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객체의 실존에 대하여>_육후이_1부_1장
*원문서지: Yuk Hui, On the Existence of Digital Objects, University of Minnesota Press, 2016
1부 객체들
1장 디지털 객체들의 탄생
디지털 객체들과 그 환경
[47]우리는 현재 디지털 환경 안에서 살고 있다. 우리는 페이스북을 하고, 블로그를 하며 (...) 기술적 혁신의 속도, 가장 최근의 그리고 가장 뛰어난 전자기기들의 편재성(ubiquity), 해방적인 기술 또는 인간 관계의 디지털화에 기반한 미디어, 금융투자에 대한 전도유망한 약속 등등. 이 모든 것들은 결코 현재는 아니지만 오히려 허무적인 아직-아님(not-yet)의 투사(projection)로서의 어떤 봄(seeing)을 구성한다. 이러한 존재양식은 하이데거가 ‘시간적 황홀경’(temporal ecstasy)이라고 부른 것이다. 이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스로를 어떤 본래적인 시간 안에 자리잡게 하는 것이며, 동시에 존재하지 않음에 대한, 기술적인 복음전파자들의 탁월한 수사학 안에 스스로를 정립시킬 수 없는 불안에 의해 좇기는 동안 속도를 환대하는 어떤 초-황홀경(hyper-ecstasy)라고 할 수 있다. 나는 이러한 경험을 기술적 황홀경(technological ecstasy)이라고 부를 것인데, 이는 그 방향성에 관한 생각에 전혀 명석하지 않은 하나의 생성의 방식으로서 가속(acceleration)과 모험(adventure)이라는 것으로 규정된다. ‘새로움’의 지속적인 명멸은 리듬을 지향하는 무관심성(indiffernce toward rhythm)을 구축한다. 이것은 이후 어떤 무엇이 거기 존재하는지 그리고 무엇이 예상되는지에 관한 어떤 자연적인 시각을 합법화한다. [여기서] ‘새로움’이라는 단어는 오래된 것과 그것의 투사 안에 거대한 운동의 힘에 의해 추동되면서 세계의 미분성이 지나감을 함축한다.
[47]이러한 갈등[전통과 기술의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서 우리는 새로운 기관(organon[방법론, 논리학 또는 ‘신기관’]) 또는 일련의 새로운 철학적 명제들을 채택해야 한다. (...) ‘실재’를 이해하기 위해 우리는 그것을 통상 가상적(virtual)이라고 이해되는 것과 비교해야 한다. 잠재적[가상적]인 것에 대한 생각은 온라인 회의나 사이버섹스와 같은 일련의 디지털 미디어에 의존한 소통과 상호작용에 관한 기술(description)로 몇 년 전 대중적으로 알려졌는데, 이후 이 말은 사라졌으며, 이제 오늘날 당신은 더 이상 페이스북이나 세컨드 라이프[가상세계를 구축하는 게임명]를 사용하는 [48]누군가가 어떤 가상세계에 살고 있다고 말할 수 없다(그가 그의 신용카드 번호와 개인정보를 온라인 스웨덴 비자를 신청하기 위해 제공하는 것과 같이 그의 실제 친구들과 상호작용하고 활동한다고 생각해 보라). 블루투스, 와이파이 그리고 GPS와 같은 기술들의 도입과 통합작용은 보다 정확한 환경적이고 지리적인 탐색을 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우리는 실재 자체(the REAL)로 이끈다. 우리는 어떻게 이 디지털 환경을 드러낼 수 있을까? 그것은 다른 세계, 이상한 세계, 인공적이면서도 자연스러운 그런 세계이다. 이 세계는 우리가 ‘실재 세계’로 지칭하곤 하는 것이며, 보다 중요하게는 우리가 이미 그 안에 있는 세계이다.
[48]우리는 모든 것을 객체들(objects[대상들])이라고 부르는 경향을 가지고 있는데, 이때 디지털 객체로서 모든 전산적인 구성요소들이 일반화된다. 하지만 이러한 접근은 문제적인 것으로 드러난다. 왜냐하면 개별적인 객체들이 이런 경우 그 특유성을 잃어버리기 때문이다. 이와 동일한 논의가 객체-지향 철학자들이 일반 명칭인 ‘객체’를 인간과 현격한 모든 개별체들에 부여할 때 적용된다. 우리가 0과 1로 모든 작용들, 심지어 전자들과 원자들의 작용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환원할 수 있다는 것은 사실이다. (...) 만약 데이터가 [49] 주어진 ‘사물’(things)이라면, 그때 데이터를 주는 것은 무엇인가?
[49]나는 기술적 객체와 디지털 객체 사이의 균열을 제안하고자 한다. 디지털 객체는 산업적인 객체의 새로운 형태이다. 만약 ‘새로운’이라는 것이 어떤 새로운 이해를 요청한다면, 그때 이것을 드러내는 것은 이 ‘새로운’ 것이 어디에서 유래하는지 묻는 것에서 시작될 것이다. 새로움은 지속성으로서든 어떤 단절이나 균열이든 오래된 것과 관련하여 표명될 수 있을 뿐이다. (...) 우리는 역사적 전망 안에서 객체들의 탄생으로 우리의 관심을 향할 것이다.
객체와 데이터의 이중 운동
[50]디지털화(digitization)의 논리 (...) 즉 모든 것이 잠재적으로(virtual) 디지털 형식(format)으로 드러날 수 있다는 것 (...) 여기에는 두 가지 디지털화의 형식이 존재한다. 첫째로 사상(捨象, mapping) 또는 모사(mimesis[모방])가 있다(이를테면 디지털 이미지, 디지털 비디오 등등의 생산. 이는 시각적으로 재현적으로 물리적 세계를 통과해서 유통된다). 반면 두 번째는 객체에 꼬리표를 달고 그것들을 디지털 환경 안으로 코드화함으로써 발생한다(이 디지털적인 확장에 따라 그 객체는 어떤 독특한 코드 그리고/또는 일련의 참조점을 가진 어떤 정체성을 담아내게 된다). 데이터의 두 번째 객체화는 조금 뒤에 온다. 나는 이 첫 번째 과정을 데이터의 객체화라고 부르며 두 번째 과정을 객체들의 데이터화(dataification)라고 부른다. 내가 말하는 바는 그러한 것들이 메타데이터 스킴(metadata scheme)들에 의해 객체화되기 전에는 객체가 아니라는 의미가 아니라, 그 보다는 이 과정들은 인간 행위자를 통해 객체들로 형식을 갖추게 되며 그리고서 컴퓨터에 의해 객체들로 재인된다(recognized). (...) 객체들을 표현하는 이런 방식은 지식표현(Knowledge Representation)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지식표현은 인공지능(AI) 안에서 수 십년 동안 핵심 요소였고 그것은 다수의 대용량 프로젝트(large-scale projects)의 실패 후에 현재는 ‘시멘틱 웹’(semantic web)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한 번 그 중요성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이 객체화 과정은 두 가지 매우 중요한 함축을 가진다. (1) 이것은 하이퍼-링크 기반(hyperlink-based) 웹을 버리고 객체-기반(object-based) 웹이 되는 것이며, (2) 기계적인 것에 있어서도 어떤 입력-출력 장치로서 뿐 아니라 부분적으로 ‘사고하는 기계’로서 보다 중요한 역할을 함축하는 것이다. (...) [이에 대한] 철학적인 질문들 (...) 즉 사고하는 기계에 속해 있는 객체화에 관한 질문과 지향성과 경험에 관한 질문.
[50]데이터 객체화 과정의 시작은 인간을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기계를 위한 것이기도 하다.
[52]우리는 순수 개념들 또는 감각-데이터로부터 현상을 야기하는 범주들의 융합과 같이 메타데이터 스킴을 칸트의 범주들과 비교할 수 있다. 하이퍼텍스트의 시대에, 온라인 객체들은 오직 인간에게만 의미있는 것이었지, 기계에게는 그렇지 않았다. 하지만 메타데이터의 시대에 온라인 객체들은 기계와 인간 둘 모두에게 의미를 가진 것으로 간주된다. 기계는 메타데이터에 주어진 구조들을 통해 객체들의 시맨틱한 의미화를 이해한다. 이 객체화 운동은 시맨틱 웹이라고 불려지며, 팀 베르너스-리에 의해 2001년에 도입된다.
[52]객체로부터 데이터로 그리고 데이터로부터 객체로의 이중의 운동은 오는 수 십년 동안 계속 발전할 지속적인 프로젝트가 될 것이다.
[53]여기 이 맥락에서 시몽동의 사유를 도입하는 것의 중요성은 아마도 그가 기술적 대상들에 관한 철학적 이해를 제안한 첫 번째 사상가일 뿐 아니라, 또한 소외에 관한 마르크스의 비판에 대한 어떤 해법으로 기여할 기술 문화의 발전을 파악했다는 점에 있다. 『기술적 대상들의 존재양식에 대하여』(Du mode d'existence des objets techniques)의 도입부에서, 시몽동은 “현대 세계에서 소외의 보다 강한 원인은 기계에 관한 오해에 놓여 있다. 즉 그것은 기계에 의해 야기된 소외가 아니라, 기계의 본성과 그 본질에 대한 이해의 부족이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기계가 의미의 세계에 참여하지 않으며, [54]가치표와 문화적 개념들 안에서 생략되기 때문이다”라고 썼다.
[54]20세기 초에 사이버네틱스의 등장은 자연적인 것과 인공적인 것 간의 경계를 의문시함으로써 철학적 전통의 균열을 초래했다. 기계의 역동성은 어떤 형상(eidos)에 의해 포획될 수 없다. (...) 한편으로 마르틴 하이데거(Martin Heidegger)는 사이버네틱스가 형이상학의 총체적인 완성과 동시에 철학의 종말을 보여준다는 것을 애도했다. (...) 다른 한편 질베르 시몽동(Gilbert Simondon)은 기술을 어떤 폐쇄가 아니라 오히려 기술적 개체들의 완성을 향해 그리고 기술적인 비소외(disalienation)를 탐색하기 위한 도구들의 발전과 더불어 인간의 변형에 관한 체계적 이해를 통해 기술을 이해하기를 바랐다.
기술적 객체들의 개별화
[54]시몽동에게 개체화(individuation)는 개별화(individualization)와 명백하게 다르다. 개별화는 신체적인 특수화와 [55]심리적 도식화(schematization)와 같은 것으로 기능한다. 개별화가 생명체에 적용될 때, 그것은 심리적인 것과 신체[물체]적인 것 간의 전개와 분리를 함축한다. 이와 달리 개체화는 관계들의 재구축을 통과해 가는 준안정적 균형에 도달하기 위한 긴장의 발생과 해결에 관련된다. 개별화는 개체화와 전혀 대립하지 않는다. 이 두 개념은 존재자의 두 가지 분리된 크기 질서(order of magnitude)로 간주하는 것이 더 낫다. 시몽동은 『형태와 정보 개념에 비추어 본 개체화』(L’Individuation à la lumière des notions de forme et d’information, 2005)에서 신체[물체]적 존재(예컨대 크리스탈), 생명체의 개체화와 심리적 존재의 개체화에 대해 말하며, 『기술적 대상들의 존재 양식에 대하여』(Du mode d'existence des objets techniques)에서 그는 주로 ‘기술적 개체화’가 아니라 ‘기술적 개별화’에 대해 말한다.
[56]디지털 객체 또한 일련의 논리 진술들이기 때문에, 그것의 상호인과성은 높은 수준에서 통제가능하다. 연합된 환경은 개별체 안의 메커니즘으로서만 생각될 수 없고, 대신에 외부와 내부 환경 사이에 있는 어떤 것으로 간주되어야 한다. (...) [57]이런 의미에서 우리는 연합된 환경을 디지털 객체들을 위해 규정할 수 있는데, 이 각각은 그 사용자, 데이터 구조, 네트워크 프로토콜 등등을 포함하여, 그것이 위치해 있는 특정 네트워크에 의해 더욱 안정화된다. (...) 이것은 시몽동이 기술적 개별화라고 불렀던 것으로서, 이에 따라 무언가가 ‘데이터의 객체화’ 또는 도식화로서 이전에 드러나는 것과 상응한다. 이러한 개별화 과정은 세 부분으로 구성된다. 첫 번째 것은 메타데이터 스킴을 통한 데이터의 종합으로서, 이는 칸트의 객체의 객체가 이제 어떤 논리적 개별체가 되는데, 그것은 칸트의 포착의 종합과 비교될 만한 것이다. 두 번째는 디지털 객체들에게 디지털 환경 안에서 그것들의 동일성을 조절할 수 있는 능력을 부여하는, 그 객체 내부의 뿌리 깊은 제약들(built-in constraints)이다. 예컨대 우리가 친족의 온톨로지를 고려한다면, 거기에는 최소한 한 명의 아버지와 한 명의 어머니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세 번째로 그 객체는 이제 어떤 논리적 개별체가 되는데, 그러므로 이것은 디지털 환경의 구성성분으로서 논리적 하부구조를 표현한다. (...) 디지털 객체들은 또한 그 연합된 환경 내부에서 지속적으로 그것과 다른 객체들, 체계들 그리고 사용자들과의 관계를 재수립하고 재연결하는 과정 안에 있다. 디지털 객체들은 또한 감정들, 기분, 집단성(collectivities), 기억 등등을 유지하는 기능들을 취한다. 이것은 디지털 객체에 대한 어떤 역동적이고 활기 넘치는 이해을 우리에게 가져다 준다. 나는 이런 과정을 개체화로 구분하고 싶다.
[57]이것은 연합된 환경 안에서 인간의 지위가 기존 보다 덜 중요하게 되거나 인간이 불가피하게 전체적으로 그 환경으로부터 튀어나올 것이라는 것을 필연적으로 의미하지는 않는다. 아마도 오히려 인간은 천천히 단순화될 것이고, 기계에 대한 인간의 밀접함을 의미하는 그들의 기술적 지식은 가장 표면적인 수준으로 축소될 것이라고 하는 것이 더 낫다.
[58]소셜 네트워크 웹사이트에서 디지털 객체들은 그것을 변형하고 창조하는 인간의 활동 없이 그 자신의 기능을 할 수 없다. 이러한 매개하는 창조와 변형 없이 기계들은 과정에 있어서 아무런 것도 하지 못할 것이다. 인간에게 놓인 새로운 요구는 그들의 중요성을 회복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우리가 곧 보게 될 것처럼 변화는 기술 체계들 안의 인간 실존과 경험에 관한 본성 내부에서 발생한다. 한편으로 우리는 인간이 디지털 객체들 자체에 불과한 것이 된다는 것을 목격하고 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우리는 인간이 기계들을 통합하고, 이른바 소셜 컴퓨팅(social computing)과 크라우드 소싱(crowd soucing)에 따라 새로운 일련의 가동과정을 개시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 보게 된다.
GML에서 HTML로-기술적 경향으로서의 형태
[59]형태(form[형상])와 물질(matter[질료])의 분리는 기술발명에서 분명히 드러나는 것과 같이 어떤 기술적 경향이다. (...) 디지털 객체는 그와 같은 경향을 따른다. 시맨틱 웹은 많은 사용자들 사이에서 전산과정에 활용되는 특수한 기술이다. 이후 그것은 IBM의 일반 마크업 언어(Generalized Markup Language)와 AI의 지식표현로부터 벗어난다. (...) 시몽동은 이러한 과정을 ‘이완의 시간’이라고 부르는데, 이는 “진정한 기술적 시간”이고, “그것은 다른 모든 발전의 리듬과 동기화되고 전체 기술적 진화를 지배하는 것으로 드러나는 한 다른 어떤 역사적 시간의 양상보다 더 지배적인 것이 될 수 있다. 반면 사실상 그것은 단순히 진화의 단계들을 동기화하고 유도한다.”
[59]우리는 여기서 두 가지 결론을 이끌어낼 수 있다. [60](1) 마크업 언어는 테그의 구별을 통해 데이터에 ‘시맨틱’ 의미를 부여하는데, 그 결과 애플리케이션(application)은 데이터를 하나의 객체로 가공할 수 있고, 데이터 조직화의 첫 번째 과정을 야기할 유용한 정보를 분석해 낼 수 있다. 그리고 (2) 마크업 언어는 애플리케이션과 기계의 양립불가능성의 문제에 대한 해법을 제공한다. 달리 말해 그것은 모든 기계들을 공통적인 프로토콜(protocol)로 표현함으로써 연결할 수 있다.
질료형상론과 개별화
[61]질료는 형상의 수동적 대상이 아니라, 오히려 질료로부터 형상(form)이 나온다. (...) 훌륭한 장인은 물질적인 재료의 특정한 상태에 기반하여 또는 질료로부터 나오는 형태(form)을 보면서 조상(彫像)을 만들어낸다. 이러한 평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경험에 기반하며, 특별히 장인적 생산의 시대 안에서 가치를 가진다. 하지만 대량 생산의 시대에 이러한 형상에 대한 질료의 우위는 역전되는데, 왜냐하면 그것이 더 이상 인간적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그와 같은 형상들을 창조하는 기계적 표준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형상과 질료는 여기서 두 가지 대조적인 의미를 가진다. (1) 형상[또는 형식]은 내용의 의미론적(semantic) 의미화를 이해하는데 있어서 기계의 무능력을 보완한다. (...) (2) 형상은 근대 과학 기술과 더불어 서구 형이상학을 위한 수렴점이 되는 이상적 상태 또는 마르틴 하이데거가 사물의 존재-신학적(onto-theological) 구축이라 불렀던 것의 추구를 촉진한다.
[62]우리가 알고 있는 바, 대량 생산이 주로 주형작업(molding)과 그 안의 형상-질료 논리에 기반한다는 것이 사실이라 해도, 기술적 과정은 단순히 질료형상의 원리에 의해 설명될 수는 없다. 기술적 객체의 정체성은 그것의 형상과 질료와는 대조적으로 그 생산의 총체와 같다. (...) 시몽동은 질료형상론이 기술적 생산물들의 최근의 본성을 해명하는데 있어서 불충분하다 할지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여전히 지배적인 공학적 원리로 남아 있는 사유의 직관적 양태이다. 나의 가설은 상이한 역사적, 기술적 조건 하에서, 질료형상론은 물질적 측면에서 그 의도된 효과들 외의 어떤 것을 생산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의 분석은 우선적으로 형상을 의심하면서 그것을 우리 분석이 설명하는 바로 재정립한다.
[64]이미지맵(image map)은 그 이미지 그 자체 바깥에 있는 그것의 관계들에 속한 것들을 지칭하는데, 이에 따라 우리는 개별적인 것이 그 자신의 항들 안에 존재하지 않고, 언제나 외부적인 어떤 다른 것과 관계되거나 링크된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할 것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HTML 4.0의 가장 중대한 측면은 그것이 캐스케이딩 스타일 시트(Cascading Style Sheets, CSS)와 충분히 통합되면서, 보다 진보된 포맷 정의(format definition)와 웹페이지 표현을 가능하게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객체들(텍스트와 이미지 둘 다)은 그것들의 의미화를 명쾌하게 만드는 마크업 측면에서 기술될 수 있으며 이제 그 외양에 있어서 더 낫게 포맷될 수 있다. 우리는 또한 이것이 구체화(concretization)로서 객체화 과정이라는 것을 인지해야 한다.
[66]객체화와 관련하여, XML은 보다 유연하지만 강한 형식을 도입함으로써 HTML보다 더 멀리까지 나아간다. 이와 더불어 그것은 어떤 보통의 사용자와 제한된 의미론(semantics)을 공유할 수 있다.
[67]우리는 디지털 객체들 안에서 형식(form) 개념이, 그것이 비록 이제 보편적이 된 표준들(standards)이라 해도, 전산과정 내의 어떤 기술적 경향으로 계속 기여한다는 것을 보았었다. 형식들은 추상적 도식이며, 표준들은 구체적 객체들이다. 우리는 정치적이고 경제적인 표준화라는 다른 측면도 명심해야 한다. 첫째 그것은 보편적 규준(global schales)에 따른 컴퓨터작업과의 호환성을 추구하는 어떤 강화된 기술적 과정이며, 두 번째로 그것은 파트너들과 동업자들의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시장전략이다.우리는 오직 첫 번째 측면에만 집중한다. (...) 이 맥락에서 객체성은 객체 자체에서 유래하고 관찰자들에게 보편적으로 남아 있는 요소들의 특성을 지칭하는 것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예컨대 과학에서 객관적 방법과 관찰의 객관적인 양상은 모든 형식의 주체적이고 심리적인 해석을 배제한다. (...) 보편적이라는 것, 즉 형식은 모든 기계에 공유된 틀이 되며, 이에 따라 그것의 변형은 호환불가능성으로 이끌린다. 그래서 변형 없이 형식을 개방하기 위해, 그것은 객관적[객체적]으로 보여야만 한다. 이것은 자유롭게 확장가능한 XML과 연합된 문제들 중의 하나를 부각시킨다. XML은 포맷과 형식의 유효성(validity)을 보증하므로, 스킴(이 경우에는 일련의 사용된 테그들)의 객체성을 보증하지 않는다. 이 객체적-보편적 상관관계는 다른 종류의 보편성, 즉 차이를 허용하는 그것과 대조될 수 있다.
[68]이러한 모호성은 XML이 개념적으로 온톨로지들(ontologies) 안으로 확장되어 들어갈 때 분명해진다. (...) 모든 대상들은 표준 온톨로지에 의해 재현된다. XML 문법에 기반한 이 온톨로지들은 기계가 데이터를 이해하고 처리할 수 있도록 객체들의 시맨틱 의미화(semantic meanings)를 조절한다. 각각의 객체-술어(object-predicate[객체-속성])는 어떤 특유한 URL에 의해 동기화되는데, 이것은 디지털 환경 안에서 ID로 기능한다. 그래서 객체들이 정체성을 가질 뿐만 아니라, 그것들의 구성요소들이나 술어들[속성들] 또한 정체성을 가지며, 따라서 통제와 조절에 종속된다. (...) 시맨틱 웹 에이전트(온톨로지들을 분석할 수 있는 컴퓨터 프로그램)는 병원의 위치, 거기 도달하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 병원의 에이전트와 약속하는 방법 (...)을 사람들에게 말해줄 수 있다.
[69]지식표현은 여기서[XML에서] 단지 재현(representation)이 아니라 필연적으로 객체적이며, 따라서 그것이 제시하는 것은 일련의 본문 메시지 대신 하나의 객체로서 인지될 수 있다. 객체성과 보편성의 두 가지 상이한 형식들을 일치시키려면, 두 가지 가정들이 만들어져야 한다. (1) 사물의 객체적 표현[재현]이 존재한다. 그리고 (2) 그것들의 번역가능성은 A 맥락으로부터 나온 객체가 B 맥락으로부터 나온 객체로 번역되는 것이 허용되므로 사물의 두 가지 표현들 사이에서 발생될 수 있다. 이러한 번역과정은 단순히 어휘들과 접두사들의 번역이다. 만약 우리가 잠시동안 이에 대해 생각하기 위해 멈춘다면, 번역이 두 번째 가정 없이는 불가능할 것이라는 점을 깨닫는다. 여기서 지배적인 것은 보편적인 것으로서의 객체성 개념이다.
[69]우리는 심지어 이미지 객체가 다양한 카메라 객체들, 제작 객체들, 위치 객체들 등등을 동시에 담아낸다고 이해할 수 있다. 하나의 객체는 그러므로 어떤 단일한 형식에 의해서만이 아니라, 다양한 형식들에 의해 결정된다.
[72]디지털 객체들의 개별화에 관한 앞 선 논의를 요약하기 위해 우리는 이 과정이 세 가지 핵심 개념들, 즉 보편성(universality), 상호운용가능성(interoperability) 그리고 확장가능성(extensibility)을 포함한다는 것을 알았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이 객체성이 사실상 진화나 개별화의 항구적인 과정 안에 있다는 것을 이해한다. ‘디지털 환경’의 객체화와 개별화를 둘러싼 논의는 오로지 가장 최근에 보다 성숙한 단계에 들어섰다. 수평적으로 우리는 형식들이 GML(기계 내부에서 프로그램들 사이에 호환성을 허용하는)로부터 온톨로지로(인터넷을 가로질러, 기계들 사이에서) 발전했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 이 과정은 그 기능성과 안정성을 유지하기 위해 점차적으로 보다 더 많은 객체들, 기계들 그리고 사용자들을 포함한다. 우리는 또한 연합된 환경을 여기서 상호운용가능성과 호환성이라는 규준에 따라 접근할 수 있다. 수직적으로 우리는 디지털 객체들이 언제나 하나의 과정, 즉 그것에 의해 객체들이 점점더 보다 구체적이고 개별적으로 되는 과정 내부에 있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 HTML은 단순히 데이터로 가득찬 포맷된 텍스트 파일이지만, RDF는 복잡한 문서로서 진전된 프로그래밍과 논리적 발전 가능성으로 코드화된다. RDF – 또는 OWL – 는 온톨로지들을 포맷했는데, 이에 따라 그것은 객체-지향 프로그래밍(OOP) 안의 어떤 객체와 유사해진다. OOP는 세 가지 중요한 속성, 즉 추상(abstraction), 캡슐화(encapsulation) 그리고 상속(inheritance)들을 가진다. 이에 따라 하나의 클래스는 새로운 클래스를 생성하기 위해 중단될 수 있는데, 결국 어떤 속성들과 기능들을 부모 클래스(parent class)로부터 상속받는다. 우리는 웹 온톨로지에 관한 최근 개념 안에서 이 모든 속성들을 알아 볼 수 있다.
디지털 객체들의 발생은 이러한 객체들의 동력학에 대한 탐색의 시작을 형성하는 바, 이는 이러한 새로운 산업적 대상들의 의미화에 관한 더 좋은 이해를 위한 범위를 전개하고자 하는 것이다. 시몽동을 따라 우리는 디지털 객체들에 대해 발생(genesis)의 개념을 적용할 수 있다. 게다가 그러면서 우리는 이전에 단순한 객체들로서 무시했고 묵살했던 새로운 동력학을 발견하게 된다. 디지털 객체들의 발생은 구체화(concretization)와 물질화(materialization)의 과정, 즉 첫째는 형식들, 둘째는 객체들 간의 관계와 연결이다. 우리는 이것을 상호주체성과 대조적으로 상호객체성의 진화과정으로 이해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