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흄'(from 들뢰즈 사전들)
데이비드 흄은 스코틀랜드 철학자이자, 역사가, 경제학자이며 종교 이론가이다. 그는 아마도 일반적으로 지칭되는 ‘경험주의자들’에 속하는 철학자들 중 가장 많이 알려져 있을 것이다. 비록 흄을 존 로크(John Locke) 버클리(George Berkeley)와 같은 철학자들과 한 그룹에 넣는 것이 다소 의아할지라도, 20세기 중후반의 철학사는 그들을 일반적으로 함께 다루어왔다. 흄에 관한 장에서, 우리는 전형적인 방식으로 그를 로크와(또는) 버클리의(또는 데카르트와 말블랑슈) 연구작업을 급진화하고 확장한 한 사람의 자연주의자로 그리거나, 또는 그의 철학적 기여가 전반적이고 광범위하게 비판적이라는 의미에서 회의주의자로 취급할 수 있다. 아마도 그의 가장 잘 알려진 철학 이론은 감각 인상으로부터 유래하는 불분명한 관념들에 좀 더 집중해야 하다는 것이다. 1960년대 후반과 1970년대 전반기에만 하더라도 앵글로-색슨계 흄 연구자들은 그와 같은 다소 거슬리는 인식론적 주장들, 이를테면 그의 정념에 관한 분석이나, 연합의 원리, 본능이자 성향이면서, 믿음과 상상력, 느낌 그리고 공감이기도 한 정신의 특징과 같은 것들에 대해서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1952년과 53년에 들뢰즈는 바로 이 지점들을 강조했다. 다시 말해 흄의 인간본성의 원리에서 자연주의의 증거들을 집중적으로 조명한 것이다.
들뢰즈에 의한 강조점의 이동은 보다 멀리까지 이른다. 흄 자신은 그의 회의론적 인식론의 결론들에서 그러한 것들을 발견할 수 없었다는 것이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이긴 하지만, 그의 이론은 역사, 사회학, 종교 그리고 경제학을 난점들로부터 구출해 내는 역할을 했다. 들뢰즈는 흄의 전체 저작들이 ‘인간본성에 관한 과학’의 전개에 있어서 여러 단계들을 포함하는 것으로 간주한다. 즉 흄의 저작들은 인간의 삶에 있어서, 윤리적, 인식론적 그리고 미학적인 차원들을 포함할 뿐 아니라, 경제적이며 종교적이고 역사적인 차원들도 포함한다는 것이다. 들뢰즈에 따르면, 우리는 흄의 철학을 다른 학과 분야들을 참조하지 않고서는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
들뢰즈는 그의 출판물들과 인터뷰들에서, 흄의 경험주의로 몇 번이고 되풀이해서 돌아간다. 흄에 대한 가장 상세하고 일관된 그의 저작은 첫 번째의 완결된 저작인 『경험론과 주체성』이다. 들뢰즈는 여기서 특히 흄의 철학의 세 가지 측면에 초점을 맞춘다. 첫째는 직접적 경험을 근거지음으로써 철학에 기여한 부분인데, 이것은 들뢰즈의 ‘초월론적 경험주의’의 주요 요소로 재등당하게 된다. 들뢰즈의 독해에 따르면 흄은 그의 철학적 탐구를 세계 대한 직접적인 관찰들로 시작한다. 즉 인간은 대상을 바라보고, 신의 실존을 정립하며, 윤리적 판단을 하고, 경제적 요청에 걸맞는 일을 기획하고, 그리고 몇몇 감각에서 그들 스스로를 자각한채 살아간다는 것이다. 들뢰즈가 논증한 바에 따르면, 흄은 처음부터 그가 심리적인 것 자체라고 지칭하는 ‘항구성 또는 보편성’의 어떤 요소도 사유안에서 발견할 수 없었기 때문에, 그 대신 ‘정신의 정동들(affections)에 대한 심리학’, 즉 관찰가능한 사회적, 정념적 정황들(circumstances)에 따라 정신의 규칙적인 ‘운동’에 대한 이론을 발전시킨 것이다. 하지만 흄은 어떤 철학체계를 건설하기보다 경험의 실재성에서부터 도출되는 그와 같은 동력학을 설명하기 위해 요구되는 개념들을 읽어낸다. 그리고 이러한 개념들을 언제나 대체되거나 보충될 수 있는 대표적인 설명적 도구들로 취급한다.
두 번째로 들뢰즈가 강조하는 것은 흄의 ‘원자론’이다. 흄은 정신을 한 꾸러미의 단일한 관념들로 파악하며, 그 각각은 구별되는 근원 또는 경험상의 근원들로 이루어져 있다. 정신이 관념에 앞선다는 것, 그래서 경험이란 정신에 그저 주어진다고 논증하는 대신에, 흄은 정신이 단지 이러한 근원적으로 분리된 관념들일 뿐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독해에서 정신의 관념들을 초월하는 것은 아무 것도 없으며, 그러므로 그것들 사이의 연결은 결코 미리 프로그램된 것이 아니다.
들뢰즈가 세 번째로 강조하는 것은 흄의 ‘연합론’이다. 관념들이 선천적으로 구조화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거기에는 새로운 지성의 패턴, 새로운 행동 양상들 등등이 발생하기 위해 함께 야기될 수 있는 이런저런 방법들이 있게 된다. 들뢰즈에 따르면 흄은 그와 같은 연결들을 주관하는 어떠한 보편적인 원리나 능력의 가능성도 기각한다. 오히려 실재적인 삶의 영향(즉 경제적이고 법적인 구조, 가족, 언어 패턴들, 신체적 요구사항들 등등) 하에서 어떤 창조적인 잠재력이 현실화된다. 그러한 영향력들에 반응하는 인간 안에 존재하는 명백한 경향성을 흄은 ‘일반 규칙’이라고 부르는데, 여기서 ‘규칙’이란 일반적으로 쓰이는 의미라기보다, 우연적이고 영구적이지는 않은 어떤 것이라고 해야 한다.
이러한 복잡하고, 우연적이며, 변화하는 관계들과 경향들로부터 떠오르는 부수현상이 바로 인간 주체다. 이것을 우리는 ‘나’라고 부른다. 이 인간 주체는 들뢰즈에 따르면 허구(fiction)로 이해된다. 이러한 허구로서의 주체는 그것을 정립하는 동일성을 가지기에 충분할 정도로, 그리고 사회 영역에서 존속할 정도로 안정적이지만, 거기 담고 있는 요소들은 역동적이며, 인간에 대한 위계적 사유를 초월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비인간적인 생성(되기, becoming)에 관한 리좀적 사유라고 할 수 있다. 플라톤적인 원본-사본 관계가 동일성과 존재의 존재론과 관련된 들뢰즈의 결정적인 공격 목표라면, 다른 측면에서 흄은 어떤 급진적인 생성의 형이상학으로 들뢰즈가 탈출하는 수단을 제공하는 것이다.
비록 들뢰즈가 흄의 저작들에 계속 신뢰를 보냈다고 하더라도, 그의 독해는 매우 기이한 방식이며, 원전 텍스트를 자주 넘어선다. 흄의 일반규칙들, 인위적인 것, 습관과 허구들을 안정화하는 것에 대한 집중적인 연구는 인간 개체에 관한 들뢰즈의 초기 이론화에서 특별한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들뢰즈의 흄 해석은 통상적이지 않았으며, 이는 라이프니츠와 니체에 관한 그의 해석보다 훨씬 더 급진적인 것이었다.
- Cliff Stagoll, ‘HUME, DAVID(1711-76)’, ed., Adrian Parr, Deleuze Dictionary, Edinburgh University Press, 2003, 120-22.
들뢰즈는 흄에게서 ‘감각인상’과 ‘정념’으로서의 정신의 기원에 관한 논증을 발견한다. 이에 따르면 정신은 편파적이면서 동시에 목적의식적이다. 그리고 정신은 상상력 안에서 반성된 후, 이성에 의해 교정되고, 도덕, 정의 그리고 경제적인 것이 된다. 흄에게서 상상력은 ‘습관’에 의해 구성되어지는 것으로서, 자연적 경향성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지만, 그 자체로 경험상으로 발견되지 않는 원리나 기교(artifices)에 기반한다. 자연적 인상과 정신을 창조하는 감각 사이에도 마찬가지의 구별이 있다. 또는 ‘반복되는 대상’과 분리될 수 있는 반복이 있을 수 있다. 또한 인위적 습관들은 정신에 의해 구성되는 것이다. 여기서는 인과적 관계가 기대되거나, 반복으로부터 추론된다. 들뢰즈는 후에 이러한 테제를 베르그송을 참조하면서 갱신한다. 이는 우리가 ‘반성’ 이전에 놓이는 습관이라고 부르는 연속적인 경험들을 구축하는 정신의 범역 안에서 ‘수축’(contraction)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다.
흄의 ‘실용주의’도 스피노자의 그것과 공명한다. 두 철학자에 대한 들뢰즈의 분석에는 공히 상상력의 오류를 발생시키는 능력에 관한 강한 의심이 있는데, 흄의 경우 그것은 ‘공상’(fancy)으로 불린다. 들뢰즈에 따르면, 스피노자의 경우 관념은 감응들(affections, 정동들)에 기초하는데, 이는 부적합하고 혼란스러운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부수적인 것, 즉 상상력에 의해 파악되기 때문이다. 반면 흄의 경우에, 상상력은, 그것이 이성이나 지성에 의해 교정되지 전까지는, 습관을 믿음으로 확장하거나 경험에 기초하지 않은 사태를 ‘반복’하는 것이다. 스피노자에 있어서와 마찬가지로 ‘이성’은 상상력이 가지는 결함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통해 탄생한다. 스피노자에게 이성은 단순히 어떤 인상들의 ‘진정한 질서와 연결’을 형성하고, 그 결과 주체가 그것들의 본질을 확장하기 위해 촉발될(affected) 수 있게 한다. 반면 흄에게서 이성이란 인과성이나 인상들 사이의 관계들을 추론하여 정념들이 충족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흄의 들뢰즈에 대한 지배적인 영향은 이성과 원리들이 정념들, 감응들 그리고 지각들을 용이하게 하고, 확장하며 교정하지만, 대체하거나 통제하지는 않는다는 점에서 볼 수 있다. 흄의 이러한 이론은 어떤 심오한 정치적, 사회적 수준에 놓여 있다. 모든 본능과 정념들은 관습 또는 습관이며 이는 인위적인 것 또는 제도 안에서 만족스럽게 된다. - E. B. Y.
- Eugene B. Young, Gary Genosko, Janell Watson, The Deleuze & Guattari Dictionary, Bloomsbury, 2013, 158-59