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응(affect)
감응적 전회(#Affective_Turn)*
인간 없이 감응될 수 있는가? 용어집의 취지 안에서 이 질문을 제기하기 위해, 두 개의 키워드, 즉 감응(affect)과 포스트휴먼(posthuman)을 곧이 곧대로 취해보자. 이 단어쌍에는 어던 역설이 숨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인정하건데 감응이 철학, 문화론 또는 정신분석 중 어디에 쓰이든지, 심지어 어떤 하나의 학문 분과 구성체 안에서도, 그 의미에 있어서 일치하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는 이 개념과 가능한 유사 기제들 – 감정, 느낌, 기분, 정서 등등 – 을 구분하는 일군의 이론가들을 그렇게 하지 않는 이론가들과 구별할 수 있다. 시앤 응가이(Sianne Ngai)의 『추한 느낌』(Ugly Feelings)은 2000년대 초의 감응적 전회(affective turn)에 한 획을 그은 연구로서, 그러한 구분을 거부하는 한 예이다. 그녀가 주요하게 내세우는 ‘느낌’, ‘감정’ 그리고 ‘감응’은 응가이의 저작에서 상호간에 변천한다. “감응과 감정 간의 차이는 질이나 본성에 있어서 형상적 차이라기 보다는, 강도나 정도에 있어서 어떤 양태적 차이로 간주된다”(2005: 27). 감정은 표현되고 이야기될 수 있는 수준에 기반하여 감응이 된다(또는 성질이 변한다). 최소한 이러한 이 개념들 간의 연속성은 감응과 감정이 어떤 인간적 지각주체 그리고 감정주체 둘 모두의 주위를 돈다고 제시한다. 이러한 인간적 지향성은 응가이의 이론이 수행하는 정치적 힘에 대단히 중요하다. 『추한 느낌』은 어떤 역사적 논증에 기대고 있는데, 그것은 후기 자본주의가 정치적인 것을 해체해 버림으로써 우리가 ‘보다 허약한’ - 종종 ‘추한’ - 감응들, 예컨대 불안과 초초함을 처리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러한 것들은 “아마도 그것의 주변, 바틀비적인(Bartlebyan) 것에 더 잘 들어 맞는 느낌이지만, 여전히 증상적 본성에 맞다. 왜냐하면 주체성, 집단성 그리고 행위자 모델들은 지난 이론가들에 의해 전반적으로 예상되지 않기 때문이다”(5). 감응에 관한 응가이의 해명과 그것이 불안과 같은 상태라 하더라도 인간적 행위 주체를 떨궈내지 않는다는 사실은 한동안 행위자를 ‘유예한다’(1)
아마도 감응을 보다 엄격하게 구획하는 사람들은 보다 결정적으로 감응성으로부터 인간성을 분리하는 그것의 유사기제들로부터 영향을 받는다. 감응과 감정에 관한 브라이언 마수미(Brian Massumi)의 정의는 감응 이론을 위한 초기조건을 생성시켰으며, 일견 휴머니즘으로부터 포스트휴머니즘으로의 궤도 변경으로 비춰진다. 이러한 노선을 따라 『잠재성을 위한 우화』(Parables for the Virtual)**와 마수미의 저작들은 ‘감응의 자율성’(2002: 23)을 수립한다. “감정은 어떤 주체적인 내용물이다”라고 제안하면서, 그는 “그 점으로부터 나오는 경험의 질에 관한 사회언어학적 정착은 인격적으로 정의된다. (...) 그것은 소유되고 인식되는 강도다”(28)라고 말한다. 이와 대조적으로 감은은 “질화되지 않는다. 그 자체로 그것은 소유될 수 없고 또는 인식될 수도 없으며 따라서 비판에 저항한다”(28). 만약 감응이 ‘소유되지’ 않는다면, 아마도 그것은 인간적 소유행위자로부터 자유롭게 부유할 것이다. 하지만 그의 저작을 계속 읽다 보면, 인지적으로 인식되지 않는다 할지라도, 감응이 여전히 “축소할 수 없을 정도로 신체적이고 자율적”(28)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이러한 감응의 전(pre-) 또는 하부(sub-) 인격적 성질로 인해 감응은 포스트휴먼이 되지 않는다.[1]
우리가 그와 같은 최초 연구들이 감응을 정의하는 방식 뿐만 아니라 많은 감응 연구들의 방법을 고려하지 않을 때, 인간적인 것은 더욱 더 강하게 개입할 것이다. ‘대중감’(Public Feeling) 그룹을 형성하는 사상가들 - 특히 로렌 벌랜트(Lauren Berlant, Cruel Optimism)와 앤 크베트코비치(Ann Cvetkovich, Depression), 호세 에스테반 무노즈(José Esteban Muñoz, Cruising Utopia) 그리고 카틀린 스튜어트(Kathleen Stewart, Ordinary Affects) - 은 간혹 공공연하게 회고적 양식으로 체현된 ‘나’로부터 나오는 글을 쓴다. 이러한 것들 그리고 대체로 유사한 연구들은 유제니 브링케마(Eugenie Brinkema)의 논점을 입증한다. 즉 감응적 전회는 “이론가의 인격적 경험을 강조하고” 따라서 “그 노고의 핵심에 인간주의적인 면모를 보존하는 (...) 수행적 차원”을 가진다는 것이다(2014: 31, 32).
그래서 인간은 이론가들 간의 차이를 가로질러 감응에 관한 연구들을 오염시킨다. 이러한 특성은 그러한 기획들에 일관된다. 환경문화 연구들을 살펴보자면, 거기서 감응은 포스트휴머니즘을 인간주의 ‘아닌’, ‘너머’ 또는 ‘이후’로 존재하는 상태로서라기 보다 취약함으로 상상하기 위한 기반이다. 포스트휴머니즘적 사유의 이 노선은 비신체적인 실체[2] 또는 생명공학적 가공에 의해 활용되는 것이라기 보다 “구성적 의존성과 유한성”(Wolfe 2010 : xxvi)에 의해 정의되는 인공보철적 존재를 앞세운다. 감응 이론의 구조적인 문제틀 – 주체와 객체 간의 중계 – 은 환경적 사유 내부로부터 포스트휴머니즘을 사유하는 것을 설정한다. 이러한 지적 전통 안에서, ‘객체’는 전형적으로 여타 동물 종들, 식물들, 요소들 그리고 힘들에 있어서 인간-이상-영역에 속한다.[3] 스태이시 알라이모(Stacy Alaimo)는 인간과 그러한 다른 것들 사이 침투가능한 막을 형성하는 ‘횡단신체성’(transcorporeality)을 제안하는데, 이것에 의해 이 둘은 함께 엮여든다. 그녀의 페미니즘 유물론 분석에서, 포스트휴머니즘은 “결코 단순히 어떤 외부적 장소가 아니라, 언제나 우리 자신과 다른 것들의 바로 그 본질인 어떤 물질적 세계에 대한 사유가능[성]”(Alaimo 2010: 158)을 요청한다. 인간은 존속하지만 그녀만이 그런 것은 아니다. 그녀의 바로 그 물질성은 감정의 기폭제로서 – 전형적으로 예술적 대상들과 타자들 - 세계의 모습을 다루는 감응 이론들에서 우리가 전형적으로 발견하는 것보다 더 강한 의미에서 세계의 이런 저런 요소로 이루어져 있다.
감응은 어떻게 종간(interspecies) – 나아가 물질-간 – 활력에 대한 리트머스 시험이 되는 건가? 환경적이고 신체적인 질병의 현대적 담론에 관한 나의 연구에서 혐오와 같은 감응은 만약 예측가능하지 않다면 이러한 활력의 흐름을 알 수 있게 하는 횡단신체적 연결성을 느끼기기에 부적절한 것으로 보인다(Houser 2014). 매튜 테일러(Matthew Taylo)에 따르면, 에드거 알렌 포(Edgar Allan Poe)의 저작을 관류하는 ‘주거환경공포’(ecophobia)는 인간 우월성과 지배력보다는 ‘생태적 포스트휴머니즘’을 풍요롭게 한다(2013: 359). 감응성(Affectivity)은 인간에게 유일함을 표시하지 않는다. 생태적 포스트휴머니즘이 가르치는 바, 세계는 우리에게 분리와 우월성의 선택권을 주지 않느다. 돌봄(Care)은 감응적 혼효(messiness)를 통해 존재자가 “의존성에 속한 불가분리성, 취약함의 불가피성, 지배력의 불가능성”(Taylor 2013: 370)을 경험하는 것에서 야기되는 태도 또는 윤리가 아닐 것이다. 공포, 혐오, 불안 또는 경이 중 어떤 것을 통하든, 취약성을 실현하는 것은 좀체 쉬운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안락한 관계를 창조해야 할 때, 보다 까다로운 감정들을 가동하려는 것과 같다. 환경 인문학에 의하면, 2000년대의 감응적 전회는 타자의 ‘생동성’을 좋은 방향으로 지향하기(나는 이 구절을 모든 심사숙고의 순진함에 사용한다) 쉽게 만들어주는 것만은 아니다 (Bennett 2010: xvii). 하지만 이것은 겉보기에 인간성에 의해 포괄되는 느낌들이 바로 그 포괄성이라는 생각 안에서 범하는 오류를 드러내는 방식을 기술하는 방법들을 제공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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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
*[역주] ‘affect’의 번역어는 ‘정동’, ‘감응’, ‘감정’ 등이 있다. 이 개념 가진 인간주의적 함축을 배제한 ‘감응’이라는 역어를 선택했다. 아래에 이어지는 인용문에서도 정동은 ‘감응’으로 바꿔 썼다.
**[역주] 한국에서는 『가상계-운동, 정동, 감각의 아쌍블라주』(조성훈 옮김, 갈무리, 2011)로 번역되어 있다.
[1] 문화이론가들인 응가이와 마수미는 감응을 그 주제로 취급하는 복잡한 이론적 체계에서 확실히 주목할 만한 유일한 사람들이다. 나는 이들을 여기서 예시로 사용할 것인데, 왜냐하면 그들이 문화와 사회이론에서 대조되어 갈라지는 그들의 [감응에 대한] 정의로 인해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2] 포스트휴머니즘이 어떻게 해서 신체성을 놓아 버리는지에 대해서는 Hayles(1997, 1999)를 보라.
[3] 식물에 대해서는, Marder(2013)과 Kohn(2013)를 보라. 요소들과 힘에 대해서는 Cohen(2013a)이 제시하는 바, 최근에 생겨나고 있는 ‘요소적 생태중심주의’(elemental ecocentricism)와 Cohen and Duckert(2015ra), 그리고 마찬가지로 Bennett(2010), Chen(2012), Meillassoux(2008) 등을 보라.
- Rosi Braidotti, Maria Hlavajova(eds.), Posthuman Glossary (London: Bloomsbury, 2018), 15-17
감응적 방법(#Affective_Method)[1]
감응적 방법(AM)은 자주 감응적 전회, 신유물론 그리고 특히 물질-담론적이고 “어떤 경험적 연구와 연관된 감응적 과정들”(Knudsen and Stage, 2015, p.1)에 대한 연구와 관련하여 논의된다. AM은 감응적 만남들과 신체적 반응들을 지식 생산의 결정적인 부분으로 취한다. 그리고 이것은 새로운 질문들, 연구 일정들 그리고 정보 수집과 정보 분석의 양상들을 공식화할 수 있다. 감응적 방법은 사랑, 혐오, 강도 그리고 욕망과 같은 감정들과 신체적 감응들을 신중하게 취급하는데, 왜냐하면 그와 같은 반응들과 반향들이 지식 생산 과정의 부분인 윤리적 딜레마를 드러내기 때문이다. 반면 동시에 그것은 윤리학의 다른 양식들을 제공하기도 한다. 그와 같은 방법론들은 종종 객관적이며, 비체현적이고 가치중립적이라고 이해되는 과학과 기술의 맥락 안에서 특히 본질적이다.
AM은 ‘감응적으로’ 과학하기의 체현된 실재성을 강조한다. 과학인류학자인 나타샤 마이어스(Natasha Myers)는 실험실 작업을 한다는 것은 “모델링 작업에서 운동적으로(kinesthetically) 그리고 감응적으로 얽힘을 조성할 수 있는”(2015, p. 1) 기술자들을 요구한다는 것이라고 제안한다. 그녀는 분자생물학과 단백질 모델링은 “실재로 그들의 신체를 작업 안에 끌어들이는”(2015, p. 1) 기술자들을 요청한다고 쓴다. 그녀는 그것을 “모델링을 하는 자들이 그들의 신체 경험들을 실현하는 강감적(强感的, visceral) 감수성, 운동 그리고 근육 지식”을 참고하는 실천적 분자생물학의 ‘운동감각’(kinesthetic)이라고 부른다. 마이어스는 감응을 실험실 작업을 “통해 번식하는 에너지, 강도들 그리고 감정들”로 정의한다(ibid.). 그녀는 실험실 작업의 운동감각과 감응적 실재성 둘 모두를 ‘느낌’(feeling)으로 이해한다. 전자는 유기체에 속한 느낌을 강조하고, 후자는 유기체를 위한 느낌을 지칭한다(Keller 1983; Holmberg 2011). 그와 같은 지식 생산의 감응적 계기들과 함께 머무는 것이 본질적이다. 왜냐하면 그것이 인간과 비인간/자연/동물이 과학들 내부에서 상이하게 만나는 것에 관한 윤리학에 대해 쓸 수 있게 하기 때문이다. 그러한 쓰기의 형식들은 진드기, 파리, 바이러스 등등과 같이 두려움을 유발하는 비인간과 관련될 때 특히 중요하다. 이것은 지식 생산 과정에서 그것이 동물들이 수동적인 수용자들이 아니라 능동적 행위자라는 과학 활동의 상호작용적 양식을 강조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절대적 객관성과 비체현적 과학이라는 미신으로부터 멀리 떨어져서 과학활동의 체현된 실재들을 강조한다. 과학자들은 주체이자 객체로서 [비인간에] 환대적이 되어야 하고, [거기] 거주해야 하며, 돌보고, 체현해야 하며, 심지어 과학활동을 할 수 있는 비체(the abject)와 함께 어떤 것이 되어야 한다. 다시 말해 과학자와 비체는 과학활동의 무도(dance) 안에서 서로간에 ‘간-생’(intra-animate)한다(Myers 2010). 그러나 대개의 경우 그것은 어떻게 특정한 신체들(두려움, 불편함 또는 비체적인 것을 유발하는 것들)이 과학 경제학에서 생명에 대해 가장 폐기될 수 있고 죽일 수 있는 형태들이 되는지를 전경화한다.
사라 아메드(Sara Ahmed, 2014)가 논한 것에 따르면, 혐오와 같은 느낌들은 사회적 비체성(abjection)과 밀접하게 연결되며, 특정 신체들과 역사적으로 연결된 문화적 현상 안에 뿌리박혀 있다. 게다가 그와 같은 느낌들은 주체 내부에 발생하는 추상적인 어떤 것이 아니지만, 신체들 간에 그리고 밀접한 만남을 통해 일어나는 감응적인 수행적 신체 실재성들이다. 그러한 느낌들은 여러 상이한 방식으로 실재적인 것들을 물질화한다. 아메드에게 영감을 받은 사람들 중에, 야콥 불(Jacob Bull, 2014)은 진드기에 대해 쓰면서, 사랑이나 연민보다 혐오, 두려움 그리고 반감과 같은 느낌으로 지배되는 부정적으로 점철된 만남들에 대한 윤리적 응답의 가능성을 논한다. 그는 종다양성 윤리학이나 관계성의 윤리학의 사유 안에서 어떤 한계를 식별해 낸다. 이러한 사유는 반려동물들, 즉 ‘반려종’(Haraway 2008), 우리가 식재료로 활용하는 동물들, 가끔 실험실의 포유류들, 이를테면 유인원들과 쥐들과 같은 인간이 밀접한 관계를 가지는 범역에 제한되는 경향이 있다. 신유물론 내의 최근 연구들은 이러한 괴리를 드러내는데 있어서 성공적이었다(Bates and Schlipalius, 2013; Hird, 2009 참조). 신유물론 학자들은 부정적 감정들과 함께 머무는 것, 그와 같은 역동적인 감응적 만남들에 참여하는 것, 여타 비체와 신체적 반응들과 물질적 친근성을 나누는 것이 비-인간중심적 관점에서 ‘인간-동물 상호작용’을 이해하는데 결정적이라고 논한다.
요컨대 감응적 방법은 기존의 범주들과 위계적 이원성(binaries)보다 상황적 관계들과 물질-담론적 간-행(intra-actions)에서 출발하는 관점을 취하는 연구작업의 윤리적 양식을 가능하게 한다. 그것은 과학적 낙관주의가 그 이야기들 그리고 희생과 더 큰 선에 관한 논리를 뒤집는 것을 방지하는 것과 동시에 문화상대주의를 저지하기도 한다. 그 대신 그것은 최초의 관점으로 실험실 과학의 구성부분인 바, 물질적인 것, 문화적인 것, 사회적인 것, 체현된 강도들 그리고 항구적으로 변하는 활력을 취한다.
[주석]
[1] 이 텍스트의 일부는 Mehrabi, Tara. 2018. Being intimate with flies: on affective methodologies and laboratory work. Women, Gender & Research. 27(1), 73-80로 출판되었다.
[참고문헌]
Ahmed, Sara, (2014). The cultural politics of emotion. Edinburgh: Edinburgh University Press.
Bates, Tarsh, and Megan Schlipalius, (2013). “Necessary Expandability: an exploration of nonhuman death in public.” In Animal Death, edited by Jay Johnston and Fiona Probyn-Rapsey. Sydney: Sydney University Press, pp. 43-66.
Bull, Jacob, (2014). “Between ticks & people: Responding to nearbys and contentments.” Emotion, Space and Society 12, pp.73–84.
Haraway, Donna, (2008). When species meet. Vol. 224. Minneapolis: University of Minnesota Press.
Hird, Myra, (2009). The origins of sociable life: evolution after science. Basingstoke; Palgrave Macmillan.
Holmberg, Tora. (2011). "Mortal love: Care practices in animal experimentation." Feminist Theory 12.2 (2011): 147-163.
Keller, Evelyn F. (1983). A Feeling for the Organism: The Life and Work of Barbara McClintock. San Francisco: W.H. Freeman
Knudsen, Britta T., and Stage, Carsten, (2015). Affective Methodologies: Developing Cultural Research Strategies for the Study of Affect. Basingstoke, Hampshire: Palgrave Macmillan.
Myers, Natasha, (2015). Rendering life molecular: models, modelers, and excitable matter. Durham: Duke University Press.
- Tara Mehrabi, “Affective Method” in <New Materialism>(web journal), https://newmaterialism.eu/almanac/a/affective-method.html
감응은 정치와 윤리의 핵심이[다.] (...) 나는 감응적 촉매가 불러일으키는 인간의 관계능력의 향상 보다는, 비인간 신체 내에 존재하는 있는 그대로의 촉매에 초점을 맞추려 한다. 이 권력은 초인격적이거나 상호주관적이지 않으며 (...) 인간으로서 상상될 수 없는 형식에 내재하는 비인격적 감응이다. (...) 유기적 신체와 비유기적 신체, 자연의 대상과 문화적 대상 (...) 모두가 감응적이다. (...)
내가 비인격적 감응 혹은 물질적 생동이라 말하는 것은 외부로부터 물질에 깃드는 정신적인 부가물 혹은 ‘생명력’이 아니다. 내가 말하는 것은 전통적인 의미의 생기론이 아니다. 나는 물리적 신체에 들어가 그것에 영혼을 불어넣는 별개의 힘을 상정하기 않으며, 감응을 물질성과 동일시한다. (...)
비인격적 감응의 현전을 감지할 수 있으려면 그것에 사로잡힐 필요가 있다. 최소한 얼마간 의심을 유예하고 보다 개방적인 자세를 취해야만 한다. 만약 우리가 저 바깥에 있는 것을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우리는 아마 비인격적인 힘의 대부분을 놓치게 될 것이다.
- 제인 베넷 지음, 문성재 옮김, 『생동하는 물질』, 현실문화, 2020, 16-23
사람들은, 변용affectio[affectiones]이 일반적으로 직접적으로 신체에 대해 말해지는 반면, 감응affectus은 정신과 관계 있다고 생각해 왔다. 그러나 진정한 차이는 거기에 존재하지 않는다. 진정한 차이는 신체의 변용과 외부 신체의 본성을 포함하는 관념을 한편으로 하고, 정신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신체의 경우에서 행위능력을 증가 혹은 감소를 포함하는 감응을 다른 한편으로 하는 둘 사이에 존재한다. (...)
변용-이미지 혹은 관념과 감응 사이에는 본성의 차이가 존재한다. (...) 감응이 이미지나 관념을 전제하며, 마치 자신의 원인인 것처럼 그것으로부터 유래한다는 것은 확실하다(2부, 공리 3). 그러나 감응은 이미지나 관념으로 환원되지 않는다. 그것은 순전히 전이에 관련된 것이기 때문에 아주 다른 본성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며, 두 상태 사이의 차이를 포함하는 체험되는 지속 속에서 겪기 때문에 지시하고 표상하는 것이 아니다. (...)
행위능력의 증가는 기쁨의 감응이라고 불린다. 보다 적은 완전성으로의 이행, 즉 행위 능력의 감소는 슬픔의 감응이다. 필연적으로 부적합할 수밖에 없는 신체에 대한 관념, 즉 우리의 상태 속에 포함되어 있는 혼동된 이미지 (...) 이러한 감응들이 정념이다.
- 질 들뢰즈 지음, 박기순 옮김, 『스피노자의철학』, 민음사, 2001, 177-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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