 회절을 야기하는 과정은 모든 파동의 전달과정에서 나타난다. 파동의 부분이 어떤 장애물에 의해 중단될 때, 우리는 파동 전방의 남은 부분들의 간섭에서 비롯되는 회절효과들을 관찰한다. [...] 따라서 회절은 거의 모든 광학적 현상에서 작동한다”<81>(Young and Freedman 2004, 1369). 나는 ‘회절’과 ‘간섭’이라는 용어를 그것들이 다른 이름들로 할당되어 왔던 바, 역사적 우연성에 대한 의미를 승인하지 않고, 교환가능한 것으로 사용한다.
요컨대 회절 패턴들은 적합한 조건들에서 파동에 의해 전개되는 독자적인 행위다. 중요하게도 회절 패턴들은 파동과 입자 사이의 중요한 차이를 표시한다. 다시 말해 고전 물리학에 따르면 오로지 파동만이 회절 패턴을 생산하며 입자는 그렇지 않다.(입자들은 동시에 동일한 장소를 점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사실상 회절 격자는 단순히 파동의 중첩에 발생하는 어떤 장치 또는 물질적 배치인 것이다. 거울들과 같이 – 단지 충실하게 - 이미지를 생산하는 반영 장치들과 대조적으로, 회절 격자는 파동들이 결합할 때, 개별적인 파동들의 상대적인 특성들(즉, 진폭과 위상)에서 차이를 표시하는 패턴들을 생산하는 도구다.
그래서 파동과 비슷한 빛의 작용을 고려하지 않고 설명될 수 있는 반사 현상(즉 이것은 ‘기하 광학’이라고 불리우는 어떤 유사 도식을 활용하여 설명할 수 있으며, 이에 따라 빛은 표면을 반사하여 튀어 오르는 입자로 무난하게 존재한다)과는 달리, 회절은 빛의 파동과 유사한 활동을 명시적으로 만든다(즉 그것은 ‘물리 광학’ 이론 전반을 사용하여 사유될 수 있다).
회절 현상에 대한 이러한 고전적 이해에 뒤이어 회절의 양자적 이해에 관한 논의를 속행하는 적절한 때로 보인다. 어떤 의미에서 그렇게 하는 것은 이 책의 남은 과제일 것이다. 천천히 그리고 신중하게 접근하는 것이 중요하다. 중요한 지점에서, 우리는 어떻게 논의가 이루어질 것인지에 대한 몇몇 실마리에 만족해야 한다.
아마도 이 책을 통틀어 가장 중요한 의미를 가지게 될 어떤 실험의 다이아그램을 소개하는 것이 너무 빠른 것은 아닐 것이다(그림 6을 보라). 이 다이아그램은 물리학자 닐스 보어가 묘사한 것에 기반하는 것으로서 양자 이론의 발전에서 근본적인 역사적 중요성이 있다고 증명된 특정 실험을 드러내며, 심지어 보다 중요하게는, 이 고도로 반직관적인 이론의 심오하고 포괄적인 통찰들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기본적인 것이었고, 지금까지 계속 그러해 왔다.
그림 6은 변형된 이중-슬릿 회절 또는 간섭 실험을 보여준다. 두 개의 슬릿이 있는 중간 차단막은 이중-슬릿 회절 격자 역할을 한다. 반면 오른쪽에 있는 스크린은 회절 패턴(갈마드는 강도 띠들)을 전개한다. (하나의 슬릿을 가진 첫 번째 차단막은 기술적 이유로 거기 있다.) [14]중요한 변형 – 맨 위의 슬릿이 두 개의 스프링이 부착된 채 달려 있다는 사실 – 은 뒤에 설명될 것이다.
<82>
이제, 가장 주목할 만한 실험적 발견들 중 하나는, 사실상 양자 물리학의 발전을 이끄는 핵심적인 증명을 구성하는데, 특정 환경 아래에서 물질(일반적으로 입자로 만들어져 있다고 생각되는)이 회절 패턴을 만들어 낸다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즉 우리는 상당수의 입자들이 그 어떤 입자들도 거의 스크린에 부딪히지 않는 영역들과 갈마들면서 스크린에 부딪히는 띠들 또는 영역들을 발견한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가 입자가 그렇게 행위하리라고 예상하던 바가 전혀 아니다. 즉 우리는 입자들 대부분이 마주보는 하나의 슬릿 또는 다른 슬릿으로 빠져나갈 것이라 예상한 것이다(즉 갈마드는 띠 패턴이 없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절 효과는 전자, 중성자, 원자 그리고 다른 물질 형태들에서 관찰되었다. 그리고 매우 놀랍게도, 이러한 회절 패턴은 비록 그 입자들이 한꺼번에 회절 격자를 통과한다 해도, 생겨난다(말하자면 간섭하는 각각의 입자들 주위에 아무것도 있지 않더라도,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든지 간에 그러하다.)
놀랍게도, 클린튼 데이비슨(Clinton Davisson)과 레스터 거머(Lester Germer)는 1927년 우연한 기회에 전자(electrons)에서 이러한 결과를 확증했다. 그들은 결정성 니켈 표적에 천천히 움직이는 전자들을 쏘고 있었는데, 그때 진공장치 안에서 우연히 틈을 발견했다. 진공장치를 고정한 후, 그들은 표적에 가해진 손상을 수리하기 위해 니켈 샘플을 재가열했고, 실험을 재개했다. 이때 그들은 결과물에서 주목할만한 패턴을 보았다. 수집된 전자들이 회절 패턴을 형성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우연찮게 물질의 파동 활동에 대한 직접 증거를 발견했다. <83>그들이 결정성 표적을 재가열할 때 일어난 사건은 니켈이 보다 큰 결정으로 융합되어 전자들의 완전한 회절 격자를 형성한 것이다.[15]
데이비슨-거머 실험은 어떤 조건 아래에서 물질(이 경우 전자)이 파동과 같은 행위를 전개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데이비슨-거머 실험 이래 많은 다른 실험들이 다른 물질들에서도 마찬가지로 이러한 결과를 확증했다. 즉 물질 – 빛 만이 아니라 – 이 적절한 실험 환경에서 파동 행위를 드러낸다는 직접적인 경험 증거가 존재한다. 그러나 이것은 전자가 때로는 입자처럼 행동한다는 똑같이 납득할만한 증거에 위배되는 것으로 보인다. 의미심장하게도 이 역의 증거도 진실이다. 다시 말해 각각의 실험들은 동등하게 빛이 특정 조건들에서 입자 활동을(그리고 다른 조건들에서는 파동 활동을) 드러낸다는 반직관적 결과를 확증했던 것이다.
우리가 보았던 바처럼, 회절 패턴은 중첩의 증거이다. 그러나 이때 우리는 이 결과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는가? 파동의 중첩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지만, 입자는 그렇지 않다. 이 결과는 역설적이다. 물리학자들은 이것을 ‘파동-입자 이중성 역설’이라 부른다. 그리고 변형된 이중-슬릿 실험은 여기에 내포된 인식론적이고 존재론적인 주제를 해결하는데 있어서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16]사실상 내가 상세히 논할 것처럼, 그림 6에서 그려진 바와 같은 실험의 반직관적 결과들을 이해한다는 것은 서구 인식론과 존재론의 많은 것들에 대한 중차대한 재사유를 포함한다. 중요하게도 이 실험들은 현재 물리학자들이 양자 현상들과 수많은 ‘양자적 기이함’(quantum weirdness)의 핵심에 놓여 있다고 믿는 중첩의 본성과 소위 상태들의 얽힘과 중첩의 관계를 조명한다. 이 주제에 대해서는 말할 것이 많다. 나는 뒤에 오는 장들에서 이에 대해 상세한 논의를 했다. 지금으로서 나는 독자가 회절 현상의 복잡성과 심오함이라는 제안을 유지하면서 형상적으로, 방법론적으로 또는 물리 현상과 관련하여 이 개념이 환기될 때마다 이것을 단지 마음에 새겨주기를 바란다.
물질의 상이한 특성을 규정하기 위해 회절 실험을 활용하는 것은 이제 일상적인 것이 되었다. 일반적으로 이것은 두 가지 보충적 방식들 중 하나에서 작동한다. 가끔 회절 실험의 목적은 회절 격자를 통과해 지나가게 되는 실체의 본성에 대해 배우는 것이고, 때로 그것은 회절 격자 그 자체에 대해 배우는 것이다. 각각의 경우에 하나씩 사례들을 생각해 보자. 데이비슨-거머 실험은 첫 번째 기술적인 것의 예이다. 결정은 회절 격자로 사용되며 전자 광선은 크리스탈 격자를 통과해 간다. 이 실험은 우리에게 전자의 본성에 대해 중요한 무언가를 알려준다. 다시 말해 특정 조건에서 그것ㄷ르은 파동 작용을 전개한다. 두 번째 <84>상황예는 과학자가 x레이 회절 기술을 사용하여 실체의 구조를 분별할 때 적용된다. 이 경우 탐구되는 실체는 회절 격자 그 자체다. 예컨대 x레이 회절이 일반적으로 활동하는 방식은 (기존의 알려진 파장을 가진) x레이가 시료(즉 회절 격자로 활용되는 크리스탈 또는 다른 실체)로 발사되는 것이다. x레이의 파장은 이미 알려져 있는 바, 회절 격자의 특성을 추론하기 위해 회절 패턴으로부터 “거꾸로 작용하는 것”은 불가능하며(마치 ‘슬릿들’ 간의 거리, 이 경우에 분자들 또는 원자들처럼), 이런 방식으로 문제가 되는 실체의 구조를 결정한다. 이 기술(technique)은 로잘린 프랑클린(Rosalind Franklin)이 DNA구조를 결정하기 위해 사용했다. 그러므로 우리는 회절 실험들을 회절 격자를 통과해 가는 객체에 대해서나 회절 격자 그 자체에 대해 배우기 위해 사용할 수 있다.[17]
물리학자들은 역학과 광학 영역 간의 어떤 흥미로운 유사성에 주목해 왔다. 이러한 유사성는 광학적 변수들과 역학적 변수들 간의 수학적 대응을 이끌어 낸다. 물리학자들은 이러한 유바가 기계론과 광학 둘 모두에 대한 통찰을 얻도록 돕는다는 것을 환기시켰다. 나는 이 평행성의 본성과 광학에 대한 몇몇 중요한 논점들을 설명하고 마찬가지로 고전적 또는 뉴턴 물리학과 양자 물리학 간의 관계에 관한 중요한 질문에 대해 어떤 것을 말할 기회를 활용할 것이다.[18]
광학에 관한 몇몇 예비적 배경지식은 도움이 될 것이다. 물리학자들이 연구하는 광학의 방법들에 대해 제기되는 중요한 일반적인 논점이 있다. 우선 광학 연구는 두 개의 범주로 나뉘어진다. 하나는 고전 광학(고전 물리학의 관점에서 연구되는 광학)이고 다른 하나는 양자 광학(양자 역학이 빛과 그것의 물질과의 상호작용을 포함하는 현상들을 연구하기 위해 사용되는 것)이 그것이다. 고전 광학에 관한 탐구의 두 가지 우선적인 양식들이 있는데, 기하 광학과 물리 광학이다. 반사현상이 기하 광학을 사용하여 설명될 수 있는 반면, 회절은 이 기술로는 이해될 수 없다. 회절을 이해하기 위해서, 물리학자들은 물리 광학을 사용한다.
기하 광학은 본질적으로 상이한 광학 기구들(예컨대 렌즈들, 거울들, 프리즘들, 광섬유의 여러가지 배치들)을 연구하기 위한 어떤 근사(approximation) 도구이다. 기하 광학은 일차적으로 빛이 나아가는 곳이나 그것이 여러 상이한 광학 기구들에 부딪힐 때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나 기구들 안으로 또는 통과하여 지나가는 것에 집중한다. 여기서 사용되는 근사는 빛을 단지 어떤 ‘광선’(ray)으로 취급하는 것이다(또한 근사란 빛의 본성에 있어서 어떤 존재론적 실행을 회피하는, 단순히 빛의 확산 방향에 관한 표시기이다). 다시 말해 기하 <85>광학 연구에서 빛의 본성은 대수롭지 않은 것으로 고려된다. 특히 기하 과학은 파동과 입자 활동 사이의 구별을 위한 어떤 수단도 제공하지 않는다. 빛의 본성에 관한 전체 문제는 괄호쳐 진다.[19] 반대로, 물리 광학의 영역은 빛의 본성 자체를 탐구하기 위한 기술에 관심을 가지며 그럴 재량을 가진다. 즉 빛은 단순히 어떤 도구일 뿐만 아니라, 탐구의 대상이기도 한 것이다. 이중-슬릿 회절 또는 간섭 실험은 빛(과 자연)의 본성을 분별하려는 노력에서 필수적인 것이었다.
기하 광학의 광선 근사(ray approximation)는 빛의 파장이 빛이 통과해 나아가는 슬릿의 크기와 같이 상호작용하는 객체들의 물리적 차원에 비견될 수 있을 정도로 작은 경우에 잘 작동한다. 만약 파장이 슬릿 크기만큼 작다면, 빛의 굴절처럼 회절 효과들은 너무 작은 나머지 관찰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파장이 근사적으로 슬릿만큼 작은 크기이거 더 크다면, 그때 회절 효과(즉 빛의 파동적 본성)는 무시될 수 없다. 따라서 파장이 그것이 마주치는 객체보다 근사적으로 작거나 더 크다면(예컨대 슬릿의 폭과 비교해 크기가 조절되면), 물리 광학의 기술은 – 빛의 파동적 본성에 맞추어진 완연히 수학적인 기계류 – 그 현상에 대해 알맞게 고려되기 위해 사용되어야 한다. 결국 기하 광학은 단순히 파장이 실험에서 다른 관련 차원들과 비교해서 충분히 작게 될 때, 올바른 결과들을 이끌어내는 지름길이다.
광학과 역학 간의 유사성으로 돌아가 보자. 이 유사성은 한편으로는 기하 광학과 고전적인 뉴턴 역학 사이에 있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물리 광학과 양자 역학 간에 있다. 유사성의 핵심은 다음과 같다. 특정 실험의 경우 빛이나 물질의 파동적 본성이 눈에 띄지 않을 때(즉 파장이 다른 중요한 차원들에 비해 작을 때), 고전 역학(기하 광학)을 양자 역학(물리 광학)이 제공하는 보다 엄격한 분석에 대한 지름길로 활용하는 것이 가능하다.[20] 그래서 고전 역학과 기하 광학은 (최근 그러하다고 이해되는 바) 몇몇 환경들, 양자 역학과 물리 광학이 충분한 이론을 재현하고 현상을 어쨌든 길이 크기로 고려할 수 있는 수식체계로 이해되는 근사 도식이다. 중요하게도 양자 역학은 작은 객체들에만 적용되는 이론이 아니다. 오히려 양자 역학은 모든 크기들에 적용되는 자연에 관한 합당한 이론으로 생각된다. 우리가 아는 한에서, 우주는 일련의 상이한 각각의 물리 법칙들에 따라 각기 다른 길이 크기들과 동일시되는 두 개의 분리된 영역들(즉 현미경과 망원경)로 쪼개어 진다.
<86>나는 이제 방법론에 관한 질문으로 주의를 돌리겠다. 인식론과 방법론에 관한 논의 주제에서 광학적 은유는 비범한 작용을 한다. 켈러(Keller)와 그론트코프스키(Grontkowski)(1983)는 서구 사상에서 시각와 지식의 상호엮임을 추적하면서 “시각적 유비들에서 우리의 인식론적 전제들을 떠받치는 전통은 그리스까지 거슬러 올라간다”(208). 방법론에 관한 논의가 이러한 관례를 반영할 것이라는 점은 놀랍지 않다. 사실상 재현주의 – 단어들, 개념들, 이념들 같은 것들이 정확히 그것들이 지시하는 사물들을 반영하거나 되비춘다는 믿음 – 는 이 전체 사태에 잘 닦여진 표면을 만든다. 그리고 이것은 거울 뒤의 스스로에게로 되돌아 가는 것이 가능하다는 믿음을 촉진했으며, 따라서 ‘반영적’ 방법론을 위한 여러 여러 가지 지원자들을 생산하고 있다.[21]
거울 반영. 무언가를 되비추는 것은 반영되고 있는 것을 충실하게 복사하는 정확한 이미지 또는 재현물을 제공하는 것이다. 따라서 거울은 재현주의를 위해 자주 사용되는 은유이며 이는 반성(reflexivity)의 문제와 연관된다. 예컨대 과학적 실재론자는 과학적 지식이 정확히 물리적 실재를 반영한다고 믿는 반면, 강한 사회구성주의자는 지식이란 보다 정확히 자연이라기 보다 문화의 반영물이라고 논한다.
반영이란 반성을 위해 그리고 체계적인 사유를 위해 제안된 비판적인 학문적 실천이며 증거들의 구성에 있어서 도구로서의 연구자의 역할이다. 반영은 아는 자를 분리해 내는 탐구의 덜-반영적 양상들과는 반대로 객체, 재현 그리고 지식을 생산하는 아는 자 간의 삼항 배치를 환기시킨다. 여러 경험적 연구 분야들은 반성적 방법들에 상당한 관심을 가졌었다. 예컨대 과학학에서는 반성에 대한 중요한 논의가 있어왔다. 몇몇 학자들은 그것에 맹종하며, 몇몇은 그것을 기초 교의로 채택했지만, 명시적 규약을 수립하며, 다른 몇몇은 그것의 의심스러운 미덕에 반해 활발하게 논증했고, 다른 그룹들은 그 전체적인 논쟁적 개념 너머로 이동했다고 주장했다. [22]예컨대 몇몇 과학학자들은 반성의 방법을 그 분야 자체의 개시점인 사회적 실재론을 비판하기 위해 사용했다. 특히 반성적 비판은 그것과 더불어 연구 대상에 관한 공인된 과학적 실재론을 의문에 붙이면서 부단히 경계하였던 같은 부류의 몇몇 사회 과학자들 – 이른바 실험실 과학자들 – 이 비반성적으로 사회실재론 – 즉 ‘사회’라는 중요한 범주의 구체화와 그것들을 ‘자연’을 넘어서는 설명 요소들로 특권화하는 것 - 에 참여한다는 깨달음을 가져다 주었다. SSK(sociology of scientific knowledge, 과학지식 사회학) 접근법(특히 과학지식에 관한 사회학에서 ‘강한 프로그램’)에 대한 이 중요한 비판을 알게 되는 동안, <87>다른 과학학자들은 반성에 대한 논쟁에 그리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들은 이미 다른 접근법(예컨대 행위자-네트워크 이론, 페미니즘 과학학 접근법)을 발전시키고 채택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과학적 실행에 있어서 사회적 요인들 뿐만 아니라 자연의 역할에 관한 사유를 취하려는 것이다.
주목할만 하게도 페미니즘 과학학자들은 일찍부터 상대주의와 반영[반성]에 관해 통렬한 비판을 해 왔다. (의심할 여지 없이 많은 페미니즘 과학학자들이 자연, 객체 그리고 과학의 효과를 신중하게 취하는 것에 대해 지속적이고 단호한 언급을 함으로써 중요한 역할을 해 왔다는 것은 사실이다. 이러한 언급들이 분명히 페미니즘적이라는 것 또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특히 페미니즘 과학학자들은 반영이 적어도 두 가지 중요한 근거에서 불충분하다고 증명했다.[23] 우선 대부분의 경우 주류 과학학(이것의 모든 다양한 구체화 안에서)은 젠더, 인종, 계급, 섹슈얼리티, 민족성, 종교 그리고 국가와 같은 중요한 사회적 요인들을 무시했다. 역설적인 것은 이러한 학자들이 특수한 실험실 실천에 참여함으로써 ‘만들어지고-있는-과학’을 따르는 것의 중요성을 주장하면서, 대개 미리 형성된 사회적인 것의 범주들로서 젠더와 같은 사회적 변수들을 계속 다루고 있다는 점이다. 즉 그들은 ‘만들어지고-있는-젠더’ - 과학기술적 실천들을 통해 구성되는 젠더와 여타 사회적 변항들의 생산 - 에 참여하는 것에 실패한다.[24] 따라서 페미니즘 과학학자들이 처음부터 만들어지고-있는-젠더-와-과학을 이해하기 위해 논쟁을 벌였다 해도, 주류 과학학은 이러한 중요한 논점을 무시했던 것이다. 중요하게도 그들이 이러한 사실을 성찰하는데 실패한 정도만큼 그들은 ‘사회적인 것’과 ‘과학적인 것’의 상호 구성을 저평가하며, 따라서 그들 자신의 기획을 침식한다. 관련하여 주류 과학학자들은 자연-문화 이분법이 페미니스트, 후기구조주의자, 탈식민론자, 퀴어와 다른 비판 사회학 이론가들에 의해 다방면에서 활발하게 도전받았다는 사실에 대해 깨닫지 못하는 것처럼 보이며, 그들이 제기하는 주제에 참여하는 것이 자연-문화 이분법의 구성에 대한 문제제기의 통합적인 한 부분이며 일이 그렇게 되어간다는 것도 인정하지 않는다. 즉 그것이 물질/문제가 될 뿐만 아니라 그것이 누구를 위해 어떤 식으로 물질/문제가 되는지 말이다.
두 번째 중요한 난점은 반영이 재현주의에 기반한다는 사실이다. 반영성은 재현이 (사회적인 또는 자연적인) 실재를 반영한다는 생각을 당연시한다. 즉 반영은 재현의 활동이 연구 대상에 어떠한 영향도 주지 않으며, 우리는 우리가 객체 자체로 갈 필요가 없는 재현에 관한 어떤 종류의 접근을 가진다는 믿음에 근거하는 것이다. 반사와 유사하게 반영은 여전히 세계와의 거리를 유지한다. 반영이 반복적인 흉내내기일 뿐이기 때문에 그것은 <88>이른바 아는 자와 알려지는 것 사이의 건널 수 없는 사회구성주의자의 인식론적 간극을 가로질러 갈 방법을 제공할 수 없다. 즉 탐구의 주체를 그림 뒤에 놓는 시도에 있어서도, 반영은 거울을 반사하는 것 외에 다른 것을 하지 않는다. 극도의 권력을 행사하는 재현은 지식의 가능성을 위한 바로 그 조건으로서 객체와 주체에 거리를 두는 기하학을 방해하지 않는다. 거울들 위의 거울들, 반영은 반사에 관한 오래된 기하 광학과 똑같은 것을 이끌어 낸다.
이와 대조적으로 회절은 보더 높은 힘에서 나오는 반사가 아니다. [25]회절은 스스로에게 되돌아가는 자기-참조적 포착이 아니다. 반사가 재현주의에 기반하는 학자들에 의해 방법론적 도구로 사용되었던 반면, 회절은 비재현적인 방법론적 접근에 대해 사유하기 위한 생산적 모델로 기여할 것이다.
나는 재현주의적 양식보다 수행적 양식에서 사회자연적 실행에 대해 사유하기 위한 특별히 효과적인 도구로 만드는 회절의 몇몇 중요한 측면을 탐색하는 다음 단계로 주의를 돌릴 것이다. 그러나 우선 나는 중요한 주의사항을 들것이다. 서문에서 나는 내 방법이 유비적 논변을 따르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나는 이 약속을 전반적으로 지킨다. 이런 측면에서 내가 광학 현상을 방법 자체의 본성과 더불어 방법론적 접근(이는 내가 일찍이 지적했던 바, 사유의 도구로서 시각적 은유를 사용한 오래되고 존중받는 전통에 자리한다)의 어떤 측면들을 발전시키면서 나의 영감을 위해 개괄하고 있다는 사실과 혼동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회절의 물리적 현상과 유사한 ‘회절적’이라는 방법은 그 방법 자체가 유비적이라는 의미를 함축하지 않는다. [26]반대로 나의 목표는 널리 유포된 현존하는 광학적 은유 – 이른바 반사/반성(reflection) - 를 일소하는 것이다. 그것은 분리된 개별실체들 간의 유사성과 유비를 찾기 위해 설립된다. 이에 반해 내가 논하는 회절은 유사성에 관심이 없으며, 특적 물질의 얽힘들에 관여한다.
[아래의] 표는 우리가 반사/반성에 관한 질문으로부터 회절에 관한 질문으로 우리의 사유를 이동시킨 결과 나오는 주요한 차이들 중 몇가지를 요약한다. 이 중요한 지점에서 표의 몇몇 항목들은 분명하지 않을 수 있으며 훨씬 더 많은 것들이 물리 현상으로서 회절에 대해 설명되어야 분명해질 것이다(사실상 그것은 차이나는 차이를 명백하게 만드는 어떤 물질-담론적 현상으로 이해되기까지 그러하다). 하지만 희망적이게도 어떤 회절적 방법론이 요청될 때, 이 지점에서도 그것은 문제가 되는 친숙한 습관들과 재현주의의 유혹들로부터 멀리 떨어져 그것에 속하는 부분으로서 그리고 그 안에서 세계를 이해하는 방법으로 일련의 이행들을 표시하기 위해 유용한 발견법으로 기여할 것이다(바깥으로부터 세계에 대해 반성하기).
<89>
회절 | 반성 |
회절 패턴: 얽힌 상태의 부분으로서 그리고 그 내부로부터 차이를 표시하기. |
거울 이미지: 거리를 유지하는 객체들에 대한 반성 |
차이들, 관계들: 객체성은 신체들 위의 표시에 관해 사유하는 것, 즉 물질화되는 차이들, 물질화하는 차이들에 대한 것이다. |
동일성, 모방 객체성은 반영, 원본, 본래적인 것과 유사한 복사본들, 왜곡으로부터의 자유에 관한 것이다. |
회절적 방법론 | 반영 |
수행성: 주체와 객체는 그 자체로 선재하지 않지만, 간-행을 통해 등장한다. |
재현주의: 주체와 객체 간의 선재하는 결정된 경계. |
얽힌 존재론: 물질-담론적 현상들 |
분리된 개별실체들: 단어들과 사물들 |
존재-인식-론: 앎은 그것의 미분적 생성에 있어서 세계의 부분으로서 연루되는 물질적 실천이다. |
존재론 ∣ 인식론 이항성: 지식은 거리를 둔 반영과 관련된 진정한 믿음이다. 아는 자 ∣ 알려지는 것 이항성: 멀리서 보기/관찰하기/알기 |
내부에서 그리고 한 부분으로 간-행 | 분리된 개별실체의 상호작용 |
현상들 내부에서 출현하는 차이: 행위적 분리가능성 실제적인 물질적 차이들 그러나 절대적 분리는 없는 |
안(inside)/ 바깥(outside): 절대적 분리 차이 없음 내부(interior)/외부(exterior) |
회절/ 차이의 패턴: 자연 문화의 간-행하는 얽힌 상태들 |
사물들을 반사하는 단어들: 사회 ∣ 문화 이항성 자연 ∣ 문화 이항성 |
세계안에 차이를 만드는 것에 대하여: 우리의 실천이 물질이 되는 사실에 대해 책임지는 것에 대하여; 세계는 차이나는 실천들을 통해 다르게 물질화된다(우발적 존재론) |
재현에 대하여: 정확한 재현물을 발견하는 것에 대하여 멀리 떨어져 주시하는 것에 대하여 |
<90>현상은 객체적 지시체들이다: 신체 위에 흔적을 남기는 사유가능성(의무, accountability) 물질이 되는 차이를 고려하는 사유가능성(의무, accountability)과 응답가능성(책임, responsibility) |
사물들은 객체적 지시체들이다: 사유가능성은 분리된 사물들의 진정한 거울 재현물을 발견하도록 한다. |
윤리-존재-인식-론: 윤리학, 존재론, 인식론인 분리되지 않는다. |
윤리학 ∣ 존재론 ∣ 인식론은 연구 분야들로 분리된다. |
(회절 격자를) 통해 읽기: 횡단학제적 참여는 학제들 간의 경계 생산이 그 자체로 물질-담론적 실천이라는 사실에 주의를 기울인다; 이러한 실천들은 어떻게 물질이 되는가? |
(몇몇 고정된 목표/반영물)을 향해 읽기: 특권화된 하나의 학제 그것을 향하여 다른 것(들)을 읽기 |
주체, 객체는 우발적인 것이지 고정되어 있지 않다. 각자의 상세한 사유 패턴들에 주의를 기울이는 각각의 연루. |
주체 ∣ 객체는 고정되어 있다 구체화하기, 단순화하기, 타자를 분리된 객체로 만들기 중요한 세부사항들, 역동성 경계들이 만들어지는 방식을 해결하기 위한 관심과 능력의 부족. |
요약 실천이 어떻게 물질이 되는지에 관한 사유 |
재현물들에 대한 반성. |
해러웨이가 주장한 바에 따르면 다른 무엇보다 더 회절적 방법론은 세계 안에 차이를 만들기 위한 비판적 실천이다. 이것은 어떤 차이들이 물질이 되는지, 그것들이 어떻게 물질이 되는지, 그리고 누구를 위해 그러한지를 이해하기 위한 실행이다. 그것은 어떤 비판적인 참여적 실천이지, 멀리 떨어져서 반영하는 거리두기-학습의 실천이 아니다. 내가 제안하는 행위 실재론적 접근법은 재현주의를 피하면서 상이한 여러 종류의 지식-만들기 실천들을 포함하여, 기술과학적이고 여타 자연문화적인 실천들에 관한 수행적 이해를 진전시킨다. 행위적 실재론에 따르면 아는 것, 생각하는 것, 측정하는 것, 이론화하는 것과 관찰하는 것은 세계 내부 그리고 그 부분으로서의 간-행이다. 그와 같은 실천에 참여함으로써 우리는 무엇을 배우는가? 우리는 <91>마치 세계안에 자리 잡은 조상들(statues)처럼 시간 안에 얼어 존재하는 식으로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사물들에 대한 선재하는 사실들을 발견하지 않는다. 오히려 우리는 – 세계의 생성과정의 특정한 물질적 배치에 대한 - 현상들 로부터 배운다. 논점은 단순히 관찰자 또는 아는 자를 세계로 되돌려 놓는 것이 아니라(마치 세계가 저장고인 것처럼, 우리가 단순히 그 안에 있는 우리의 구속성situatedness을 깨달을 필요가 있다는 듯이) 우리 역시 세계의 미분적 생성의 부분이라는 사실에 대해 이해하고 사유해야 한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논점은 단순히 지식 실천이 물질적 결과를 가진다는 것이 아니라, 앎의 실천이 세계를 (재)배치하는데 참여하는 특유한 물질적 연루라는 것이다. 이것은 무로부터, 또는 언어, 신념 또는 이념들부터 그것들을 만들어낸다는 의미가 아니라 특유한 물질적 형식을 그것에 부여하면서 세계의 부분으로 물질적으로 연루된다는 의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지식을 바깥으로부터가 아니라 세계의 부분으로서 형성한다는 사실은 지식이 필연적으로 주체적(이 개념은 이미 재현주의적 사유를 살찌우는 주체와 객체 간의 선재하는 구별을 전제한다.)이라는 의미가 아니다. 동시에 객체성은 멀리 떨어져 온전한 재현물들을 생산하는 것일 수없다. 오히려 객체성은 우리가 그 부분인 특유한 물질화를 고려한다는 점에 대한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그 행위적 생성 안에서 물질적 얽힘들의 특유성에 주의를 기울이고 응답하는/책임지는 것이다. 회절이라는 물리적 현상은 세계의 비범한 생동성을 표명하도록 한다.[27]
중차대하게도, 회절적 효과는 아주 세부적인 것에 주의를 기울인다. 예컨대 면도날이 만들어내는 회절 패턴 안에 음영과 빛의 세부적인 띠들의 중요성을 고려해 보라(그림 2). 또한 회절 패턴의 세부사항들이 장치들의 세부사항에 의존한다는 사실도 생각해 보라. 예컨대 그것은 슬릿의 수, 슬릿들 사이의 공간, 슬릿의 크기, 그리고 광원의 파장에 의존한다(만약 둘이 아니라 세 개의 슬릿들이 있다면 그것은 몇몇 회절 격자가 인치당 수 천 개의 작고 평행한 ‘선들’ - 좁은 슬릿들 –을 가지지면서 물질화할 것이다). 만약 이러한 변수들 중 어떤 것이 변한다면, 패턴은 확실히 다르게 될 수 있다. 더 나아가 회절 격자는 자연의 몇몇 가장 작은 세부사항들을 전개하는데 활용될 수 있다(적어도 우리가 성공적으로 탐색했던 그러한 가장 작은 수준). 예를 들어 회절 격자는 각각의 원자들의 특성인 빛 스펙트럼을 측정할 수 있게 한다. 주기율표 상의 각 원자는 일련의 특유한 에너지 상태를 가지며(전자가 들어갈 수 있는 상이한 ‘궤도들’), 전자가 보다 높은 에너지 준위에서 더 낮은 준위로 ‘점프’할 때, 그것은 <92>그에 상응하는 파장의 빛을 방출한다(예를 들어 수소의 가시 스펙트럼visible spectrum은 붉은 선, 푸른 선 그리고 두 개의 보라색 선을 가진다). 그러므로 원자의 빛 스펙트럼은 그것의 가능한 에너지 준위들을 가리킨다. 에너지 준위의 차이들은 미세하다(우리는 지금 원자 내부의 변화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그럼에도 위의 엄밀한 실험에서, 우리는 아주 상세한 사항들을 볼 수 있다. 즉 우리는 ‘미세 구조’ 그리고 심지어 ‘초미세 구조’라고 불리워지는 어떤 것 안으로 원자 스펙트럼을 분석해 들어가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단일한 색깔 선 각각의 경우는 둘이나 그 이상의 색깔 선으로 더 분석할 수 있는데, 그것은 사실상 아주 적절한 차이들을 가리키는 것이다). 심지어 이것을 넘어 1947년에 윌리스 램(Willis Lamb)과 로버트 러더포드(Robert Retheford)는 양자 전기역학 이론(즉 전자기 양자 이론)의 내용에 기대어 수소 스펙트럼 상의 극단적으로 미세한 이동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것은 측정가능한 어떤 것 이상으로 물리학자들 사이에서 회자되는 전설같은 이야기처럼 보인다. 양자 전기역학에 따르면, ‘진공’(고전적으로 말해서 ‘비어 있음’을 가리키는)은 가능적으로 존재할 수 있는 모든 것이 어떤 잠세적(potential) 형태로 존재하는 상태다. 진공의 생생한 잠세성은 수소 스펙트럼에서 램 이동을 생산하는 ‘진공 유동’(vacuum fluctuations)을 만들어낸다. 램과 러더포드가 이 미세한 이동을 측정할 수 있었던 것은 대단한 일이었다. 즉 실현되지 않은 가능성들의 효과들을 측정할 가능성이란 놀랄만한 일인 것이다. 사실상 램 이동은 우리가 양자 전기역학 이론에 관해 가지는 가장 정확한 검사 중 하나를 구성한다. [28]우리는 실제로 끓어오르는 잠세성의 경험적 확증을 가진 것이다! 작은 세부사항들이 근원적인 차이를 만들 수 있다.
아주 세부적인 것에 대한 관심은 이 방법론의 중요한 요소이다. 내가 과학 이론과 사회 이론 각각으로부터 나온 통찰들을 사유행위에 사용하는 회절적 방법론은 몇몇 의미 있는 방식에 있어서 보다 유용한 방법론과 다르다. 나는 읽기, 말하자면 서로 대립하는 물리학과 후기구조주의 이론에는 관심이 없다. 이들은 하나를 다른 것과의 정적인 기하학적 관계로 정립하거나, 하나를 다른 것의 부동의 그리고 완고한 뒷면으로 정립한다. 나는 뒷면을 작동시키는 지점에서 각자 전개될 때 발생한 결과를 부가하는 양자지향적 접근법들에도 관심이 없다. 그래서 사회 이론과 정치 이론을 위해 인문학을 넘어 자연 과학의 보다 거대한 인식론적 가치로 비춰지는 바를 탈취하면서 물리학적인 교훈을 일방적으로 탐색하고자 열망하는, 또는 반례로 취하고자 하는 흔한 접근법들과는 달리, 어떤 반대의견을 개진하고 그럼으로써 사회과학이 자연 과학을 위한 모델이 될 지나친 과학적 권위에 대항하는 학자들에 의한 시도들이 있는 것이다. 나의 접근법은 상이한 (상호)학제적 실천들로부터 생겨난 이해들을 <93>서로간의 대화 안에 자리잡게 하는 것이다.[29] 즉 나의 방법은 경계들의 반복적 생산, 경계-도출적 실천들, 수립되는(enacted) 구성적 배제들, 그리고 우리가 그 한 부분인 재배치활동을 위한 사유가능성[의무]와 응답가능성[책임]에 관한 질문에 주의를 기울이면서, 각각의 관점들을 다른 것과의 역동적 관계성 안에 연루시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내가 각각의 학제들을 통해 상이한 그것들로부터 이끌어낸 통찰들(그리고 간학제적 접근법들)을 사유하는 동안 사용하는 회절적 방법론은 행위적 실재론의 핵심에 놓인 관계적 존재론에 집중한다. 이것은 연구들의 어떤 객체 또는 주체의 경계도 당연하게 취급하지 않으며, 오히려 ‘객체’와 ‘주체’ 그리고 어떤 변화하는 관계성으로부터 나오는 여타 차이들 그리고 그 측면을 생산하는 물질-담론적 경계-만들기의 실천들을 탐구한다. 만약 다학제적인 또는 간학제적인 접근과 달리, 횡단학제적 접근법이 “단순히 학제들의 정렬로부터 도출되는 것이 아니라, 지식의 학제화와 보다 큰 사회적 배치들 간의 구조적 연결을 가시적으로 만들고 위기에 몰아 넣는 [...] 주체의 형성 안에서 지식과 그 기능의 조직에 관한 역사들을 탐구한다”(Hennessy 1993, 12)면, 후자의 접근법은 몇몇 필수적인 요소들을 담고 있다.[30] 중요하게도 우리가 회절적 방법론을 사용함에 있어서 상이한 학제적 접근법들의 아주 세부적인 사항들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 관건적이다. 요구되는 것은 여러 다른 학제적 실천들과의 정중한 참여이지, 어떤 학제의 바깥에 있는 몇몇 입장으로부터 다른 학제를 희화하는 무성의한 묘사가 아니다. 회절적 방법론을 발전시키는데 있어서 나의 목표는,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거나 무조건적으로 하나의 (간)학제적 접근을 다른 것에 앞서게 하는 것 없이, 어떤 주어진 영역 내부에 특유한 논증들의 중요한 세부사항들에 엄격하게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다.[31]
그러므로 내가 제안하는 회절적 방법론은 과학과 사회적인 것을 그 관계성 안에서 비판적으로 재사유할 수 있게 한다. 자주 날카롭게 분리된 개별실체들(과 분리된 일련의 관심사들)로 나타나는 것은 실제로는 전혀 절대적인 외부성의 관계를 이끌어내지 않는다. 경계들의 미결정적 본성을 -‘밝은’ 영역들 안에 그림자들을 그리고 ‘어두운’ 영역들 안에 밝은 지점들을 전개함으로써 - 해명하는 회절 패턴들과 같이 사회적인 것과 과학적인 것의 관계는 ‘내부적 외부성’(exteriority within)(예컨대 그림 2를 보라)이다.
이와 같이 내가 제안하는 회절적 방법론은 인문학과 자연과학을 ‘연결하’고자 하는 일부 보다 실용적인 학문적 교전 양식들과 현저하게 대조적으로 정립된다. 긴요하게도 회절적 접근법은 예컨대 망원경이 현미경을 반영한다고 말해지거나 사회적 세계가 <94>원자론에서 완성되는 바, 개체주의 형이상학의 반영으로 취급된다는 등등에 존재하는 거울상들의 속임수를 용납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특수상대성 이론과 입체파 회화 간의 유비적인 묘사, 또는 특수한 인과적 연결들이 유비적인 것들을 위해 제안되는 곳에 있는 ‘영향력 있는 모델’, 탐구양식과 같은 것은, 예컨대 입체주의자들이 직접적으로 아인슈타인의 영향을 받았다는 가설을 대신해 역사적 증거들을 끌어 모으기 때문에, 매우 흥미로울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부박한 분석모델은 단지 제한된 가치들만을 가지며, “기술과학(그리고 다른 사회적 실천들)의 노선(rays)들을 회절하는 방법을 배우려는 지금의 보다 깊은 철학적 주제들을 이해하기에는 불충분하고, 따라서 우리는 우리의 삶과 신체들에 관한 기록영화 위에서 보다 가능성 있는 간섭 패턴들을 다룬다”(Haraway 1997, 16). 이 회절적 방법론은 내가 객체성의 가능성을 위한 조건들, 측정의 본성, 자연과 의미 만들기의 본성, 지성의 조건들, 인과성과 동일성의 본성 그리고 담론적 실천들과 물질 세계 간의 관계와 같은 세부적으로 중요한 철학적 주제들을 음미할 수 있게 한다.
의미심장하게도 내가 이미 언급했다시피, 나의 회절적 방법론은 내가 나의 출발지점으로 되돌아가 양자 물리학의 기초 안에서 새로이 질문들을 제기할 수 있는 엄격한 표준을 제기한다. 특히 나는 보어의 상보성이라는 틀이 만족스럽게 해결되지 않는다는 관건적인 주제를 제기하면서, 행위적 실재론이 사실상 양자 역학의 합법적 해석으로 이해될 수 있다고 논할 것이다. 이와 흡사하게 여러 가지 상이한 사례 연구들을 활용하면서, 나는 페미니즘 이론, 후기구조주의 이론 그리고 과학학과 같이, 내가 끌어들이는 몇몇 다른 영역들에서 교섭을 위한 행위적 실재론의 접근법의 유용성을 증명한다. 더 나아가 나는 행위적 실재론이 이러한 얽힌 관심들의 본성과 관련된 흥미로운 통찰들을 제시한다는 것을 보일 것이다. 현재 문제가 되는 것은 다른 학제들에 속하는 상이한 주제들 간의 단순한 동질성이 아니라, 오히려 특유한 물질적 연결들, 그리고 이러한 간-행적 주제/물질이다. 비록 이런 다양한 영역들을 성가시게 하는 일련의 난점들이 사실상 분산된 주제들을 이끌어 낸다는 것이 분명할지라도, 그것들이 분석적으로, 인식론적으로 또는 존재론적으로 모조리 끊어져 있는 것은 아니다. 사실상 행위적 실재론에 따르면, 얽힌 실천들에 관한 분석은 신체적 생산의 다양한 장치들에 있는 간-행에 관심을 갖는 어떤 비가산적(nonadditive) 접근을 요청한다. 마침내 이어지는 장들에서 나는 우리가 물질-담론적 실천과 비판적 실천 둘 모두로서 회절을 이해하는 방식을 현저하게 깊게 하는 길을 따라 고전 물리학의 관점 너머로 우리의 이해를 밀어붙임으로써, 양자 물리학과 회절 현상의 본성에 관한 세부적인 논의를 내놓을 것이다.
[주석]
2장
1] 과학학 문헌에서 반성성에 관한 논의는 예컨대 Woolgar 1988a를 보라.
2] 그녀의 논문 「괴물들의 약속」(“The Promises of Monsters”, Haraway, 1992)에서 해러웨이는 관계성의 기하학과 광학을 재사유하기 위한 은유로 회절 개념을 제안한다. 그녀의 책 『겸손한-목격자』(Haraway, 1997)에서는 회절 개념을 네 번째 기호론적 범주로 승격시킨다. 나의 탐구는 분석에서 기호론적 과정을 따르진 않는다. 오히려 회절의 세부사항들을 하나의 물리적 현상이자 방법론으로서 신중하게 탐색하면서, 나의 연구는 담론적 분석의 개념을 재구성하는 것에 참여하고 그것을 돕는다. 회절 현상의 양자적 측면에 주의를 기울이면서, 나는 또한 얽힘 개념을 상세하게 검토하고, 계보학적 분석에서 기하학적 재배치 뿐만 아니라 위상학적인 것도 고려할 필요가 있음을 보여주는 시간, 공간 그리고 물질에 관한 재사유를 제안한다.
3] 독자들 스스로 회절 패턴을 만드는 것은 쉽다. 광원을 마주보고, 두 손가락을 (접촉시키지는 않으면서) 당신의 눈 중 하나 앞에 매우 가까이 대 보라. 자세하에 살펴 보라. 당신은 당신의 손가락 사이에서 어둡고 밝은 선들을 탐지할 수 있을 것이다. 당신의 손가락들 사이의 거리를 달리 해보면, 패턴에서 변화를 관찰할 수 있다. 회절 패턴은 슬릿의 크기에 따라 다양해진다. 그 패턴은 또한 빛의 파장 (색깔)과 만약 슬릿이 하나 더 있다면, 슬릿들 사이의 거리에 의해 다양해진다.
4] 이러한 이미지를 만들어 내곤 하는 광원은 단색(하나의 파장)이며 간섭가능하다(파동들은 서로 같은 형태, 즉 서로 함께 간다)
5] 중첩은 3장과 7장에서 보자 자세히 논의된다. 우리가 보게 될 것처럼, 양자 역학에서 중첩은 광범위한 함축을 지닌다.
6] 파동은 두 개의 중요한 특성, 즉 진폭과 파장을 가진다. 파동의 진폭은 그것의 높이(즉, 요동의 상대적 크기)이다. 파장은 파동 마루 간 거리이다. 파동의 진폭은 그것의 강도(또는 광파의 경우 밝기)와 연관된다. 파형에서 성분파들의 상대적 상태는 서로 간의 유사한 상태들을 관련지운다(이를 테면 우리는 성분파들의 마루들 상대적 상태에 대해 말할 수 있다). 파형에서 성분파들이 서로 줄을 맞추면, 그것들은 ‘동상’(同相, in phase)이라고 말해진다.
7] ‘간섭’이라는 말이, 동사 ‘간섭하다’가 방해, 장애 또는 차단의 의미를 가지기 때문에, 초심자들을 잘못 이끌 수 있다는 것은 언급할 만한 가치가 있다. 파동이 만날 때, 그것들은 두 개의 입자의 경우에서처럼 서로 방해하거나 차단하지 않으며, 그 어떤 충돌이나 부딪힘도 발생하지 않는다. 반대로 전체적인 핵심은 파동들이 서로의 존재로 인해 방해받지 않고 공존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것들은 어떤 보통의 공간 영역에서, 사실상 하나의 단일한 지점에서 겹쳐질 수 있다. 회절과 간섭에 대해 배우기 위한 훌륭한 온라인 대화형 프로그램들이 있다. 예컨대 홍콩의 고등학교 물리학 교사인 치우-킹 응(Chiu-king Ng)이 만든 물리학 자바 애플릿이 있다. http://www.ngsir.netfirms.com/englishVersion.htm#lightwave . See p. 407, n.20
8] 실재 패턴은 파도의 파장, 틈(구멍)의 폭 그리고 그것들 간의 거리를 포함하는 특수한 특성에 의존한다. 특히 주어진 회절격자(방파제)에서, 상이한 파장들은 스크린(해변 또는 다른 표면) 위 상이한 장소들에서 보강적으로 그리고 상쇄적으로 간섭한다. 이것은 왜 회절격자가 (프리즘과 같이 효과적으로 행동하는 것처럼) 백색 광선에서 상이한 성분을 가진 색깔들로 분해되는지를 설명한다.
9] 물리적으로 말해서, 회절과 간섭은 하나이면서 같은 것이다. 그것들은 둘 다 파동이 겹쳐질 때, 그 진폭들이 결합된다는 사실과 관련된다.
10] 단일-슬릿 회절 패턴도 마찬가지로 보강과 상쇄 간섭 줄무늬를 전개한다. 당신은 광학 기초 교재에 있는 ‘잔물결’ 간섭에서 (호이겐스의 원리를 사용하여) 단일-슬릿 회절에 관한 설명을 발견할 수 있다.
11] 이것은 푸아종 점(Poisson spot)으로 불린다. 이 현상은 빛의 파동-대-입장 본성에 대한 논쟁에서 중요한 역사적 역할을 했다. 1818년에, 빛이 파동이라는 어리석은 추론을 반증하길 희망하면서, 시메옹 푸아송(Simeon Poisson)은 프랑스 과학 아카데미가 후원했던 과학 경연에 한 논문을 제출했다. 거기서 그는 만약 빛이 파동이라면 불투명한 둥근 대상의 그림자 중앙에 밝은 점이 있게 될 것이라는 ‘바보 같은’ 결론을 도출했다. 대단히 유감스럽게도 그 즉시 심사위원 중 한 사람이었던 도미니크 아르고(Dominique Aargo)는 실험을 수행했고 회절 패턴의 중앙에 나타난 밝은 점을 관찰했다.
12] 전자기 스펙트럼의 가시적 부분에서 전체적인 색 스펙트럼을 담고 있는 햇빛이 회절격자를 통해 지나갈 때, 빛의 중첩은 디스크 안의 몇몇 색깔들의 강화와 다른 것들의 약화(또는 삭제)를 초래한다. 특정 영역에서 어떤 색깔이 강화되고 어떤 색깔이 약화되는지는 빛 파동의 파장, 즉 그것의 색깔에 의존한다. 따라서 상이한 영역들은 다른 색깔들을 가지는 것이다.
13] 백색광으로 구성된 여러 색들은 여기서 몇몇 위치들에서 몇몇 색들의 강도가 증가하고, 다른 것들은 감소하거나 심지어 삭제됨으로써 서로 간에 간섭하고 중첩하는 얇은 막의 어느 한쪽 면에서부터 나오는 빛파동의 결과로 분리된다. 다시 말하지만, 나는 예시들 간의 어떤 구별을 만들고 있지 않는데, 왜냐하면 그것들은 궁극적으로 동일한 물리학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14] 단일 슬릿을 가진 왼쪽 첫 번째 차단막은 기술적인(technical) 이유로, 즉 격자를 통해 나아가는 빛이 ‘가간섭적’(coherent)이라는, 다시 말해 회절 슬릿을 통과해 가는 파동들이 고정된 위상 관계를 가진다는 이유로 거기 있다. 그것은 또한 단색(즉 단일 파장)광원이 사용된다는 것을 가정한다. 회절 격자가 두 부분, 즉 한 슬릿은 지지판에 고정되어 있고 다른 한 슬릿은 두 개의 스프링으로 메달려 있다는 사실의 중요성은 이후 다루어질 것이다(3장과 7장을 보라).
15] 양자 물리학에 관한 많은 입문서는 이 중요한 실험을 논한다. 예컨대 Eisberg and Resnick I974를 보라. 진공 안의 (행운의) 틈으로 인해 크리스탈 샘플을 재가열함으로써, 크리스탈의 구조가 변화했다는 것은 흥미로운 역사적 사실이다. 이것은 실망스러운 실패로부터 드 브로이의 물질파 가설에 관한 결정적인 실험적 확증으로 데이비슨과 거머의 원래 실험의 본질을 우연찮게 변화시켰다. Physics Today 3I, no. I (1978): 34-41을 보라. 양자역학 초기에 전자의 파동적 본성에 관한 증거를 보이기 위해 다른 회절 격자를 사용한 G.P. 톰슨은 데이비슨과 더불어 노벨상을 받았다. G.P. 톰슨은, 전자를 발견하여 그것이 새로운 기초 입자임을 보여준 공로로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J.J. 톰슨의 아들이다.
16] 파동-입자 이원성 역설은 3장과 7장에서 자세히 논의된다.
17] 이것은 우리가 방법론적 질문에 도달할 때 명심해야 하는 중요한 것이다. 반영[반성]의 목표가 데이터를 따라 ‘도구’를 분석하는 것(예컨대 증거를 구성하는 것을 돕는 연구자의 역할)이라면, 반사(reflection)는 그릇된 은유이다. 회절이 ‘주체’와 ‘대상’의 동일성이 고정된 것이 아니라는 식으로 서로를 통해 도구와 대상 둘 모두를 읽는데 사용될 수 있지만, 반사는 하나를 다른 것이 독해되는 표준으로(즉 고정된 거울) 고정하는 비대칭적 초점을 가진다. (기하 광학과 물리 광학 간의 차이를 판별하는 것 – 다음 단락에서 논의된다 – 은 이 논점의 핵심을 파악하는 것을 도울 것이다.) 거울 주위를 도는 것은 그 자체로 그림 안의 거울에 도달하려고 애쓰는 잘못된 방법이다.
18] 뉴턴 물리학(때때로 ‘고전 물리학’이라고도 불린다)은 20세기 초 양자물리학이 출현하기 이전 수 백년 동안 물리학을 지배했던 매우 성공적인 패러다임이었다.
19] 빛의 ‘선’(ray)이라는 개념은 빛에 대한 모든 관심을 그것의 경로나 궤도로 환원한다. 기하 괄학에서 이 혁신은 인식론적으로 또는 존재론적으로 의도되지 않았다. ‘선’은 단순히 어떤 유용한 발견론적 개념으로 제안된다.
20] 이 유비를 수학적으로 엄격하게 만드는 것은 드 브로이 파장이 질량을 가진 각각의 입자들과 연결될 수 있다는 생각이다. 아이스버그와 레스닉크(1974)는 보통 학부교재로 많이 사용되는 책에서 이 유비를 상세하게 논한다.
21] 재현주의에 간한 상세한 논의는 1장을 보라.
22] 과학지식 사회학(SSK)에서 ‘강한 프로그램’은 그것의 네 가지 기초 교설 중 하나로 그것을 채택했다. 과학학에서 보다 깊은 논의와 반영에 관한 옹호에 대해서는, 특히 Woolgar 1988a, 1988b를 보라. 또한 Pickering 1992에 있는 ‘인식론적 치킨 논쟁’에 관한 논의도 참조하라.
23] 예컨대 Harding 19911; Traweek 1992; Haraway 1997 그리고 Rouse 1996의 논의를 보라
24] 이 점에 대해서는 특히 Haraway 1997, 35를 보라. 페미니즘 과학학 문헌은 젠더가 과학과 더불어 형성되는 방식에 관한 예들로 가득 차 있다. 페미니즘 과학학의 토대적인 저작들 중 하나인 Keller (1985)는 이 점을 20년 전에 명확하게 밝혔다. 즉 젠더와 과학은 공-구성된다. 논점은 여성 안의/그리고 과학 또는 젠더 안/그리고 과학이 아니라 진행중인-젠더-그리고-과학이다.
25] 만약 회절이 물질화하는 차이들을 위한 중요한 은유로 제공되어야 한다면, 우리가 물질화하는 차이에 대한 사유가능성[의무]의 문제를 차이의 이익을 위해 차이의 포스트모던적 환대와 융합하지 않기 위해 회절에 관한 상이한 이해를 촉발하는 그와 같은 종류의 차이들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는 것이야말로 관건적이다. 이런 측면에서 처음으로 유명한 이중-슬릿 실험을 제안했던 토마스 영이 회절을 차이들에 대한 존재로 이론화한다 해도, 그의 차이 개념은 장소의 고정성 뿐 아니라 어떤 우선 범주로서의 동일성에 기댄 것이라는 점은 언급할 가치가 있다. “따라서 빛의 두 부분들의 효과가 결합될 수 있기 위해, 그것들은 방향에 있어서 상호간에 너무 많이 벗어나지 않으면서, 동일한 기원으로부터 나오고, 상이한 경로를 통해 동일한 지점에 도착한다는 것이 필연적이다. 아마도 ‘두 번째 밀레니엄’(해러웨이)의 ‘돌연변이된 겸손한 목격자’는 너무 빨라서 이러한개념을 수용하지 못하길 원하지 않을 것이다. Barad 1997을 보라.
26] 몇몇은 모든 사유가 어떤 의미에서 은유적이라고 논증하겠지만, 이것은 내가 만들어가고 있는 논점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
27] 비생동적-생동적(inanimate-animate)이라는 구분은 아마도 서구 철학과 그것의 비판에서 가장 끈질긴 이원론 중 하나일 것이다. 자연-문화 이분법에 관한 가장 강력한 비판들 중 몇몇조차 이 비생동적-생동적 구별을 그대로 놔 둔다. ‘죽은 물질’조차 어떻게 생동적으로 존재할 수 있는지를 평가하는 것은 행위소에 관한 급진적인 재사유를 요구한다.
28] 양자 전기역학은 지금껏 물리학에서 발전된 가장 성공적인 이론 중 하나이다. 이 분야는 소립자 차원(10-16cm)에서 109cm의 거리에 이르는 25 크기 정도(위성 측량을 이용하여 결정되는)에 걸쳐 측정된 현상들을 해명하는데 있어서 성공적이다. 이론과 실험 간의 일치의 정도는 뉴욕에서부터 로스앤젤리스까지의 거리를 머리카락 하나의 폭 안에서 결정하는 것과 같다.
29] 젠더 연구와 과학학에서 몇몇 학문영역은 그것의 질문하기에 있어서 우선적으로 단일지향적인 방법에 의해 중요한 방식에서 제한되어 왔다. 그리고 양자지향성은 그것을 차단하지 않는다. 이것은 단순히 두 갈래 길이 아니다.(비록 일련의 흔한 고려들이 부가된다 해도, [그것보다는] 여성들의 연구가 그 커리큘럼 안에 보다 많은 과학을 포함하는 방식에 관한 연구들이 어떤 훌륭한 부가가 될 것이다) 내가 논증했던 바 논점은 페미니즘과 과학의 회절적 연동은 단일지향적이거나 심지어 다방향적인 접근들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제시해야 한다.
30] ‘간학제성’은 내가 흥미를 가지는 이같은 관점의 의미를 가지지만, 일반적으로 설명되는 것처럼 충분히 강력하지 않다. 이것은 행위적 실재론의 더 진전된 탐구와 더불어 점점 더 분명해질 것이다. 교육학적인 함축에 관한 논의를 위해선 Barad 2000도 보라.
31] 나는 지식의 모든 분과적, 다분과적(multidisciplinary), 또는 횡단분과적 장들이 아카데믹한 배움에 제한되지는 않는다는 것을 당연히 받아들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